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 첫눈에 보기에도 퍽 호감 가는 생김새였다. 흐린 곳 없이 뚜렷한 이목 구비하며, 모난 구석 없는 외양은 전형적인 훈남형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외모만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 누가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을까, 라는 속담을 실천하고 있는 듯 얼굴에 미소가 떠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파란색과 초록색 사이 어딘가의 색이라는 독특한 모색을 지니고 있었다. 흔히 민트색… 이라 부르는 쨍한 색감까지는 아니었지만 바다의 푸르름을 연상시켰다. 반곱슬의 머리카락이 어울리는 인상이었지만 제대로 빗지 않아 꼭 눈에 띌 정도로 잘 흐트러지고는 했다. 어디까지나 ‘자유분방’한 거라 주장을 하고 있으나 뭐 그리 중요한 이야기일까. 어쨌든 외관을 스스로 잘 꾸미는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다듬는 등 최소한의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긴 했지.
크고 둥글며 눈꼬리가 올라간 눈매에, 밝고 선명한 금색의 홍채는 활달한 이미지를 더해주었다. 결코 처진 눈은 아니었지만 고양이 보다는 갯과를 연상시킬 정도로 순한 눈이었다. 짙은 쌍꺼풀 안에 담긴 눈동자가 항상 총기로 반짝여 생명력이 넘치고 있음을 어필하는 것만 같았다. 얇지만 선명한 혈색을 띄는 입술과, 가벼운 호선을 그리는 콧대. 단연 눈에 띌 정도로 잘생기지는 않았어도 한 번쯤 돌아보게 할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잘 갖추어 입는 것보다는 편하고 캐주얼한 것을 선호했다. 확실히 칼같이 다려진 단정한 정장보다는 넉넉한 후드티가, 반짝거리는 검은 구두보다는 조금 낡았지만 하얀 캔버스화가 어울리는 청년이었다. 적당히 큰 키도 그렇고, 비율이 좋아 웬만한 옷들은 스타일이 잘 받긴 했지만.
신장 - 179cm 체중 - 68kg
성격 : 밝고 긍정적이며, 동급생에게 친절함. 중학생 이후로 생기부에서 떠나지 않는 설명이었다. 그 짧은 문장처럼 푸름의 성격은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기 쉬운 성격이었다. 더군다나 착한 성정 탓에 생판 모르는 타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거리낌 없이 나설 수도 있었다. 그가 남들이 견디기 힘든 크나큰 불운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강점은 단연 긍정적이라는 키워드에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역경이 다가와도 그 특유의 긍정적인 사고로 유하게 넘기고는 했다. 나쁜 일이 있긴 했지만, 다음에는 더 좋은 일이 있을거란 식이었지. 그 성격 덕에 ‘내일은 더 좋은 하루가 될거야.’ 라는 말버릇이 생기기도 했다.
활달한 성격 덕에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한 원만한 교우관계를 지니고 있었지만,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친구였던 사이가 멀어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되려 모함을 당해 나쁜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던가. 그럼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그럴 수도 있다며 초연한 태도를 보이고는 하니 겉보기에는 어떠한 상처도 받지 않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당사자 외에는 그 심정을 알 길이 없었다.
기타 :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 먹은건지, 아니면 사주에 무슨 마가 끼었을지도 모른다. 지독하게 운이 나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새 옷을 산 날에는 예기치 못한 비가 내려 흠뻑 젖어버리고, 좋아하는 빵은 항상 눈앞에서 품절이 되었다. 사고를 당해 입원을 한 것만으로도 아마 수십번은 넘었겠지. 덕분에 그의 몸은 성할 날이 없었다. 자잘한 상처라도 달고 있을 때는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나름대로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를 키워주신 아버지와 어머니는 따스하고 마음씨가 고운 분들이었지. 어쩌면 그의 사교적이고 다정한 성품도 부모님의 성격에서 유전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부모님의 밑이었으니 비뚤어지지 않고 올바르게 자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0살 차이가 나는 손 위 형제가 있었으며 이름은 ‘서 하얀’이다. 푸름과 똑같은 금안에 화려한 금색의 머리카락을 단발로 잘라 비대칭적으로 가르마를 탄 멋있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고인. 7년 전 여름 이맘때 즈음에 교통사고를 당해 커다란 중상을 당했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푸름의 말에 따르면 누구보다 강인했던 사람이라고 하던가.
