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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리의 명소, 무지개가 피어나는 폭포에서 일어난 일은 리스가 텔레파시로 은호에게 알렸기에 은호와 누리, 그리고 백호도 사태를 파악하고 폭포까지 찾아왔다. 일단 간단하게 일어난 일을 들은 은호는 이상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상하도다. 이 라온하제에는 남을 해치고자는 마음이 있는 이는 들어오지 못하느니라. 그것은 신이건 다른 무엇이건 상관이 없느니라. 그런데..어찌하여 그런 이들이 이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이더냐."
"결계에 구멍이 뚫린 곳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엄마?"
"그럴리가 없느니라. 그럼 내가 모를 턱이 없고, 더 나아가 가온이가 모를 턱이 없느니라."
그것은 틀림없이 맞는 말이엇다. 결계를 만드는 수정과 연결이 되어있는 가온은 물론이고, 결계를 직접 만든 은호가 결계에 이상이 생겼다면 모를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가온이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은 어떻게 결계 안으로 들어온 것일까. 원래라면 결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면 소멸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마루....나는..."
"아아. 가온아. 말 들리니? 여보세요? 하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가온을 바라보면서 백호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가온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 일이 상당히 충격이었던 것일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은호는 한숨을 내쉬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아무튼 다들 수고가 많았느니라. 다치지 않아서 큰 다행이 아닐 수가 없구나. 일단 가온이는 다친 것 같지만...누군가 치료를 해준 모양이구나. 이 또한 정말로 다행이로다."
다행히 텔레파시 신통력이 제대로 통했는지 은호 님에 이어 누리 님과 백호 님께서도 폭포까지 찾아와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점들. '신' 님들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그저 아직도 두려움에 뚝, 뚝,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훌쩍이며 흰 겉옷의 소매로 닦았다. ...그런 일은, 다시는 겪지 않을 거라고 믿었었는데...
역시 '죽음'은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라온하제의 결계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그런 생각으로 머릿속도, 마음속도 온통 뒤숭숭했다. 그렇지만... 역시 지금 가장 충격을 받으신 건 가온 님이시겠지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가온 님을 잠시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족이 나를 공격하고 증오하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튼 이어지는 은호 님의 말씀. 다행이라는 그 말씀에 아무 생각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지는 몰라도 애증이라도 된 거 아니야?" 아니면 그냥 묻고만 싶었는데 어딘가 삐끗해서 악의나 해치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원망으로 치달았다거나. 대수롭잖게 말하면서 개인적으론 청..청.. 아 그래 파랭이가 어딘가 감정을 좀 툭 건드렸다는 거가 가능성 높다고 생각해- 라고 말하려 합니다.
"가온아. 그래서 마주하면 죽어줄 거야?" 죽길 원하는 게 맞는지부터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며 눈을 깜박깜박하는 모양입니다.
"응 다행이야. 본의 아니게 사정을 알아버리기는 했지만." 고개를 끄덕입니다. 가족에게 공격이라.. 글쎄. 당한 적 있을까?
눈물을 훌쩍이는 리스를 바라보던 누리는 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였다. 한편 그와는 별개로 은호는 다른 두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뒤이어 리스의 말에도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은호는 침묵을 지켰다.
한편, 가온은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말을 한 아사를 바라보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만약, 마루가..그리고 저의 무리들이 저를 원망하고 제가 죽기를 원한다면..그래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원한을 씻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슨 바보같은 소릴 하는 거야! 가온아!! 그런 약한 마음 먹으라고 너에게 자리 물려준 거 아니거든?!"
"하지만...."
백호의 질책에도 가온은 정말로 죄책감이 큰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호 역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생각이 끝난 것일까. 아니면 일단 입을 연 것일까.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녀는 모두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어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손에는 투명한 구체가 들려져있었다. 이어 그녀는 힘을 준 후에 그것을 터트려버리면서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좋을지는 간단하지 않겠느냐. ...그 늑대들을 일제히 토벌하겠느니라. ...영원히 그 혼 조각도 남지 않도록 없애버리겠느니라. 내 땅에 들어와 내 보좌를 건드린 죄는 매우 크니 내 직접 심판하리라. 아이온. 너의 말에 일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느니라. 어느 쪽이건 없애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니라."
