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으로 족했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 없다. 극악한 범죄자일지라도, 혹은 정파의 대협일지라도, 혹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용과 같은 신선일지라도. 즐거운 싸움을 할 수 있다면 그뿐. 더이상 바라는 것은 없었다.
"자, 네가 무엇을 겪었는진 모르겠지만 그것을 나에게도 알려다오. 검으로, 그리고...?"
검.
아니, 그것은 검보다는 차라리 둔기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불쾌검. 자신이 이계에 넘어갔을 때 이계의 괴생명체들을 쓰러트리고 받은 검. 그런 검이 어째서 눈 앞의 미친 여자에게 들려있는 것인가. 눈보라 사이에서 희미하게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불타는 듯한 적발. 어떻게 잊을 수가 있나. 중원에서 보기 드문 그 머리카락의 색깔을.
"...누님?"
아연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하란은 이미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풍검범으로 막아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이 이 자리에서, 그런 모습으로.
결국 용검세의 불꽃이 그의 몸에 적중당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굽히며 고통스러운 침음을 뱉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고통과, 의문으로. 지금 상황이 납득이 가진 않았으나 여기에서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눈 앞의 여인의 모습에선 제가 알던 누님은 이미 사라지고, 미쳐 날뛰는 한 마리의 광인만이 남아있었으니.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재회를..."
으득. 그의 이빨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그는 풍령보를 밟으며 허공으로 떠오른다. 허공에 떠오른 그가 펼치는 검법은 아까의 강맹하고, 빠른 공격과는 성격이 다른 공격.
창궁무애검법 - 환위태
하란이 와룡수로 쉽게 잡아채지 못 하도록 환위태를 펼쳐 하란의 눈을 속이고는, 충분히 근접했을 때,
철검십식 - 긍지검
빠르고 곧은 베기가, 수많은 검의 환영중에서 튀어나온다. 노리는 것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하란의 약점. 바로 잃어버린 다리를 대체하는 의수가 있는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