온몸이 검은색으로 잘 빠진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고 있다. 이름은 복이.
그래도 어릴 때는 지금처럼 밝지만은 않았었다. 조용하고, 신경질적이기도 하며, 잘 울었다. 남들과는 달리 항상 불운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었지만, 누나의 사후에 크게 변화를 겪게 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시각 디자인 학과를 전공 중이다. 그림 실력이나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필체가 깔끔하고 예뻤다.
그에 반해 성적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지. 중위권에서도 맨 아래층에서 놀 정도니 말다했다. 그래도 학창 시절 동안 병원에서 산 세월을 따지고 보면 그 성적도 기적적인 정도이긴 했다.
천식을 앓고 있어 항상 흡입기를 지니고 있다. 미세먼지 철인 봄에는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봄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꽃이 예뻐서, 라고.
천식 외에도 이유없이 몸이 아플때가 많았다. 대학에 온 이후로 더 자주 골골거리고 있다. 다만 이건 전공 탓인듯하다.
항상 상처를 달고 사는 탓에 몸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있을 정도였다.
시간이 멈춘듯한 은발과도 같은 밝은 회색의 머리카락은 길게 길러 한쪽 어깨 앞으로 단정히 쓸어넘겼다. 곧 있으면 허리에 닿을 정도로 길지만 그래도 빗으로 빗으면 수월히 내려가는걸 보면 그녀의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풍성한 속눈썹에 약간 아래로 처진 동그란 눈매 아래에는 분홍색이 섞인듯이 부드러운 색깔의 적안이 있었다. 능력 사용 시에는 핏빛과도 같이 온전히 새빨간색이 되는 것 같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오른쪽 눈 아래에 있는 점 하나를 제외하면 그 밖에 피부는 점이나 잡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완전히 새하얀 피부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혈색이 돌아 건강하게 느껴졌다.
키는 164cm로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평균 정도의 키. 그러나 다리가 길어 그것보다는 살짝 커보였다. 옷차림은 시원하고 움직이기 편한 것을 선호했다. 아무래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루프에 대비하려는게 그 이유인 것 같다. 주로 입는 것은 어깨끈이 있는 하얀 오프숄더 블라우스에 허벅지를 드러내는 짧은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 그 때문에 작은 상처들이 팔과 다리 쪽에 있었다. 이것들은 루프로 사람을 구하려다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넘어져서 그렇다고 둘러대고 있다.
그 밖에도 인상깊은 그녀의 외모 특징이라고 한다면 색이 바랜 연한 빨간색의 머리띠와 작은 회중시계 펜던트 목걸이일까.
성격 : 꽃을 비추는 햇살처럼 밝고 따스하면서도 유쾌하다. 그러나 속으로는 생각이 많아 차분하고, 끊임없이 혼자 괴로워하고 분투한다.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태연하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지만.
또한 정의롭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잘못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잡으려는 적극성이 돋보인다. 그에 따라 때로는 흔들리고 눈물 흘리더라도 좌절과 절망에 쉽게 굴복하지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헤쳐나가려는 의지가 가득하다.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기 싫어 잘 기대지 않고 혼자서 일을 해결하려는 어른스러운 경향도 강해, 때로는 자기희생적인 면모도 종종 보이곤 한다. 이처럼 타인을 위하는 이타성과 공감 능력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눈치채주며, 사소한 것까지 잘 챙겨준다. 그 때문에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도 듣지만 그녀 역시도 사실이라고 생각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웃어넘긴다. 이렇게 타인의 일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아, 남들은 그녀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한다. 그녀가 지금까지 수많은 루프를 해오며 사람들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능력을 아무도 모를 정도로.
기타 : * 시간을 돌려 과거로 회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 스스로는 '리와인드'라고 부르는 이 능력은 당연하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비밀. 능력 발동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주변에 있던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해야하고 핑거스냅을 해야한다. 그러면 현기증 및 두통과 함께 눈을 감았다 뜨면 과거로 돌아와있는 식. 그녀는 성격상 타인을 구하려 노력한 무수한 경험으로 이 능력과 그 조건을 알고 있다. 하지만 능력을 너무 과하게 사용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알지 못한다.
