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의 촬영이 끝났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고, 끝의 마무리 부분이라든지 외전이라든지 그런 나머지 것들을 찍어야 한다. 그것은 세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오늘도 외전의 일부를 찍은 참이다. 대본과 캐릭터 설정을 처음 받았을 때 그곳에 적힌 것도 그렇고, 지금 다시 곱씹어도 여러모로 어둡고 혼잡한 아키오토 센하의 나머지 이야기는 외전격이 되었다. 리부트를 막고 난 뒤 센하는 개인적인 일을 풀러 들어갔다. 오랜 원수인 코미키 집안과의 일, 말이지. 의자에 앉아 다시 대본을 복습하면서 세나는 이따금 시선을 옮겨 저 멀리서 서하와 하윤이 엔딩씬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았다. 작중 하윤이 서하와 유리의 묘지로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뒤 고백을 하여 연인이 되는 내용이었나, 떠올려보기도 하고.
컷, 오케이. 하는 감독의 소리가 울리고.
"무사히 끝났나 보네요~"
여유로운 혼잣말을 중얼여본다. 이제 대본의 종잇장도 소리에 대한 걱정없이 넘길 수 있겠다. 사람좋은 미소를 유지하며 세나는 대본의 위에 한 손가락을 얹어 글자를 따라갔다.
과연 끝이 있을까? 그런 촬영도 이것으로 끝이 났다. 이것으로서 나와 서하 씨의 분량은 완전히 끝이 났다. 이후에 또 불려와서 촬영을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정해진 것은 다 끝났기에 상당히 후련했다. 서하 씨와는 3년 전부터 사귀고 있던 사이였기에, 사실 참 애매한 느낌이긴 했다. 연인에게 고백을 한다는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대본에 있었으니 할 것은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내 캐릭터로서 연기를 마무리 지었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사실 마지막에 애드립으로 까치발을 들어 서하 씨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춰서 주변 스탭들이 조금 당황한 것 같지만 아무렴 어때. 내 남자인걸. 당당하게 웃으면서 나는 개운한 기분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러는 도중,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세나 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세나 씨. 구경왔나? 아니면 이후에 촬영이 있었나? 아무튼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후훗. 안녕하세요! 세나 씨! 세나 씨도 이후에 촬영이 있나요? 아니면 구경 왔나요? 어느 쪽이건... 무사히 끝난 정도가 아니죠. 이것으로서 제 분량은 끝났는걸요! 지금 얼마나 개운한지 모를 거예요. 1화부터 등장해서 분량도 은근히 있었고,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끝이 나서 완전 기분 좋거든요. 지금."
나와 서하 씨는 특성상 1화부터 등장했다. 물론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에선 그만큼 분량이 줄긴 했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나와 서하 씨의 분량은 늘어갔고, 특히 내 장면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솔직히 이건 나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말이야.
힘찬 목소리가 들려와서 세나는 곧바로 대본으로부터 시선을 들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 본편의 촬영을 모두 마친 하윤은 나중에 말도 그렇게 했다시피 기분이 여간 개운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고가 많았다. 배역의 경찰적 역할 특성상 1화부터 지금까지 계속 연기를 해왔고, 경찰을 떠나 배역 자체의 특성상 변화하는 감정이나 성장의 연기가 무척 중요했을테니. 그러고 보면 하윤은 신인이었다. 작중 강하윤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데 그 배역을 맡아 훌륭하게 연기하여서 상당한 호평을 받은 것은 대단한 일이다. 대박날 거라고 말해주더라도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닐 것이 틀림없다.
"저는...그렇네요~ 조금 이따가 다시 촬영에 들어가요."
처음 들려온 질문에 답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키오토 센하 역은 사실상 이 외전이 본편이나 다름없다보니 감독도 세나도 완성도에 신경을 꽤 쓰는 편이다.
"하하, 딱 봐도 개운해보이네요~ 그 기분 이해해요. 작품을 하나 끝냈을 때의 기분은 여간 기쁜 것이 아니죠~"
고등학생 시절의 데뷔부터 지금까지, 대략 13년동안 참가해온 작품이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의 감정을 떠올리며 세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기쁜 감정은 물론, 묘하게 슬픈 감정도 같이 찾아오곤 하였다. 언제나 그랬다. 오래 찍어온 작품일수록 더욱. 그래도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기쁜 것이니, 긍정적인 것일 테다. 그런 때마다 세나는 밝게 웃어 넘기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북돋아주곤 하였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마지막 장면이라~"
아키오토 센하의 완전한 엔딩에 대해서는 말만 들었지 아직 대본은 받아보지 못했다. 세나는 말만 들었던 내용을 살짝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어머. 그런가요? 이따가 다시 촬영이라니. 그럼 하윤표 건강즙은...후훗. 역시 무리겠죠? 정말 그 건강즙 뭔지 모르겠어요. 시청자 게시판에서도 개그로 쓰이는 것 같던데. 사실 그냥 주스일 뿐인데 말이에요."
