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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하제에 어떤 이변이 일어나던 날이 며칠 전이였던가. 혼란의 시기로 불릴 수도 있는 이 나날들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라온하제는 신들의 모습은 감춰 진 채 동식물이 가득한 기이한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 미리내의 관리자도 예외에선 벗어날 수 없었는지 원래의 모습을로 변한 채였다. 지금 소나무 가지 위에서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였지..
"...까..."
무의식적으로 한탄 비슷하게 내뱉으려던 말은 까치 특유의 경한 울음소리로 대처된다. 앵무새 뿐만 아니라 까마귀도 말을 배우면 엇비슷하게 따라한다던데, 역시 복잡한 언어는 무리였던건가. 라온하제로 온 이후로 본 모습으로 변하던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으니, 지금의 모습이 영 낯설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겠지만. ...굳이 입과 입을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도 아니고.
눈이 내린 소나무 가지 끝에 아슬하게 내려앉아 있던 세설은, 커다란 새모양의 그림자가 내려진 것을 발견하곤 곧바로 날아올랐다. 자신의 영역에 침범해온 맹금류를 단체로 견제하는 것 또한 본능에 새겨진 무언가였으니. 다만 지금 까치는 본인 혼자 뿐이였으며...ㅡ 상대는 너무 커다랗다는 것만 빼고.
ㅡ?!
지금의 자신이 덤벼들기엔 그 새의 발가락만도 못한 크기였다. ...아, 그러고보니 어디선가 본 적 있지 않는가? 예를들면... 라온하제 홍보 영상을 찍을 때. 푸른색 깃의 커다란 맹금류를.
이변은 일어났고, 시간이 약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날개를 쫙 펼쳐 약간 행글라이더같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날았습니다. 미리내의 바람은 차갑긴 해도 꽤 강한 터라 날개짓을 좀 덜 해도 괜찮았지요. 미리내의 소나무 근처에 쾅 까지는 아니라도 나름 신통술의 덕분에 꽤 부드럽게 내려앉고 나서 날아오르는 발가락... 정도의 크기를 지닌 까치를 보고는 순간 부리로 잡아챌 뻔했지만 참아내었습니다.. 세설이란 걸 알고는 일단 인사부터 하는군요. 고개를 까닥.
-안녕. 용건... 이라고 하면 얼음을 좀 가져가려고..? 어째서 여기까지 온 거냐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하려 합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따스한 봄날이긴 하지만, 모래목욕을 할 때 더운 건 싫으니까.. 입니다. 그 외 혹시라도 더우면 이 근처에서 잔다거나 하라는 것이기도 했지요.
-그 외에도 어느 정도 혼란이 가라앉고 평상시같이 어느 정도 괜찮아졌는지 시간을 두고 보는 것도 있고. 그쪽은 상황이 괜찮으려나? 라고 물어보려 합니다.
...방금 전에 잡아먹힐 뻔 한건가. 되살아난 동물적인 감각으로 생명의 위협을 감지한 설은 바로 옆 소나무에 가벼운 날개짓으로 내려온다. 가까이서 나란히 있으니 크기가 상당이 커다랗긴 하였다. 소나무의 가지 끝에 앉아있는 세설과 그 옆 바닥에 내려앉은 아사의 눈높이가 겨우 맞아 떨어질 정도였으려나.
ㅡ얼음이라. 굳이 여기서 구하지 않아도 충분하...지는 못하겠군. 확실히.
사이즈를 대충 재보기만 해도 지금 빙해에 떠다니는 유빙의 크기 정도는 되야 만족 될 수 있을 판이였지. 고민을 하며 기다란 꼬리깃를 위아래로 까닥거리는 듯 하더니, 조용히 말을 전한다. 빙해 쪽에 유빙이나... 저기 고산지대에 만년설이 쌓여있기도 하니까, 그쪽으로 가보던지.
ㅡ...그쪽 상황 보면 대충은 알 것 아닌가. 뭐, 원래 추운지방에 살지 않던 동물이 혹한 때문에 고생한다던가. 천적 관계였던 신들이 사냥놀이를 하고 있던 것 빼면은... 괜찮아, 아마.
조금 전의 세설은 미리내에 살던 토끼 신과 족제비 신이 추격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온 참이였다. 동물로서의 본능과 신으로서의 이성이 뒤섞여서 만들어내는 장면은 꽤나 희극적이긴 했었지.
ㅡ그래... 지금은 야생의 모습으로 돌아가긴 했어도 한때 신들이였으니 정말 잡아먹거나 그러지는 않을거라 믿고 있으니까.