* 생일은 7월 8일. 탄생화는 버드푸트. 꽃말은 '다시 만날 날까지.'
* 생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름을 싫어한다. 더위를 잘 타기 때문이라나. 좋아하는 계절 순은 가을-봄-겨울-여름 순.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름을 싫어할 이유가 이제 또 생길 것이다.
* 가족관계는 아빠, 엄마, 2살 차이나는 오빠(이름: 백 유안). 현재 군대에 가있어 잘 보지 못하는 오빠를 제외하고 다 같이 한 집에 모여 살고있다. 가족들 간 사이는 좋은 편.
* 어렸을 적에 자주 이사를 다녀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초등학교 1학년 이후로는 정착하여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성적도 좋고 본인도 노력하는 성실한 모범생이다.
*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오빠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오빠가 정글짐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해 사망했었다. 다행히 능력으로 다시 구하여 없던 일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 때의 충격으로 지금도 정글짐이나 높은 곳에는 몸을 덜덜 떨 정도로 가까이 가지 못한다. 이유를 물으면 그냥 왠지 무서워서 그렇다고 얼버무린다.
* 연한 빨강색 머리띠는 과거에 리와인드 능력을 처음으로 사용해서 구해준 사람이 고맙다는 뜻으로 선물해준 것. 누구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에게는 매우 의미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룬다. 원래는 선명한 빨간색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색이 바래졌다. 그 당시에는 사이즈가 커서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 맞는다.
* 회중시계 펜던트 목걸이는 혹시 스마트폰이 작동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 것. 늘 착용하고 다니며 루프 시간을 확인할 때 주로 사용한다.
* 현재 사회복지학과에 재학 중. 사회복지사가 되어 어려운 이웃들이나 아동들을 돕는 것이 꿈이다.
오전 9시 49분, 이제는 완연한 여름이라는 것인지 창문으로 새어드는 햇살 마저도 따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에어컨을 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기도 해, 결국 좁은 방 안은 습함과 열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럼에도 삐질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내고는 풀꽃을 엮는 것에 열중을 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정리한 잔 가지들이 어지러히 널려있었지.
"앗..."
줄기의 끝을 끈으로 묶고, 거친 촉감의 포장지로 싸매려던 와중 줄기에 잘못 스친 손가락에 가는 상처가 생겼다. 여름 풀이라 억세긴 어지간히 억센가보지. 얇게 베여 피부가 조금 벗겨진 정도였지만 곧 피가 망울망울 맺혀 나왔다. 익숙히 상처가 난 손가락을 입에 물고 피를 핥으면서 구급상자를 찾아낸다. 손가락을 빼내 상처 위에 다시 피가 맺히기 전에 밴드를 깔끔히 돌려 붙인다. 작은 상처를 보는 정도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감이 있어, 뒤집혀있던 휴대혼을 확인해보면 어느새 너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서둘러 예쁘게 포장된 꽃다발을 챙겨들고, 드라이 플라워가 있던 자리에 바꿔 거꾸로 걸어놓았다. 이제 열흘만 있으면 예쁜 색으로 말라 있겠지. 뿌듯한 듯 한차례 꽃다발이 걸린 벽을 바라보더니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바꿔 든 드라이 플라워는 가방 안에 가볍게 얹어 두었다.
약속 시간은 정해 두었지만 굳이 장소를 따로 말하지 않았다. 네가 살고 있는 집은 그의 바로 옆집이었으니까. 밖으로 나와 바로 너의 집으로 향한 그는 대문 옆에 걸린 초인종을 꾸욱 눌렀다. 경쾌한 초인종 소리를 들으면서 네가 나오길 기다렸다.
초여름을 지나, 여름이 점점 깊어지는 무렵. 창문 밖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는 선명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제 정말로 여름이구나. 잠시 창 밖 너머를 보던 시선을 돌려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빗으로 머리를 빗어내리던 손을 멈추었다. 무언가가 눈 앞에 아른거리는 듯한 느낌. 두 눈을 잠시 질끈 감았다.
