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사항 ※최대 12인이 제가 받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총 10개의 대사건이 모두 일어나면 완결됩니다. ※이 스레는 슬로우 스레로서, 매우 천천히 진행됩니다. 진행은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보통 오후 2시~4시 사이에 진행되며 길면 2시간 짧으면 1시간 반 진행되니 참고 바랍니다. ※이 스레는 수련만을 위해서 세워진 무림비사의 수련 스레입니다. ※수련은 @을 달고 달아주세요. ※유혈 묘사 등이 있사오니 주의 바랍니다. ※이 외에 미처 기억하지 못한 주의사항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참치어장 상황극판의 규칙을 준용하며, 이에 기속됩니다.
아지랑이같은 검기가 피어나는 하리의 검이 표범과 같이 날래게 십자를 그었다. 중무팔검 제 5성 중무삼검, 경비를 서던 수적들을 단칼에 처치하던 바로 그 고절한 수법! 그러나 그 비장의 한 수조차 장삼의 앞에서는 어린애 장난이나 다름없었다. 크지도 않게 살짝 몸을 기울인 것으로 그 빠른 검을 막지도 않고 간단히 피해낸 장삼의 목검이 세차게 휘둘러졌다.
딱!
"중아를 봐달라더니! 네가 벌써 초식을 잊는 경지가 된 줄은 몰랐구나!"
또다시 정수리 위에 떨어지는 장삼의 목검. 악랄할 만큼 정확히 같은 자리만 노린 공격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비무가 끝나고 하리의 머리칼을 헤쳐보면 커다란 혹이 하나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하리는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느려짐 없이 재차 곡검을 휘둘렀다. 첫 공격이 닿지 않을 것쯤은 하리 역시 예상했던 것이다. 조금 전은 단지 장삼의 눈길을 끌기 위한 허초. 이번에야말로 정말 검을 순식간에 낚아채가는 중아의 수법! 병아리를 노리는 매와 같이 하리의 곡검이 날아들었다. 아니, 그랬어야 했다.
검기를 두른 하리의 중아가 장삼의 목검을 잡아챘다. 그러나 균형을 빼앗기고 바닥을 뒹구는 것은 도리어 하리였다. 방이와의 비무가 있던 날 하리가 밤새 연구하던 바로 그 수법. 중아에 걸려들어 검이 얽히더라도 도리어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바로 그 수법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네가 말한 그거다. 어때, 직접 당해보니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감이고 뭐고 너무 순식간이라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더 이상 안 맞게 일어나지 말고 계속 여기 그냥 쓰러져 있고 싶다.
그게 하리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한 대 맞을 것을 각오하고 했던 회심의 기습마저 실패하다니, 이래서야 가망이 없다. 중아고 뭐고 모르겠고, 더 이상 맞지 않으면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이렇게 탈진한 척 계속 쓰러져있으면 아저씨도 그만 때리지 않을까?
하리는 고개를 들어 슬쩍 장삼의 눈치를 살폈다. 장삼이 아저씨도 사람인데 설마 잠깐 정도는 쉬게 해주겠지 하는 헛된 기대를 품으며. 그러나 장삼은 하리가 꾀를 부리려 든다는 것을 이미 눈치챈 듯, 도로 높이 목검을 들어 올리며 다음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악독함에 치가 떨렸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 하리는 재빨리 머리를 감싸며 후다닥 일어나야만 했다.
"네 체력을 내가 뻔히 아는데, 벌써 쉬려고? 어림도 없지. 꾀부리지 말고 연습이나 하거라. 이번엔 내가 중아를 걸 테니, 네가 한번 역으로 당겨보란 말이다."
그렇게 말한 장삼이 반월형의 목검을 휘둘러 중아를 걸어왔다. 필부의 눈으로도 보일법한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마침내 두 검이 붙은 그 순간. 하리는 기습적으로 검기를 장삼의 몸 가까이 치솟게 해 장삼을 위협하는 한편 붙은 검의 힘을 이리저리 옮겨 장삼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애썼다.
그러나 둘의 경지 차이는 분명했다. 손바닥 뒤집듯 간단히 하리를 쓰러뜨린 장삼과 달리, 하리는 아무리 용을 써도 장삼을 넘어뜨릴 수 없었다. 태산을 만난 듯한 막막함. 아무리 밀고 당기며 재주껏 검을 놀려도 장삼은 균형을 잃기는커녕 머리카락 한올 꿈쩍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오히려 어떻게든 장삼을 자빠뜨리려 기술을 걸던 하리 쪽이 먼저 균형을 잃고 휘청일 지경이었다.
"한번을 못 넘기는구나 한번을. 그것 한번이 그리 어려워, 으이? 어떤 수를 써서든 한번 넘어뜨려 보란 말이다! 혹시 알어? 그럼 내가 기특해서 비장의 기술이라도 하나 알려줄지."
하리가 하는 꼴을 보고 답답했던 것인지, 장삼이 실없이 공수표를 날렸다. 그러자 꿈쩍도 하지 않는 장삼을 보고 힘이 빠져있던 하리에게 도로 기운이 돌아왔다. 곡검을 고쳐잡은 하리의 얼굴이 결연히 빛났다. 그 비장함이 마치 조국과 민족의 명운을 건 마지막 대전투에 나서는 장수와도 같았다.
