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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파묻힌 눈사람을 보는 건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눈 속에 눈으로 만들어진 눈사람이 있을 거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싶었습니다. 그 애는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눈사람을 꺼내어 눈 위로 올려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올려다 둔다고 해서 다시 눈 밑으로 파묻히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그 애는 작은 발을 바삐 움직여 나무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나무 밑에 떨어진 나뭇잎을 몇 개 주워들어 곱게 엮어 눈사람 위에 우산처럼 씌워주었습니다.
그 애는 나뭇잎 우산을 쓴 작은 눈사람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가 그 옆에 철푸덕, 그 작은 몸을 뉘여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캄캄한 어둠이 가리워진 하늘에 더 없이 총총이며 빛나는 별빛들이 무수히 반짝여댔습니다. 그 애는 금방이라도 저 별에 빨려 들어갈 듯 미동도 없이 별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떨어지는 별똥별에 재빨리 파아란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애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그 애만이 알 일이었습니다. 그 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눈 위에 놓아둔 상자와 눈 속에 파묻은 참치를 붙잡곤 산등성이를 내려왔습니다. 이 참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미리내의 중앙 광장에 잠깐 들를 참이었습니다.
그 애는 눈토끼 수인 신이 귀엽게도 깡충깡충 뛰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애는 갑작스럽게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자 깜짝 놀라 도망가려고 했으나 종이쪽지를 발견하는 게 먼저였습니다.
그 애는 앙증맞게 그려진 썰매에 그 파란 눈동자를 고정했습니다. 그 애는 엉겁결에 종이쪽지를 받아들고 눈토끼 수인 신에게 뒤늦게 꾸벅, 인사를 한 후 작은 발을 움직여 총총, 눈썰매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애는 어쩐지 보물찾기보다 눈썰매를 굉장히 타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안절부절,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던 그 애는 썰매를 끌고 눈썰매장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였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눈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감각은 정말이지 스릴 만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막 내려온 그 순간, 무언가 보였습니다.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던 소아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경사로에 살짝 걸려있는 무언가였다. 그것을 꺼내보니 그것은 무언가 내용물이 들어있는 비닐 봉지였다. 그 안을 살펴보니 하얀색 오르골이 들어있었다. 오르골를 돌리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멜로디가 들려왔고 그 위에는 하얀 눈 결정체 모양의 장신구가 윗부분에 달려있었고 표면에는 하얀 눈 모양의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비닐봉지 안에는 가온이 쓴 것으로 보이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미리내의 보물. 화이트 오르골. 오르골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거나 할 때 들으면 이것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하얀색 오르골. 그 애가 살아온 시간 동안 오르골이라는 물건을 본 기억은 없었습니다. 거기다 눈처럼 새하얀 오르골이라니, 그 애가 한순간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그 애는 가온님이 쓴 쪽지를 조심히 살펴보다 오르골을 열었다가, 닫았습니다. 맑고 조용한 음악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자리에서 못 박혀 일어나지 못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 애는 한 손으론 참치를, 한 손으론 오르골을 담은 비닐봉지를, 그 안에 현무 조각상과 네 잎 클로버가 담긴 상자를 넣고 잠깐 고민했습니다. 이 커다란 참치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걱정도 잠시, 그 애는 저번에 딸기 뷔페로 초대해 주었던 가리의 요리사, 샤베르님을 만나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요리사라면, 참치 회도 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애는 신통술로 가리의 광장에 순식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인지, 그 애의 파란 눈동자가 고정되었습니다.
커다란 참치가 먹기 좋게 회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 애는 푸짐한 참치 회를 눈앞에 두고 파란 눈을 반짝반짝 빛냈습니다. 그 애는 감격에 겨워 샤베르님과 참치 회를 몇 번이고 바라보다가 허둥지둥 샤베르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 감사, 합니다...!"
그리고 회가 된 참치를 몇 번 보다가 샤베르님께도 조금이지만 나누어 드렸습니다. 이제 남은 참치 회도 나누어 드리러 가야겠습니다. 가리에 있으니까 먼저 백호님께 가는 게 순서에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 애는 작은 발로 총총 걸으며 백호님께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로 무언가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