후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듯 숨을 고르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 앞에 있는 거울 속에는 선명하지 않은 색깔의 적안이 다시 비쳐보였다. ...오늘과 내일만큼은 부디 무사히 지나가길. 슬픈 것인지, 두려운 것인지, 다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한 표정으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띵동. 타이밍 좋게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들려와 빗을 내려놓고 곧바로 침대 위에 있던 에코백을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가벼운 발걸음에는 방금 전까지의 기도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걱정거리따윈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나는 그 누구보다도 신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안녕, 푸름아~ 시간 딱 맞춰 왔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닫혀있던 대문을 열고, 활짝 웃는 얼굴로 너를 반갑게 맞이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늘 같이 했기 때문에 너와의 이런 만남은 일상이었지만. 하지만...
"...? 잠깐만, 푸름아. 손 좀 줘볼래?"
너에게서 뭔가 달라진 점을 깨달았다. 위화감까진 아니라고 하더라도, 평소와는 약간 다른듯한 그런 미묘한 차이. 나는 너의 손을 두손으로 살짝 잡고서는 너의 손가락들을 확인해보려 했다.
"...또 다친거야?"
역시나.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없었던 밴드가 새롭게 붙여져있었다. 밴드의 상태를 봐서는 방금 막 붙인 것 같긴 한데... 하아. 엄청 심한 것은 아닌 것 같아 가볍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못살아, 진짜~! 조금은 조심 좀 해달라구. 주인공이 다치면 어떡해? 당장 내일이 생일이면서!"
대문 앞에서 너를 기다리고 머지 않아 문이 열렸다. 곧 단정하게 빗어내린 은발과 부드러운 색채의 붉은 눈을 마주쳐, 그는 환히 웃어 보이며 너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반가운 인사, 아마 네가 품고 있을 고민을 제외한다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의 풍경이었으리라.
"좋은 아침- 오늘은 왠지 일찍 일어나져서 말이야. 덕분에 지각은 안해서 다행이네!"
항상 지각이 뻔한 시간에 일어나게 되어, 학교든 약속 장소든 꽁무니 빠지도록 급히 달려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으니, 너보다 먼저 찾아간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더
갑작스래 손을 달라고 하는 말에 얼떨떨히 눈을 깜박이더니, 손이 잡아 끌어지자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내어주었다.마디가 굵지 않은 손은 무슨 고생을 그리 했는지 자그마한 흉이 많이 보이는 편이었지. 그 중 검지에 붙인지 얼마 안되어 아직 새 것으로 보이는 반창고가 붙어있었으니, 조금 민망해져 볼을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들켜버렸네... 눈이 너무 좋은 거 아냐?"
평소보다 더 작은 상처라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너는 당해낼 수 없다며 멋쩍게 하하,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보통의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다치는 수준이었으니, 너무 걱정말라며 조심스래 매만지는 손길을 감싸주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뭘. 평소만큼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은 마."
내가 튼튼해서 그런지 별로 아프지도 않은 걸? 씨알도 안 먹힐 농을 던지고 네 손을 끌고 대문 밖을 향했다. 분명히 평소처럼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갈 속셈이었겠지. 불리해지겠다 싶으면 능구렁이 넘어가듯 흘려보내는 것이 그의 주 수법이었다.
대문 앞에서 너를 기다리고 머지 않아 문이 열렸다. 곧 단정하게 빗어내린 은발과 부드러운 색채의 붉은 눈을 마주치자 그는 환히 웃어 보이며 너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반가운 인사, 아마 네가 품고 있을 고민을 제외한다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침의 풍경이었으리라.
"좋은 아침- 오늘은 왠지 일찍 일어나져서 말이야. 덕분에 지각은 안해서 다행이네!"
항상 지각이 뻔한 시간에 일어나게 되어, 학교든 약속 장소든 꽁무니 빠지도록 급히 달려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으니 너보다 먼저 찾아간 것은 확실히 드문 일이긴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원체 활기가 넘치던 그는 평소보다 더 들떠보였다.
