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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 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 번 정도만 언급하는 걸로 깔끔하게 할 것. 떠날 때 미련 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 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 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 규칙에 따라 지적과 수용, 해명 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 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스쳐지나간 사람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 차원 저 차원에서 구조를 하다보니 가끔씩은 이런 일이 있기도 하다만, 최악의 형태로 끝맺어버린 어느 누군가가 떠올리는 이런 첫만남은 코모레비에게 그닥 좋지 못했다. 이름이 불린 이는 말을 걸어온 남성에게로 조금은 긴장한 채 고개를 돌린다. 그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다른 차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다보니까,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용건이라도…?"
조금은 차가운 말투가 된걸까 걱정하면서도 긴장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와 같은 비웃음은 사양이다. 뭐. 그런 만행을 저지른 사람도 이제와서는, 그 차원과 함께 소멸되어버렸지. 코모레비에게 있어서는 제법 씁쓸한 기억었다. 아무리 껄끄러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끔찍하게 죽는 것을 바란건 아니었다. …코모레비는 괜한 것을 떠올려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인상이 찡그려진다.
"저는, 코모레비씨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남자는 속삭인다. 그 말에 코모레비는 굳어버린다. 어떻게. 무엇을?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코모레비가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을 잡는다. 눈웃음을 지어오는 얼굴에 문득 두려움을 느끼지만, 지지 않고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몸에 관한 얘기를 할 셈이야? 딱히 협박거리가 될 만큼 비밀은 아닌데." "아. 오해하지 마세요. 협박을 할 생각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일종의 거래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니까요. 그렇게 긴장하진 마시고." "…거래?"
그는 코모레비의 손에 메모 한장을 쥐어준다. 그녀는 메모를 펼친다. 메모에는 어떠한 주소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 주소는 코모레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익숙한 장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이쪽 세계 시간 기준으로 내일 세시, 거기에 적힌 주소로 나와주세요. 아. 반지는 끼지 말고요."
부탁이라기 보단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태도였다. 가지 않을 수 없다. 코모레비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어째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 "필요한 비용은 전부 제가 지출할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너, 대체 뭘 할 생각……."
코모레비의 물음에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런 곳에 사람을 불러내고, 뭘 할지 같은건 정해져있잖아요?"
♧
"저는 말이죠."
그는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에는 황홀감이 돋보이고 있었다. 마치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손이 떨린다. 아아. 정말로, 이렇게나 간단히. 이 자에게는 일전의 어떤 사람과 같은 깔보는 태도는 없었다. 정 반대로, 극단적인 찬미의 태도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욕망이었다.
"차가운 인상의 잘생긴 남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디저트를 먹는게 정말 좋아요……."
행복감에 젖어있는 코모레비를 감상하면서, 그는 말한다. 아이돌과 일대일로 팬미팅을 하는 팬같은 얼굴을 한 채로. 무슨 속셈이지? 평소엔 먹을 엄두를 못 냈던 비싼 디저트를 입안에 넣으면서 코모레비는 반쯤 행복과 반쯤 의심에 잠긴 얼굴을 한다. 아. 입에서 살살 녹는다.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지만 무슨 속셈이지? 앗. 근데 진짜 맛있잖아.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는 연락에 코모레비는 핸드폰을 집어던진다. 정확히 말하면, 핸드폰의 형태로 굳어있는 마력체같은 것이다. 전화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으로 연결된 곳하고만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무전기와도 같은 것…인데, 어째서인지 그 사람은, 어떤 방법인지, 계속해서 연락을 건네오는 것이다.
"또 피피티 걔야?" "그래. 걔야." "왜 자꾸 연락한대-"
그러게 말이다…라고 대답하려던 코모레비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태클을 건다.
"근데 너는 왜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있는거야."
어디선가 주워온 고전 게임기를 뿅뿅대며 소파에 기대있던 불꽃은 그 말에 당당히 대답한다.
"방금전에 집 근처에서 큰 소리 나서 무서워. 오늘은 여기서 잘래." "헛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그러지 말고. 재해 생기면 누나가 대충 해치워줄 수 있을 것 아냐…." "재해 전에 나에게 죽는 수가 있어."
당연하게도 냉정한 태클이 돌아온다. 소라는 화제를 다시 그 전남친의 얘기로 돌려본다.
"…너무 뻔뻔한 거 아냐. 그 자식? 그 때 누나 휴학하게까지 했으면서 뭐가 대단하다고…." "너에게 뻔뻔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니 정말 심하긴 하지." "아니. 나는 그래도 파워포인트 발표로 연인 얼굴과 이름을 큼지막하게 담고 공개이벤트를 하지는 않거든!" "만약 네가 그 정도였다면 난 너랑 가족의 연을 끊었을거야."
