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그저 밝게 웃어보이면서 버릇대로 말끝을 늘이는 동시에 약간 흐렸다. 익스레이버의 이름을 걸고, 라니 세나에게는 그저 소년탐정 김전일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의 패러디로만 보였다. 그나저나 하윤은 드라마에서 연기를 할 때처럼 움직임과 멈춤이 그럴싸하게 섞인 절도 있는 동작으로 자세를 잡으면서 말했다. 간혹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동화되기도 한다고들 하는데 이것도 그런 류일까. 아무튼 능글거리는 웃음기를 품으면서 하윤이 이쪽으로 계속 보내는 수상한 눈빛에 당황하지 않고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했다.
"그건 명탐정 코난...아무튼~ 그렇다면 나중에 저도 솔직해지기를 바라죠~"
퍽 느긋한 모습이 이런 대화에 꽤나 능숙해보였다. 세나는 하윤의 질문 뒤로 이어진 말에 대해 "아, 그리고 예쁜 사랑하세요 역시~"라고 어딘가 어른스러운(어른 맞지만) 흐뭇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을 건넸다. 하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는 모두 알겠다. 연애관계가 꼬이거나 하는 복잡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일 터다.
윙크가 보이더니 척 올린 엄지가 이어서 보인다.
"하윤 씨도요~ 그동안 본편 찍으면서 즐거웠어요~ 아, 얼마 안 가면 아키오토 센하와도 작별이겠네요."
"아앗! 그런 말을 들으려고 하는 거 아니란 말이에요! 물론 예쁜 사랑할 거지만요! 정말로 예쁜 사랑 해서, 다음에도 꼭 커플역으로 촬영할 거지만요! 물론 제가 좀 더 경험이 쌓아야 서하 씨와 같이 연기도 하고 그럴텐데..정말 이번엔 운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네요."
생각해보면 서하 씨는 정말로 유명한 국내 스타지만, 나는 이제 막 데뷔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인 배우다. 물론 사귀는 것은 이전부터 사귀긴 했지만...그럼에도 뭔가 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나 같은 신인 배우가 이렇게 유명한 배우들과 함께 촬영을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말로 이번 촬영은 나에게 있어서 운이 좋았고, 배운 것도 많은 일이었다.
이어 나는 세나 씨를 바라보았다. 차분한 분위기로 아쉽다고 말하는 그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키오토 센하. 정말 여러모로 엄청난 캐릭터였다. 솔직히 일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조마조마했었으니까. 아무래도 모든 캐릭터의 대본을 다 보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캐릭터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단체 촬영이 아니면 잘 모르기도 하고...
"후훗. 다음에 세나 씨와 또 촬영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건 큰 욕심일까요?"
괜히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장난스럽게 웃었고, 이어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그리고 세나 씨에게 내밀었다.
"그런 고로 초콜릿 드실래요? 저는 '하윤이'처럼 초콜릿을 엄청 좋아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물론 달콤해서 좋아하지만.. 작 중 '하윤이'는 솔직히 중독 수준이에요. 그 정도로 먹는 거 고역이라구요. 이제 이것도 끝! 세나 씨는 어때요?"
컷, 하는 소리와 함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유지하던 얼굴이 헤실 풀어진다. 주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까지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그 모습에선 방금 전, 카메라에 잡히고 있던 '권 주'라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여기저기 활발하게 촬영장을 누비던 주원은 저에게 인사를 건네는 지은에게도 해맑게 웃음을 지어보인다.
"앗, 지은 씨. 수고하셨어요! 그러네요... 덥긴 하네요."
이제 여름이 다 된것 같아요- 날씨가 더워져도 설정상 폴라티를 계속 입고 있어야한다니, 분명 이 캐릭터는 열사병으로 쓰러져 본적 있을거야. 뻘한 생각은 하며 목 부분을 팔랑팔랑 흔든다. 문득 짜증으로 가득 차있는 지은의 표정을 살피며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배우들을 위해 한 켠에 마련된 아이스박스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튀어나가더니, 한손에 주스, 한손에 캔커피를 들고 물어본다.
