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H,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다. ...세상물정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 쯤 들어본 적이 있는 기업의 이름. 말하는 어감으로 봐서는 그들과 관련이 깊고, 심지어는 혈연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얼떨결에 듣고 만다. 놀라야 하는걸까? 그리 동요하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실례니까. ...내 앞에서 그런 비밀을 꺼낸 것도, 이런 무반응을 기대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러나 서장이 저의 과거에 대해 언급하자마자 등골에 서늘한 감각이 스치운다. 다른 이가 보기에도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하며. 입술을 벌리면 쇳소리가 새어나와 잠시 뻐금거리다, 불안정하게나마 나오는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도대체 어디까지..."
아니야,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잖아? 질문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으로 입 부근을 쓸었다. ...그가 알고 있는 영역이라고 해봤자, 어디까지나 붕괴 사고에 휘말렸고, 그 사고에 대한 기록에 대한 것 정도일터이다. 애초에, 저의 과거에 대한 것은 조금 더 파고들어간다면 금방 알수 있는 것이였다. ...의심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던 생각이 센하 덕분에 확정이 됐을 뿐.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믿을 수 있는 이...라, 신빙성은 없군요."
그저 자조적으로 중얼거릴 뿐이였다. 불과 7살때 이긴 했지만, 과거에 이미 폭주한 전력이 있었다. 그리고 6년 뒤 붕괴 사고의 진원지에서, 내가 구조되었었고, 익스파 반응도 검출. 애석하게도 모든 증거들은 나를 범인이라고 가리키고 있었더랜다. 그리고... 내 기억 마저도.
로제 블랑쉬, 메이비 프레스티, 이지현, 천유혜, 아키오토 센하... 그들의 과거에 있었던 악연들을, 마치 일부러라는 듯이 등장시킨 흑막들이 RRF였다는 것과 서장으로서 그들의 과거를 잘 알 수밖에 없었던 강이준이 지속적으로 RRF단과 내통하고 있었다는 것. ...여기서 나오는 정보는,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는 것이였다.
"...그럴싸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피해가고 있는 말이 있네요. 혹시 말입니다. ...이전 사건의 그 범인들, 대원들과의 악연이 있었던 이들 말이죠. 의도적으로 내보낸 것... 맞습니까?"
과연,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불법이 아닌 방향으로, 서하가 요원이라는 점을 나름 이용해서 쉬이 대원들의 정보를 얻어낸 모양이고 그중에는 당연히 자신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젠장. 센하는 눈꺼풀을 반쯤 내리며 작게 혀를 찼다.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거였으면 일부러 코미키 라이무에게서 협조를 얻은 의미가 없어진다. 안 그래도 그 인간, 일본에서 그 일을 끊임없이 거들먹거리고 그랬는데. <clr linen 분명 이쪽으로 찾아왔을텐데 조금 짜증이 나는 기분이다.</clr>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불법적 루트를 택해, 호시야마 나츠미처럼 완벽하게 신분 세탁했을 걸 그랬다. 허공이란 이름의 냇물을 소리소문없이 떠내려가는 무게없는 생각이었다.
이준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화제에 따라 자연스레 시선은 권주에게로 살짝 돌려졌다. 허어. 무감각한 탄성을 감흥없이 떨어뜨리며 눈을 가느다랗게 뜬다. 과거야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이고, 어둠도 존재하는 법이지만, 이준의 말에 권주가 반응하는 모습이 너무도 어색하였다. 적어도 센하의 눈에는 그리 비추어졌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텀이 길고, 심지어는 끊어지는 단어도 존재한다는 사실로 그렇게 여겼다. 무언가 크게 걸리는 게 있구나, 라는 당연한 사고 사이로 '그런데 괴로워봤자 얼마나 괴롭겠어'라는 심각히 뒤틀린 생각이 거칠게 틈을 비집고 나왔다. 무참한 과거로 미래까지 비관하는 자는, 그런 식으로도 안일하게 남을 깔볼 수 있었다. 무례함을 넘어섰다.
권주가 꺼냈던 말 중 하나를 곱씹어보았다. 믿을 수 있는 이, 라. 갑자기 작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타인을 믿지 않는 인간을 믿었다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ㅡ그 외에 더 질문 있나?
