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류 하현. 딱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뚝뚝하고,재미 없고,과거사 어두울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그것과는 별개로 이 남자가 수술 받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유감스럽게도 근시일 내로는 그 반응을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서,까놓고 말하자면 이 류 하현이라는 남자와는 별로 엮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오늘 이런 사람이랑도 엮일 일이 생겼다. 건강검진 결과를 봐주는 일 말이다.
나는 내 책상 앞에 앉아있는 류 하현이라는 남자를 보고,책상 위에 있는 진단서를 쓱 훑어봤다. 뭐 별거 없는 모양이다. 나이도 아직 젊고,어디 내장 상한 것도 없고,귀나 눈도 멀쩡하고,이빨도 멀쩡...한가? 사랑니때문에 아파도 말 안할것 같은 양반인데. 이양반.
"류 하현씨,건강검진 결과 봤는데 별 이상 없슴다. 뭐,예전에 몸 험하게 쓰셨던거 같은데 별 이상 없어서 다행입니다요."
나는 그렇게 말한뒤 진단실 냉장고에서 바나나 우유를 꺼내 책상위에 탁 소리 나게 올려두고,빨대를 팍 소리 나게 꽂은 뒤 류 하현에게 말한다.
"혈액검사 하려고 피 뽑으셨죠? 포도당 보충하게 이거 마셔요. 거절 하지 말고,피 흘린데는 이게 최고입니다."
"그래도 꽤나 멋지잖아? 능력자들이 이렇게 많은 시대인데 아슬란씨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처럼 없던걸?"
파커는 도시락을 와구와구 먹으면서 말하였다. 능력이란거 자체가 그냥 사람들에게 당연시 있으니깐 말이다. 머나먼 옛적에는 능력조차 없던 사람들도 있었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하여간,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들을 당연시 느끼며 그냥저냥 지나가는데 아슬란씨처럼 뭐라도 해보겠다는 마음가짐이 좋다고 파커는 느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딱히 비밀에 대해 안 물어보네~ 배려심이 넘치네"
의외로 비밀이라던가 자아 찾기 같은 부분에서 트집 잡지 않는 것으로 이 사람들은 충분히 좋은 사람들임을 알수있었다.
"맞아, 비밀이니깐 말이지. 남들에게는 절대 말 못하는 그런 비밀이니깐 말이지. 아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하니깐 카미유씨도 아슬란씨도 하나 씩 가지고 있는 것이려나? 내가 말하기는 그렇지만 궁금한걸~ 뭐, 말 안한다면 딱히 상관없지 응응! 지금 중요한건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어갔단 것과 맛있는 밥이 있었다는거지!"
그는 언제나 생각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왜, 모두 이상한 사람들인가? 자신의 기준에서 한참벗어난 이 남자를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무언가를 가득가득 담아놓은 듯 약간 부풀어 오른 의사 가운과 더벅거리다 못해 산발 그 자체의 머리. 어떤이가 보아도 절대 의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남자였다. 물론 그에게 있어 상식적인 일은 최근까지 없었지만.
그는 남자가 건네준 바나나 우유를 집어 조금 마시기 시작했다. 싸구려 착색료의 맛과 설탕을 가득 넣은 우유. 물론 그 맛에 먹는다고는 하지만 그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먹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그는 우유를 꿀꺽하고 삼켰다. 뭔가 비릿한 느낌이 싫었지만 대놓고 싫어할 수는 없었기에 한 번 조용히 한숨 쉴 뿐이었다.
"다행이군. 아직 살아서 움직이도 있는것도."
그는 목을 조금 움직여 보았다. 확실히 그에게는 이상이 없었다. 단순히 목이 뻐근한 것인가 싶어 다시 움직여보았다.
"뭐,고쳐주긴 할거지만 그런 마음가짐은 좋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고쳐 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거든요. 저는 발기부전도 탈모도 치료 못해주고,연골이 닳으면 고급 클리닉 가서 치료 받아야 하고...화상 입어서 피부조직 싹 날아간거 재생시키는건 진짜 몇년 잡아야 하거든요. 당신도,머리에 불붙어서 피부 싹 타버려서 탈모 온다면 무섭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 생기지 않게 조심해야죠."
맞아 맞아. 현실은 포켓몬이 아니에요,내가 어지간한건 다 치료 해줄 수 있지만 어디 팔 다리 하나씩 날아간건 진짜 다른 전문 병원 가서 몇달씩 치료 받게 해야하고. 나도 신경외과 전공이라 치과나 호흡기쪽은 잘 수술 못해주고. 그러니까 몸을 막 굴리지는 말라구요.