갑작스래 손을 달라고 하는 말에 얼떨떨히 눈을 깜박이더니, 손이 잡아 끌어지면 당황하면서도 순순히 내어주었다.마디가 굵지 않은 손은 무슨 고생을 그리 했는지 자그마한 흉이 많이 보이는 편이었다. 그 중 검지에 붙인지 얼마 안되어 아직 새 것으로 보이는 반창고가 붙어있었으니, 조금 민망해져 볼을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들켜버렸네... 눈이 너무 좋은 거 아냐?"
평소보다 더 작은 상처라 들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너는 당해낼 수 없다며 멋쩍게 하하,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보통의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다치는 수준인걸, 너무 걱정말라며 조심스래 매만지는 손길을 감싸주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닌데 뭘. 평소만큼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너무 걱정은 마."
내가 튼튼해서 그런지 별로 아프지도 않아. 씨알도 안 먹힐 농을 던지고 네 손을 끌고 대문 밖을 향했다. 분명히 평소처럼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어갈 속셈이었겠지. 불리해지겠다 싶으면 능구렁이 넘어가듯 흘려보내는 것이 그의 주 수법이었다.
너의 말을 듣고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의 말마따나 너의 몸 여기저기에 있던 흉은 시간의 흐름에 천천히 아물어갔고, 유일하게 깨끗한 손가락에 붙인 밴드만 빼면은 나름대로 건강해보일 정도였으니. 물론 그 밴드 역시도 시간이 천천히 흐르면 떨어질 것이다. ...시간이 제대로 흐를수 있다면.
"응, 그 예감이 잘 들어맞았으면 좋겠다! 푸름이, 너는 이제 좀 편해질 필요가 있어."
더불어서 행복해질 필요도. 덧붙이는 목소리에는 상냥하고 강한 힘이 들어가있었다. 눈웃음 짓는 모습은 장난기가 넘실거려 보였지만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잠시 멈춰서는 너의 발걸음에 나의 발걸음 역시도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길게 이어지는 네 침음을 들으며 여유로운 미소로 기다리자, 너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그런 너를 따라가며, 마주한 너의 금색 눈동자에 나는 다시 눈웃음으로 화답했다.
"난 당연히 좋지~! 그러고보면 서점에 가본지도 꽤 됐네."
잠시 과거를 되짚어보던 목소리에는 점차 설렘과 기대의 감정이 묻어나왔다. 중고등학생 때만 해도 책을 종종 읽었지만 대학생이 되니 더욱 바빠져서 도통 책을 읽을 시간이 없던 나였다. 그래서 오랜만에 책 구경을 할 생각에 들떠하다가, 나는 다시 너를 바라보았다.
행복해질 필요가 있다,라. 다정하고도 강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네 쪽을 얼떨떨한 표정으로 응시하던 그는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보았지. 지나가는 조각 구름 한점 없이 청명하기만한 하늘, 염천의 계절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 한참이나 풍경을 눈에 담던 그가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 걸." 그러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도 괜찮아. 거짓없는 마음에 보답을 하려는 듯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해 조금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슬슬 얼굴에 땀이 맺힐 정도라 에어컨 바람이 그리워졌다.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너를 기다려주는 것도 잊지 않아 잠깐잠깐 발을 멈추었다. 그러고보면 너는 책을 좋아했었지, 조금 전 가라앉아 있던 기운은 사라지고 들떠있는 너의 모습을 미소를 띄운 얼굴로 지켜보았다. 어느새 동네 초입에 있던 서점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도 서점은 제법 오랜만이네, 대학교에 들어오면 책을 많이 읽을 줄 알았었는데-"
은근히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안으로 들어오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맺힌 땀을 차게 식혀주었다. 원래 목적도 잊어버리도 한참 자리에 멈춰 서서 서늘함을 만끽하더니 너의 물음에 그제야 돌아보며 대답을 해주었다.
"아니, 내 책은 아니고... 누구한테 선물할 책을 좀 사고 싶었거든.
