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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만들어진 축복 주식 회사 라온하제는 오늘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축복을 내리기 위해서, 그리고 즐거운 내일을 만들기 위한 정신 아래에 만들어진 회사였지만 그렇다고 직원 복지를 게으르게 하진 않았다. 예를 들면 은호 회장님이 나에게 시킨 일이 그러했다. 지금 나는 회사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아 계획서를 보고 있었다.
이것은 은호 회장님이 직접 기획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한 것이었다. 은호 회장님은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그냥 보내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크리스마스 파티를 기획해보라고 지시했다. 오로지 직원들을 위한 파티를 기획하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알아보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하나 수행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땅 중 하나인 비나리 광장을 막아둔 것도 그 일환이었다. 비나리 광장의 입구를 막아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둔 후에, 나는 그 안에서 크리스마스 파티의 무대를 장식할 크리스마스 트리를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다른 이들에게는 전부 비밀이다. 파티 당일이 되면 공개할 예정이다.
아무튼 그런 것들이 쓰여있는 계획서를 잠시 읽어보다가 나는 수첩을 닫아서 입고 있는 옷 주머니에 쏘옥 집어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기지개를 켜면서 입을 막고 크게 하품을 했다.
"은호 회장님이 시키신 일이기에 열심히 할 생각이지만, 조금 피곤하긴 하네. 하지만 열심히 해야지! 회장님이 믿고 맡기신 일이니 말이야."
회장님이 우리들을 위해서 기획한 일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 조금 쉬었다가 다시 일을 하러 갈 생각으로 나는 등받이에 편하게 등을 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입을 손으로 막고 크게 하품을 했다. 나중에 비타민이라도 먹는 것이 좋을까...
회사에 남아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것은 썩 좋은 일이 아니었다. 령이 그러했다. 한때 엉덩이 붙일 일 없이 방랑하던 자유로운 영혼에게 회사란 선택지는 맞지 않나 싶기도 하였다. 그래도 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고, 자신도 슬슬 정착을 할 필요성을 느끼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령은 서류를 바라보다가 눈꺼풀이 감겨옴을 느낀다. 이런, 졸아버린 건가?
아직 남은 일이 한참인만큼 여기서 자버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여긴 회사가 아닌가? 령은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의자에 걸어놓은 외투를 집어들어 걸친다. 일을 하기전에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겠다. 이 상태로 있다면 분명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터였다. 령은 또각또각 밖으로 나가기 위해 회사 로비를 지나고 있었다.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난 건 의외였다.
"가온 씨?"
뭐야. 아직도 퇴근 안한건가? 령은 조금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다가 걸음을 옮겨 가온의 근처에 앉았다. 가온이랑 얘기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을까? 령은 동전을 꺼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다 문득 가온을 바라봤다.
"한 잔 하실래요?"
아, 그래. 그도 커피를 먹고 싶어할 수도 있으니까. 령의 손가락이 자판기의 버튼에 가까이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누를 듯 하다. 제가 살게요, 커피. 령이 입을 열었다. 마치 말동무라도 필요한 모양새였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도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령 씨의 모습이었다. 아직 회사에 계셨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령 씨를 바라보았다. 일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일단 회사니까 늦게까지 일을 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야근 수당도 확실하게 주는 회사이니까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이 또한 은호 회장님이 좋으신 분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아무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을 생각인지 그녀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고 하면서 나에게 같이 먹지 않겠냐는 식으로 이야기해왔다. 자신이 사겠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에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사도록 할테니까요."
조금 피곤한 기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커피가 최고였다. 물론 너무 많이 먹으면 좋진 않지만 소량의 커피는 몸에도 좋다고 하니까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령 씨에게 내 몫의 커피도 부탁하면서 나는 령 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령은 가온의 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보니 인사조차 하지 않았지. 내 정신 좀 봐! 령은 자기자신에 대해 짧게 자책을 하고는 가온을 바라보았다. 그도 회사에 남아있을 만큼 바쁘다는 뜻이겠지. 축복을 주기 위한 회사인데 정작 우리 둘은 축복받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 아닌가. 착각인가?
