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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땅에 흩뿌려진 분홍색의 벚꽃잎들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이어지던 산책을 잠시 멈추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면 멀리 산책을 안 간지 꽤 된 자신이었다. 예전에는 자신의 '신' 님을 찾으려는 겸 이곳저곳 돌아다니고는 했었지만, 최근에는 은호 님이나 누리 님의 이런저런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감기에 걸려 몸져눕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없던 이유도 컸다. 그치만... 오늘은 나름대로 컨디션도 괜찮았으니.
그렇기에 천천히 접혀있던 분홍색의 날개를 펼쳐내었다. 그리고 날개를 서서히 퍼덕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맑고 푸른 하늘 속에 분홍색의 작은 점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정처 없이 그저 천천히 하늘 비행을 하던 도중, 우연히 도착하게 된 곳은 다름 아닌 가리였다. 시원한 바람이 인도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가리 특유의 선명한 색의 낙엽들의 화려함이 눈길을 잡아끌었기 때문일까. 그대로 날아서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날갯짓의 속도를 서서히 줄여 가리의 너른 들판에 살며시 두 발을 디뎠다.
그에 붕 퍼졌던 흰 색의 겉옷자락들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고 나서야, 느릿하게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멍한 두 눈동자를 빛내면서 작게 "...와아..." 하고 감탄의 소리를 증얼거리며.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듯이 그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가리의 풍경을 눈에 담던 도중, 갑자기 들려오기 시작하는 새의 울음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곧바로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카제하 님...?"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카제하 님이셨기 때문에, 잠시 놀란 듯이 두 눈을 깜빡깜빡였다. 그러나 이내 곧 그 쪽으로 조심스럽게, 천천히 다가가 두 손을 앞에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카제하 님. 정말 오랜만이예요."
헤실헤실, 희미한 미소가 뒤따라 피어났다. ...아름다운 새 씨도 함께 계셨군요. 이내 새에게도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같은 조류라서 그런 것일까, 왠지 더욱 눈길이 가는 느낌이었다.
/ 괜찮습니다, 카제하주! 저도 오래 걸리는 걸요...ㅋㅋㅋㅋ 천천히 써주셔도 괜찮으니 그냥 편하게 생각해주세요. :D
자신을 보곤 반갑게 인사해주시는 카제하 님의 모습에, 살짝 놀란 듯이 멍한 눈동자를 크게 떴다. 그리고 깜빡깜빡, 두어 번 정도 멍청하게 깜빡이고 나서야 그 인사가 자신을 향한 것임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자신의 곁을 날아다니며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는 새의 지저귐 역시도.
그러나 이런 반가운 맞이를 듣는 것은 언제나 매우 낯선 일이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 이렇게 따스한 맞이는... 잠시 두 눈을 깊게 감았다가 천천히 뜨고는, 그대로 희미하게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네, 정말로 오랜만이예요, 카제하 님. 저는 잘 지냈답니다. ...카제하 님께서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카제하 님의 나긋한 안부 인사에 맞추어 자신 역시도 부드러운 안부 인사를. 그러나 카제하 님께서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했던 행동을 그대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주시자, 당황한 듯 멍했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여졌다.
"그, 그런 인사는 저에게 해주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카제하 님! 제가 어떻게 감히 '신' 님께...!"
두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도리도리,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이쪽에서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이러면 저는 2번이니까 괜찮을지도 몰라요. 그런 실없는 생각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해보면서. 그러다 이어진 카제하 님의 말씀에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확실히 카제하 님을 그 후로 뵙지 못 하긴 했으니까... 이내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한 박자 늦게 그 뒤를 따랐다.
"...반가워 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카제하 님. 저도 감히 말씀 드리지만... 정말로 반가워요. 그런데 간만... 이라는 것은... 혹시 그동안 여행이라도 다녀오신 건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카제하는 언제나와 같은 편안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며 리스의 인사에 화답했습니다. 서늘한 가을 바람이 너른 들판을 가볍게 스쳐지나갑니다. 줄곧 지저귀던 새는 급기야 리스의 어깨에 자리를 잡고 앉아버립니다. 동족을 알아보는 것일까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제하는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그 새는 리스 공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오."
그러다, 카제하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인사를 하는 리스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입니다. 그 틈엔 조그만 웃음 소리도 섞여있었습니다. 리스의 엉뚱하고 순수한 발상을 재밌어 하듯이요.
"하하하, 리스 공의 태도는 여전하시구려. 오히려 본인이 그렇게 예의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소."
카제하는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말을 마친 뒤에도 카제하의 입가엔 여전히 웃음기가 가시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뒤 이어지는, 그동안 무엇을 했냐는 리스의 말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을 꺼냈습니다.
"아아, 본인의 고향에 일이 생겨서 잠깐 다녀왔다오. 그리 큰 일은 아니었다만 꽤 오랫동안 머물러야 했었소."
카제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듯 뒷짐을 지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카제하는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리스를 바라보며 덧붙입니다.
기쁜 마음을 담아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신' 님의 무사한 안위와 행복은 곧 자신에게 있어서도 기쁨으로 돌아왔으니.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살짝 흩날리는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매만지다 작은 새가 자신의 어깨에 자리를 잡고 앉자 한 박자 늦게 멍한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대로 눈동자를 깜빡깜빡이며 새와 카제하 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말로요? ...정말로 이 작은 새 씨는 제가 마음에 드신 걸까요? 왠지 모를 간질간질함과 낯선 행복감이 자신의 마음에 가득히 들어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에 선명하게 화아, 밝은 미소를 꽃피우며 솔직하게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대로 부비부비, 자신의 어깨에 앉은 새와 함께 서로 볼을 부비적거리는 얼굴에는 배시시 피어난 미소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다 이어진 카제하 님의 말씀에 살짝 시선을 옆으로 피하면서 입가로 가져간 손가락들을 작게 꼼지락거렸다.
"...하지만 카제하 님께서는 '신' 님이신 걸요. 그러니까..."
공손하게 인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카제하 님께서 자신을 달래주시려는 듯이 말씀해주시는 것에 그저 영광스러움을 느끼며.
"...그래도 큰 일은 아니셨다니 정말로 다행이예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안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고향에 다녀올 수 있다는 건 조금 부러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신' 님들의 고향은 따로 있으신 걸까요? 한 가지 궁금증이 문득 들어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다가 이어진 카제하 님의 질문에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아, 네...! 정말로 다양한 일들이 많았어요. 막막... 할로윈 씨도 있었고, 은호랜드 씨도 새롭게 개장하셨고, 또... 아, 혹시 비나리의 광장에 가온 님께서 조각하신 은호 님의 모습을 한 커다란 얼음 동상 씨를 알고 계시나요? 저는 그것이 얼음 씨인 줄 알았는데 알고봤더니 설탕 씨였대요. 그런데 백호 님과 그 설탕 동상 씨에 먹염룡 씨가 봉인되어 있었는데... 사실 은호 님께서 먹염룡 씨였대요. 그런데 한 대 맞으시면 주, 주, 죽는다고 하셔서..."
손가락을 하나하나 느릿하게 접어가며 대답하던 목소리는 어째 끝으로 갈수록 횡설수설하는 흐릿한 목소리로 변해가는 듯 했다. 혼란스러움에 묘하게 안색이 어두워진 듯해 보이는 것은 착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