화제를 돌리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계속 그에게 화살이 날아온다. 몇 번 이런 느낌의 대화를 반복하다가 코모레비는 이 동생이 말로 해서 자기 집에 갈 생각이 없음을 깨닫는다. 잔소리는 포기한다. 자고 간단건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겠지만, 진짜 밤까지 안 돌아가면 물리적인 수단(마법)을 써서 돌려보내야지.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은데, 확실하게 핑계댈 말이 없네. 화내는 걸로는 말을 알아듣질 않고." "최대한 추하게 굴어서 정을 떨어뜨리는건?" "소문날까봐 싫어." "좋은 말로 할 때 떨어질 것이지!" "너도 말이지!"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 가족이잖아!" "가-족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분명 의도한 것 같은 발음으로 이야기하곤, 코모레비는 미간을 짚는다.
"…아- 아무튼 난 이 자식 쫓아낼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혼자 생각좀 하게 돌아가." "왜에. 동생을 한번 믿어봐. 내 활활 타는 머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어떻게 알아." "아이디어는 네 집에서 내." "그치만 진짜 엄청 큰 소리가 났단 말이야. 난 또 폭탄 터지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으윽. 죽을 때의 트라우마가…." "누가 보면 나는 비명횡사한줄 알겠다?"
코모레비와 소라 둘 다 한날한시에 폭탄이 터져 죽었다. 두 사람 다 죽을때의 기억은 제대로 없는 것 까지 똑같았다. 같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이기에 통하는 농담이었다.
"애인 있다고 해서 거절하는건? 전에 번호 따였을땐 그렇게 했다면서. 누나 다른 모습 사진 보여주며 애인이라고 했다고."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이 놈의 집착을 보면 직접 같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믿을 것 같아."
모습이 두개라는 것을 어느새 활용하게 된 그녀였다. 그야,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런 이득이라도 있어야지. 코모레비는 문득 예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 때 어느 차원의 카페가 커플에게 케이크를 무료로 주는 이벤트를 해서, 카톡방에서 일일 애인을 모집했었지. 카페 직원이야 하루 보고 말 사이니 그런 짓이 가능했지만, 스바루, '그 전남친'은 왠지모르게 코모레비랑 쓸데없이 끈끈하게 엮여있었다. 수많은 세계가 망하고 인구란 이만큼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재회할 수 있는거야. 살아남은건 다행이지만 그 이상의 안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냥 어디서 코모레비가 모르는 곳 어딘가에서 대충 잘 살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끈질기구만." "끈질기지." "거머리같다." "그래. 너처럼." "아. 적어도 나보다라고 해줘." "정말이지. 내가 두 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코모레비는 문득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춘다. 무언가 떠올렸는지, 자신의 손에서 조심스레 반지를 뺀다. 방금까지의 갈색 머리의 여자와 조금도 닮지 않은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응?"
누나. 뭐 하는…그렇게 말하려던 소라의 손을 코모레비는 부드럽게 잡는다. 그리고는 붙잡은 그 손에 반지를 껴준다. 그림만은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목 위로 불꽃이 타오르던 남자 대신, 여자 네이비 코모레비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나타난다.
"……."
아. 설마. 코모레비는 소라의 손을 여전히 쥐고 있는 채이다. 그 빼어난 외모의 남자는, 눈 앞의 여자에게 나지막히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자,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이름이었다.
"코모레비."
코모레비라고 불린 여자…남자는 반지를 잡아빼버린다. 코모레비는 다시 그것을 그의 손에 끼워준다. 잠깐사이 모습이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 코모레비(소라)는 질색한 얼굴로 말한다.
"…싫어싫어싫어! 남자로서 자존심이 있지!" "누구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없는 것 처럼 말한다." "아니.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나, 나 누나 흉내 낼 자신 없단 말이야! 의심받으면 어떡해!?" "시간이 대충 죽어있던 시간까지 합치면 사십년이 넘게 지났어. 그 사이에 전쟁에 멸망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는데, 사람이 좀 바뀔수도 있지." "애초에 나, 그 사람에 대해 아는거 하나도 없고!" "그거라면 더 좋아. 그 자식을 완전하게 잊어버렸다는 증거니까."
검은 곱슬의 남자는 반지를 든 채 소라에게 다가간다. 안 그래도 소라보다 큰 편인 그의 키가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진다. 어쩌지. 여러가지 의미로 도망칠 곳이 없다. 이것이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 뒹굴거리며 버틴 것의 업보인가.
