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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현실 차원에서의 접속이 확인됩니다. 재밌게 놉시다. [공지] 방장 звезда́즈베즈다는 항상 보고는 있음.
[규칙] 1. 떠날 때에는 확실하게 떠날 것. 컴백 여지에 대한 발언은 허용. 작별은 서로 감정없이 한 번 정도만 언급하는 걸로 깔끔하게 할 것. 떠날 때 미련 가지는 발언 및 감정적 발언은 삼가. 떠날때 말은 지킬 것.
2. 어장이 오래 되었다고 상대를 옹호하는 AT금지. 지적의 경우 그 지적의 어투나 커질 파장을 지적하지 않기. 지적이 들어오면 확실히 입장을 밝히고 해결할 것.
3.다른 사람들이 동조한다고 해서 방관은 금물. 이상하다고 싶으면 2번 규칙에 따라 지적과 수용, 해명 과정을 거치자.
4. 문제가 생길때는 공과 사를 구분하자. 무조건 우리가 옳다는 생각과 식구 감싸기 식의 옹호를 버리자.
※오픈 톡방 컨셉의 상L 이름칸은 오픈 카톡에서 쓰는 닉네임이란 느낌 ※오픈 톡방 컨셉이기에 앵커 안 달고 그냥 막 다시면 됩니다. ※세계관은 그냥 모든 차원이 겹치는 컨셉이기에 톡방 자체에 영향만 안 주면 뭐든지 okay (상황극판 룰에 걸리는 일 제외) ※1000 차면 캡틴이 아니어도 다음 어장 세워도 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문을 갖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일인데, 내가 어째서 날아가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내가 이의신청을 하고 싶다는 것을 지금 이 자리를 빌어 밝힌다. 억울하다. 나는 주먹을 내미는 것을 보고 보자기를 내밀었는데 어째서 공중에 붕 떠서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것을 설명하자면 이야기 해야할 것이 너무나도 많아지니까 일단 곧 착륙한다는 것을 알려주겠다.
쿵.
내 등이 땅과 찐하게 입맞춤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충격이 내 뇌를 간질간질 자극해온다. 지긋지긋한 통증은 기다렸다는 듯 과속을 하면서 온 몸으로 퍼져나갔고, 나는 그 통증이 잠시 멈췄던 내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지금 나는 살아오면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했던 일, 싸움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가녀린 여자를 상대로 강화인간들을 내놓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이것도 이의제기할 부분에 적어두도록 하자. 일단 이의제기를 하려면 윗대가리를 만나러 가야하니까. 나는 부셔진 콘크리트 가루들이 날리면서 만들어진 안개 속에서 나뒹굴던 몸을 일으킨다.
기분 나쁜 욱신거림이 내 몸을 잠식하고 있었지만 망설일 틈 따위 주지 않겠다는 듯 날아오는 발길질은 나를 채찍질했고, 나는 다가오는 다리를 잡아서 반동을 이용해선 내 뒤에 반듯하게 서있던 두꺼운 쉘터의 방호벽에 휘둘렀다. 무언가 터져나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아름다운 눈을 지켜주기 위해 굳이 확인은 하지 않을거다. 일단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걸 보니 나답게 확실하게 처리한 것 같았으니까. 나는 자욱한 콘크리트 먼지 속에서 이리저리 찢겨진 라이더 자켓을 보며 혀를 찼다. 나름 신상이라고 샀던건데 이번 일이 끝나면 버리게 생겨서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니까. 이래보여도 나는 절약할 줄 아는 이 시대의 참지성인이라고. 그저, 주변에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무식한 녀석들이 좀 많은 것 뿐이다. 아, 아무튼 그런거라고. 거기 당신, 토 달지마.
퉤 -
입안에 가득 고여있던 핏물을 뱉어내니 한층 상쾌해진 기분이 되었다. 이제 내 위치를 다시 한번 가늠해보자. 나는 지금 지하방공호 4층에 있다. 그리고 내가 이의신청을 하러 갈 대가리는 6층에 있지. 그러니까 이 말인 즉슨, 금방 볼 수 있다는 것이겠지. 물론 내가 이의신청하는 것이 아니꼬와서 방금 그녀석처럼 나같은 아리따운 여성을 거칠게 다루는 녀석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매우매우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 늦으면, 친구가 나오는 대회를 보러 못가지 말임다. 그건 좀 곤란함다. 놀러가기로 했단 말임다. 내 휴가 방해하면 이의신청으로는 안 끝날검다. 지금 이거 듣고 있는거 다 알고 있슴다. ”
나는 나를 향해 빛을 발하고 있는 감시카메라를 바라보며 경고했다. 정말이지, 자꾸만 일을 번거롭게 하고 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 그러니까 엘리베이터가 본분에 맞는 일을 하느라 요란하게 내는 굉음은 분명 그 안에 나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팬들이 가득하다는 말일 것이다. 팬들을 보낸 팬클럽 회장은 지금 저 카메라를 통해서 나를 보고 있겠지. 하여튼 음습하고, 더러운 취미를 가진 녀석이다. 뭐, 그걸 모르고 쳐들어온 것은 아니니까 관대한 나는 그냥 넘어가주기로 하자.
잠시 생각을 하느라 굳어버린 몸을 가볍게 기지개를 피며 풀어준다. 우드득, 우드득. 얼른 휴가를 달라고 내 몸이 비명을 내지르지만 미안하다, 아직 할 일은 너무 많다. 새삼스럽게, 내 몸이 블랙기업이라는 것은 개조될 때부터 알고 있을텐데 지금은 불평은 못 들은 걸로 해버릴거다. 왜냐하면 슬슬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거든.
“ ..... 그럼, 이번엔 내가 먼저 가볼검다. 반칙이라고 하지 말길 바람다~ 레이디 퍼스트임다, 레이디 퍼스트~”
아까 벽에 휘두르자 얌전해진 녀석의 다리를 다시 쥐고는 질질 끌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며 나는 문이 열리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소리친다. 반대편에서 뭐라고 뭐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레이디 퍼스트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나에게 그런 것이 들릴 리가 없다.
응, 미안. 사실 그냥 듣기 귀찮은 것 뿐이야.
자 – 6층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달려보자. 이의신청에 대한 답을 들으려면 서둘러야지. 나를 환영하듯 반기는 총탄들이 날아들었지만 무서움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 일상인데?
학교에서 수학여행으로 싸아쌀 유적지를 감 -> 깊은 곳까지 탐험하던 중 파크가 감이지만 여기 뭐 있는 것 같은데 시전 -> 선생님 몰래 벽 너머로 통과해보니 꽤 깊은 곳에 숨겨져있던 마그누스의 눈 발견 -> 드래곤 프리스트에게 한쪽 눈 잃고 거의 죽을 뻔 함 -> 매그너스의 눈에 닿자 프라이폴레하고 연결됨 -> 얘가 살려주고 한쪽 눈 비어있어서 의안 대신 이거라도 넣자. 해서 넣음 -> 현재
이와나가시에는 학교라고 할만한 시설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도 인근에 있었기에 인구는 오히려 많은 편에 속했고 이 땅에서 태어나 죽어가는 생각들을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교육시설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겠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 어느 라이트노벨에서처럼 학원도시라고 부를 만큼 장대한 것은 아니지만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한번에 붙어있는 말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요새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만한 곳이 이와나가시의 유일한 학원의 정체였다. 각 시설간의 거리가 제법 되기에 그 사이를 걸어 다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하루는 보낼 수 있을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공원이나 산책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원형으로 설계된 학원의 정중앙. 분수대를 중심으로 제법 커다란 공원이 존재했다. 깜빡하면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교내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한 두 명씩 사라진다던가 하는 소문이 생길 정도였다.
나의 몇 안되는 취미는 이곳의 볕이 들지 않는 작은 정자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조용하고 햇빛은 없고 사람도 잘 오지 않을 만큼 외진 곳이었지만 조용하게 개울이 흐르는 소리를 듣다 보면 그것도 괜찮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최근에는 이곳에 모이는 면면이 늘어 요시코씨와 그 친구들이 모이기도 했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만한 일은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버릴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죽음은 사랑의 극치이고 삶의 정점입니다. 이전 오래된 영화를 보면서 본 대사가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서로 나누는 것이다. 최근 알게 된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면 그것은 서로가 고통받는다는 사실에 고통받는 것이다. 나는… 사랑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태어난 그 순간 처음 보인 것이 부모나 형제가 아니라 큰아가씨였기에 나는 사랑으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하고 싶다. 하지만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큰아가씨는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사랑만은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 못했으나 우선 큰아가씨가 하신 말씀이니 따르기로 했고 지금은 사랑을 찾기 위해 청춘을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알지 못했다. 사전적인 정의에 의하면 어떤 사람을 몹시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행동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차별적인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기 이전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먼저 배웠고 그 다음에 부모에게 배운 사랑의 정의는 고통을 주는 것이었다. 사랑하기에 때린다, 사랑하기에 죽인다. 도시전설로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죽여왔을까.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내 눈앞에서 한 떨기의 석산이 되어서 사라지고는 했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채워지는 일은 없었고 되려 마치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가슴속에 사무칠 뿐이었다.
그래서 죽였다.