선물의 대상은 자연스레 얼버무려진 채였다. 금빛 눈도 쭈뻣거리면서 시선이 옆으로 향하고 있었지. 그래, 그는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죄 표정으로 나타나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 열흘 후, 너의 생일이 다가온다니 선물을 할 대상은 뻔하기 짝이 없었다. 그 역시 제 행동이 어색하다는 것을 알아챈 탓이었는지 우물거리는 투로 너에게 물었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동자에 푸른 하늘과 그 아래에 미소짓는 네가 들어왔다.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청명한 그 모습에, 네가 저 하늘 속으로 녹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스며들었다. 그 불안한 두려움을 자각한 그 순간, 네가 조금 더 빨리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아."
그제서야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나도 모르게 한 손을 뻗고 너를 뒤따라 걸음을 빨리 했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 끝은 이 순간, 잠시 모든 것이 불안하게 느껴졌다.
일상을 담는 너의 자조적인 말에 애써 다시 집중하려 장난스레 그러게,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어느새 도착하게 된 서점 안으로 들어섰다. 내리쬐는 햇빛이 사라지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자, 그제서야 어지럽고 아득해졌던 정신이 다시 돌아온 느낌이었다. 잠시 눈을 깜빡이며 시야를 제대로 맞추다가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누구한테 선물할 책?"
그 대상은 밝히지 않았지만 너의 얼굴은 그 어떤 말보다도 확실하게 대답해주고 있었다. 잠시 우물거리는 너를 보다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떤 책이든 괜찮지 않을까? 나라면 푸름이, 네가 선물해준다는 그 마음 자체가 기쁠 것 같은데~ 날 생각해줬다는 거잖아? 만약 나라면, 너의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울거야."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두어 너의 귀엽고 어색한 변명을 자연스럽게 모르는 척 넘어갔다. 너의 야심찬 계획을 파토내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베스트셀러들이 쭉 나열되어있는 책장 쪽으로 걸어갔다. 잠시 허리를 숙이자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나는 책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너를 돌아보며 너를 불렀다.
"그래도 가장 무난한 건 역시 이런 베스트셀러 쪽일까?"
나는 웃으면서 책장 쪽을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는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에 대한 소설이 있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약간 흠칫해버렸다.
뒤늦게 창백해진 네 안색을 눈치채며, 천천히 다가가 허릴 숙이고 너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직 초여름이긴 했지만 오늘따라 햇살이 유독 강했으니 더위를 먹은 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던 건지. 그래봤자 건강하기로는 네가 한발 더 앞서있었으니, 그가 걱정을 할 입장은 아니긴 했다. …다행히도 금새 평소대로 돌아온 너를 보고 안도한 듯이 숨을 내뱉었다. 다음에는 좀 천천히 걸을게, 너를 배려해 주는 말을 건냈지만, 불길함에 작게 떨리던 손끝을 눈치챌 만큼 주의 깊게 살피지는 못했다.
너무 티를 낸걸까, 자신이 말하긴 했지만 미심쩍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네 눈치를 살피다가 모르는 척, 구멍 투성이 변명을 받아주니 순진하게도 그의 얼굴이 밝게 폈다. 역시 그러겠지? 네 말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래도, 음…. 이런 건 역시 더 잘 아는 사람한테 물어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나, 은근 보는 눈이 없으니까."
하기사 그는 책을 주변에 가까이 두는 편은 아니었다. 책보다는 그림을 사랑했기에 교과서에는 낙서가 한가득이었으며, 심지어 오랜 시간 머물러 지루할 수밖에 없는 병실에서조차 책을 읽는 일은 드물었었다. 흰 건 종이고 까만 것을 활자일 뿐이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다소 엉뚱한 코너를 살피러 가려던 그가 네 부름에 다시 되돌아왔다.
"하긴, 베스트 셀러면 실패할 일은 거의 없긴 하겠지-. 어디보자…"
네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을 따라 베스트 셀러가 늘어서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제목이 적혀있는 책등을 손으로 쓸며 고르는 듯 싶더니 한 책을 골라서 집어들었다. 방금 전 네가 무의식적으로 골랐던 책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책, 꽤 유명하던데. 그러니까… 시간을 돌리는 사람이 나오는 내용이었었나?"