재밌고, 멋지고, 관능적인 문구를 떠올린 하리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렇다면, 꼭 중아를 쓰지 않아도 된다면. 하리는 누군가를 엎치기에 특화된 수법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강래수공 제 4성 장강이 부른다
하리의 몸이 쏜살같이 쏘아져 나갔다. 속력의 제곱과 질량의 절반이 곱해진 운동 에너지가 단숨에 장삼을 덮치고 장삼은 속수무책으로 휘청...
휘청였어야 했는데.
"네가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좀 참신한 방법은 없더냐? 뭐? 형문이는 당했다고? 허, 그 녀석도 교육 좀 시켜야겠구나."
하리의 마지막 한 수마저 간단히 파훼해버린 장삼이 혀를 찼다. 하리는 회심의 한 수가 그리 간단히 끝나버린 것보다도, 결국 방이를 쓰러뜨릴 비책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 분해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머리를 긁적이며 그 꼴을 지켜보던 장삼이 하리를 달래려 조용히 귀엣말을 시작했다.
상선이 보였다 하면 다짜고짜 배 밑에 구멍부터 뚫고 상인들 모가지부터 날리며 협상-혹은 단순한 겁박-을 시작하는 수적들도 있었으나, 하리는 그런 무식한 수법은 선호하지 않았다. 갓 수적질을 시작해 뭘 잘 모르던 시절을 제외하면, 하리는 웬만하면 상인들의 목숨을 그대로 보전해주는 편이었다. 목숨뿐 아닌 상품들 역시 통행료만 정확히 바치면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니, 수적 중에서도 특히 지독하다는 하리의 악명에는 다소 억울한 측면이 있었다.
수적질을 생업으로 삼은 주제에 새삼 타인의 재산과 인명을 소중히 여기기라도 하였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하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기보다는 두고두고 알을 뽑아먹는 쪽을 높이 쳤을 뿐이다.
자식에게 물고기를 주면 한 끼를 먹을 것이나,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을 먹으리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하리는 더더욱 욕심을 내어, 물고기를 키우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아는 것으로 자식 하나 평생 먹고산다면, 물고기 키우는 법을 아는 것으론 대대손손 배곯을 걱정 없지 않을까? 그게 하리의 생각이었다.
"합!"
하리의 손이 수면을 덮쳤다. 그러나 노렸던 물고기는 간발의 차로 비껴가고 말았다. 힘차게 꿈틀거리며 강물 깊이 헤엄치는 종어鯼魚. 평범한 사람이라면 진작 뒤쫓기를 포기할 속도였다. 그러나 하리는 강래수공을 배운 수적이었다. 물 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수적에게 수영과 잠수는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하리는 재빨리 강물에 뛰어들어 놓친 물고기를 쫓았다. 앞서 헤엄쳐가는 물엣것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스승님은 이중적인 위악자셨다. 인간이란 악으로 넘쳐나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 누누이 말하면서도, 마음 속으론 그런 사람을 믿고자 했다. 스승님이 조금만 더 덜 이중적이셨다면 그리 허무히 가실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스승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 또한 스승님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 아닐까. 어느 정도는.
처음에는 그네들 말마따나 돈으로 사서 부리다가 내보낼 이들이었다. 그닥 신뢰하지도 않았다. 해태단이 전멸했을 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내 상처를 보며 명분이 있음을 다행히 여겼었다. 하지만 왜. 나는 왜 그때 책상을 뒤엎었나. 단순히 내 것이 망가졌다는 분노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인간적인 동정과 분노였나.
"내가 게으르면 모두 죽는다. 내가 게으르면...."
지금의 자경단은 치밀한 행정과 규칙으로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다. 나 한 사람의 권위로 그들을 묶어두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어중이떠중이 산적 무리같기도 하다. 우두머리가 죽으면 즉시 통솔력을 상실하고 와해되는 오합지졸들.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모범을 보이고 앞장서면서 믿음을 주어야만 한다. 점판암과 조개껍질로 만들어진 바둑돌을 깔아놓고 노려보면서 손톱을 씹고 있는 건 그런 중압감 때문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그들의 목숨을 신경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그들은 머릿수 채우기용이고, 주 전력은 광검배를 필두로 한 모용세가의 무사들이나 2공자의 수하들 아니었나. 대량 소모를 전제로 한 버림패들. 해태단들. 돈으로 목숨을 산 이들.
"그 빌어먹을 것들과 대등하게 싸우려면 오성까지는 성취하고 임전해야 해."
"내가 빨리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르쳐주고, 어쩌면 나 혼자 모두를 지휘해야 할지도 모르니... 후우...."
그래도 나한테 주공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저들이 처음이니까. 평생 들을 일 없겠지 하고 기대도 없었던 말이 저들의 입에서 나왔으니까.