"너는 그냥 분에 넘치게 잘생긴 남친과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한 티만 잘 내주면 돼. 바보같이 웃든 헛소리를 하든 그건 알 바 아니고." "누나. 그 얼굴에 자신 엄청 넘치는구나!" "당연하지. 내 얼굴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만! 실제로 잘생기긴 했지만!"
남자 모습을 불편해하는 것 치고 얼굴에 대한 자신은 가득한 그녀였다. 이질감 속에서 그나마 찾아낸 장점이라고 할까. 그에 비해 본모습에 대해서는 과하게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같지만.
"…아무튼! 나는 안 해! 무슨 이유가 있어도!" "무슨 이유가 있어도." "나도 그 자식을 쫓아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이건 싫어! 그냥 여장도 아니고, 누나 모습이라니 싫어!" "그렇게 싫은가." "그래! 절대 안 해!"
화륵화륵 타오르는 불꽃이 따박따박 말한다. 그것을 보는 그는 여전한 무표정이다. 아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코모레비는 침착하게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고기 사줄게."
소라는 반지를 낀다.
"대면하는건 언제로 할까. 달링?" "너무 빠른거 아니냐. 뭐. 보기 좋지만." "이 정도 일을 시키는 거면 물론 최상급의 고기로 준비할 거지?" "값비싸고 고급진 쇠고기로 준비할게. 걱정마. 이 일이 끝나면 함께 구워먹자."
코모레비가 살고 있는 안전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라곤 보급품 뿐. 종류는 나름대로 다양했다만 하나같이 맛있는 한 끼 식사라고 하기는 힘든 것들이었다. 코모레비가 늘 식사대체알약을 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맛없게 먹느니 차라리 약으로 떼우고 만다는. 그렇기때문에 고기를 사준다는 이야기는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차원이동을 할 수 있는 코모레비는 다른 차원에서 어떻게든 고기를 조달하는 것이 가능했기에―그러면 왜 굳이 알약을 먹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녀는 '귀찮으니까'라고 답할 것이다.
어찌됐건 고기에 매수당한 소라(코모레비의 여자버전 모습)는 코모레비(남자버전 모습)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전남친님을 앞에 두고.
"코모레비에게서 떨어져주시겠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남윤우'라는 이름을 쓰게 된 코모레비는(코르부스씨가 지어준 가명 2개중 하나를 이용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싸늘한 눈으로 상대를 쳐다본다. 꽤나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는 윤우씨이지만, 스바루는 그닥 기가 눌리지 않은 것 같다.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단호한 얼굴로 마주 쳐다본다. 중간에 낀 코모레비(의 모습을 한 소라)는 그저 곤란해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아냐. 고깃값은 해야지. 참자.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하시죠." "현재의 남자친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뭣보다, 코모레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우는 코모레비의 손에 부드럽게 자신의 손을 얹는다. 지금은 코모레비의 역할을 수행중인 소라는 속으로 움찔거린다. 이 사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까. 자기 얼굴을 한 동생에게 이렇게 뻔뻔스레 스킨십을 할 수 있다니.
"당신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어줍잖은 짓을 해서 학과에 코모레비의 얼굴과 이름이 팔리게 하고, 결국 휴학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건……." "그런 짓을 해놓고 운명의 사람이니 어쩌니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며 돌아오다니, 대단하기도 하지."
쏘아붙이는 말이 그를 향한다. 진심이 담겨있다. 솔직히 그럴 만 하다. 코모레비(소라)는 조심스레 거든다.
"툭하면 전화하는 것도 그만해." "코모레비……." "애초에 전화번호, 알려준 적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야."
조금 더 파고들어가자면, 전화'번호'가 있는 핸드폰도 아니다. 마법적인 무전기랑 비슷한 원리다. 해킹을 해서 전파에 간섭하는 수준의 일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스바루는, 고개를 숙인다. 남친(사실 본인)까지 데려와 이 정도로 얘기했으면, 슬슬 그만두지 않으려나……라고 생각하여 소라는 그의 얼굴을 살핀다. 새삼 자신의 누이의 취향이 매우 일관적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으면서. 이 사람도 선이 가늘고 얄쌍한 얼굴이구만.
"…못 해."
네? 그런 말이 나오려는 것을 소라는 간신히 참는다. 스바루의 얼굴은 여전히 굳건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나는 물론 그녀에게 부족한 사람일지 몰라…하지만, 네 녀석은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지? 코모레비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
윤우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드라마나 순정만화를 너무 본 것 아닐까. 이 인간. 그러거나 말거나 스바루는 마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말을 이어나간다. 저 자신감이 부럽다고 '진짜' 코모레비는 속으로 생각한다.