-그렇지. 빙해의 유방이나 고산지대에 가봐야겠네. 있는 곳을 듣고는 그래도 관리자의 말이라 더 믿음이 가는 것이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사냥놀이라고 말하자 아.. 라고 납득합니다.
-사냥놀이.. 응. 생각해보니까. 다솜 지역은 내가 최종포식자에 가까우니까... 아마도 안정적이려나. 라고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괜찮다니 다행이네- 라고 말하다가 잡아먹거나 그러지라는 걱정을 듣고는 살짝 날개를 퍼덕이고는.(그 행동 때문에 바람이 좀 불었다)
-살살 건드리려고 노력하는데. 순간 놀라서 치는 것을 조절하긴 너무 어렵더라고. -일단 노력중. 우제목 신 한 명의 척추를 반으로 동강낼 뻔한 뒤로는 신통술로 내려앉고 뜨고 있어. 라고 덤덤하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사의 입장에서는 가벼운 날개짓일지도 모르겠다만, 그 날개짓이 일으킨 칼바람에 균형을 잃을 뻔한 세설은 날개를 퍼덕여 겨우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건 폭력이다. 코끼리 앞에 선 쥐마냥 차이가 엄청나서 인지도 모르지만, 더 조심성이 없었다간 정말 생명에도 위협이 갈것 같은 느낌이다.
ㅡ일단... 몸 크기를 좀 줄여서 다니는 편이 좋을 것 같군. 지금 그 사이즈 자체가 민폐적이야...
결국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지적한 다음엔 한숨을 내쉰다. 실제로 한숨이라기엔 그저 텔레파시일 뿐이였지만. 총총, 뛰는 듯이 자리를 옮겨 가지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ㅡ그래도 커지든, 작아지든 불편한 것이 한두개가 아닌 것 같네. 어떻게든 잘 버티면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묘하게 투덜대는 투가 전해질 듯 하였다. 그렇게 말하는 세설의 본 모습인 까치도 따지자면 소동물에 들어갔으니. 그럼에도 독수리나 매 따위의 새들에 대응하여 높은 지능과 특유의 포악함으로 살아남아 왔었나.
ㅡ전례가 있던 일이야. 다만 자세한 기간까지는 잘 모를 뿐이지... 그저 언젠가 돌아온다. 알게 된 건 거기까지.
은호나 누리같은 고위신들도 예외는 아니였었고... 아마 다른 어떤 신이 내린 저주 같은 것은 아니였을터였다.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현상? 사실 알 바는 못되었다. 단서를 확실히 짚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였을 뿐더러, 원흉을 찾더라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고 판단했었던 것도 있었지. 언젠가 돌아온다는 믿음만으로도 충분하다.
ㅡ적당히 일주일... 그 이상이면 정말 혼란밖에 없을테니까.
부리로 날개깃을 정리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돌아올때까지 동물의 본능적인 것에 먹히지만 않으면 좋으련만.
-흐응... 그건 그렇겠지.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는 않지만. 투덜대는 듯한 어조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차이가 나는 거라서 모르는 걸 굳이 안다고 거짓말하지는 않으니까요. 이럴 수도 있다. 의 역지사지 정신은 있는 게 다행입니다.
-전례.. 응응.. 있었다니 다행이네. 아예 처음이었으면 더 혼란스러웠겠지만. 이라고 덧붙입니다.
-아 그런가. 확실히 일주일 이상이면 정말 누른 불만이 터져도 할 말이 없을지도. 동물의 본능에서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지만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야 하는 법. 그 외에는.. 인간계로 가지 말 것 정도? 분명 나갔다가는 괴생명체 발견으로 포획되어버릴지도. 란 생각이 듭니다. 라는 게 텔레파시와 살짝 혼재된 듯한 느낌입니다.
-조심성이 많이 없었으려나? 그렇습니다. 많이 없었어요.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릴 리가 없는 성정이라사 그런지. 고개를 잠깐 갸웃거리기만 하고, 그러려고 생각할게. 라고 얌전히 받아들입니다.
-아. 전달되었나..? -응. 뒤집어질거야. 일단 인간을 잡아먹을 수 있는 새라는 점도 있고... 멸종했으니까 그런 걸지도? 라는 말은 왠지 말투에서 느껴지는 묘한 웃음기..가 보일지도?
-고대의 새가 등장한 것만으로 곤란해지진 않을 거야? -그건 그렇다고 해도 굳이 내려갈 일은 많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라고 말합니다. 아사는 인간 쪽에도 꽤 오랫동안 돌아다닌(일 년에 한달쯤이라고 해도 그게 백년이면 백달이니. 적은 건 아니겠지요) 경험이 있긴 했지요. 선득한 미소를 느낀 듯하지만 태도는 그리 변하지는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