사실 나도 그 요소는 엄청나게 재밌다고 생각한다. 건강즙을 만드는 하윤이와 그로 인해서 공포에 떠는 다른 이들. 그것은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메인 스토리는 그런 것이 아니었고, 이 드라마는 시트콤이 아니니까...그런 것은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역시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정말로 지금 생각해보면 보통 개운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신인이었으니까. 내 연인인 서하 씨는 상당히 유명한 배우이긴 하지만, 그에 비해서 나는 데뷔한지 얼마 안된 신인이다. 물론 촬영을 안해 본 것은 아니지만...그래도, 이런 중요한 역할을 나에게 맡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걸. 생각해보면 세나 씨는 나보다 훨씬 더 선배구나. 그런 느낌이 들었고 절로 존경심이 들었다.
"후훗. 그래도 세나 씨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요. 애초에 신인이라서, 이 개운함을 많이 느껴본 것도 아니니까요. 저도 언젠가 세나 씨처럼 경험을 많이 쌓아서 그런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걸요? 딱 저처럼 신인인 배우에게 말이에요."
그러면 지금 세나 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뜩 호기심이 들어서 나는 슬금슬금 다가와서 세나 씨에게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역시 연인 역인 유혜와의 공동 엔딩 장면인가요? 후훗. 두 분 되게 잘 어울리는데 실제로는 어때요?"
웃음기를 지우는 권의 모습에 표정을 굳힌다. 아무 말도 없이, 권을 물그레 바라본다. 흐려지며 닫혀버린 권의 입으로 시선을 내리다간, 옮아매던 팔을 풀어낸다. 몸을 돌려 그의 앞으로 다가가 선다. 들고 있던 음료수를 조심히 바닥에 내려놓고는 양팔을 벌리며 잡아채듯 강하게 그를 끌어안는다. 그리고선 무언가 귓가에 말하려는 듯 방싯거리다간, 다문다. 고갤 슬쩍 수그리며 권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동안을 그렇게 있다가. 슬쩍 팔을 풀어내며 반발짝 물러난다. 청은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춘다.
건강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확실히 <특수 수사대 익스레이버>와 관련된 게시글ㅡ공식 사이트의 시청자 게시판에 있는 글도 그렇고ㅡ에서 대체로 개그처럼 사용되는 모양이다. 작중 하윤은 진심으로 팀원들을 위해 건강즙을 만들고 선물하지만 그 맛이 복불복인 탓에 정작 팀원들은 여러모로 꺼려한다. 외전으로 찍으면 아마 재미있지 않을까, 세나는 잠시 생각하였다.
"재미있는 소재죠. 그러고 보면 평범한 주스를 먹고 맛없는 연기를 하는 것도 처음 해보면 생각보다 어려운 듯해요~ 가끔씩 감독님이 리얼한 연기를 위해 진짜로 맛없는 주스를 내오시는 게 아닐까 걱정도 했고~"
말을 그렇게 하지만 하하, 여유롭게 웃는 모습이 역시 낙관적인 사람이다. 가령 감독이 정말로 리얼한 장면을 추구하여 그에게 진짜배기 맛없는 건강즙을 카메라 앞에서 먹으라며 내오더라도 그걸 마시고 난 뒤 맛없어 하는 모습은 그 맛에 의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맛에 대해 '센하가 보일만한 반응'을 이끌어내어 보이는 것일테다. 분명하다. 카메라를 치우면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고 유유히 떠나지 않을까.
"언젠가 반드시 그럴 날이 올 거예요~ 하윤 씨라면 지금의 저보다 훨씬 더 여유롭고 선배다우실 걸요?"
마지막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진심을 한층 더 강조하는 듯하다. 칭찬을 받는 일은 꽤나 익숙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하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보이더니 담 위로 뛰어오른 직후의 길고양이 같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세나에게 말을 속삭였다. 엔딩은 역시 연인인 유혜와의 공동 엔딩이냐고 묻는 질문은 통상적이었다. 그런데 그 뒤를 잇는 질문은 조금 예상밖이었다. 아니, 열애설이 터지기도 했지만.
"아직 대본을 받아보지 못해서 대략적으로 밖에 모르지만, 역시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선은 첫번째 질문에 답했다. 그 다음 질문은 어찌하랴. 하윤에게 역공을 하려고 해도 이미 서하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만천하가 다 알고 있는 것이라서 그 방향으로는 건덕지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세나 씨는 나보다 연기 경력이 훨씬 긴 선배이다. 나는 이제 곧 데뷔 1년이 다 되어가는 신인일 뿐이고. 그런 선배에게 저렇게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나로서는 꽤 영광인 일이었다. 장차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인정받는 것이니까. 그에 기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해맑게 웃으면서 세나 씨를 바라보았다.