아싸. 커피를 같이 먹을 말동무가 늘었다. 령은 가온의 말에 겉으로는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자판기 커피라지만 구색은 갖추었는지 종류가 다양했다. 블랙커피, 아메리카노, 카라멜 마끼야또, 카푸치노 등등... 무슨 카페야 뭐야. 령은 고심하다가 아메리카노를 고르곤 가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알겠습니다. 뭐 마실래요? 이거 메뉴가 너무 다양해서..."
뭐, 메뉴가 다양할 수록 우리 입장에선 좋지만. 령은 잠시 자판기를 보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지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아, 그러고보니 곧 있음 크리스마스구나. 재밌겠다. 그러고보니 회사는 크리스마스 날 쉬려나? 다음에 한 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다가 가온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커피의 종류가 상당히 다양했었지.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여러 종류의 커피를 떠올리다가 나는 내가 제일 자주 마시는 커피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카페라떼가 있으면 그걸로 해주시겠습니까? 그것이 없으면 아메리카노로 부탁합니다."
아무래도 자판기 커피는 잘 먹지 않다보니, 지금 자판기 커피에 무엇이 차 있고 무엇이 비어있는지까지는 나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보통은 신과 주스를 주로 마시는 편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금이야 사준다고 하니까 커피를 마시는 것이니까. 그러고 보니, 회사 사람중 하나가 부업으로 카페를 한다는 말도 들은 것 같은데... 다음에 그 카페도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령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돌려 령 씨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은호 회장님이 지시한 일이 있어서 요즘 그것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지금도 준비를 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할 겸 여기에 앉아있는 거고요. 며칠 후가 크리스마스잖습니까? 그 관련으로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자세하게 무엇을 준비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으면서, 그냥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미리 다 알려주게 되면 당일 날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없어질테니 말이야.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나중에 공문이 따로 나오겠지만, 크리스마스 당일은 회사 업무는 없을 겁니다. 은호 회장님이 말씀하시길,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도 일을 하면 너무 비참하지 않겠냐고 하시더군요. 그 대신에 제가 그 관련 일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말을 마친 후에 나는 아 소리를 낸 후에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 알리지 말아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다. 너무 많이 알려지면 혹시 내가 나중에 혼이 날지도 모르니까. 일단은 나도 준비를 조용히 비밀리에 이것저것 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지.
카페라떼... 카페라떼라... 령은 자판기의 메뉴들을 찬찬히 보았다. 아, 있었다. 령은 망설임 없이 카페라떼를 꾸욱 눌렀다. 종이컵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커피가 줄줄줄 흘러나왔다. 그러고보니 요즘은 참 편리해. 이렇게 자판기에서 커피도 뽑아먹을 수 있고. 령은 새삼스레 옛 생각에 잠긴다. 방랑자였을 시절엔 커피 하나 먹기도 어려웠지.
상념에 빠진 령을 깨운 건 가온의 말이었다. 회장님께서 크리스마스 관련으로 지시한 일이 있다고? 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일인가본지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령이 가온을 바라보았다. 회장님이 대체 무슨 일로 지시를 내린거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재밌을 것 같았다. 령이 입꼬리를 휘어 웃었다.
"그래요? 왠지 재밌을 것 같네요. 무슨 일인가요? 아니아니, 미리 알면 재미없으려나?"
알고싶긴 하지만 뭐 서프라이즈 같은 행사였으면 미리 아는 게 재미없을 수도 있잖아. 령은 그럴 바엔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 커피 나왔다. 령은 자판기 안에서 따끈따끈한 카페라떼를 꺼냈다. 후끈한 열기가 제 손을 덥혔다. 령은 종이컵을 가온에게로 건내줬다.
"오, 정말요? 다행이네요. 크리스마스 날까지 일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럼 남은 건 환상적인 크리스마스를 즐길 날이겠군. 령은 환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다시 표정을 무표정으로 돌렸다. 그럼 뭐하나. 내겐 애인도 없고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사람도 없는데. 에이, 젠장. 이번 크리스마스도 혼자인가?
"령 씨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 자세한 것을 알려줄 순 없습니다. 은호 회장님이 저에게 맡기고 맡긴 이들이 좀 있는지라."
무슨 일이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물론 령 씨라면 입이 무거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일은 철저하게 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 일단 나도 이 회사의 이사직 중 한 명이기도 하니까. 사실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믿고 맡겼는데 이미 다 퍼져있으면 신뢰를 잃기 딱 좋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회장님이 신뢰를 주셨는데 어떻게 그것을 거절할 수 있을까.
