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그 때문은 아니지만 이른 시간에 눈을 뜨고 만 센하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뒤척이다가 비빈 눈으로 휴대폰의 '3시 11분'을 확인하며 작게 혀를 찼다. 하나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아 머지 않은 곳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었다. 아래서 붉거나 퍼런 불이 번쩍번쩍거리는 걸 봐선 수사를 위해 경찰이 이미 출동한 거다. 분명 갑작스럽게 호출되었겠지, 불쌍한 녀석들. 센하는 냉소적인 동정심을 갖다가 뭉친 어깨를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금 충동적인 행동, 그러나 목적은 확실했다. 한번 가볼 생각이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저 일은 내가 아니라 저기 출동된 팀이 담당하는 것이다마는 정확히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만 할 것 같았다.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도 적잖이 한 몫 하였다. 그 날은 비번이었지만 구태여 경찰복을 챙겨 입고 부스스한 꼴을 대충 정리한 뒤 저벅저벅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면 진화 작업이 이미 끝난 것은 센하에게 있어선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여러모로.
***
"저, 누구신지..."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 소속 아키오토 센하 경정입니다. 불이 났길래 와봤어요." "어, 그건 지금 저희 팀이 수사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어요."
딱 봐도 신참으로 보이는 순경은 주름진 얼굴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한편으론 그 얼굴에 '이 새파란 자식은 어떻게 경정까지 올라갔대?'라는 듯한 의심과 경외의 기색도 비추어내면서 순경은 졸린 두 눈을 끔벅거렸다. 센하는 그 모습을 무감각한 무표정으로 대충 살피다가, 찝찝한 구석이 있으니 사건의 내용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일부러 신경 썼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예의를 차린 말투에 누그러진 듯한 순경이ㅡ아니면 그저 경정이라는 높은 계급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ㅡ다른 경찰에게 부탁해 얻은 파일을 어서 뒤적거렸다.
"음, 보시다시피 저 건물은 5층 빌라로...최근 빈 집이 많아진 상태입니다. 205호도 그런 집 중 하나인데, 저어, 목격자의 진술까지 합치면 그곳에서 12시경부터 화재가 시작되었습니다." "흐음."
센하는 빌라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순경이 설명을 이어갔다.
"발화 지점은 특이하게도 그...거실의 중앙이었습니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일 가능성이 큰 거네요." "네...출입하려면 열쇠가 필요한데 굳이 거기로 가서 불장난을 칠 필요가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여러 사항을 고려하면 이상하게도 그 가능성이 제일 높아집니다. 아니, 그, 다른 가능성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저희 팀의 견해입니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그, 발화 지점에 누워 있던 새까맣게 탄 시체 때문입니다." "시체요?"
센하가 조금 당황하며 되묻자 순경은 표정을 찌푸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체를 향한 순수한 불쾌감이 슬픈 얼굴 위로 올라와있었다. 순경이 종이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갔지만 센하는 집중하지 않았다. 무례한 줄은 안다. 아무리 센하가 올곧은 사람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행동은 결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금 벙한 느낌이었다. 새까만 하늘 아래에서 경찰들이 서로에게 소리치며 바삐 움직였다. 빌라의 입구에서 두 명이 들것을 날랐다. 손과 팔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흰 천 아래로 무언가의 희미한 형태가 보였고 그 형태를 따라 천의 바깥쪽에는 손 같이 보이는 검은색 덩어리가 늘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센하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그저 시체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을 뿐이고, 시체란 건 내가 어렸을 적에도 보았고 형사과에서 일하면서도 질리도록 봐온 것이다. 묘하리만큼 이상한 기분에 휩싸일 이유는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센하는 지금 창백해진 얼굴로 눈을 어렵사리 감았다 뜨는 것인가. 도대체 왜.
"...손 근처에 떨어진, 어, 초록색 라이터도 그가 범인으로 가장 유력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네."
맙소사. 순간적으로 숨을 삼켰다. 순경은 파일에 집중하느라 센하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센하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계속해주세요." "네에, 사망자는 이번 사건의 유일한 사상자인데, 저기, 거주자 목록을 확인해보니 대피한 인원 수가 들어맞는 것으로 보아 외부인입니다.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부분부분 용케도 타지 않은 부분이 존재해서, 어, 그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순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센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방금 보았던 들것이 아직 있음을 확인하더니 그곳에 계속 시선을 고정한 채, 어딘가 멀찍이 바라보는 듯한 빛바랜 시선을 고정한채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하윤을 바라보면서 서하는 크게 키득거리면서 웃기 시작했다.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비웃음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이어 그는 차가운 목소리를 내면서 그들에게 말을 전달했다. 그 목소리는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갑고 또 차가운 목소리였다.
"...당신들도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서, 왜 저는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죠? ...아아..귀찮게 설명하긴 싫은데. ...뭐, 간단하게 갈게요. 익스퍼 보안 유지부 소속. 최서하. 처음부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그 목적 때문에 이곳에 온 거예요. 전. ...이해가 되나요?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그렇게 경계하던 것이 바로 저라는 이야기죠."
귀찮다는 듯이 나른하게 이야기하면서 그는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A.E 소총이 그의 손에 전송되었고 그는 그것을 잡았다. 그리고 총구를 아롱범 팀 멤버들을 향해 겨누었다.
"...귀찮으니까 전투는 싫지만, 이것도 이쪽이 맡은 임무에요. 다들 쓰러져줘야겠어요. 원한은 없지만 일이니까... ...그러니까, 전력으로 상대하겠습니다. 귀찮은 것은 접어두도록 하고요. 오버 익스파..! 논 이스케이프 존!"
이어 그를 중심으로 투명한 막이 주변에 설치되었다. 논 익스케이프 존. 그것은 그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이어 그는 손가락을 퉁겨서 자신의 주변에 두꺼운 철벽 장막을 여러개 전송시켰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식 웃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그 위에 반사망이 달려있는 드론이 공중에 전송되었다. 이어 그는 그곳을 향해서 A.E 소총을 발사했다.
그러자 A.E 소총에서 발사된 검붉은 빛은 반사망에 맞아서 반사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비와 같은 검붉은 빛이었다. 뒤이어 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이에요. 이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이어 손가락이 퉁기는 소리가 또 다시 들려왔다. 뒤이어 공간 너머 여기저기에서 차량이 세로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확실하게 아롱범 팀을 노리는 공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