죽음에 의미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 감정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욕은 마치 허상과 같다. 알려고 하면 더욱 알 수 없게 되어버려 되려 사람을 망치고 만다. 그 이후 한 결 나아진 기분이었다. 무참하게 찢어진 시체를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인간으로서는 타락했다고 생각하지만 원래부터 인간이란 탐욕스러운 존재에 불과한 것을 이제 와서 하나 둘쯤 죄를 추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큰 아가씨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멋대로 죽인다고 완전히 죽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럽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더라도 적어도 사랑이라는 것이 대상을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나 행동을 뜻한다면 나는 전 인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봉사를 하는 길을 택했다. 메이드로서 큰아가씨에게, 나아가 언젠가는 전 인류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였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날뛰는 것처럼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 같은 느낌밖에 받을 수 없었다.
“비가…”
사색에 잠겨 있자니 비가 내리는 것 조차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급하게 품에서 작은 회중시계를 하나 꺼내 보려고 했지만 너무 급하게 꺼낸 탓일까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얇으면서도 높은 소리를 내면서 데굴데굴 굴러간 시계는 누군가의 휠체어에 부딪힐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마침 저녁 시간이었기에 바로 죄송함을 얼굴에 내비치고는 주우려 가려 했지만 휠체어를 탄 여인은 어째서인지 그 회중시계를 손에 들고는 천천히 살피고 있었다. …행동이 보이지는 않았으니… 아마도 그쪽 사람이 아닐까 싶어 조금 주의를 줄까 했지만 나를 보면서 웃어 보이는 여인의 모습에 그만 싱긋 웃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네 거니?” “네… 그…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귀여운 동생인데 이 정도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어.”
동생?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나는 고개를 들고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심록을 담아놓은 듯한 녹색 눈동자와 마치 봄꽃처럼 보이는 화사한 분홍빛의 단발머리. 어느정도 탁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눈에는 나와는 다른 열기가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어디 한군데도 닮은 곳은 없었다. 탁한 검은색의 머리도 마치 곧 꺼질 잿빛과 같은 눈동자도 이 사람과 닮은 점은 없는데. 동생이라니? 나이에 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처음 보는 이에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 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조금 경계를 하면서도 예를 표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대로 시계를 받아 들고 돌아가려 했으나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내 손목을 잡고는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저기… 놓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비 맞으면 감기 걸리니까. 우산 가져가. 그리고…미안한데 고등부 기숙사까지 휠체어 좀 밀어줄 수 있을까? 여기는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 커다래서 말이야.” “…”
만지면 깨질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는 것과 동시에 어딘가 집념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이런 장소, 이런 시간에 느낄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녀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듯 그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뒤쪽에 있던 우산과 휠체어의 손잡이 부분을 가르켰다. 체력적으로 괜찮을까 싶었지만 이대로 비를 맞으면서 돌아가 감기에 걸려서 큰 아가씨의 계획을 망치기라도 한다면 그거야 말로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기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접혀있던 종이 우산을 펼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휠체어에 고정시키고는 천천히 휠체어를 끌기 시작했다.
“고마워 고마워~ 역시 우리 막내는 착한 걸~ 셋째나 넷째 하고는 천지 차이야~ 저기 저기 들어봐? 셋째 말이야!! 언니를 여기에 데려다 놓고는 [짐은 저기가 더 재밌어 보이노라!!!]라면서 혼자 훌쩍 사라져 버렸거든… 마침 네가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언니, 부임 첫날부터 홀딱 젖어서 부끄러운 꼴을 당할 뻔 했단 말이야… 저기 듣고있어? 렌카?” “…? 아… 네… 힘드셨을 것…같네요…” “후후후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나 봐? 사실 언니는 만능이라 무엇이든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네…” “반응!!! 렌카가 어떤 앤지는 알지만 조금 더 반응을 보여줘!!!”
솔직히 놀라기는 했다만… 이름을 안다거나 하는 이유에서는 아니었다. 그야 교직원이 아니더라도 학생회장 같은 분들은 “전교생의 이름을 못 외우고는 어찌 회장인가!!!”라면서 한자 한글자까지도 익히고 다니기도 하니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이상하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 낮의 나라면 호들갑을 떨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날은 다르다. 비가 오면 낮도 밤도 없어진다. 그저 조금 앞을 보기 쉽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도시전설로서의 위험도는 오히려 올라간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 상태. 바깥쪽은 여전히 낮의 나지만 안쪽이 밤의 나다. 표면에 있는 나에게 기억이 가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 만으로 힘을 거의 다 쓰고 있는데 눈 앞에 이런 사람까지 나타나면 뭐랄까… 그냥 피곤하다. 애초에 이 인간들은 도움이 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가만히 이 핑크머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니까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테지. 기숙사에 도착하니 어느 새 밤이 되어 있었다. 천천히 우산을 닫고 로비로 들어서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으으음!!! 여기도 오랜만이구나!!! 졸업하고 몇 년이었지… 5년? 10년? 숲에만 있으면 감각이 이상해진다니까.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야. 그럼, 언니는 일하러 가볼 테니까!!! 큰아가씨랑 꽁냥대는 것도 좋지만 학생으로서는 선을 넘지 않도록!!! 그리고 앞으로는 통금 시간에 맞춰서 다니도록!!! 언니들이 지켜볼거야!!!” “저기…” “응? 왜 그래?” “방금부터 물어보고 싶었습니다만… 누구신지…?” “응? 아아… 지금은 [낮]이구나. 비오면 그랬었지. 난 분명히 [밤]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음… 사촌 언니인데. 기억 안나? 日之影 窓. 우리한테 이름은 형식적인 거니까… 더 쉽게 표현하면… 첫번째 도시전설이야.”
익명의 T씨 : 대부분은 대강 알고 있음 익명의 S님 : 몰랐을 거 같냐고 코웃음침(몰랐을 가능성과 알았을 가능성이 절반 정도) 익명의 B군 : 대부분 알고 있고 할 줄 앎. 익명의 D : (관심없음) 흐르는 성해의 미아 : 신기해하지만 굳이 하려고 들진 않음. 괜찮아!!! : 누군가 그걸 하길 원하면 함.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간은 자신과 다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그래서 가게 주인은 눈앞의 세 남자가 귀족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아니오, 못 봤습니다."
세 남자가 놓친 것이 있다면, 자신들이 평민이 아닌 티를 있는 대로 내고 다닌다는 걸 본인들만 몰랐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엮이기 싫은 사람들이 전부 똑같이 대답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더럽고 복잡한 평민의 마을을 몇 시간이나 헤집고 다니면서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아무도 모른다니! 이래서 평민들은..." "이제 곧 해가 질 시간입니다." "역시 하인들을 시키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그것'에 대한 것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게 좋지 않다는 건 아시지 않습니까. 해까지 지면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그건' 왜 갑자기 없어져서 이 사달을 내는지..." "이제 물어볼 사람도 안 보이고..."
세 명이 소득 없이 돌아다니며 줄줄이 늘어놓는 불평을 자른 건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한 아이였다.
"나리, 나리들이 찾는 사람, 내가 아는데 알려줄까?"
열 살이나 겨우 넘겼을 법한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었지만 지칠 대로 지친 세 명은 우르르 모여 아이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봤느냐!" "어디 있다고?" "그게 정말이냐!" "아잇, 한 명씩 말해."
어른 셋보다 아이가 더 점잖은 모양새가 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들은 뒤늦게 헛기침을 하는등 체면치레를 했고, 가운데 선 남자가 다시 물었다.
"우리들이 찾고 있는 것은 여자다. 이쯤 되는 키에,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고, 노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지. 네가 본 것과 같은가?" "응, 똑같아." "좋아, 그러면 안내하거라."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귀족들은. 이런 걸 시키려면 돈을 줘야지, 돈을." "주제를 모르는구나! 감히 누구에게 요구를 하는 건지 아느냐?!" "그럼 안 알려줘. 나 말고 안다는 사람 있어 나리? 아니면 죽일 거야? 몰래 온 거잖아. 시끄럽게 만들려고?"
어린아이. 그것도 귀족도 아닌 평민 따위의 아이에게 이런 소리를 들은 것에 굉장한 굴욕감을 느꼈지만, 사실 아이의 말이 맞았다. 세 명은 더는 수단도, 시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무얼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표정을 짓이길지언정 아이에게 몇 푼 쥐여줄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은화를 주머니 깊은 곳에 찔러넣고 나서야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우리가 귀족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느냐?" "그냥 보면 아는데? 나리들이 여기 온 거 소문 다 나서 길에 아무도 없는 거야."
세 명은 그제야 알아채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의 뒤를 따라갔다.
"냄새..."
세 남자는 코를 틀어막고 골목길 앞에서 우물쭈물했다. 아이는 일찌감치 골목 안으로 들어서서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다그쳤다.
"안 들어올 거야? 이 안에 있다니까?" "이런 곳에 어떻게 들어가라고. 지저분한 데다 냄새도 나지 않느냐!" "이래서 귀족들은. 피 냄새 정도로 쫀 거야?." "피, 피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세 명 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고, 한 명은 휘청이더니 벽에 몸을 기댔으며, 한 명만이 골목 안쪽으로 내달렸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때 남자는 자신이 온종일 찾아다니던 것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여기서... 허억... 뭐 하시는 겁니까?"
