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 스레 주소 - http://bbs.tunaground.net/trace.php/situplay/1533308414/recent ☆위키 주소 -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B6%95%EB%B3%B5%EC%9D%98%20%EB%95%85%2C%20%EB%9D%BC%EC%98%A8%ED%95%98%EC%A0%9C ☆웹박수 주소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ur2qMIrSuBL0kmH3mNgfgEiqH7KGsgRP70XXCRXFEZlrXbg/viewform ☆축복의 땅, 라온하제를 즐기기 위한 아주 간단한 규칙 - http://threadiki.80port.net/wiki/wiki.php/%EC%B6%95%EB%B3%B5%EC%9D%98%20%EB%95%85%2C%20%EB%9D%BC%EC%98%A8%ED%95%98%EC%A0%9C#s-4 ☆라온하제 공용 게시판 - http://linoit.com/users/ho3fox/canvases/Houen3
"......저는... 령 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을 드릴 수는 없겠지만... 대신 령 님께 다른 '사랑'과 '행복'을 서로 주고받는 '친구'... 가 되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리스. 당신이 친구를 원한다면 전 기꺼이 되어드릴 수 있어요. 앞으로도 '친구'로서 잘 부탁합니다."
신과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두 손으로 드니 그 무게가 제법 있었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이렇게 신과를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챙기지만, 그 무게는 몇 년이 지나도 통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길러도 무거운 것은 무거운 거니까. 하나 하나는 가벼울지 몰라도 그것들이 모이면 그 무게가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떨어뜨리지 않게 조심, 조심 균형을 잡으면서 나는 내 신통술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내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하다가 양 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보이는 것은 숲의 모습이었다. 그 숲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묘한 느낌이 마음 속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그것은 마치 꽃이 피듯, 살며시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도 매년 느끼는 것이었다.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가 나는 천천히 그 공간 너머로 다가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딱히 이 공간을 닫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저쪽에 있다가 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열어둔 후에 볼일을 마치고 다시 열어둔 공간을 이용해서 여기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
조용한 침묵이 묘하게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공간, 그 너머에 있는 숲을 향해서...
여기는 신과 과수원. 오랜만에 찾아오는 곳이었다. 저번에 동화학원에서 마법사 인간들이 손님으로 찾아왔을 때, 수많은 신과들을 선물로 보내는 모습을 보고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혹시 지금이나마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번 찾아와본 것이었다.
"...저기... 가온 님...? 혹시 계시나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신과 과수원에 들어와서 가온 님을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혹시 안 계시는 걸까요? 아니면 정신 없이 일하시느라 바쁘신 걸까요? 어쩌면 후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다시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보기 시작했다.
"......?"
그렇게 얼마나 안으로 들어가보았을까. 문득 저 앞에서 어딘가 일그러진 듯한 공간이 보이자 잠시 그 자리에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바로 저 너머에 숲이 보이는 일그러진 구멍 같은 것. 마치 공간이 열린듯한 그 이질적인 모습에 잠시 머뭇머뭇거렸다. ...혹시, 이거...?
어쩌면 가온 님께서 저 안에 계신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 반, 숲이 궁금한 호기심 반으로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천천히 그 안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그 안에 들어가보았다. 가온 님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보며.
공간 너머에 사는 숲은 은호님이 은혜를 내린 마을, 호은골의 북쪽에 위치한 숲 깊숙한 곳이다. 길이 험하고 산짐승이 많아 인간들이 잘 오지 않는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 이 시기에 꼭 가야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간을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것은 흙을 쌓아 만든 커다란 덩어리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인간들이 만드는 '무덤'과도 같은 형태였다. 그 위에는 겨울 추위에 노랗게 변해버린 풀들이 가득 자라있었다.
그 무덤 위에 내가 가지고 온 신과 바구니를 내려놓았고 그 안에서 신과를 꺼내 그 덩어리의 주변에 천천히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인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딘가에서 온 동물도 아니었다. 아무런 소리도, 인기척도 없었는데 갑자기 느껴지는 무언가. 그리고 뒤이어서 들려오는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리스 씨?"