일단 령 씨가 내미는 커피를 받은 후에 한 모금 마셨다. 역시 자판기 커피이기에 카페에서 먹는 것보다는 조금 맛이 덜했다. 하지만 자판기 커피 치고는 맛이 괜찮은 편이었기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인스턴트 커피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순 없었으니까. 피로함을 가라앉히는 효과와 손에 녹아드는 따스함만으로도 이 커피의 가치는 충분했다.
"굳이 일하고 싶다면, 은호 회장님에게 부탁하면 일을 주시긴 할 겁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어디에도 없지 않겠습니까?"
장난스럽게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또 한 모금, 조금 피곤함이 가라앉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령 씨의 표정이 바뀌는 모습이 보였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는 별 의미없는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표정이 조금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만."
피곤함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어쩌면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지. 그렇기에 더 깊게 묻진 않고 다시 커피를 입에 머금으며 홀짝였다.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한데요? 알겠어요. 크리스마스 당일날까지 꾹 참고 기다리죠, 뭐."
령은 하하 웃으면서 가온의 말을 받아쳤다. 뭐, 궁금하긴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사항도 아니고 가온이 괜히 저런 말 할 인사도 아니기에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아, 이번에는 자판기에서 아메리카노가 나온다. 조금만 기다리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걸까? 령은 입맛을 다셨다.
"에이, 굳이 사서 일 벌릴 필요 있나요? 제가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거예요."
무슨 워커홀릭도 아니고... 령은 상상만해도 싫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때까지 책상 앞에 붙어있는 건 싫었다. 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즐기자 좀.
아, 표정... 령은 새삼 표정 변화를 숨기지 못한 자신에게 자책했다. 걱정 끼쳤으려나. 령은 애써 웃어보이고는 가온을 바라보았다. 조금 씁쓸함이 담긴 미소였다.
이 회사만 해도 지금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이가 두 명이었다. 사실 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지만... 일단 나는 제외하기로 했다. 아무리 나라도 쉬는 날 없이 계속 일할 정도는 아니니까. 무엇보다 은호 회장님이 그런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애초에 회사에서 일하려고 하는 이들은 다 강제로 퇴근시켜버리고 회사를 잠궈버리지 않을까? 혹은 자꾸 일을 하려고 하면 잘라버린다고 한다던가. 물론 이것은 조금 현실성이 없긴 하지만, 적어도 은호 회장님은 무작정 일을 시키는 그런 이들과는 다르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게 된 것도 그런 점에 끌려서가 아니었던가.
아무튼 령 씨는 나를 바라보면서 조금 씁쓸해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번 크리스마스도 또 혼자서 지내겠다라는 걱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면서 령 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령 씨 정도면 누군가와 같이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회사에서 친한 이라던가 없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서 같이 보내는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보내고 싶지 않다면 친구나 다른 이에게 권해서 같이 보낼 수 있는 방법도 있는 법이다. 굳이 혼자서 꼭 보내야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는 령 씨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야 일이 좋다고 생각하면 어느정도 이해는 가지만...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것이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던 령에게 있어선 완전히 별세계의 신들이나 마찬가지리라. 령은 조금 놀란 눈치로 눈을 깜박이다가 이내 자신이 표정관리를 못했음을 알고는 큼큼거리며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래도 아까 그 말은 꽤 놀랐다. 크리스마스 날까지 일을 할 사람들이 있었다니.
"뭐... 있기는 한데 그 사람들도 다 바쁠테니까요."
령은 심드렁한 태도를 고수했다. 젊은 시절에야 가온의 말처럼 여럿이서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기에 지인들에게 연락해봤지만 해가 갈수록 연락을 보낼 지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들도 바쁘다는 거겠지. 몇몇은 아예 명을 달리했고. 령은 다 된 커피를 꺼내 한모금 마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커피가 상당히 쓰게 느껴졌다.
"음... 있긴 있어요."
크리스마스 보내고 싶은 사람... 령은 그리 말하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문제점이 하나 있다면 그 사람이 자신의 청을 들어줄 지가 문제지.