짧게 숨을 고르며 말하는 남자의 물음에 소녀는 작위적인 태도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산뜻한 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산책일까요?" "이런 곳에서 말입니까?"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표현에 얼빠진 목소리로 되묻는 남자를 보곤 소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뜨고 다시 말했다.
"입막음을 시키는 것과 죽이는 쪽 중, 어느 쪽이 조용할까~ 하고 고민하고 있었답니다. 자작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떠신가요?"
마침 잘됐다는 투로 묻는 소녀의 말에 질려버린 남자는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두운 골목길에 몇 명인가 벽에 묶여있다. 손잡이 없는 날붙이들이 구속구라도 되는 마냥 그들을 묶고 있어 이미 피로 범벅이 되어있다. 그래서 피 냄새가 난다고 했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하며 아이를 보려 했으나 어느샌가 도망친 지 오래였다.
"아무리…. 이런곳이라도…. 한번에 그리 많이 죽이면 소문이 퍼질 겁니다."
겨우겨우 말하는 걸 들은 소녀는 그 말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한 명씩 풀어주면서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소녀는 당연한걸 묻는다는 듯이 남자에게 대답했다.
"마킹?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하는것이니말이죠. 소문이 난다면 필경 이들 때문일 테니 후일 찾아내기 쉽도록 해두는 거랍니다?"
조금이라도 입을 열면 찾아가서 죽이겠다는 말이었다. '저것'이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아는 남자는 침을 삼켰다. 마지막 인원까지 마킹을 끝내고 치료 약을 쥐여준 소녀는 털고 일어나 남자를 보며 생긋 웃었다.
3지구 경찰서에서 순경으로 근무하고 있는 윌리엄은 죽을 때까지 절대 마주할 일 없을 것만 같았던 종류의 사람이 제 책상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곤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 금지단어를 검색해서 호송되어 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저것이라니.
베일처럼 늘어진 얇은 흑단빛 머리카락 사이로 흉흉하게 빛나는 회백색 눈은 이 도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조합이었다. 호메로스!
고매하신 건축가 양반이 어쩌다가 그런 걸 찾아보다 잡혀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윌리엄은 일단 제 앞에 놓인 일이라면 대충 넘기는 일이 없는 성격이었다. 그는 일부러 발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걸어가 제자리에 앉았다. 이 사람같지도 않은 놈의 머릿속에 어떤 불온한 사상이 들어있는지 탈탈 털어버릴 계획으로 가득차서 말이다.
489No one calls you honey, when you're sitting on a thr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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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8 (거의 끝나감) 01:03:02
그러나 그녀는 여왕이 아니다.
*
미하일은 이따금 꿈을 꾸었다. 자신의 동생들을 죽이고, 모든 것을 망쳐놓은 그 작자들이 나왔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전의 일을 반성하고, 사회에 기여하며, 죄를 사함받고, 눈물을 흘리며 고해를 했다. 미하일은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저들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누가 저들의 죄를 사한단 말인가? 누가 저들의 보속을 정하는가? 속죄하는 삶은 벌이 되지 못한다. 살아있는 한 어떻게든 기회는 온다. 사함받을 기회, 누군가가 그들을 사랑할 기회. 그러니 오로지 죽음만이 영원하고 완벽한 형벌이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최후의 최후까지 일말의 즐거움도 가지지 못하도록.
그들이 반성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지막까지 악인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그 작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해실에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역겹다.
미하일은 이따금 꿈을 꾸었다.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자신의 목을 졸랐다. 자신은 그 작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므로 미하일은 악해지는 것을 택했다.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반성 또한 하지 않았다. 동시에 인간성을 버렸다. 자신의 삶에 일말의 즐거움도 남지 않도록.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벌한다면, 그 순간에 악인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러므로 그녀의 백마 탄 왕자님은 사랑의 키스 대신 심장에 칼을 박아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녀는 성긴 호흡을 씹고 있다. 여전히.
1. 미하일은 코주월드 세계관의 용병이다 2. 국군 출신이었으나 테러 조직이 동생들을 인질로 잡고 협박해서 테러에 가담 2-1. 전범.. 2-2. 민간인 사살 多 3. 그런데 동생들이 폭격에 휘말려 죽음 4. 개빡돌아서 비에스 시큐리티로 전향(배신) -> 테러조직하고 전쟁중 5. 그리고 저 모양 저 꼴
500D.C. al Fine : 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또 다시
(3793214E+5)
2020-06-18 (거의 끝나감) 01:08:26
왜 내가 그런 짓을 한걸까? 아직도 의문심만 가득 품고서, 다시, 또 다시. 후회와 절망은 흘러가고 또 다시 흘러가고, 그렇게 다시 또 다시 반복되는 이야기. 내가 애초에 살아있는 건가 의문점이 들면서도, 다시, 계속해서 다시다시다시
스쳐지나간 사람이 먼저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다. 이 차원 저 차원에서 구조를 하다보니 가끔씩은 이런 일이 있기도 하다만, 최악의 형태로 끝맺어버린 어느 누군가가 떠올리는 이런 첫만남은 코모레비에게 그닥 좋지 못했다. 이름이 불린 이는 말을 걸어온 남성에게로 조금은 긴장한 채 고개를 돌린다. 그는 싱글싱글 웃는 얼굴이었다.
"…어떻게?" "다른 차원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다보니까,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용건이라도…?"
조금은 차가운 말투가 된걸까 걱정하면서도 긴장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와 같은 비웃음은 사양이다. 뭐. 그런 만행을 저지른 사람도 이제와서는, 그 차원과 함께 소멸되어버렸지. 코모레비에게 있어서는 제법 씁쓸한 기억었다. 아무리 껄끄러운 사람이라도, 그렇게 끔찍하게 죽는 것을 바란건 아니었다. …코모레비는 괜한 것을 떠올려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인상이 찡그려진다.
"저는, 코모레비씨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남자는 속삭인다. 그 말에 코모레비는 굳어버린다. 어떻게. 무엇을?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코모레비가 반지를 끼고 있는 손을 잡는다. 눈웃음을 지어오는 얼굴에 문득 두려움을 느끼지만, 지지 않고 강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 몸에 관한 얘기를 할 셈이야? 딱히 협박거리가 될 만큼 비밀은 아닌데." "아. 오해하지 마세요. 협박을 할 생각은 아니니까." "그렇다면?" "일종의 거래를 하고 싶은 것 뿐이니까요. 그렇게 긴장하진 마시고." "…거래?"
그는 코모레비의 손에 메모 한장을 쥐어준다. 그녀는 메모를 펼친다. 메모에는 어떠한 주소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 주소는 코모레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익숙한 장소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 "이쪽 세계 시간 기준으로 내일 세시, 거기에 적힌 주소로 나와주세요. 아. 반지는 끼지 말고요."
부탁이라기 보단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운 태도였다. 가지 않을 수 없다. 코모레비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어째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 "필요한 비용은 전부 제가 지출할테니까, 걱정은 하지 마세요." "너, 대체 뭘 할 생각……."
코모레비의 물음에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이런 곳에 사람을 불러내고, 뭘 할지 같은건 정해져있잖아요?"
♧
"저는 말이죠."
그는 변함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표정에는 황홀감이 돋보이고 있었다. 마치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기라도 했다는 듯이. 손이 떨린다. 아아. 정말로, 이렇게나 간단히. 이 자에게는 일전의 어떤 사람과 같은 깔보는 태도는 없었다. 정 반대로, 극단적인 찬미의 태도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욕망이었다.
"차가운 인상의 잘생긴 남자가, 행복한 표정으로 디저트를 먹는게 정말 좋아요……."
행복감에 젖어있는 코모레비를 감상하면서, 그는 말한다. 아이돌과 일대일로 팬미팅을 하는 팬같은 얼굴을 한 채로. 무슨 속셈이지? 평소엔 먹을 엄두를 못 냈던 비싼 디저트를 입안에 넣으면서 코모레비는 반쯤 행복과 반쯤 의심에 잠긴 얼굴을 한다. 아. 입에서 살살 녹는다. 행복하다. 아니. 행복하지만 무슨 속셈이지? 앗. 근데 진짜 맛있잖아.
지긋지긋하게 찾아오는 연락에 코모레비는 핸드폰을 집어던진다. 정확히 말하면, 핸드폰의 형태로 굳어있는 마력체같은 것이다. 전화번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마법으로 연결된 곳하고만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무전기와도 같은 것…인데, 어째서인지 그 사람은, 어떤 방법인지, 계속해서 연락을 건네오는 것이다.
"또 피피티 걔야?" "그래. 걔야." "왜 자꾸 연락한대-"
그러게 말이다…라고 대답하려던 코모레비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태클을 건다.
"근데 너는 왜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있는거야."
어디선가 주워온 고전 게임기를 뿅뿅대며 소파에 기대있던 불꽃은 그 말에 당당히 대답한다.
"방금전에 집 근처에서 큰 소리 나서 무서워. 오늘은 여기서 잘래." "헛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그러지 말고. 재해 생기면 누나가 대충 해치워줄 수 있을 것 아냐…." "재해 전에 나에게 죽는 수가 있어."
당연하게도 냉정한 태클이 돌아온다. 소라는 화제를 다시 그 전남친의 얘기로 돌려본다.