그리고 우연하게도 그는 이 책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직접 책을 읽었을 리는 없으니 아마 인터넷 리뷰글을 읽었거나 주변인들에게서 주워 들었겠지. 비닐 포장이 되어있어 내용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책을 뒤집어 보면 대략적인 줄거리가 나와 있어, 천천히 읽어내렸다.
"그나저나 부러운 능력이네-. 마음에 들지 않는 미래는 수정할 수 있고,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지 않아도 될테니까..."
작게 중얼거린 후에도 그의 시선이 한참이나 책에 머물러 있었다. 분명히 한번도 읽은 적이 없는 소설일 텐데도, 등장인물에게 왠지 모를 정감이 들었던 탓이었다. 일단 다른 책을 살펴보긴 해야 하니 그 자리에 다시 내려놓긴 했지만, 책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알았는데 0레스에 걸어두었던 영상이 저작권 때문에 내려갔었네(...) 곡을 불러주신 분이 니코동에서 감상해달라 말했으니 일단 여기다 링크를 걸어둘게! 【再投稿】「いのちの名前」を歌ってみた。【ダズビー】 http://nico.ms/sm28347494 via @NicoBox_En
그리고 위에 곡은 뭔가 듣다보면 푸름이랑 유은이가 생각나서(?) 같이 올려봐! 여름여름한 분위기가 넘 좋은 것 같어...ㅠㅠㅠㅠ 현실 여름은 극혐이지만!
네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푸른 하늘과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점점 흐려지던 네가, 다시 선명하게 나타났다. 눈이 멀 듯이 아득해진 시야를 애써 다잡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으응, 아니야. 잠깐 더위를 먹었나봐."
그리고 너의 배려 섞인 말에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자연스럽게 옆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는 나의 손은 파르르 떨리는 두려움을 감추는 데 능숙했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다르게 너는 감정이 솔직하게 얼굴에 시시각각 다 드러났고,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좋았다. 모르는 척 너의 말을 받아주자 밝게 펴진 너의 얼굴을 보니, 나 역시 자연스럽게 웃음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신 푸름이, 너는 미적 감각이 뛰어나잖아? 사람마다 잘 하는 게 다 다를 뿐인걸. 그러니까 너무 너 자신을 낮추지마~"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알고 있던 나였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칭찬과 함께 나는 너를 두둔하며 눈웃음 지었다. 그래도 네가 도움을 요청했으니 성심성의껏 너를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엉뚱한 곳으로 가려던 너를 부르고, 베스트셀러 중 하나를 가리켰다. 물론 그 책을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는 살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하지만 이윽고 네가 다시 그 책을 골라들자, 나는 다시 한번 더 흠칫했다. 물론 너에게 티내지 않으려 겉으로는 애써 태연히, 응. 그 내용이 맞아.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책을 살펴보는 너를 기다리며, 그리고 너의 작은 중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순간 왠지 모르게 숨이 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러운 능력, 이라. 그럴지도 몰랐다. 부러운 능력. 부러운 능력. 큰 힘엔,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고 하더라도.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웃으며 넘어갔다. 그 말의 무게는 나만이 알고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랬으면, 했다. 만약 네가 알게 된다면 분명히 나를 걱정하겠지. ...네가 힘들어하는 건 싫어. 푸름아.
이윽고 한참동안 책을 살피다가 다시 내려놓는 너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 너의 이름을 부르며 손가락으로 그 책을 가리켰다.
"그 책이 마음에 든다면 그 책을 골라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책도 좀 더 살펴볼래? 나는 눈매를 휘어 웃으며 너에게 물었다. 나는 어느 쪽이든 너의 의견을 존중해줄 것이었다. 너의 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위에 올린 건 학창시절에 여름방학 중 보충수업 날에는 푸름이랑 유은이랑 둘이 저런 분위기 속에서 웃으며 함께 대화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서 만들어본 픽크루야!><
그리고 마찬가지로 음악 선물도 하나 더! 사실 더 좋은 노래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잘 못 찾겠더라구...ㅠㅠㅠㅠ 그래서 나도 여름여름한 분위기이자 왠지 유은이가 푸름이에게 하는 말(?)같기도 한 노래를 골랐어! 다시 한번 푸름이 생일 축하하구 푸름주에게도 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