"...아..안됩니다! 은호님..!!"
그와 동시에 가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은호를 바라보면서 다급한 목소리로 정말로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것은 절대로 안된다는 마음이 담긴 필사적인 목소리였다.
"안됩니다! 차라리..제가...제가..한 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마루와 저의 무리는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너의 말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제발...한번만...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그 애들이 소멸한다는 것은... 그러니까...그러니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가온의 목소리는 보통 다급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절실한 마음이 가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령은 울고 있는 리스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수건 한장을 건네어 주었다. 흰색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손수건에는 한쪽 귀퉁이에 한자로 방울 령 자가 새겨져 있기만 했다. 령은 손수건을 건내주고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들었다. 자책하는 가온, 리스를 달래주는 누리, 그들을 토벌하겠다는 은호... 령은 잠시 눈을 깜박였다 다시 떴다. 그리고 앞으로 한발짝 나가 가온을 바라보았다. 령의 표정이 단호했다.
"가온 씨. 가온 씨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일은 가온 씨의 잘못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가온 씨 대신 무리의 알파늑대가 된 마루인지 뭔지 하는 늑대가 제대로 통솔만 했어도 무리의 늑대들이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되살아나고 청호의 말에 이용당해 형이 사는 곳까지 와서 닥치는대로 해치려 하다니 이 무슨 민폐입니까? 그리고 가온 씨, 우리는 신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죽은 자는 원래대로 흙 속에 돌아가야 합니다. 게다가 그들이 또 다시 여기로 온다면 가온 씨만 피해를 입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타겟은 가온 씨였지만 나아가 비나리 전체를 해칠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것을 그대로 보아야만 합니까? 전 그 꼴 못 봅니다. 내가 사는 라온하제는 내 손으로 지켜야겠습니다. 가온 씨의 동생이라고 해서 제가 봐줄 의무는 없습니다. 가온 씨는 대화로 풀자고 했지만 상대는 지금 우리의 말을 들을 준비조차 안됐습니다. 저는 대화를 하지 않겠습니다."
령은 단호히 말을 하였다. 발음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가온을 갈기갈기 찢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정말로 감사해요, 누리 님, 령... 저, 또다시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작게 훌쩍이면서도 의외로 누리 님과 령의 손수건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다정한 둘의 마음 덕분에 눈물이 천천히 그쳐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거운 토론. 가온 님께서는 이미 죄책감에 온 마음이 물든 것인지 아예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고, 그 대답에 다시금 조금 가라앉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죽음'. 그것도 '신' 님의 죽음. 가족들의 손에 의하여, 그들의 바람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 ...슬펐다. 너무나도 공감이 갔기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왔다. ...어째서... 어째서......
이어서 은호 님께서 천천히 입을 열어 말씀을 하시기 시작했다. 은호 님의 손에 의하여 부숴져버린 투명한 구체. 그리고 들려오는 그 말씀에, 가온 님처럼 자신 역시도 깜짝 놀라 두 눈동자를 크게 뜬 채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다급하고 필사적인 가온 님의 목소리. 그러나 은호 님께서는 이미 단단히 결심을 하신 듯 했고, 그러한 은호 님의 모습에 자신 역시도 덩달아 다급하게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은호 님을 올려다보았다.
"은호 님...! 저도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제발, 제발, 늑대 씨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부디 가온 님께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저도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은호 님! 그 분들은 가온 님의 가족 분들이신걸요...! 어, 어떻게든... 저도 어떻게든 라온하제를 지키고 막을테니까... 제발... 가족들을 죽이지 말아주세요..."
결국 다시 눈물이 뚝,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울먹이면서 말해보지만, 과연 닿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은호 님의 결정과 령의 단호한 분노 역시도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었으니. ...하, 하지만... 가족들은... 가족들은... ...라온하제도, 늑대들도, 그 누구도 피투성이가 되지 않기를 바랬다. ...피투성이는 자신으로도 충분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