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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홉꼬리 보호소. 많은 데미휴먼들이 집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아홉꼬리 보호소의 링크에 대한 조건은 까다롭다. 링크를 원하는 이니시에이터는 이 곳의 보호소장인 미호와 직접 면담해, 스스로의 이니시에이터로서의 자질과 사람으로서의 인격 등, 미호의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유페미아 역시 링크 대상을 구하기 위해 미호와의 면담을 원해 찾아왔지만, 오늘은 미호 소장의 면담 스케쥴이 꽉 차 있고, 내일도, 모레도 그렇다는 모양이다. 유페미아는 하는 수 없이 적당한 면담 날짜를 예약하고, 보호소를 나서려는 길이었는데...
미니 미끄럼틀, 볼 풀장, 각종 장난감과 그림책, 스케치북 등이 마련되어있는 어린 데미휴먼들을 위한 놀이공간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유페미아는 놀이공간의 문을 살짝 열고, 그 틈새로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직접 들어가지 않는 것은, 외부인인 자신이 이런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리코 군! 그동안 잘 지냈나?"
의례적인 인사같이 들리지만, 지난 경매장 사건은 어린 아이인 리코에게는 충격적이었을 수도 있었으니, 그 안부가 걱정되는 것은 정말로 진심이다.
//리코가 자꾸 아홉꼬리 보호소 밖으로 나가 불효자(?)가 되는게 걱정되신다길래 이번 일상에서는 효자 되시라구(?) 좀 억지를 써서라도 아홉꼬리 보호소 안으로 잡았습니다!
그림책, 볼 풀장, 미끄럼틀… 많은 장난감이 있는 보호소 안 놀이공간에서 혼자 그림책 하나를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는다기 보다는 삽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말이 어울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가만히 책을 앞에 두고 웅크린 식빵자세로 책을 읽던 리코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보았다. 익숙한 목소리지만 보호소 안에서는 들은 적 없었던, 유페미아의 목소리였다.
“…에피?”
문을 살짝 열고 밖에서 자신을 부른 에피에게 리코는 천천히 다가갔다. 보호소 안에서 만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걸어가던 도중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놀이공간 안에 있던 아이들이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수의 시선이 쏠리는 건 그리 달갑지 않다고 리코는 느꼈다. 그래서 방을 나와서 문을 닫고, 에피의 앞에 서서 잘 지냈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건넸다.
“네, 잘 있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잘못했다고 못했었다, 문득 떠올린 리코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마, 말 안 들어서 죄송해요… 가만히 안 있고 뛰쳐나가서… 잘못했어요…”
경매장에서 여우 데미휴먼을 구할 때, 옆에 꼭 붙어 있으라고 한 말을 어기고 뛰쳐나갔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말을 듣지 않았으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혼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맞을 짓을 했으니 이번에는 에피라도 자신을 때릴 것이다, 그렇게 각오한 리코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리코를 부르니, 방 안에 있던 시선이 모두 리코와 유페미아 자신에게로 쏠렸다. 역시나 외부인의 출입은 규칙 위반인 것일까, 생각하고 있던 찰나, 문을 닫고 나온 리코가 무릎을 꿇고 유페미아에게 용서를 구한다.
"아니, 왜 갑자기 무릎을 꿇는 겐가? 잘못했다는 것은 또 뭐고."
이크, 당황한 바람에 목소리가 조금 크게 나왔다. 가뜩이나 겁 먹은 아이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언제 가만히 있으라고 그랬다고 이러는가..."
가만히 있는 것보단 뛰어 다니면서 노는게 뇌발달에 좋다는 말은 아이에게 했어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한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아. 그 때 빼고는. 유페미아의 머릿속에 지난 번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들이 스쳐지나간다. 그 때 분명히, 유페미아는 리코에게 위험할 지도 모르니 자신에게 붙어 있으라고 했었다. 리코는 여우 데미휴먼을 구하기 위하여 그 말을 무시하고 강당 위로 올라갔고 말이다. 그 이야기일까.
커다란 목소리, 항상 맞기 전에 들어왔던 큰 소리다. 말의 내용보다도 소리의 크기에 놀라 리코는 몸을 움찔 떨었다. 곧 올 거야, 곧, 곧… 숨을 죽이고 곧 다가올 거라 예상하고 있는 큰 충격에, 격통에 대비하고 있던 리코였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충격이나 고통은커녕, 당황한 기색만이 앞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지난 번 여우 아이 일 때문에 그러냐는 말에 리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잘못했어요…”
잘못한 내용을 확인한 다음에 하려고 했던 거구나. 제법 시간이 지난 일이었으니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지레짐작한 리코는 또 다시 가만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유페미아의 목소리에 아이의 몸이 움찔 떨린다. 조금은 목소리가 크긴 했지만 그렇게 놀랄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유페미아는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말지만 아이를 야생동물을 관찰하는 생물학자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온 몸에 힘이 들어가 뻣뻣해져 있는 자세. 동그랗게 확장된 동공. 곤두서 있는 팔과 다리의 털. 다리 사이로 착 내려가 있는 꼬리. 고양잇과 생물이라면... 누가 뭐래도 겁이 질려 있는 모양이다. 마치, 큰 폭력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마치, 큰 폭력을 예상하고 있는 사람처럼.
이런, 유페미아는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는 것(어디까지나 유페미아의 추측일 뿐이지만 유페미아의 머릿속에서 이것은 이미 사실로 궅어진 지 오래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이런 작은 구실로도 아이를 때렸던 것일까.
"리코 군? 리코 군, 날 보게나."
유페미아는 자신도 무릎을 꿇고 상체를 최대한 낮춰 무릎을 꿇고 있는 리코와 눈을 마주치고는, 겁에 질린 야생 동물을 달래듯이 부드럽게, 어르듯이 속삭였다.
"난 리코 군을 해하지 않을 걸세. 맹세하지. 전에도 맹세한 것 같지만 뭐 어떤가. 필요하다면 다시 맹세하겠네."
"지난 번에 가만히 있으라고 그랬던 건, 상황히 위험하니 혹여나 리코 군이 다칠까 봐 그랬던 거라네. 결국엔 리코 군은 무사했으니, 리코 군이 사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앞에 있는 상대, 에피가 자세를 숙이자 리코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각오를 하고 이를 악물고 있던 리코는 자신이 예상했던 무서운 일이 아닌, 조심스럽게 일으키려고 하는 손길에 어리둥절해졌다. 이번 일은 확실히 자신이 잘못했던 것 같은데, 잘못한 게 맞는 것 같은데도 때리지 않았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그럼… 혼내지 않아요…?”
유페미아의 손길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리코는 조심스럽게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뒤로 착 붙은 귀가 때때로 움찔거렸다. 에피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번 일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리코는 정말로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화를 내는 걸로 보이진 않았다.
보통은 아이가 위험한 일을 했다면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더라도, 다음에는 그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도록 혼을 내야 하는 게 책임감 있는 어른의 행동이지만, 유페미아는 그렇게 책임감 있는 인물이 못 되었다. 그렇게 따지자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순수 크토니안을 죽이지 않고 마취해, 불법적으로 '벽'을 넘어 방생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니까, 다른 사람이 위험한 일을 했더라도 자신이 혼낼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상대가 어린아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건 어린 아이를 잘 다루지 못해서, 그냥 어린아이들을 키 작은 어른처럼 대하기로 마음 먹은 유페미아의 사고 방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말을 잘 듣겠다니 고맙네. 그래도, 나보다는 좀 더 책임감 있는 어른의 말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네! 보호소의 미호 소장처럼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