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약속 일이 되자 거울을 들여다보며 멍청한 생각에 빠져버렸다. 도대체 뭘 입고 가지. 생각해보면 센하는 자기가 입는 옷에 관해서도 큰 관심을 둬본 적이 없었다. 이것 참, 복수 말고는 인생을 대관절 어떤 식으로 살아온 건지. 어두컴컴한 곳만 바라보던 사람이 그로부터 살짝 시선을 비껴서 보이는 빛에 서툴러하는 꼴이다. 센하는 옷장을 열어 옷 하나하나 살펴보다 못해 아예 방을 어지르고 말았다.
"...아."
젠장. 욕지거리가 흘러나온 것은 뒤늦게 방의 상태를 눈치채고 난 뒤였다. 단정치 못한 것은 두 눈 뜨고 보기 어렵다. 이런저런 이유로 결벽증에 가까운 강박증이 도져버린 입장이라서 조금의 주저도 없이 바로 몸을 굽혀 바닥부터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침내 입을만한 옷을 발견한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평소 캐주얼하다 못해 지극히 수수한 스타일을 하고 다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멋을 부려볼까. 딱히 대단한 옷은 아니다. 센하는 청자켓을 하얀 후드티 위에 걸쳐보았다. 그러다 검은색 뻗친 머리카락에 시선을 옮겨보면 정말로 자기 자신을 애써 꾸며본 적이란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이내 해본 적 없는 일을 막상 해보는 것에 대한 어색함에 빠져들고 만다. 어슴프레 지은 쓴웃음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전부 서툴렀다.
*
센하는 정해진 시간이 있으면 정확한 그 때에 등장하는 타입이다. 이것 또한 강박증의 연장선일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태껏 계속 그래왔다. 허나 지금의 발걸음은 조금 서두르는 느낌이다. 어이구야, 애인을 만나러 가는 일은 예외인가보다. 뭐, 그렇다 해도 정시에 가까운 때에 등장해오지마는 3분 일찍이라니 그로서는 기적일 수도. 약속 시간보다 3분 일찍, 약속한 장소에 다다르니 먼저 도착해있는 유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어라. 오늘따라 자신과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조금 꾸민 모양인데, 그 모습은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버려 자그마히 웃음을 터뜨리다가 계속 걸어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유혜야.
"안녕. 그런데 미안. 기다리게 했네."
그 전까지는 정시에 딱딱 맞추어 등장하면서 상대에게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곧바로 본론부터 들어가더니. 이 정도면 사람 차별이 심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어쩌면 그만큼이나 그녀를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785 정확히는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범행(?) 동기와 전투 마지막에 제 의지로 낙인을 뺀 것...에 의해 인정한 거랍니다! 그리고 하윤이...음음...저도 눈치채고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0c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나중에 하윤이와도 일상 돌려봐야겠다...!(결론)(?)
>>786 권주주 왜 그러세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권주 엄청 귀여운데요!!! 짱 귀여운데요!!!(야광봉)
빤히 들여다보던 시선을 올려 앞을 바라보니, 제가 그토록이나 바라던 이가 저의 이름을 불러냈다. 그 짤막한 단어 몇 개로도 목소리의 주인이 그라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제 얼굴에 미소를 피워내며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려냈다. 그려내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그녀에게 그는 그런 존재였더라. 제게로 다가오는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눈에 담아도 아프지 않을 사람이었다.
“ 별로 안기다렸어. 내가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
부드럽게 지어진 미소 위로 그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만나면 어떤 말부터 해야할까 한참을 고민했던 저였으나 막상 그를 마주하니 그 어떤 단어도 쉽사리 튀어나오질 않았다. 결국에는, 그 어떤 말도 내놓지 못하고 부드럽게 그의 손을 맞잡기만 할 뿐이었더라. 그러면서도 가장 근사한 인사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리고 이내 제 시선을 돌려 그의 눈을 바라보며 그녀가 옅게 미소를 머금었다.
“ 보고 싶었어. ”
그 짧은 시간도 채 기다리지 못하고. 미소 위로 그 말을 건네며 그녀가 다시금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방금까지 고심하던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지워낸지 오래였더라. 그저 그를 보고 떠오르는 말들을 꾸밈없이 봉투에 담아 건넬 뿐이었다. 그 봉투를 건네받으며 미소를 지을 그를 상상하며, 그 언제보다도 제 마음을 한가득 담아넣으면서.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그녀가 천천히 제 발걸음을 내딛었다. 하고 싶은 일들은 많았으나 이 하루는 너무나도 짧았기 때문일까. 지나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다니, 그전의 그녀였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어쩌면 그만큼이나 그를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손바닥으로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애쓴다. 팔짱까지 끼고 있으려니 심장이 쿵쿵거리는 것이 티가 다 날것 같아 안절부절 못한다. 게다가 조금 전 한 말은 정말이지... 어쩌다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랑 애인이 될 수 있었을까. 내가 이런 사람이랑 사귀어도 되는걸까? 온갖 잡념을 잠재우려 호흡을 천천히 고른다. 어느새 플라스틱 컵에 담긴 음료 두잔이 나온다.
공원 쪽으로 가보자. 약간 어둠이 깔리긴 했지만, 가로등 빛이며 별빛 덕분에 그리 어둡지 않은 분위기였다. 팔짱은 계속 끼인 채로 천천히 산책로를 걸었다.
"...조용하네요."
문득, 인적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발걸음 소리나 말소리마저도 사라진. 평소처럼, 그 고요한 분위기에 잠긴다. ...그래도, 오늘은 함께여서 그다지 쓸쓸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