그와는 별개로, 내 물음에 대해서 세나 씨는 두 가지 답을 내왔다. 역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것. 역시 커플이니까 함께 촬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그리 생각이 들어 그것은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번째 답. 그것은 나에게 물음을 여유롭게 내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손뼉을 탁 쳤다.
"사귀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여유로운 느낌이니까 더 수상한데? 흐응? 흐응? 흐응?"
[세나 씨 너무 괴롭히지 마. ...정말..]
그 순간, 저 편에서 서하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독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데, 이쪽을 보면서 말을 건 모양이었다. 그 말에 나는 배시시 웃으면서 손을 흔들면서 이야기했다.
"에이. 괴롭힌 적 없어! 나중에 애기 다 끝나면 말해줘!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맛있는 거 아~ 해줄게."
[...뭐, 뭐래. 이, 일단 알았어.]
작중에서는 서하에게 말을 높이지만, 현실에서는 나와 서하 씨는 이렇게 반말을 사용한다. 아무튼 부끄러워하는 듯한 서하 씨의 모습을 바라보며 키득거리면서 웃었고 이어 나는 다시 세나 씨를 바라보았다.
그저 여유롭게 웃기만 하니까 오히려 더 수상한 느낌이라며 하윤은 더욱 끈질기게 물어왔다. 아예 처음부터 사귀는 게 아니냐고 못박아두는 듯한 질문을 하면서. 표정부터 동작까지 호기심 가득이다. 연애 관련 이야기를 할 땐 그 호기심이 배가 되는 듯하다. 세나는 그저 환하게 하하하 웃었더랜다. 어떻게 보면 질문 내용이 사실이어서 대답을 기피하는 것으로 보이고, 어떻게 보면 사실은 아닌 것으로 보이고, 어떻게 보면 후배를 그저 잘 놀아주는 것 같이도 보였다. 이런 때에는 참, 본심도 자연스럽게 감춘다.
"수상해보이는 건가요~"
그렇게 느긋한 목소리로 답할 무렵, 다른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찾아왔다. 감독과 대화를 나누던 서하의 목소리였다. 세나를 너무 괴롭히지 말라는 내용의 말에 하윤은 괴롭힌 적 없다고 적당히 대꾸한 뒤 이따가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애교 섞인 말을 던졌고, 그 사이에서 당사자는 그저 밝게 웃었다. 별로 괴롭혀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눈을 가볍게 깜박이면서 하윤과 서하의 대화를 듣고 바라보는 눈빛은 그저 그 장면을 흐뭇하게 여기는 어른 특유의 그것이었다.
부끄러워한 걸까, 서하가 그예 말을 더듬고 말며 알겠다고 답하자 하윤은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세나는 그 둘을 꽤 어울리는 한쌍이라 생각했는지 따라서 작게 웃으며 다시 감독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는 듯한 서하의 뒷모습을 잠깐 응시하다, 아까 하다만 이야기를 도로 꺼내오는 하윤을 바라보았다. 하윤의 호기심은 여전했고 세나의 여유로움 또한 그랬다.
"나중에 유혜 씨를 만나면 물어보는 걸 추천할게요~ 더 재미있는 대답을 얻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장난치듯 가벼운 분위기로 말하며 애매하게 고개를 옆으로 잠시 기울였다. 여유로움과 마찬가지로 웃는 상도 여전했다.
"유혜 씨를 만나면 물어보라니. 흐응. 수상한데...이거... 하지만 저도 굳이 억지로 캐낼 마음은 없어요! 하지만, 언젠간 꼭 그 진실 알아낼 거예요!! 익스레이버의 이름을 걸고!"
작품에서 연기를 할 때처럼, 나름의 자세를 잡으면서 척하는 느낌으로, 세나 씨에게 이야기했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나게 신경이 쓰이는데 나도 억지로 캐내거나 할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그래도 실례이니까. 그렇기에 수상한 눈빛만 가득, 세나 씨에게 보내면서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작중의 '하윤'은 이런 미소를 절대로 짓지 않지만 나는 가끔씩 짓는 편이다.
"꼭 유혜 씨를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볼 거예요! 진실은 하나 뿐이니까요! ...그런데 만약 사귄다고 한다면, 숨기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지 않아요? 저만 해도 서하 씨와 사귀는 거 완전 오픈했는걸요."
오히려 그쪽이, 다른 이들이 눈독 들이는 일도 없고 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서하 씨를 누군가가 눈독을 들이고 댓쉬를 하거나 하면...나는 반드시 하윤이의 익스파를 익혀서 그 사람을 계속 감시할 거다. 질투냐고? 응. 질투 맞다. 그렇게 자문자답을 하면서 배시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아무튼...! 만족스러운 결말이 나와서 너무 좋았어요! 세나 씨도 센하 역 연기한다고 정말로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