커피를 조용히 마시면서 령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람들도 전부 바쁘다라. 그 정도로 바쁘게 사는 것일까? 하긴 당장 나만 해도 그러니 남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납득을 하며 천천히 커피를 즐겼다. 카페라떼. 다음에는 카페에서 마시는 것이 좋을까? 하지만 그래도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 따스한 온기를 즐기면서 계속해서 말을 들었다. 결론은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그러면 그 사람에게 말을 해보면 되지 않습니까?"
있긴 하다고 한다면 일단 말을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건 그렇고 저렇게 눈을 내리깔다니. 정말로 같이 보내고 싶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렇게 말을 할 정도면...혹시? 그런 생각을 잠시 하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멋대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실례적인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에 내가 할 말이 있다면...
"일단 말이라도 해보는 것과 말도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은호 회장님이라면 그런 것으로 뭘 고민하냐고 할 겁니다. 일단 이야기를 해보고 정하라고 말을 할 것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제넘은 발언일지도 모릅니다만... 시간이라는 것이 언제나 무한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순간, 시간은 훅 지나가게 되고, 그때 후회해도 이미 늦은 상황이니까요."
이를테면 나의 무리라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씁쓸하게 잠시 웃었다. 그리고 마저 커피를 마신 후에 그 내용물을 삼켜버리고서, 잔을 아래로 내린 후에 다시 표정을 원래대로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평소에는 당당하신데 왜 그렇게까지 고민하십니까? 일단 말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말을... 그렇지. 말을 한 번 해봐야겠지. 령은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전혀 만나지도 않았고... 아니, 불러내면 올려나. 그렇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령의 마음속을 괴롭혔다. 흰 뺨이 점점 붉어졌다. 령은 한숨을 쉬었다. 말이 쉽지.
"용기가 안나요."
령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별로 친하지도 않은 자신과 왜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하는지 모를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런 일로 부담주고 싶지도 않았다. 령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다 핑계였다. 사실은 자신이 부딪히는 게 무서워서 이러는 것도 다 알고 있었지.
"그렇죠. 말이라도 해보고 나서 결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죠."
그래. 이렇게 단정짓지 말고 말이라도 해보자. 령은 굳게 마음을 먹은 듯 짐짓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령은 다시 한 번 커피를 마셨다. 씁쓸한 맛이 입 안에 번진다. 령은 가온을 바라본다. 비록 가능성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라도 꺼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저랑 시간 보내는 걸 부담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거절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고... 하지만 직접 말하는 게 낫겠죠, 역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조그마한 목소리라고 해도 늑대의 청각을 무시할 순 없는 법이다. 밤에 사냥을 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발달한 청각은 그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무슨 말을 더 하진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는 무슨 말을 할 순 없는 거니까. 그렇기에 특별히 말하는 것 없이 그저 아무것도 없는 빈 잔을 홀짝이다가 조심스럽게 잔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런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이 좋은 법이니까요. 전 신이 된 것이 그렇게 오래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이 되기 전 오랜 세월을 산 것도 아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일지도 모릅니다만... 정작 후회는 언제나 내가 왜 그때 그걸 선택했을까? 내가 왜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것으로 하고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신이 된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무리를 떠난 것도 후회하진 않는다. 난 지금 여기서 신으로서 제 2의 삶을 살고 있고, 충분히 '즐거운 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담스럽게 생각하는지 아닌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신이라고 한들 사람의 마음을 읽진 못합니다. 그건 은호 회장님조차도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덤덤하게 나의 생각을 밝힌 후에 나는 가볍게 손가락을 퉁겨 신으로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신통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집에 둔 손바닥 위에 올려둘 정도의 작은 얼음 조각품을 이쪽으로 불러들였다. 령 씨를 본따서 만든 그런 느낌의 조각상이었다.
"커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령 씨를 본따서 만들어본 얼음 조각품입니다. 미리내 지역은 이 시기에 얼음이 정말 아름답게 업니다. 커피를 사준 답례와 보내고 싶은 이와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부적 정도로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것이 복잡하다면,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을 조금 일찍 준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받지 않으면 그걸로 그만이었다. 억지로 받게 할 수도 없는거고 답례를 억지로 주는 것이 알려지면 은호 회장님에게 꾸중을 듣기 딱 좋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