장강의 수적이 되어 물길을 다니길 십수 년. 언제부터인가 하리의 꿈은 장강을 제 구역삼아 완전양식이 이루어지는 양식장을 갖는 것이 되었다. 야생 물고기를 잠시 가둬뒀다 키워 출하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나기부터 팔려나가기까지 그 모든 것이 하리의 통제 아래 있는 완전양식장을 말이다.
지금의 하리는 일개 수적. 아무리 이름높은 중경수로채의 간부라 한들 그 중 말석에 불과하니, 완전양식은커녕 불완전양식이 이루어지는 양식장조차 꿈꾸지 못할 처지였다.
그러나 하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언제가 되든 반드시, 먼 훗날 어느 날에는, 거대한 완전양식장 하나를 손에 넣고야 말겠노라고.
촤악!
정말 도망치는 물고기를 잡을 생각이 있긴 한 건지, 이번에는 거의 장난에 가깝도록 멀리 하리의 팔이 휘둘러졌다. 아무렇게나 휘두른 듯한 팔이었으나 앞서가던 종어를 위협하기엔 충분했던 모양. 앞만 보고 헤엄쳐가던 종어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그것은 팔을 휘둘러 종어를 몰던 추적자가 의도한 방향 그대로였다.
자연히 중원 사방에서 발생하는 상인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들을 모조리 강바닥에 수장시켜 상품을 뜯어내는 것은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가장 낮은 술책이다. 상인들의 목숨만은 살려주어 다시 상품을 들고 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책략이라 할 수 없는 계책 중의 쓰레기이며, 어느 정도 밑천까지 남겨주어 더 큰 상인이 되어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 조차 아직까지 최상책은 아니다.
하리가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작은 보따리상부터 시작한 어리숙한 청년 하나가 선단을 수십 거느린 거상이 되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 그리고 그렇게 키워낸 대상인조차 필요하면 언제든 출하해도 좋은 한낱 통통한 생선 하나로 볼 수 있는 거대어장의 주인. 하리는, 상인을 완전양식하는 장강의 주인이 되길 원했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잡았다!"
단숨에 물 위로 솟구친 하리의 손끝에 생선 가득한 통발이 딸려 올라왔다. 통발 안의 생선들은 자유를 찾아 퍼득였으나 그것은 이미 의미를 잃은 몸짓에 불과했다. 그 애처로운 몸부림을 지켜보는 것은 그저 생선들이 싱싱해 흐뭇한 하리의 선뜩한 시선 뿐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리저리 이유를 대며 비무를 피하려던 방이었지만 검기마저 줄기줄기 뿜어내며 막무가내로 곡검을 휘둘러대는 하리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마지못해 방이도 곡검을 꺼내 맞서기는 했으나, 밥 잘 먹고 갑자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잠깐, 밥?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하리가 그에게 먹을 걸 갖다주는 착한 짓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아까부터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하압!"
방이의 추론은 거기서 멈춰야만 했다. 넘실넘실 검기가 피어오르는 하리의 곡검이 지척에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깡!
방이는 서둘러 하리의 일격을 막아냈으나, 채 자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또다시 다음 검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머리 위로 높이 든 비스듬한 일검. 중무일검의 준비 동작이 분명했으나, 이쪽에서 중아를 걸기 딱 좋은 허점 가득한 자세이기도 했다.
"...!"
한눈에 빈틈을 알아본 방이였으나, 평시의 그라면 그저 적당히 중무일검을 받아치고 넘어갔을 터였다. 그러나 오늘은 배도 부르고 이상하게 힘이 빠지는 날이었다. 아무리 하리보다 실력이 윗줄에 위치한 그라도 오늘 같은 날 검기까지 두른 중무일검을 안전히 받아치긴 어려울 듯했다.
이참에 하리에게 허점 하나 가르쳐주는 것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방이는 큰 고민 없이 그대로 중아를 걸어갔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몸을 억지로 추스르며, 방이는 마지막 동작을 가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하리는 제대로 얽혀든 검을 보고 당황하기는커녕, 미처 방이가 검을 잡아당기기도 전에 제가 먼저 숨이 닿을 듯 가까이 달려든 것이다. 채 방이가 놀랄 새도 없던 순식간, 하리는 그대로 교묘히 검을 놀려 힘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쿠당탕탕!
예상치 못한 반격에 두 눈 뜨고 당한 방이는 화려하게 바닥을 뒹굴고 말았다. 조금만,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됐는데! 이상하게 무거운 몸 탓에 대응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방이가 잽싸게 일어나려 했으나.
"열! 아홉! 여덟! 이일-곱!"
하리가 큰 소리로 숫자를 세아리기 시작했다. 언제고 도로 일어설 방이의 공격을 대비하기는커녕, 그저 신나게 방이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외치기만 하는 것이, 아무래도 방이가 도로 일어나지 못할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여어섯~ 다아섯~ 네엣~" "너 설마!"
일어설 힘은커녕 손가락 까딱할 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을 느낀 방이가 뒤늦게 뭔가를 눈치채고 소리를 질렀다. 하리는 그런 반응이 너무나 재미있다는 듯이, 혀를 한번 메롱 내밀고서는 계속해서 경쾌하게 숫자를 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