이 목소리는 리스 씨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나는 뒤를 돌아보면서, 정확히는 내가 열어놓은 공간 쪽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보았다.
"지금 그 곳에 계시는 것은 리스 씨입니까?"
어째서 그녀가 여기에?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는 공간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목소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리스 씨의 목소리 이외에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는 상태. 공간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조금 왜곡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나는 그 공간 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나오는 그 순간까지...
신과 과수원에 갑자기 생긴 이상한 일그러짐. 그 이질적인 모습에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야, 예전에도 라온하제에 갑자기 위험이 찾아오는 때가 있었으니. 이번에도 혹시나 그 전 신호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숲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한 낯선 풍경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자신이 살고있는 곳도 숲이었으니.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가온 님을 불러보니 갑자기 들려오는 반응. 시각을 대신하여 청각이 발달한 자신이었기에, 가온 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여 대답했다.
"...네...! 저 맞아요...! 가온 님, 여기 계신 건가요...?"
그리고는 홍학 특유의 모습으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목소리의 방향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공간 안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들어가보니, 저 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가온 님의 모습. 이쪽을 보고있는 듯한 그 모습에, 안심한 듯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조금 발걸음을 재촉하여 가온 님 쪽으로 걸어갔다.
"...무사하셨군요, 가온 님. 정말 다행이예요. 과수원에서 가온 님을 불러보았는데 안 계셔서..."
안도의 미소를 희미하게 보이다가 문득 한 시야 속에 들어온, 낯선 동그랗고 커다란 흙덩어리의 모습. 주변에 신과까지 있는, 그 흙덩어리를 잠시 물끄러미,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이건..."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왠지, 이 흙덩어리 씨... 낯설지 않은 느낌이예요. ...뭘까요...?
곧 열려있는 공간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역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리스 씨인 모양이었다. 자신이 맞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 이름을 부르며 여기에 있냐고 묻는 그 말과 함께, 공간 너머에서 리스 씨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하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인 것인지...?
"무사라니. 무슨 의미입니까? 아. 저 공간 말입니까?! 하하하! 그건 제가 열어둔 겁니다! 이 시기에는 꼭 여기로 와야해서. 어차피 금방 갔다오기에, 열어둔 상태입니다! 어차피 이곳은 인간들이 오지 않으니까요! 인간들이 오기에는 길도 험하고, 오기도 힘든 곳이라서... 설사 인간이 온다고 하더라도 빠르게 그 기억을 지우면 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많이 놀란 것 같기에, 안심해도 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손에 든 신과를 다시 흙덩어리 주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구니에서 또 다른 신과를 꺼내고 다시 주변에 내려놓는 것을 반복하면서 난 조용히 입을 열어 리스 씨에게 이야기했다.
"보다시피, 이 덩어리 주변에 신과를 내려놓는 중입니다! 이곳은 150년 전, 그러니까...제가 신이 되기 전, 평범한 늑대로서 살고 있던 시기입니다. 그 당시에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숲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이끌던... 아. 늑대는 무리 생활을 합니다! 대장 늑대가 다른 늑대를 이끌고 생활을 합니다! 아무튼, 그 당시에 제가 이끌고 있던 이들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꽤 오래전에 명을 다해서 다 멀리멀리 떠나버렸습니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말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제가 만들어 둔 곳입니다."
뒤이어 나는 바구니에서 마지막 신과를 꺼낸 후에 그것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살며시 고개를 숙여 내가 만든 그 무덤을 바라보다가 다시 주변에 신과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정말로 조심스럽게, 신과가 깨지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쓰면서 천천히...
-나이는 한 20대 중후반~30대 초반 정도 될 듯. -배우로서 경력이 꽤 긴 편. 미성년자 때 아역으로 데뷔해서 그렇다. -배역과는 달리 실제 성격은 도도하고 차가운 편. 연기에 있어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프로 정신이 넘친다. -다만 자기 안의 사람은 잘 챙기는 스타일. 가볍고 활기차다기 보다는 과묵하고 시크한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사람. -배역을 하면서 가장 힘든 건 검무를 출 때랑 방울 장신구 머리에 매달 때, 그리고 치마를 입을 때다. 치마는 원래 잘 안입고 방울 장신구도 장신구는 일체 안하고 다니는 수수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 검무를 추는 것은... 현대인이 검을 다룰 일이 잘 없잖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리스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둘이 친구가 되는 장면. 이 장면에서 엄청 열심히 연기해서 나중에 촬영 끝나고 나서도 감정에 몰입되어서 엉엉 운 건 안비밀.