"실제 연인과 함께 연인 역으로 촬영하는 건 드문 일인데...덕분에 희귀한 구경했네요~ 아, 그리고 어쩌면 그건 운 덕만은 아닐지 몰라요~"
빙긋 웃어보이며 태연하게 한 말이었지만 그냥 한 소리나 농담처럼은 딱히 들리지 않았다. 뭐, 배우가 자신의 실제 연인ㅡ마찬가지로 배우일 때ㅡ과 함께 촬영을 하는 일은 없지 않지만, 함께 연인 역할로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 그야 감독 머릿속에 각 캐릭터의 설정이 들어있는데, 현실에서 연인이란 이유로 작품에서도 그렇게 해주는 일은 힘드니 말이다. 단순히 엑스트라마냥 연인의 시늉만 해주면 그만이라면 모르겠지만.
"앗, 우연이네요~ 저도 다음에 또 하윤 씨와 촬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여전히 서글서글한 웃음을 끊지 않으며 말하는 모습이 역시도 넉살 좋은 사람이다. 본래 빈말을 하지 않기로 알려진 배우이니만큼 하윤과 함께 촬영하고 싶단 말도 절대로 그냥 한 소리는 아니리라. 딱히 경력으로 사람에게 고정관념을 박아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하윤에 대해 같은 배우의 입장에서 대단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아까까지 의자에 앉고 있었던 몸을 일으켜세웠더니 하윤의 장난스러운 웃음 뒤로 초콜릿이 내밀어져왔다.
"저는 어떤 음식이든지 좋아해요~ 고마워요. 같이 먹어요~"
밝게 대답하며 내밀어져 온 초콜릿을 감사히 받았다. 포장지를 벗기지 않고 하윤을 응시하는 것이 먼저 먹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저에게 가까이 다가와 안아주니, 눈이 커다랗게 된다. 이내, 어색하게 팔을 들어 월하의 등허리를 감싼다. 미안해 하지말라고 해도, 그래도... 눈을 살짝 감았다. 이런 나라도 누군가의 의지가 될 수 있을까. 과거를 쳐다보지도 못해서 피하고 있는 내가? 조용히 숨을 고른다. 한결 편해진 호흡으로 말을 꺼냈다.
"...월하씨라면 들어줄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근데, 제가 준비가 안 됐었나봐요. 한심하네요."
초라했다. 초라한 마음가짐과 언행이였다. 실소를 흘리고선 감았던 눈을 반쯤 뜬다. 한걸음 떨어져서 월하의 양 팔을 잡았다.
"그래도... 들어줄 수 있나요?
586해치지 않아요 ㅠㅠㅠ 지은 - 너무 무서워 하지 마세요... 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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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1 (거의 끝나감) 01:04:04
아, 이미지 관리. 지은은 얼굴을 확 피면서 다시 발랄한 모습을 보였다. 실로, 굉장한 연기 실력이라 볼만하다. 어떻게 저렇게 극과 극으로 바뀔 수 있는지.
“주원씨는 힘들겠어요. 이 더운 날에 폴라티라니, 가발인 저는 축에도 못 끼네요.”
손 부채질을 열심히 하던 지은은 결국 자리에서 대본을 꺼내 손 대신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주원을 의문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다 주스를 받아든다.
“카페인은 몸에 안 좋으니까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엉거주춤 일어나 주스를 받아들고 감사의 인사를 남긴다. 아까의 짜증은 얼굴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보일 뿐 속으로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매니저를 마구 욕하고 있었다. 나참,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
나는 이 세계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매우 많다. 솔직히 서하 씨에게 물어도 서하 씨도 전부 알려주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찌되었건 마지막이긴 하지만, 정말로 마지막이긴 하지만 커플이 되었잖아? '서하'와 '하윤이'는? 그럼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촬영하면서 서하 씨에게 고백을 받을 때의 일도 떠올라서 나는 정말로 행복했었다. 촬영 중에 나온 미소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지은 미소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무튼 세나 씨에게 다음에 같이 촬영하고 싶다는 그 말을 들은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아 나는 미소를 지었고, 초콜릿을 같이 먹자는 세나 씨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배시시 웃었다.
"후훗. 좋아요! 그럼 같이 먹어요! 자...그럼!!"
이어 나는 능숙하게 포장지를 뜯었다. 촬영하면서 수도 없이 뜯은 포장지였기에 뜯는 것은 정말로 익숙했다. 이어 초콜릿을 반으로 똑 잘라서 그 중 절반을 세나 씨에게 내밀었다.
"자. 세나 씨 몫이에요! 아. 생각해봤는데 하윤이와 센하. 뭔가 비슷한 점이 많지 않아요? 저 촬영하면서 묘하게 소름 돋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정말로!"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이렇게 비슷할 수 있나...그런 생각을 하면서 놀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