이준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태연한 사람이다. 그 말을 출발신호로 권주가 먼저 질문을 했다. 대원들과 악연을 가지고 있었던 일을 일부러 내보낸 것이 맞느냐고, 그렇게 물어본다. 그리고 연이은 질문. 어재서 그렇게까지 했어햐 한 것이냐, 란다. 그가 말을 맺자마자 터져나온 실소는 센하가 지은 것이었다. 감정에 호소하는 질문인가. 저 뻔뻔한 범죄자에게 굳이 한탄과 구별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하나. 도대체 무얼 바라고 그러는 것인지.
멸시에 가까운 시선을 권주로부터 거두고 센하는 다시 이준을 바라보았다. 아까 했던 질문은 흐름에 따른 첫 번째 질문이었다. 이제 할 두 번째 질문은 조금 더 의문의 핵심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로써, 센하가 얼마나 자기주의적인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야, 질문들이 모두 자기와 관련되었으니까.
"난 작전 도중에 종종 위험한 행동도 많이 했다고 기억해요. 대표적으로 권찬기 사건 때 분진 폭발을 일으킬 뻔한 일이죠. 펑, 이렇게 화려하게."
'펑'이라 말하는 부분이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처럼 느껴진다.
"뭐, 그 전에도 여러모로 위험해 보였을 거라 생각하지만ㅡ내 실수죠. 당시의 나였다면 더욱 철저하게 연기하고 싶었을 텐데.ㅡ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나를 한 번도 직접 제지하지 않았어요. 권찬기 사건 때는 CPH를 굳이 언급하면서, 일부러 화를 부추키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습니다."
하하, 자조적인 웃음을 잠깐 지었다.
"그 때 당신은 암시로 인해 과거의 기억이 지워진 상태였겠죠. 잘난 정의감으로 가득차 있을 적이었을 게 분명한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대응한 거죠?"
아까 그가 비웃었던 감정호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득, 순전히 그것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일단 나에게 온 질문은 총 2개였다. 꽤나 따로따로인 느낌의 그 질문은 굳이 따지고 보면 사실 하나에 가까웠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인가. 이것은 둘 다 묶어서 대답을 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기에... 우선 나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말을 하기로 했다.
우선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주 군이었다. 주 군의 질문은 요약하면 왜 악연이 있는 이들을 보내야 했고,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아했냐...라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일단 확실하게 하도록 하지. 그것에 대해서 조사하고 행동을 나선 것은 전 요원인 '감마'이네. 나는 그에 관여한 바가 없어. 요원이라면 누구나 조사를 할 수 있는 법이지. 그리고 감마가 그렇게 한 것은 자네들을 직접 제거하기 위함이었지. 자네들의 존재가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차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꼈으니까 말이야."
이것이 바로 진실이다. 적어도 난 그것에 대해서 관여한 바가 없다. 아무리 나에게 따진다고 한들 그 답이 변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어 나는 고개를 돌려 센하 군을 바라보았다. 센하 군의 질문은 정의감으로 가득 차 있을 자신이 왜 직접 제지하지 않고, 화를 부추키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느냐, 무슨 목적으로 대응을 한 것이냐..였다. 그것에 대한 내 답은 간단했다.
"...그때의 자네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별 거 없네. 스스로 선택을 하길 바랬네. 경찰로서의 자세를 지키던, 아니면 그것을 저버리던... 내가 선택을 하게 할 수 있겠나. 결국 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자네들이네. 덧붙여서... 그때의 일 말이다만, 나는 그 자리에 있었네. 좀 더 안 쪽이었지만 말일세. 만약 자네가 거기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려고 했다면 나는 개입했겠지. 아. 이건 진짜일세. 이후에, 그 사람의 묘지를 보러 갔었지만 말이야." (사이드 스토리를 참고해주세요)
이어 나는 두 사람을 동시에 바라보면서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R.R.F는 자네들이 그 시점부터 눈에 거슬렸기에 제거를 하려고 일부로 그렇게 끌고 온 것이었네. 자네들의 냉정함을 파괴하고, 자네들이 경찰로서 파멸하게 하기 위해서 말일세. ...하지만 자의건 타의건...자네들은 경찰로서의 자세를 지켰지. 그리고 나는 자네들에게 선택지를 준 것 뿐이네. 단순히 그 뿐의 일.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나? 그렇다면 미안하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