"…너무 뻔뻔한 거 아냐. 그 자식? 그 때 누나 휴학하게까지 했으면서 뭐가 대단하다고…." "너에게 뻔뻔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니 정말 심하긴 하지." "아니. 나는 그래도 파워포인트 발표로 연인 얼굴과 이름을 큼지막하게 담고 공개이벤트를 하지는 않거든!" "만약 네가 그 정도였다면 난 너랑 가족의 연을 끊었을거야."
화제를 돌리려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째선지 계속 그에게 화살이 날아온다. 몇 번 이런 느낌의 대화를 반복하다가 코모레비는 이 동생이 말로 해서 자기 집에 갈 생각이 없음을 깨닫는다. 잔소리는 포기한다. 자고 간단건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겠지만, 진짜 밤까지 안 돌아가면 물리적인 수단(마법)을 써서 돌려보내야지.
"어떻게든 쫓아내고 싶은데, 확실하게 핑계댈 말이 없네. 화내는 걸로는 말을 알아듣질 않고." "최대한 추하게 굴어서 정을 떨어뜨리는건?" "소문날까봐 싫어." "좋은 말로 할 때 떨어질 것이지!" "너도 말이지!"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 가족이잖아!" "가-족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분명 의도한 것 같은 발음으로 이야기하곤, 코모레비는 미간을 짚는다.
"…아- 아무튼 난 이 자식 쫓아낼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혼자 생각좀 하게 돌아가." "왜에. 동생을 한번 믿어봐. 내 활활 타는 머리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어떻게 알아." "아이디어는 네 집에서 내." "그치만 진짜 엄청 큰 소리가 났단 말이야. 난 또 폭탄 터지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 으윽. 죽을 때의 트라우마가…." "누가 보면 나는 비명횡사한줄 알겠다?"
코모레비와 소라 둘 다 한날한시에 폭탄이 터져 죽었다. 두 사람 다 죽을때의 기억은 제대로 없는 것 까지 똑같았다. 같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이기에 통하는 농담이었다.
"애인 있다고 해서 거절하는건? 전에 번호 따였을땐 그렇게 했다면서. 누나 다른 모습 사진 보여주며 애인이라고 했다고."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이 놈의 집착을 보면 직접 같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믿을 것 같아."
모습이 두개라는 것을 어느새 활용하게 된 그녀였다. 그야,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런 이득이라도 있어야지. 코모레비는 문득 예전의 일을 떠올린다. 그 때 어느 차원의 카페가 커플에게 케이크를 무료로 주는 이벤트를 해서, 카톡방에서 일일 애인을 모집했었지. 카페 직원이야 하루 보고 말 사이니 그런 짓이 가능했지만, 스바루, '그 전남친'은 왠지모르게 코모레비랑 쓸데없이 끈끈하게 엮여있었다. 수많은 세계가 망하고 인구란 이만큼밖에 안 남았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재회할 수 있는거야. 살아남은건 다행이지만 그 이상의 안부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그냥 어디서 코모레비가 모르는 곳 어딘가에서 대충 잘 살든지 말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끈질기구만." "끈질기지." "거머리같다." "그래. 너처럼." "아. 적어도 나보다라고 해줘." "정말이지. 내가 두 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코모레비는 문득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말을 멈춘다. 무언가 떠올렸는지, 자신의 손에서 조심스레 반지를 뺀다. 방금까지의 갈색 머리의 여자와 조금도 닮지 않은 남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응?"
누나. 뭐 하는…그렇게 말하려던 소라의 손을 코모레비는 부드럽게 잡는다. 그리고는 붙잡은 그 손에 반지를 껴준다. 그림만은 쓸데없이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 곳에는 목 위로 불꽃이 타오르던 남자 대신, 여자 네이비 코모레비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나타난다.
"……."
아. 설마. 코모레비는 소라의 손을 여전히 쥐고 있는 채이다. 그 빼어난 외모의 남자는, 눈 앞의 여자에게 나지막히 말한다. 자신의 이름이자,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이름이었다.
"코모레비."
코모레비라고 불린 여자…남자는 반지를 잡아빼버린다. 코모레비는 다시 그것을 그의 손에 끼워준다. 잠깐사이 모습이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 코모레비(소라)는 질색한 얼굴로 말한다.
"…싫어싫어싫어! 남자로서 자존심이 있지!" "누구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없는 것 처럼 말한다." "아니.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나, 나 누나 흉내 낼 자신 없단 말이야! 의심받으면 어떡해!?" "시간이 대충 죽어있던 시간까지 합치면 사십년이 넘게 지났어. 그 사이에 전쟁에 멸망에 별의별 일이 다 있었는데, 사람이 좀 바뀔수도 있지." "애초에 나, 그 사람에 대해 아는거 하나도 없고!" "그거라면 더 좋아. 그 자식을 완전하게 잊어버렸다는 증거니까."
검은 곱슬의 남자는 반지를 든 채 소라에게 다가간다. 안 그래도 소라보다 큰 편인 그의 키가 오늘따라 더 크게 느껴진다. 어쩌지. 여러가지 의미로 도망칠 곳이 없다. 이것이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 뒹굴거리며 버틴 것의 업보인가.
"너는 그냥 분에 넘치게 잘생긴 남친과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한 티만 잘 내주면 돼. 바보같이 웃든 헛소리를 하든 그건 알 바 아니고." "누나. 그 얼굴에 자신 엄청 넘치는구나!" "당연하지. 내 얼굴이 아니니까." "그건 그렇지만! 실제로 잘생기긴 했지만!"
남자 모습을 불편해하는 것 치고 얼굴에 대한 자신은 가득한 그녀였다. 이질감 속에서 그나마 찾아낸 장점이라고 할까. 그에 비해 본모습에 대해서는 과하게 자신감이 부족한 것도 같지만.
"…아무튼! 나는 안 해! 무슨 이유가 있어도!" "무슨 이유가 있어도." "나도 그 자식을 쫓아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이건 싫어! 그냥 여장도 아니고, 누나 모습이라니 싫어!" "그렇게 싫은가." "그래! 절대 안 해!"
화륵화륵 타오르는 불꽃이 따박따박 말한다. 그것을 보는 그는 여전한 무표정이다. 아쉬워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코모레비는 침착하게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다.
"고기 사줄게."
소라는 반지를 낀다.
"대면하는건 언제로 할까. 달링?" "너무 빠른거 아니냐. 뭐. 보기 좋지만." "이 정도 일을 시키는 거면 물론 최상급의 고기로 준비할 거지?" "값비싸고 고급진 쇠고기로 준비할게. 걱정마. 이 일이 끝나면 함께 구워먹자."
코모레비가 살고 있는 안전차원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라곤 보급품 뿐. 종류는 나름대로 다양했다만 하나같이 맛있는 한 끼 식사라고 하기는 힘든 것들이었다. 코모레비가 늘 식사대체알약을 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맛없게 먹느니 차라리 약으로 떼우고 만다는. 그렇기때문에 고기를 사준다는 이야기는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차원이동을 할 수 있는 코모레비는 다른 차원에서 어떻게든 고기를 조달하는 것이 가능했기에―그러면 왜 굳이 알약을 먹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는 이가 있다면, 그녀는 '귀찮으니까'라고 답할 것이다.
어찌됐건 고기에 매수당한 소라(코모레비의 여자버전 모습)는 코모레비(남자버전 모습)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전남친님을 앞에 두고.
"코모레비에게서 떨어져주시겠습니까."
이번 작전에서 '남윤우'라는 이름을 쓰게 된 코모레비는(코르부스씨가 지어준 가명 2개중 하나를 이용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싸늘한 눈으로 상대를 쳐다본다. 꽤나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 있는 윤우씨이지만, 스바루는 그닥 기가 눌리지 않은 것 같다.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단호한 얼굴로 마주 쳐다본다. 중간에 낀 코모레비(의 모습을 한 소라)는 그저 곤란해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아냐. 고깃값은 해야지. 참자.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하시죠." "현재의 남자친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뭣보다, 코모레비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윤우는 코모레비의 손에 부드럽게 자신의 손을 얹는다. 지금은 코모레비의 역할을 수행중인 소라는 속으로 움찔거린다. 이 사람,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까. 자기 얼굴을 한 동생에게 이렇게 뻔뻔스레 스킨십을 할 수 있다니.
"당신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어줍잖은 짓을 해서 학과에 코모레비의 얼굴과 이름이 팔리게 하고, 결국 휴학하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건……." "그런 짓을 해놓고 운명의 사람이니 어쩌니 하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며 돌아오다니, 대단하기도 하지."
쏘아붙이는 말이 그를 향한다. 진심이 담겨있다. 솔직히 그럴 만 하다. 코모레비(소라)는 조심스레 거든다.
"툭하면 전화하는 것도 그만해." "코모레비……." "애초에 전화번호, 알려준 적 없는데 어떻게 아는 거야."
조금 더 파고들어가자면, 전화'번호'가 있는 핸드폰도 아니다. 마법적인 무전기랑 비슷한 원리다. 해킹을 해서 전파에 간섭하는 수준의 일을 벌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스바루는, 고개를 숙인다. 남친(사실 본인)까지 데려와 이 정도로 얘기했으면, 슬슬 그만두지 않으려나……라고 생각하여 소라는 그의 얼굴을 살핀다. 새삼 자신의 누이의 취향이 매우 일관적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으면서. 이 사람도 선이 가늘고 얄쌍한 얼굴이구만.