다행히 가온 님께서는 무사하신 듯 했다. 하나도 다친 곳이 없어보였으니. 갑자기 처음 보는 이상한 일그러짐에 조금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오히려 가온 님께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
그, 그러니까... 결국 저 일그러진 공간은 가온 님께서 여신 걸까요...? 그 사실을 새롭게 깨닫자, 혼자 너무 오버한걸까, 싶어 조금씩 부끄러움이 올라와 양 손가락을 입가 가까이 가져가 작게 꼼지락꼼지락거렸다. 시선을 옆으로 피하며, 살짝 빨개진 얼굴로.
하지만 이내 한 박자 늦게 애써 부끄러움을 가라앉히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가온 님께서 신과를 동그란 흙덩어리 주변에 내려놓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러자 들려오기 시작하는 가온 님의 설명. 그것을 경청하여 듣고는 이내 한 박자 늦게 "...아..." 하는 탄식 비슷한 소리를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 흙덩어리 씨는 가온 님께서 예전에 이끄셨던 늑대 씨들을 기리는 것이었던 걸까요...? '죽음'. 낯설지 않은 느낌의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
조금은 슬픈 듯한 복잡한 눈빛으로 흙덩어리 씨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천천히 기도를 하듯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감히 내려다볼 수는 없었기에. 죽은 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기도하듯 가슴께로 가져간 두 손을 느릿하게 깍지 껴 맞잡으며.
"......사죄라니... 저는 가온 님께서 죄를 지으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혹시... 가온 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 그것이 사죄를 할 정도로 죄를 지은 것이었을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 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렇게 얘기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가온 님 쪽을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몽롱한 두 눈동자로.
>>172 오오...! 령이의 오프레...!(메모메모) 령이는 아역 배우로부터 활동했던 완벽한 프로였군요! 도도하고 시크하지만 자기 안의 사람은 잘 챙기는 스타일...! 멋져요! XD(야광봉) 그런데 마지막 장면...끝나고도 엉엉 울었다니...령아...ㅠㅠㅠㅠ(눈물)(토닥토닥) 그 때 분위기나 장소가 몰입할 수 있게 엄청 슬프도록 아름답던 장소이긴 했죠...
모든 신과를 내려놓은 후에 나는 두 손을 조용히 모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나름대로 이곳에 묻혀있는 내 무리의 영혼에게 바치는 사죄의 표시였다. 150년 전, 나는 신이 되어 무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계속해서 평범한 늑대였다고 한다면 나는 그 무리를 쭈욱 이끌면서 살았겠지만, 신이 되어버린 이상... 나는 무리를 이끌 수 없었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 이후로, 간간히 시간을 내어 무리가 위험할 때 구해주고, 그 무리의 피를 이은 늑대들을 지켜주기는 했지만... 내가 직접적으로 이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나는 내가 이끌던 무리를 내버려두고 지금의 라온하제로 옮기게 되었다. 물론 내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드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은호님조차도...
"아마 라온하제에서 아는 이는 잘 없겠지만... 전 150년 전에는 평범한 늑대였습니다. 지금처럼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수도 없었고, 무리를 이끄는 대장 늑대. 검은 늑대 가온. 그것이 바로 저입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를 떠올리면서, 나는 고개를 다시 아래로 숙였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내가 이끌던 늑대들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고는 했다. 그것은 15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모습,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리스 씨가 묻는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서...