그렇게 몸 막굴리다가 진짜 치료도 못받을지경으로 몸이 아작나면 내가 사장한테 갈굼당합니다. 그게 아니라도 누구 한명 몸이 아작나는거 보는게 딱히 유쾌하진 않고.
"힘든 일이 많이 있었나보네요,나이 스물 다섯쯤 되는거 같은데 벌써 그렇게 몸 험하게 굴릴 생각 하고. ...뭐,나이 사십 다 되가는 꼰대가 하는 말이니까 무시해도 상관은 없는데. 몸을 좀 소중히 하고,평상시엔 재미있게 사는게 좋습니다. 왜냐구요? 몸을 소중히 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고,평상시에 재미있게 살지 못하면 목표를 이뤄도 허무함에 빠져서 미쳐버리거든요. 평상시에 웃는 연습을 하고,재밌는 게임도 하고 맛난 것도 먹고 예쁜 여자...아니면 남자도 만나고. 그래보십쇼."
나는 그렇게 말한뒤 류 하현이 다 마신 바나나 우유통을 집어들고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바나나 우유는 쓰레기통 근처로 날아가 들어가나 싶더니,이번에도 골인에 실패했다.
그는 어릴때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아버지는 머리숱이 너무 많아 걱정이었을 뿐더러 자신이 본 친인척들 또한 모두 길었으니.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머리가 빠지면 꽤 볼썽사나울 것이기에.
"나는 즐거움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아직도 즐겁다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 어렴풋이 느낄 뿐. 그리고, 남자에게 성욕을 느끼는 경우도 있나. 그건 처음 알게된 사실이군."
그는 어렸을 때 부터 감정의 절제와 임무에 필요한 감정만을 주입받아왔으니, 배우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흔히말하는 동성애라는 것 또한 알 수 없었다. 우정이나 동료애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동성애라는 것인가 라고도 생각해봤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솔직하게 흥미는 없다. 아직까지는."
그는 그림자를 뻗어 다 먹은 바나나 우유통을 찍었다. 그다음 슬금슬금 쓰레기통을 타고 올라가 턱하고 집어놓았다. 그의 그곳을 보지도 않고 말을 이었다.
"즐겁다.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다못해 곤충도 쾌락을 추구하잖습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림자를 뻗어 바나나 우유를 쓰레기통에 던져넣는 류 하현을 보았다. 이야,역시 저런 능력이 있으면 편하구만,나도 이런 능력 말고 저렇게 멋있고 쓸모 있는 능력 갖고 있었으면...아냐,벌이가 지금보단 시원찮았을지도?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을 듣는다. 내 목표가 뭐냐고? 별거 없는데.
"저는 죽기 직전까지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고 죽는게 목표입니다. 지금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충실히 노력중이구요. 게임도 실컷 하고,먹고 싶은거 잔뜩 먹고,마약도 예전엔 했는데 이젠 끊었고...그건 할게 못되더라구요. 몸을 너무 아작내서."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키득키득 웃는다. 그리고 나는 되묻는다.
"당신같은 사람은 보통 달성해야할 목표가 있어서 그거 하나 보고 살더라구요,당신도 그렇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복수를 위해서 사는겁니까? 아니면 부귀영화?"
그의 가문은 필연적으로 적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암살을 업으로 삼는 집안이라면 더더욱. 그의 가문은 언제나 투쟁의 연속이었다. 악은 악으로 상대한다는 가문의 방침에 따라 서로 속이고 배신하고를 반복했다. 그 중에서 가장 악질이었던 것은 마약범들과의 관계였다. 약을 파는 주제에 손도 대지 않던 정보원에게 몇 방 넣어주면 금단증상으로 술술 불어버리는 꼴은 측은하고 역겨웠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천천히 떴다. 과거의 일을 생각하면 칠흑 그 자체였다. 언제나 어둡고 매마르고 감정따윈 없는 창살 없는 감옥. 게다가 그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압박감과 기대감.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그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들었다. 간단했다. 복수와 생존. 그에게는 두 가지 밖에 없었다. 아니. 한가지 더 있지만,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아두기로했다.
"복수? 그것도 좋지. 이런 비루한 목숨을 연장시키는 것도 좋고."
그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차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꽤 불쾌했다. 물론 의료기록에는 정확한 이름이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성은 가문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연결고리였고 굴레였다. 그는 연필꽃이에 꽃혀있던 펜을 꺼내 자신의 성에 두 줄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