"…못 해."
네? 그런 말이 나오려는 것을 소라는 간신히 참는다. 스바루의 얼굴은 여전히 굳건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나는 물론 그녀에게 부족한 사람일지 몰라…하지만, 네 녀석은 뭐가 잘났다고 큰소리지? 코모레비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
윤우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드라마나 순정만화를 너무 본 것 아닐까. 이 인간. 그러거나 말거나 스바루는 마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마냥 말을 이어나간다. 저 자신감이 부럽다고 '진짜' 코모레비는 속으로 생각한다.
"네 놈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어… 너는 코모레비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 쯤은!"
이윽고 스바루의 열변이 이어진다.
"코모레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나 뿐이다… 그래. 가족을 잃어버리고 고독한 여정을 계속하고 있을 그녀에게는 더더욱! " '뭐라는 거야.'
이번엔 가짜 코모레비가 어이없어한다. 이런 사람에게 걸리다니, 누나도 불쌍하구만. 소라는 지금까지 자신을 거쳐간 연인들을 떠올려보며, 새삼 자신의 연애운이 좋은 편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 뭐. 그렇다곤 해도 지금은 애인이 없지만. 세상이 망했는데 연애가 문제겠어.
"나는 그녀를 알고 있어…강한 척을 해도, 사실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코모레비를…아아. 코모레비… 저런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는 냉혹한 남자에게 붙잡혀서, 얼마나 괴로울까… 나의 태양. 나의 빛……." '우와. 창피해.' "이제 그만 나를 봐주면 좋을텐데… 너는 아직 모르는 걸까. 이 암담한 세계속에서 나야말로 너를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세계가 멸망했는데도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게, 그 증거……." '그만해. 보는 내가 부끄럽다.'
소라는 속으로 태클을 건다. 눈 앞의 사람이 아닌 자신의 세계만을 바라보고 있네. 이 사람. 당사자가 아닌데도 보기 힘든데, 지금 이름이 불리고 있는 본인은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소라는 붉은 컬러렌즈를 낀 눈으로 자신의 누나의 상태를 살핀다.
"……." '…어라?'
예상 못한 표정이다. 분명 짜증나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얼굴은 절대로 아니지만. 윤우는, 그러니까, 진짜 코모레비는 명백히 동요하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저 말의 어디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아. 너무 짜증나서 불쾌하다 못해 극심히 괴로워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달라보이는데. 아. 설마.
"…윤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스바루 뿐이다. 코모레비는 그 말에 반응한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
2.
어설픈 완벽주의자는 천천히 무너져내려갈 것이다. 완벽한 완벽주의마저도 가지지 못하고,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완벽을 그저 바라보며, 그렇게.
점점 어른이 되고 현실에 부딪쳐가며 코모레비는 계속해서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을 할 줄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는 사람 역시 그랬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해내는 사람도. 고등학생이 되며, 대학생이 되며, 계속해서 깨달아간 사실이다.
코모레비는 제법 자존심이 강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꽤나 힘든 날들이었다. 나는 대단하지 않아.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야. …나는. 그저그런 성적을 끌어안으며 울거나,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책하는 고교시절의 끝. 기대에 미치지 못한 대학에 향한 코모레비는 이미 많이 깎여내려가 있었다. 한 때 소라가 바라보고 있던 프라이드가 높은 누나와는 꽤나 달라져있었을 것이다.
스바루에게 반하게 됐던 이유는, 실로 오랜만에 아낌없는 칭찬을 퍼붓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코모레비는 다정함에 약했다. 자기자신에게 다정하지 못했기에, 별 것 아닌 호의에 쉽게 반응한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인정받을 구석 없는 자기자신을, 그는 모든 곳에서 긍정해주었다. 그런 점에, 좋아하게 되었다. 그 노골적인 애정의 끝은 결코 좋지 못했지만. 파워포인트 발표 도중 100일 이벤트를…이 얘기는 슬슬 생략한다.
어찌됐건 그건 그거고 저 전남친이 하고 있는 소리가 정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기때문에 코모레비는 그녀의 멋진 연인인 남윤우로서 말하기만 하면 됐다. 나야말로 코모레비를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코모레비는 코모레비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채로, 점점 평범함조차 가지지 못하게 되어간 자신의 발자취를. 존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침묵이 이어진다. 동요한 모습을 보여서는 상대를 쫓아낼 수 없다. 어차피 연기인데 뭐가 어떻다는거야. 코모레비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멋진 남자친구라고, 뭐 그런 역할로 정해뒀었잖아. 그렇게 해야지 떼어낼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이 없었다. 오글거린다 이상의 거부감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모레비에게는 코모레비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을 못 하고 있었다. 불가능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빈말을 왜, 나는.
"나는, 코모레비를 사랑해."
그리고, 대신 말한 것은 '코모레비'였다.
"…너밖에 없지 않아."
소라는 담담하게, 스바루를 보며 그렇게 말한다. 스바루는 '코모레비'의 말에 주춤한다. 진짜 코모레비 역시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한다.
"네가 그래온 것보다도, 나는 나 자신을 훨씬 사랑하고 있어. " "…하지만." "타인에게 사랑받는 것에서 나의 가치가 생기는 게 아니야. 네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보인 방식은, 결국 나를 괴롭게 만들었잖아." "코모레비…."
윤우는 주춤한다. 자신이 하지 못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튀지 않고 조곤조곤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강단있게 코모레비는 이야기해나간다.
"나는 지금 행복해. 네가 곁에 있지 않아도 돼." "…그, 그렇지만!"
스바루는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리고는 진짜 코모레비를 가리킨다. 윤우는 움찔댄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저런 녀석하고 함께…!" "괜찮아." "정말 괜찮겠어!? 딱 봐도 저 녀석은…!"
딱 봐도…라니. 딱 보고 나서 이 쪽이 본인인 것도 못 알아보면서 뭘 안다는 거야. 윤우는 찡그린다. 코모레비는 과시하듯이 윤우의 팔에 팔짱을 낀다. 스바루는 분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하는 녀석의 어디가 좋다는 거야!" "윤우가 보기보다 부끄럼이 많아서 그래." '이상한 설정이 붙었어.'
속으로 태클을 걸고 있는 걸 보니 조금은 긴장이 풀린 모양이다. 윤우는, 코모레비의 팔을 조금 더 꼭 붙잡는다. 소라의 연기에 부응한 것인지, 아니면, 의지하듯 파고 드는 것인지. 소라는, 코모레비의 얼굴을 한 채 환하게 미소지어보인다. 아. 그러고보면 이 녀석의 부러웠던 부분이 그거였지.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거. 진짜 코모레비는 여태까지와는 다른 이질감을 느낀다. 자신의 얼굴을 한 사람이, 자신과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임을 느끼면서. 약간의 쓸쓸함과, 가득한 동경.
"그러니까, 더는 보지 말자. 우리 둘의 관계가 한때의 미숙했던 기억 정도로 남을 수 있도록." "…하지만."
말문이 막히니 이제는 울기 시작했다. 소용없어.
"…코모레비…."
…소용없다니까.
++++++
3 (완결) - 고기맛잇쪙.
지글지글 하는 먹음직스러운 소리가 불판에서 들려온다. 소라의 목 위에서 불꽃도 신나게 타오른다. 코모레비는 고기를 뒤집는다. 일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보상이다. 표정없는 푸른 불꽃은 딱 봐도 즐겁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다. 가끔 보면 얼굴 뒤로 표정이 보이는 것 같다고, 코모레비는 생각한다. 소라는 알맞게 구워진 고기를 집어올린다. 그것을 입…이 아니고 푸른 불꽃 안으로 밀어넣는다. 서서히 불타던 고기가 사라진다. 저렇게 해도 맛이 멀쩡하게 느껴진다니 다행이다.
"누나는 안 먹어?" "먹고 있어." "설탕이 없어서 그래?" "누가 등심에 설탕을 뿌려먹어."
단 걸 좋아하니까 혹시나. 내가 좋아하는건 달콤한 디저트지 그런 괴식이 아니야. 의미없는 대화가 오간다. 평범하게 언제나의 두 사람이었다.
"한 번 해봐. 의외로 맛있을 수도 있잖아? " "그럴리가 있냐." "어떻게 먹어보지도 않고 단정짓는거야!" "누구도 하지 않는 일에는 이유가 있는거야."
고기가 뒤집힌다. 기름기가 불판에 흘러내린다. 아. 슬슬 종이 갈아야겠다. 마법을 통해 종이가 교체된다. 뒤집는 것까지 마법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섬세한 작업은 힘들다나. 종이 교체는 순간이동시킨다는 느낌으로 하면 되지만, 고기는 회전시켜야 하니까. 손으로 하는 게 낫다.
"멸망한 세계에서 새로운 식문화로의 도약을 이끌어낼지도 모르잖아?" "네가 이끌어내는건 어떨까." "누가 그런걸 먹어." "거 봐!"
상추쌈이 다시금 불꽃 안으로 들어가 타오른다. 소라는 문득 코모레비를 힐긋 본다. 얼굴이 사라졌다는 것은, 표정과 시선을 숨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소라는 어린 시절의 그가 보던 코모레비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얌전한듯 하면서도 한편으로 자존심이 강했던 누나의 모습을. 그래서 얕잡아보는 말에는 참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화를 냈던―지금은? 코모레비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뿐이라는 그 자식의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었다.
