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건대 내 과거를 비추어보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에서 오랜 시간동안 살아 남을수록 다채로운 능력을 채득하고, 원초적인 기준에서 이를 활용하는 식의 보다 고차원적인 용법을 이해하게 된다. 빈민굴에서 악의나 사고 따위의 불미스러운 종착을 피해감이란, 때로는 아양과 겁박 따위의 필연적으로 자신에게 흠을 낼 수 밖에 없는 있었다만 상시 몸의 골격과 같이 근간을 이루는 기술이란 직관 그 자체였다. 흔히 육감이나 눈썰미로 불리우는 그런 류, 이 때에 그것을 통해 상대로 보노라면 눈 앞의 이 자....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그 말을 듣노라니 본인께서는 꼭 큰 탑과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거기다 솔직히 그 정도 기름칠이라면 기름 부음을 받는 것과 같지 않나..."
머쓱히 웃어보였다. 탑이란 말은, 웅대한 기둥을 빗대어 표현한 언사였다. 두 이미지가 결국 유사한 속성을 지니기는 한다만 결과적으로는 장대함, 굳셈 등지를 표현하고 싶었으므로.
그가 자세를 바로 세워 정면을 응시해오자, 마침 나도 그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더라. 눈을 똑바로 바라볼 상황은 아니었으나 대강 살핀 바로는 숱한 흉터나 침잠한 반대쪽 눈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는데, 서로 비대칭인 눈이라 하니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원인이야 다를테지만.
"엄.... 뭐가요? 여기 시설? 저도 동감해요."
처음에 아슬란은, 그가 자신을 주시하며 그런 말을 하였는가 싶어서 헬스장이라는 장소를 연상해 슬쩍 제 자신의 체구를 훑었는데 곧바로 의도가 그런게 아니었으리라 생각을 수정하며 자연스레 눈길을 좌우의 기구로 옮겼다. 그 시설로 말하자면은, 눈 앞의 상대가 철봉에 손자국을 새기기까지 했다만.
"탑이 아무리 높고 튼튼한다 한들 만년을 가지못하고, 기름을 너무 붓는다면 과함만이 될 뿐이죠."
엘리고스는 생각했다. 군에서 최연소이긴 했으나 대령까지 지내본 그로서는 지금 자신 앞에 있는 이 남성이 절대로 범상치 않은 이라는 것을 말이다. 군인 특유의 노련함, 그리고 상황 판단 감각은 그에게 지금 눈앞의 남성이 절대로 평범치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고, 그 격식에 따라 자신도 대우해주고 있었다. 나이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 격식에 있어서는 아무런 흠도 내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렇게 예의를 차리고 또 소통이 된다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동문서답 같은 말에 그는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차가운 물을 한모금 들이키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하하하, 아닙니다. 지금 제가 지칭한 건 바로 눈앞에 있는 당신입니다. 내 최근 2년간 만나본 이들 중에 양손에 꼽을 정도로 일품입니다."
이미 주변인들의 시선은 자신들에게서 떠났다. 그리고서야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이고서는 천천히 입을 연다.
"엘리고스라고 합니다. 늦게 소개 드린데에 대한 결례를 용서해주시지요.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혹시 성함이....?"
이름을 묻는 엘리고스, 허나 그곳에는 비굴함도, 또 굽신거림도 없었다. 어느정도 같은 부류라 인지가 된 것인지는 몰라도 예의는 차리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의일뿐, 이미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리라.
자의식 과잉이라고 여겼던 언행이 실제로 자신을 지칭하였더라니 그야말로 기분이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기실 무엇을 단서로 하여 저 자신에게 그런 찬사를 보내나 묻고싶은 마음도 더러 있었지만, 상대가 그저 속속들이 여러 말을 내비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하는 듯 보이기도 해서 관두었다.
"무얼, 결례라고까지 하시나요. 그렇게 따진다면 초면에 소개를 놓친 제 잘못인걸요. 전 아슬란이라고 합니다. 엘리고씨. 그보다도, 말씀을 놓으세요. 제가 공경을 차려야 할 판에..."
척 봐도 상대는 자기보다도 연륜이 들어보이는 풍채였는데, 그런 사람이 여즉 점잖은 어투로 말을 받아주고 있음이 적잖이 신경이 쓰이던 상황이었다.
"흠흠, 그럼 말을 놓겠네. 하지만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있으니 과하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고."
그는 그렇게 물을 마시며 흡족하게 웃음을 지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사내다. 만약 군 시절에 이런 사내가 한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자신이 군에서 나올때 미련을 두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이미 모두 예전의 일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가져온 물병중 아직 차가운 물병을 그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마시게나. 요즘 날씨가 더워서 쉬이 지치니 말일세."
그리고서는 그는 손을 들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다. 그가 본 인상이 어느정도 맞았다. 그는 사자다. 하지만 그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우리에 갇혀서 그 기량을 제대로 보이지 못하는 남자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뭔가를 보이고 안 보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지. 나는 자네를 보았고, 첫 인상으로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36세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을 마주하며 느낀 것을 말한것 뿐이지."
그리고서는 목이 탔는지 물을 마시고서는 천천히 입을 연다.
"간혹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것이 깨닫지 못할 때가 있지. 그러나 그 구속을 풀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개척해 나갈수 있지. 자넨 나와 달라. 내가 자네를 처음 봤지만, 분명히 느낄수 있네. 자네는 크게 될 그릇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