"150년 전, 사냥을 나간 저는, 여기서 조금 떨어진 절벽에서 그만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죽은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때, 근처를 지나던 은호님이 저를 구해줬습니다. 제 몸에 신통력을 부여했고 그것은 곧 저를 신으로서 각성시켰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게 해주었고, 신통술도 사용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신이 된 늑대가 다른 늑대를 이끌 순 없었습니다. 언제나 지키고 싶고, 언제나 이끌고 싶었지만... 신이었기에 그들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신이 간섭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그 날, 저는 제 동생에게 대장의 자리를 물려주고 은호님을 따라 신계로 향했습니다."
그 때의 날들, 내 동생이, 내 무리가 나를 부르면서 하는 말들을, 나를 붙잡는 말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들은 저를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보내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느낀 배신감은 작지 않을 겁니다. ...제가 평생 사죄를 해야하는 일입니다. 이건..."
기도를 하듯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앉고는 두 손을 천천히 가슴 앞에 깍지 껴 잡았다. 죽은 자에 대한 기도.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숨쉬듯이 가까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삶을 뒤집으면 죽음이 되듯이, 지금 자신의 앞에도 잠들어있지 않은가.
그러나 '사죄'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죄라니. 그런 것이...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가온 님께 물어보자, 이내 가온 님께서는 조용히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 대답 속에 담긴 가온 님의 과거 이야기에 가만히 귀기울였다.
150년 전, 평범한 늑대이자 무리를 이끌었던 대장 검은 늑대. 그리고 150년 전 사냥을 나갔다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거의 죽은 목숨이었던 가온 님. 그러나 은호 님께서 신통력을 부여하여 '신'으로서 각성한 덕분에 다시 살아난 가온 님께서는 '신'이었기 때문에 무리를 떠나야했다고 대답해왔다. 동생에게 대장의 자리를 물려주며.
"......"
고개까지 도리도리 저으며 그들이 느낀 배신감에 대하여 평생 사죄를 해야한다고 말해오는 가온 님께서는 조금 괴로워보였다. 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조금 슬픈듯한 두 눈동자로 가온 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가온 님. 그 분들께서는 가온 님께 실망하셨다거나 가온 님을 증오하셨다거나 하는 말씀이나 행동을 보여주셨나요? 가온 님께 직접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씀해주셨나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저는 그 분들께서 배신감을 느끼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애초에 무리를 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거의 죽은 목숨이 되었던 가온 님이었다. 그런 가온 님을 알고있던 동료 늑대들이 배신감을 느꼈을 거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저는 가온 님의 무리이셨던 늑대 씨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저는 그 분들께서 그저 가온 님께서 '신' 님이 되셨다는 것을 존중해주시고 받아들여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1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무리를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가온 님이신걸요. ...그 늑대 씨들도 분명히 이렇게 자신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해주시는 가온 님을 지켜보며 고마워하고 계실 거예요."
잠시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네, 분명히. ......저의 가족들은, 저를... 조용히 생각에 잠기던 모습을 뒤로 한 채, 이내 천천히 고개를 내리고 다시금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부드러운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러니까... 가온 님께서 평생 죄책감을 느끼시면서 사죄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온 님께서는 무리 늑대 씨들께 최선을 다하셨을 거라고 믿으니까요."
나를 위로해주는 것일까?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따스한 목소리가 참으로 부드럽기 그지 없었다. 마치 다솜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분위기와 살랑살랑 떨어지는 분홍색 벚꽃잎이 떠오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들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원망을 하거나 할 이들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내 선택을 존중하고 나를 보내준 이들이 아니었던가. 물론 신이라도 상관없으니, 나에게 계속 이끌어달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내 동생이라던가... 또 다시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제나 느끼지만 리스 씨는 너무 좋은 이입니다. ...확실히 그 말씀대로 그들은 저를 원망하거나 증오하진 않았습니다. 배신감을 느꼈다고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늑대란 본시, 대장의 자리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늑대들은 서열을 정해서, 대장을 정하고, 그 대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끄는 동물입니다. 그 대장의 존재로 인해서 무리의 안전이 정해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대장이 바뀌거나 할 시에는, 무리에게 있어서 큰 혼돈이 오기 좋다. 새로운 대장이 전 대장처럼 강하다고 한다면, 조금 혼란스럽고 말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무리가 전체적으로 흔들리기 딱 좋지 않은가. 적어도 내 동생은 나만큼 강한 늑대는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약한 늑대도 아니었다. 어찌되었건...그 변화가 무리에게 있어서 영향을 끼치긴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뜬 후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설사, 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제가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저는 무리를 두고 떠났습니다. 제가 스스로 지키고 이끌겠다고 하였고, 그런 저를 믿고 따라온 늑대들을 두고 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것만큼은 제가 평생을 걸어서 사죄를 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렇기에 매 년 이 시기에 이렇게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시선을 무덤으로 향한 후에, 그 안에 묻혀있을... 아니, 이제는 없어졌을 그 존재들을 떠올리면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시 리스 씨를 바라보면서 엹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감히라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리스 씨.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에 감히...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아니면... 여전히 저나 다른 이들은 리스 씨에게 있어서 이야기를 전하기가 어려운 존재들입니까?"