어쩌니저쩌니해도 소중한 가족이었다. 그가 멍청이라고 하면 그녀는 개새끼라고 되돌려주는 그런 관계가 좋았다. '그래. 나는 멍청이지' 라고 답하는 듯한 무기력을 보고 있으면 소라는 어쩐지 기분 한켠에서 형용하기 힘든 감정이 느껴지는 것이다. 부정해주길 바란다.
"누나. 누나." "왜." "이번에 나, 좀 멋있지 않았어?" "…그래."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소라에게 코모레비는 별다른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 말대로, 이번에는 소라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줬기 때문이다. 아마 소라가 없었다면 다 망쳐버렸겠지. 코모레비는 자신이 한 실수를 다시금 곱씹는다. 왜 대답하지 못했을까.
"……."
코모레비는 구워지는 고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생각을 멈추려고 애쓰는 태도였다.
"내가 구울까?" "됐어. 태운다."
평범하게 누나도 나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을텐데. 타인의 행복을 맘대로 재단하는 것은 오만한걸까. 소라는 그런 생각을 한다. 타오르는 불꽃은 언제나 하늘을 향해있었다.
607 이름 : 코르부스 2020/03/13 01:02:28 ID : a9vBe5e41u0 <Transformation>
이것은, 꽤나 예전의 이야기다. 자칫하면 이쪽 차원에서 벗어나, 다른 차원에게마저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던 강적을 상대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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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마지막 작전이었다. 며칠 정도를 소비한 것 같았다. 연구 시설의 최심부는 원래 그렇게까지 깊어서, 며칠이 걸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지만 놈은 수를 쓴듯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놈은 공간 자체를 왜곡하고, 시간도 그에 응용하고 있었으니.
놈의 영향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잠깐의 왜곡이 일어나더니, 금세 적들이 튀어나오곤 했으니. 하지만 여러 조로 나뉘어 움직이고 각 시설들을 파괴해버린 결과, 놈은 더이상 증원을 기대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이제 진정으로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이 연구소의 최심부를 향한 발길도 마무리를 지었다. 연구소의 가장 깊숙한 곳. 원래는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도 나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저 안은 여지껏 상대해온 어느 존재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겠지. 접착식 폭약이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한 뒤에, 문이 있던 자리에 문 대신 뚫려버린 통로로 우리는 무기를 들고 들어섰다.
놈이 앉은 것은 왕좌인지, 아니면 고문 기구인지 모를 무언가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테리함만을 내보이며, 녀석은 고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가 그 누구도 놈에게 닿지 못할 것을 상정한 것 처럼 말이다. 놀라는 기색조차 없다니, 분명히 그런거겠지.
더이상 우리는 녀석에게 무언가를 말할 여유조차 없다. 공간은 침식되어가고, 시간은 꼬여만 갔으니까. 차원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째서인지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그게 무언가 인격체 같은건 아닌거 같았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에 가까운 것이 바로 우리 차원의 관리자인걸지도 모르겠지.
그리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지만, 제대로 발사된 총은 없었다. 아니, 그것과는 달랐다. 오히려 이것은 총이라거나, 우리의 존재가 처음부터 없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문득 주위를 둘러봤다. 세상은 고립되었다.
그나마 겨우겨우 골전도 스피커로 들리는 무전은 아군들 모두가 거점지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었다. 작전에 투입된 인원 전부가. 오직 나만이 녀석의 앞에 서 있다. 들고 있던 산탄총은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곧 부스러져 사라진다. 내 손에 들린 이것의 존재가 쇄도하는 시간을 한꺼번에 겪어버리고 풍화되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런 표정 변화도, 발언도 없는 녀석을 향해 박차고 달려들었다. 왼쪽 어깨에 매어 둔 단검을 뽑아들며 휘두르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검격이 막혀버렸다. 이걸 과연 막힌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검을 휘두르는 동작 자체가 멈춰버리고, 놈은 다른 곳에 있다.
"...!!"
갑작스레 척추를 타고 흐르는 끔찍스럽고 둔탁한 통증에 비명을 지를 뻔 했다. 끄억, 하는 숨 넘어가는 듯한 소리만을 내고는 이를 악물고 그쪽을 돌아보자, 놈의 주위로 우리가 부숴버린 문의 파편이 있다. 하지만 보통 이런게 날아온다면, 안개화로 피해버렸을텐데 어째서...?
"억제장은 상당히 흥미로운 능력이지."
드디어 녀석이 영영 닫혀있을 것만 같던 말라붙은 입을 열고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뭐라고 대답도 하기 전에, 다시금 날아오는 건물의 파편 내지는 어딘가에서 전송해온 물체들을 피하는데 신경을 써야만 했다. 젠장. 이 무거운 느낌은 그것이었다. 위즐과 저놈들의 지긋지긋한 억제장 능력. 괴인들의 고유 능력을 무효화시켜버리는 그것 말이다. 이렇게나 장시간 발동이 가능한거였다니.
놈은, 그저 이를 악물고 있는 나를 대신해 말하려는 듯 다시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했다. 마치 뮤지컬이라도 하는 듯,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와 어투로 나를 약올리려는건가? 아니면, 이미 옛저녁에 정신적인 무언가를 초월한걸까. 막상 이러한 비현실적인 상황을 대면하자 생소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은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이렇게까지 압도적이라기보단 이질적인 전투는 처음이었다. 수세에 몰린것 또한 처음은 아니었으나... 이건 아니었다. 뭔가가 달랐다.
"먼저, 원래는 모두 다시 돌려보내고 내 계획을 계속할 생각이었지만... 너는 어찌된 이유인지 간섭에 영향을 받지 않았지.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확인을 할 필요가 있겠어."
철근이 달린 콘크리트의 파편이 날아오자, 마치 깊은 물 속에서 걸어다니는 듯한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지금은 순전히 내 반사신경만을 믿어야 한다.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오는 이것을 피해낼 재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서두를 것 없지. 어차피 네녀석 한명만 제거하고 나면 그 누구도 날 방해할 수 없다. 이미 너조차도 나를 방해할 정도의 존재는 아닌거 같지만."
다시 한번 놈이 손을 들어올리자 스테인리스 합금 등이 재질인 의자나 책상 등이 공중에 떠오른다. 그것들은 잠깐 공중에서 요동치다, 순식간에 한데에 뭉쳐져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그 여파로 달아올라 아직도 시뻘건 상태의 그 금속 뭉치는 용도가 확실히 분명했다.
여러 날카로운 조각들로 재차 나뉘어진 금속의 조각들은 일제히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무너진 건물의 파편 뒤로 재빨리 숨어 몇 개는 막고, 몇 개는 빗나간듯 머리 위를 지나치는 것을 느꼈다. 피했나, 하고 안도하던 순간 차가운 고통이 근육을 찢고, 뼈까지 전해졌다.
"크아아아아아아악!"
공간 그 자체를 조종하는 녀석에게 사각 같은것이 있을 리 없었다. 이 전투는 아마 내가 패배하겠지. 그런 생각을 떨쳐내려 안간힘을 쓰며, 꽂혀있는 금속 파편들을 하나씩 빼낸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러한 고통이다. 하지만 그다지 반갑지는 않군.
"자, 여기서 선택권을 주지. 내 계획을 막지 않고, 조용히 돌아가 그대로 살아가다 종말을 맞이한다면 네가 아끼는 이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할 시간 정도는 남을거다."
한 걸음, 내딛으며 피가 묻은 금속 파편을 땅에 내던진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너는 지금, 오늘. 여기서 사라진다."
그저 날리는 먼지 정도 외에는 특기할만한 것 없는 허공에서 글리치가 일어나듯 뭔가가 일그러지더니, 내가 뽑아서 던져버린 파편을 포함한 이런저런 것들이 다시 날아온다. 피하려 몸부림 쳐보지만, 전혀 생각도 못한 곳에 결국 적중당해버리자 신음인지 욕지거리인지 모를 무언가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엿이나 먹어... 이 자식아...!"
놈은 큰 동요를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내게 다시 한번 말했다. 어째서 예견되어 있으며, 막을 수 없는 존재에 맞서려 하는지. 그러지 못한다는 것 정도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텐데. 그래. 물론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물러날수는 없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놈과 싸울 수 있는게 나 하나 뿐인 이상. 내가 지금은 비장의 패가 되고 만 것이다.
이번에는 가연성 가스 연료가 든 통을 어딘가에서 '나타내'더니, 그것을 이쪽으로 던져버린다. 위험하다. 저 폭발에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큰 부상을 피하지는 못하겠지. 허나 다가간다. 아니, 오히려 달린다. 어쩌면 이것이 방법일지도 모르기에.
바로 눈앞에서부터 폭발이 일어나고, 그 폭풍으로 인해 저만치 뒤로 나가떨어진다. 여기저기 타고, 찢어지고 멍이 들었다. 만신창이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다. 먼지구름만이 이 허전하고 을씨년스러운 넓은 공간을 자욱하게 메우고 있다. 나, 그리고 저기 저 자식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 오기가 과연 정의감인가? 아니면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만용인가?"