"네 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어… 너는 코모레비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이윽고 스바루의 열변이 이어진다.
"코모레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나 뿐이다… 그래. 가족을 잃어버리고 고독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그녀에게는 더더욱! " '뭐라는 거야.'
이번엔 가짜 코모레비가 어이없어한다. 이런 사람에게 걸리다니, 누나도 불쌍하구만. 소라는 지금까지 자신을 거쳐간 연인들을 떠올려보며, 새삼 자신의 연애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 뭐. 그렇다곤 해도 지금은 애인이 없지만. 세상이 망했는데 연애가 문제겠어.
"나는 그녀를 알고 있어…강한 척을 해도, 사실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코모레비를…아아. 코모레비… 저런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는 냉혹한 남자에게 붙잡혀서, 얼마나 괴로울까… 나의 태양. 나의 빛……." '우와. 창피해.' "이제 그만 나를 봐주면 좋을텐데… 너는 아직 모르는 걸까. 이 암담한 세계속에서 나야말로 너를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세계가 멸망했는데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그 증거……." '그만해. 보는 내가 부끄럽다.'
소라는 속으로 태클을 건다. 눈 앞의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세계만을 바라보고 있네. 이 사람. 당사자가 아닌데도 보기 힘든데, 지금 이름이 불리고 있는 본인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소라는 붉은 컬러렌즈를 낀 눈으로 자신의 누나의 상태를 살핀다.
"……." '…어라?'
예상 못한 표정이다. 분명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얼굴은 절대로 아니지만. 윤우는, 그러니까, 진짜 코모레비는 명백히 동요하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저 말의 어디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아. 너무 짜증나서 불쾌하다 못해 극심히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달라보이는데. 아. 설마.
"…윤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스바루 뿐이다. 코모레비는 그 말에 반응한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
2.
어설픈 완벽주의자는 천천히 무너져내려갈 것이다. 완벽한 완벽주의마저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완벽을 그저 바라보며,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되고 현실에 부딪쳐가며 코모레비는 계속해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을 할 줄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는 사람 역시 그랬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해내는 사람도. 고등학생이 되며, 대학생이 되며, 계속해서 깨달아간 사실이다.
코모레비는 제법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꽤나 힘든 날들이었다. 나는 대단하지 않아.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야. …나는. 그저그런 성적을 끌어안으며 울거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하는 고교시절의 끝.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학에 향한 코모레비는 이미 많이 깎여내려가 있었다. 한 때 소라가 바라보고 있던 프라이드가 높은 누나와는 꽤나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스바루에게 반하게 됐던 이유는, 실로 오랜만에 아낌없는 칭찬을 퍼붓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코모레비는 다정함에 약했다. 자기자신에게 다정하지 못했기에, 별 것 아닌 호의에 쉽게 반응한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인정받을 구석 없는 자기자신을, 그는 모든 곳에서 긍정해주었다. 그런 점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 노골적인 애정의 끝은 결코 좋지 못했지만. 파워포인트 발표 도중 100일 이벤트를…이 얘기는 슬슬 생략한다.
어찌됐건 그건 그거고 저 전남친이 하고 있는 소리가 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코모레비는 그녀의 멋진 연인인 남윤우로서 말하기만 하면 됐다. 나야말로 코모레비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코모레비는 코모레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로, 점점 평범함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어간 자신의 발자취를. 존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침묵이 이어진다. 동요한 모습을 보여서는 상대를 쫓아낼 수 없다. 어차피 연기인데 뭐가 어떻다는거야. 코모레비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멋진 남자친구라고, 뭐 그런 역할로 정해뒀었잖아. 그렇게 해야지 떼어낼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이 없었다. 오글거린다 이상의 거부감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모레비에게는 코모레비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못 하고 있었다. 불가능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빈말을 왜, 나는.
"나는, 코모레비를 사랑해."
그리고, 대신 말한 것은 '코모레비'였다.
"…너밖에 없지 않아."
소라는 담담하게, 스바루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스바루는 '코모레비'의 말에 주춤한다. 진짜 코모레비 역시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다.
"네가 그래온 것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훨씬 사랑하고 있어. " "…하지만."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에서 나의 가치가 생기는 게 아니야. 네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보인 방식은, 결국 나를 괴롭게 만들었잖아." "코모레비…."
윤우는 주춤한다. 자신이 하지 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튀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강단있게 코모레비는 이야기해나간다.