가온 님께 조용히, 하지만 나름대로 따스한 위로를 조심스럽게 건네자, 가온 님께서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늑대들에게는 대장의 자리가 중요한 것이라고 얘기하며.
"......저는 늑대 씨가 아니지만... 그래도 가온 님의 동생 분께서도 가온 님처럼 무리를 열심히 이끌어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온 님께서도 '신' 님이 되신 이후에도 그 분들을 내팽겨치시지 않고 지켜보고 도와주셨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가온 님께서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뒷말은 들릴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은 너무 좋은 이는 아니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기도 하며. 그렇지만 자신을 그렇게 말해주는 것은 감사했기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 두 눈을 뜨며 이어진 그 말에는 여전히 평생 사죄를 하겠다는, 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있었고, 그 시선 끝에 이어진 무덤에게로 자신 역시도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누군가가 떠오르는 듯한 느낌. 잠시 복잡하고도 슬픈 눈빛으로 무덤을 바라보았다. 꼬옥 맞잡은 두 손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군요. 가온 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조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죄'. '신' 님께서 사죄하시고 계세요.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어, 자연스럽게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침묵 끝에 다시금 들려오는 가온 님의 말씀에, 천천히 느릿한 동작으로 고개를 돌려 가온 님을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잠시 아무 말 없이 가온 님을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요. 이야기를 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아요. 이제는 저의 소중한 친구인 령도 있는걸요. ...그냥... '신' 님들의 생각에 대하여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과연 괜찮을까, 싶어서 그런 것일 뿐이예요. 가온 님."
희미하게 괜찮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말라는 듯이. 그래, 처음에 비하면 어느 정도는 꽤나 변화하긴 하였으니.
선택에 따른 후회감과 죄책감. 그것은 언제나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었다. 내가 신으로서의 생을 다 하고, 언젠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기억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은 얼마나 될까? 1000년? 2000년? 아니면 그 이상? 신은 정말로 자신의 생을 다 했다고 생각했을 때, 스스로 그 목숨을 다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 내가 신으로서의 삶을 끝낼 수도 있지만... 아직 끝낼 순 없었다. 나는 아직 은호님과 누리님의 힘이 되어야했으니까. 생각을 마치면서 리스 씨가 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였다. 참으로 간단하고 짤막하게 할 수 있는 말. 그것은 바로...
"...감사합니다."
참으로 많은 의미를 담아 감사를 전하면서 나는 다시 엹은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나는 땅에 떨어져있는 바구니를 챙겨들었다. 신과는 이대로 두면 알아서 잘 처리가 될 것이다. 배가 고픈 산짐승들이 와서 먹을 수도 있을테고, 자연히 썩어들어가 흙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제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기에 더 신경쓰지 않으면서 나는 막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집중하여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령 씨 말이군요. 좋은 친구가 생겼군요. 리스 씨. 하지만 조금 놀랐는걸요? 당신이 '신'을 친구라고 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말입니다! 당신이라면, 자신은 신의 친구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하하.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친구라.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절로 느껴지는걸요?"
조용히 웃으면서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 소리를 내면서 리스 씨에게 제안을 하나 조심스럽게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