연기가 조금 더 걷히고, 놈의 형체가 좀더 또렷이 보인다. 아마 나도 그렇겠지.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입술을 비집어 열고 겨우 남은 힘으로 놈의 말에 무어라 대답한다.
"...가르쳐줄까?"
나는 지금,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해답일수도 있겠지. 내가 왜 여기에 남아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놈과 이렇게까지 처절하게, 승산없어 보이는 싸움을 해야만 하는지.
"...내가 지켜줘야 할 어딘가에서 받아온... 승산이다."
처음엔 그저 농담이라 생각했다. 그저, 강력한 존재의 변덕 정도겠지. 이정도의 물건은 장난감 밖에 더 되겠냐고 자조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게... 이런 역할을 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겠지.
커다란 버클과, 이런저런 금속제의 장식이 달린 무언가. 허리 부분을 정확히 감쌀만한 정도의 물건.
"솔직히 말해서, 이런 말도 안되는 물건을 사용해서 싸우게 될 일이 있을거라 생각도 않았는데."
벨트를 허리에 차자, 자동적으로 스트랩이 채워지며 고정된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무언가 처음보는 화면이 뜨지만, 망설일 필요는 없겠지. 그것을 들어올린 채, 말하지 않으면 안될 발언을 터진 입술을 한채 낮게 읊는다.
"...변신."
스마트폰을 버클에 끼우자, 검은색 안개가 온몸을 감싼다. 전혀 새로운 힘이다. 한번도 겪어본 적 없고, 다시는 겪어볼 일도 없겠지. 하지만... 지금 쓰지 않으면 안될 힘이다.
세 사람의 얼굴이 각각 화면에 떠 있다. 그리고 그 셋은 우리가 알아야 할 얼굴이다. 앞으로 모르면 살아남을 수 없을 얼굴들 말이다. 전장에서 가장 잘 알아야 할 것은 적군도 아닌, 아군의 얼굴이다. 아군인지 모르고 헛짓을 했다간 큰일이 나니까. 애초에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등을 맞대고 싸우는건 무리겠지만.
"어떤 대원들이지?"
누군가가 묻자, 낮은 톤의 약간 나이 있는 남성 목소리가 받아들여 대답한다.
"전반적으로 우리 팀은 상당히 공격적이었지. 작전들도 모두 그랬고. 하지만 지금은 공격만으로 끝나는게 아니야. 점령한 지점을 수비할 여력도 갖추어야 해."
옳은 말이다. 그간은 돌파해서, 임무를 수행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점령해야 할 거점이 있고, 그것을 탈환하려 적이 습격하는 일도 빈번하다. 여지껏 어떻게든 막아왔지만, 대부분 도박성이 큰 공격적인 방어전이었다. 공방이 바뀌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
"그래서 이번에 영입한 대원들은 방어 쪽에 두각을 보이는 이들을 초청했지. 한명은 그렇지 않지만, 그녀는 확실히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될거야."
남성은 '그럼 어디 천천히 한번 훑어볼까' 하며 덧붙이고는 다른 화면을 띄웠다.
"우선 첫번째는 대한민국의 모 기업 연구소에서 영입해온 인물이지. 호출명은 람퓌리스. 광자를 조작할 수 있는 괴인이다."
우선 괴인이고, 연구소의 실험체 및 자문이자 경비원이라는 복잡한 직책을 가졌던 20대의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의 능력을 응용하고, 더 능동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각종 시험적인 장비를 운용하게 되었다.
"필드 테스트를 바로 전장에서 한다는건가?" "이미 충분히 벤치마킹은 끝냈어. 실전에서도 실망시키지 않을 성능이라는 건 믿어볼만 해."
확실히. 대원들의 눈에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랜기간 동력을 공급해줘야 하며, 그 크기도 만만치 않을 현존하는 방어막 체계와는 달랐으니까. 그저 약간의 배터리와 가스가 든 카트리지를 이용해서, 광자를 밀집시켜 적의 공격을 막는다니. 최신 기술은 놀라울 뿐이었다.
"저 능력과 장비를 응용한다면, 적재적소에 설치된 방어벽이나 기만책은 수비에 상당히 유용할거라 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래도 확실히 적 저격수의 위협은 상당히 해소시킬 수 있겠어."
그간은 정말 눈에 띄이지 않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혹은 적 저격수가 있을만한 곳에 화력을 투사하거나, 아군 저격수의 지원만을 기대해야했다. 하지만 이런 수를 쓴다면, 상황을 좀 바꿀 수 있겠지.
"개인적으로는 어떤 거 같아?" "잘 모르겠군... 얌전한 친구 같아. 하지만 결단력은 꽤 있어 보였고. 뭣보다 무사하고 안전한 것에 대해 꽤나... 중요하게 생각하는거 같던데." "트러블 일으킬 걱정은 없을거 같군. 뭐, 두고봐야지."
주고받는 대화가 빠르게 일단락되자, 약속이라도 한듯 다음 인물의 모습을 비춘다.
"아키노닉스. 이쪽은 내가 정말로 보장할 수 있어. 전 미합중국 육군 공병대 소속이야. 말이 필요없지."
볼크가 어느정도 관심을 보이며 화면을 주시했다. 분명 전투공병으로서의 본분은 그녀가 어느정도 맡아서 하고 있으리라. 하지만 아키노닉스가 자랑하는 장비와 전술은 볼크의 그것과는 방향성이 달랐다.
"건설공병쪽에도 어느정도 겹쳐보이는데."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역할을 하는 자동화 포탑 시스템과 각종 설비는 확실히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하는데 있어서 두각을 보이고 있었다. 전장에서 빠르게,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는건 당연히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쪽에 가장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르니까.
"맞았어. 그리고 위즐은 먼저 오리엔테이션에서 시범을 보여줬던 걸 기억하고 있을거야. 그녀의 능력 말이지."
모두가 자신들에 비해서 분명히 단신이라 할수 있는, 앳되어 보이는 여성을 바라보고 그 발언을 기다렸다.
"물론. 아키노닉스는 능력을 이용해서 내 억제장의 EMP 효과를 무효화시킬 수 있어. 물체 주변에 전류 그물 같은걸 씌워서, 내부에 있는 물건에 전자기적 간섭을 막는거야." "패러데이 새장 말이지?" "그게 맞아. 놈들에게도 EMP를 일으킬 수 있는 장비가 꽤나 있어. 그리고 우린 그런 장비에 취약했고." "다만 이제 저 친구의 능력을 이용한다면..." "이제 옛말이 되는거지."
아키노닉스. 카시엘라 라스코프. 아마 전자인 호출명으로 불리는 일이 이제 더 많아질것이다.
월러스는 사실 조금 망설이는 듯 했다. 정확히는, 코르부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평소 자신이 실수하거나 잘못한 일이 아니면 굳이 그에게 그럴 일은 없었을텐데. 벌써부터 긴장감이 맴돌고 말았다.
"다음은... 아마 처음 보는게 아닌 사람도 있을거야."
코르부스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저 얼굴을 잊을 수는 없는 법이지. 특히나 그 당시의 상황이 강렬했다면 더더욱 말이다. 분명 지난번, 무리해서 능력을 사용한 탓에 약화된 상태였다곤 하지만...
"장난해? 나한테 총을 쏜 여자랑 같이 일하라고?" "이봐, 진정해. 분명 첫 만남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지만..." "내가 지금 크게 뭐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도저히... 젠장. 어쨌든 계속해줘."
순간 그의 성격답게 울컥하고 분노를 그대로 내뱉을 뻔 했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간신히 머리를 식히고 진정한 그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화면을 보기로 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가며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나갔다.
"...파이선이라고 호출명을 최근에 발급했어. 본래... 그러니까 알다시피, 우리와는 한때 적이었던 인물이지." "왜 하필 저 녀석이지?" "그건 우리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저쪽에서 먼저 우리에게 접선해 왔고, 밝힌 바로는 저놈들에게서 환멸을 느꼈다는 거 같던데..."
코르부스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 마치 품평이라도 하듯 냉소적인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효과적인 전술과 능력이었다. 열원 감지에, 냄새를 이용해서 추적한다니. 뱀 같은 모습이었다. 사냥감을 확실하게, 그리고 일말의 자비도 없이 탐욕스러우리만큼 냉정하게 처리하는 뱀 말이다.
"잠깐. 그러면 저쪽을 배신하고 왔다는거잖아. 난 인정 못해. 한번 배신한거 두번은 더 못하겠어? 하물며, 그게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고. 스파이일수도 있어." "설마 그걸 우리가 걸러내지 못한건 아니겠지. 고용주 측에서도 꽤나 깊게 대화를 나눠봤던 모양이야." "난 이해가 안돼. 저런 뱀 같은 여자를 들이자고? 고용주는 무슨 생각으로 그걸 또 받아들인거야?"
코르부스는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 인물이 적이 아닌 것은 확실하게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전술에 있어서 정말 극명한 역상성이 될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신뢰였다. 앞서 말했듯이, 과연 어떻게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그것도 자기 자신에게 총상까지 입힌 그런 인물을.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성인군자 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뱀 같은 인물인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지금은 우리 뱀이야."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 라텔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하자, 코르부스는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결국 그만두었다. 그저 당장은 체념한듯,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번 인원 영입으로 우리 쪽은 확실하게 전력과 전술 면에서 큰 보강을 이룰 수 있을거라고 봐. 그러니 다들 기병대를 환영해주자고."