"나는 지금 행복해. 네가 곁에 있지 않아도 돼." "…그, 그렇지만!"
스바루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는 진짜 코모레비를 가리킨다. 윤우는 움찔댄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저런 녀석하고 함께…!" "괜찮아." "정말 괜찮겠어!? 딱 봐도 저 녀석은…!"
딱 봐도…라니. 딱 보고 나서 이 쪽이 본인인 것도 못 알아보면서 뭘 안다는 거야. 윤우는 찡그린다. 코모레비는 과시하듯이 윤우의 팔에 팔짱을 낀다. 스바루는 분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녀석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 "윤우가 보기보다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 '이상한 설정이 붙었어.'
속으로 태클을 걸고 있는 걸 보니 조금은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윤우는, 코모레비의 팔을 조금 더 꼭 붙잡는다. 소라의 연기에 부응한 것인지, 아니면, 의지하듯 파고 드는 것인지. 소라는, 코모레비의 얼굴을 한 채 환하게 미소지어보인다. 아. 그러고보면 이 녀석의 부러웠던 부분이 그거였지.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거. 진짜 코모레비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이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얼굴을 한 사람이, 자신과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임을 느끼면서. 약간의 쓸쓸함과, 가득한 동경.
"그러니까, 더는 보지 말자. 우리 둘의 관계가 한때의 미숙했던 기억 정도로 남을 수 있도록." "…하지만."
말문이 막히니 이제는 울기 시작했다. 소용없어.
"…코모레비…."
…소용없다니까.
++++++
3 (완결) - 고기맛잇쪙.
지글지글 하는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불판에서 들려온다. 소라의 목 위에서 불꽃도 신나게 타오른다. 코모레비는 고기를 뒤집는다. 일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상이다. 표정없는 푸른 불꽃은 딱 봐도 즐겁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가끔 보면 얼굴 뒤로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고, 코모레비는 생각한다. 소라는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집어올린다. 그것을 입…이 아니고 푸른 불꽃 안으로 밀어넣는다. 서서히 불타던 고기가 사라진다. 저렇게 해도 맛이 멀쩡하게 느껴진다니 다행이다.
"누나는 안 먹어?" "먹고 있어." "설탕이 없어서 그래?" "누가 등심에 설탕을 뿌려먹어."
단 걸 좋아하니까 혹시나. 내가 좋아하는건 달콤한 디저트지 그런 괴식이 아니야. 의미없는 대화가 오간다. 평범하게 언제나의 두 사람이었다.
"한 번 해봐. 의외로 맛있을 수도 있잖아? " "그럴리가 있냐." "어떻게 먹어보지도 않고 단정짓는거야!" "누구도 하지 않는 일에는 이유가 있는거야."
고기가 뒤집힌다. 기름기가 불판에 흘러내린다. 아. 슬슬 종이 갈아야겠다. 마법을 통해 종이가 교체된다. 뒤집는 것까지 마법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섬세한 작업은 힘들다나. 종이 교체는 순간이동시킨다는 느낌으로 하면 되지만, 고기는 회전시켜야 하니까. 손으로 하는 게 낫다.
"멸망한 세계에서 새로운 식문화로의 도약을 이끌어낼지도 모르잖아?" "네가 이끌어내는건 어떨까." "누가 그런걸 먹어." "거 봐!"
상추쌈이 다시금 불꽃 안으로 들어가 타오른다. 소라는 문득 코모레비를 힐긋 본다. 얼굴이 사라졌다는 것은, 표정과 시선을 숨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소라는 어린 시절의 그가 보던 코모레비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얌전한듯 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존심이 강했던 누나의 모습을. 그래서 얕잡아보는 말에는 참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화를 냈던―지금은? 코모레비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그 자식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었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가 멍청이라고 하면 그녀는 개새끼라고 되돌려주는 그런 관계가 좋았다. '그래. 나는 멍청이지' 라고 답하는 듯한 무기력을 보고 있으면 소라는 어쩐지 기분 한켠에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부정해주길 바란다.
"누나. 누나." "왜." "이번에 나, 좀 멋있지 않았어?" "…그래."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소라에게 코모레비는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 말대로, 이번에는 소라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마 소라가 없었다면 다 망쳐버렸겠지. 코모레비는 자신이 한 실수를 다시금 곱씹는다.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
코모레비는 구워지는 고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생각을 멈추려고 애쓰는 태도였다.
"내가 구울까?" "됐어. 태운다."
평범하게 누나도 나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을텐데. 타인의 행복을 맘대로 재단하는 것은 오만한걸까. 소라는 그런 생각을 한다. 타오르는 불꽃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