해결사, 내지는 기병대. 분명 발빠르고 지금 우리가 당면해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어떤 활약을 펼칠 지는, 직접 함께 싸워가면서 알아보는 수 밖에 없겠지.
한번 울고갈래 전방 10m 통곡 발사!! 흐어어어어엉 CQ는 사실 힘을 얻은 소시민의 가장 바람직한 예시가 아닐까 싶다.. 막강한 힘+주위 세상은 다 ㅈ댔음의 콤보는 충분히 질서선이라도 삐뚤어질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기 때무네... 개인적으로 궁금한건 씨큐에게 힘이 먼저였냐 책임감이 먼저였냐... 사실 두 경우 둘다 대단 사실 내 안의 씨큐는 뭔가 마법사~ 인류구원~ 이런 이미지였는데 미래톡방에서 10년 있으면 꽃이 필거라고 자랑하는 부분에서 얘가 원래는 소소한 가치를 지향하는 그런 사람이었겠구나 싶어서 찡했음 씨큐사랑해
나탈라 티랄라스는 지금, 상당히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노드 전설 속에 나오는 세상의 포식자 알두인이 돌아왔고, 그가 스카이림 전역의 드래곤들을 깨워 넌을 먹어치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벌써 시로딜에까지 전해졌다. 어디 그뿐이랴, 일설에서는 로칸의 심장이 복원되었으며, 누미디움마저도 부활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이 대위기의 서사시에 평범한 용병인 자신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애초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총애하는 필멸자여, 그대는 위대한 영웅의 혼을 지니고 있구나. 수백 년의 세월을 거치고, 대영웅 네레바의 화신이 다시금 넌에 강림하리라."
황혼의 여주인, 데이드릭 프린스 아주라는 나탈라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탈라가 네레바의 화신인 네레바린이 맞다고. 나탈라는 그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어 몇 번이나 더 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수정구슬에서 피어오른 아주라의 모습이 사라진 뒤에는, 머리를 감싸쥐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었다. 그러니까, 네레바린은 던머의 옛 전설 속에 등장하는 영웅이다. 어느 날 알려지지 않은 부모로부터 던머 영웅 네레바의 환생이 태어났고, 그는 온갖 시련을 거친 뒤 마침내 로칸의 심장을 악용하려는 악당 다고스 우르를 패퇴시켰다. 그게 나탈라가 알고 있는 네레바린 신화의 내용이었다. 헌데 이건 벌써 3시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뒤로 몇백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네레바린이라 불리는 자가 나타날 줄은, 심지어 그게 그녀 자신일 줄 나탈라는 꿈에도 몰랐었다. 그녀는 어쩌다 이런 숙명을 짊어지게 되었나. 영웅의 환생, 위대한 전설 속 주인공에게는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 사람들은 영웅에게 많은 것을 바란다. 영웅은 마땅히 세계와 인류를 지켜야만 한다. 영웅이라는 왕관의 무게는 상당해서, 나탈라는 그것을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주목받는 것도 딱 질색이었고, 평범한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도 싫었다. 그녀는 정말 자신이 영웅으로서 활약해 세계를 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았다. 하지만 좋든 싫든 이 세계의 위기를 막으려면 어쩔 수 없이 영웅이란 이름을 짊어져야 했다. 나탈라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늘어졌다.
※트리거:가정폭력,살인,정신병 등에 대한 폭력적인 언행이 포함되어있습니다. PTSD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Q."망상이 아니라면, 그건 누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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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랜만이네. 사도닉스. -…….
-이런. 한 때 사랑했던 여자를 보는 눈이 아닌걸. 총은 치워줄래? 거 참. 한 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몸을 섞어 아이까지 가진 사이인데 말이지. -그리고 서로를 죽인 사이였다는 점에서 나머지 설명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나름대로 낭만적이지 않아? -낭만은 다 죽었네.
-아무튼 죽었어야 할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뻔뻔하게 말을 붙이고 있다는 건, 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아니면, 뭔가의 기적으로 당신도 살아나기라도 한 거?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 또 죽여줬으려나? 안타깝지만, 그럴 일은 없겠네. 추측한 대로 꿈이 맞아. -죽는 게 취향이었어? 지독하네. 이런 이상성욕자랑 부부였다는 게 수치스러워. -지독한 건 당신이야. 어떻게 그렇게 끔찍하게 죽여버릴 수가 있어? 나의 마지막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결말이기를 바랐는데. -주제넘은 걸 바라네. -슬픈건 어쩔 수 없잖아? 오로지 당신의 이야기를 위한 추한 악역으로 소비된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
-대화도중에 이마에 총을 쏘는 건 너무한걸. -별로 들을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당신은 내가 악역주제에 바라는 게 많다고 말하고 싶은거야?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애를 돌볼 자격도 없다는 것 알지? -엘리와 너는 달라. -아니. 근본적으로 똑같아. 그 애도 나도, 잔혹한 학살자야. -당신은 도덕과 법이 갖춰진 세계에서 권력을 위해 정부군에 들어간 어른이지. 엘리는 도덕도 법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 눈앞에서 군인에게 소중한 사람과 동네 사람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걸 봐야 했던 어린아이고.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잖아? -넌 무고한 시민을 쏴댔고, 그 애는 학살을 벌인 군인들을 죽였어. -과연 그 군인들 모두가 그 학살에 참여했을까? 그 애가 죽인 것이 전부 군인 뿐이었으리라는 보장은 있어? -네가 죽인 건 대부분 무고한 시민이었잖아? 말장난은 그만둬줄래. 잘못에는 경중이 있어. 당신은 합리화되지 않는 말종이라고. -그래. 나는 당신 말대로 말종이야. 부정할 생각은 없어. -그러면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당신은 다르냐는 이야기지.
-두 번씩이나 너무한걸. 당신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듣기 싫었어? -추하네. 세라피나.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아내는거. -나는 내가 정당하다곤 말한 적 없어. 단지, 내가 구제할 길 없는 쓰레기라고, 네가 성인군자인건 아니라는 뜻이지. -적어도 너에게 그런 얘기할 자격은 없어. -글쎄. 쓰레기가 쓰레기같은 이야기를 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가? 자유와 평등은 혁명에서 추구하는 가치 아니었어? -자유라는 건 자신이 한 정신나간 소리를 책임질 의무를 수반하는 법이야.
-애초에 말이지. 사도닉스. 난 세라피나가 아니야. -흐음.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그녀는 죽었고, 이건 네 꿈이잖아? 그렇다면 나는 뭐겠어? -망상이겠지.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는구나. -그러니까 내가 평소 하고 있던 생각을 일그러진 형태로 보여주고 있는게 이 꿈이라고, 그런 이야기잖아? -처음으로 세라피나를 의식했던 순간 기억나? 너는 가족에 대해서 잘 입을 열지 않았잖아. 누구나가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아버지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엄격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네.'라고 했던 게 계기였잖아. -…그런 걸 잘도 기억하고 있네. -그 말에 너는 '엄격하다고 할까. 가끔 난폭해질 때가 있었지…….'라고 했다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가끔 난폭해지는 사람같은건 없어. 그건 그냥 난폭한 사람이지.'이라는 말에 사랑에 빠졌지. -아하하.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순진했네. 그 때의 나도.
-어때? 일그러져가는 모습이지만, 누군지 알 것 같지 않아? -그래. 이번에는 그녀를 대신해 내가 말해주도록 할까. -너는 위선자야.
-네가 이해하길 포기했기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 -그들이 너와 동등한 목숨이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너와 별로 다를 바 없었을지 모르는 자들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딸이나 아들이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부모의 손에 이끌린 사루비아같은 아이가 또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너는 너의 아버지를 닮았어. -그녀를 사랑했기에 너는 그녀와 닮아갔어. -역겨운 가정폭력범에게서 태어나 이기적인 예비 독재자를 안았던 것이 너야. -있잖아. 그거 알아? 정신병리학적으로, 정신질환은 유전될 수 있대. 사루비아는 환청을 앓았지. 그리고 젊은 시절의 너는 -시끄러워. -지금의 너는 과분할 정도로 평화롭고 행복한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이 정도 비아냥은 괜찮잖아?
-그만 쏴. -귀가 아프잖아. 그만.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다. 발목까지 차올라있었다고 생각한 물이, 사실은 자신이 발버둥치고 있던 심해였다는 것을. 헤엄치고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그 수압속에 있었던 탓에, 이제는 물 밖에서 걸어나가는 걸음이 어색하다. 살이 부르터 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햇살 밑에서 그 상처가 뒤늦게 아려온다.
이른 새벽, 연발하는 총성속에서 그는 눈을 뜬다.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정신차려보면 방 안은 고요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전부 꿈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분나쁜 대화도, 비난하던 목소리도, 일그러지던 대화 상대도 전부.
새 소리가 들린다. 그의 새하얗고 깨끗한 손에 질척거리는 환각이 느껴졌다. 지난 밤의 꿈은 이미 깨져버린 유리조각처럼 마구 흩어지고 뒤섞여 분간할 수 없었다. 오직 한 마디만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너는 위선자야.'
사도닉스는 헛웃음을 흘린다.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는 것은, 이렇게 쉬운 일이었나. A. 그야, 자기 스스로를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