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가 없어? 그 말은 내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다. 옛날에 보았던 어떤 소설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한사람이 아니니까 당신은 나 하나를 살려주는 대신 그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그 가족들을 죽이면 나도 죽는 셈이에요.모든 사람에겐 수많은 내가 있다. 누군가에겐 존재 자체가 없어졌으면 하는 사생아, 누군가에게는 강서구의 독한 쥐새끼 형사, 누군가에겐 마음으로 낳은 딸이자 아들, 누군가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연인. 가가가 모두 다른 형태로,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법이다. '나라는 사람은, 절대 단수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나 또한 그러린대 다른 이들은 어떻겠고, 또 저기의 유나는 어떻겠는가. 날아오는 날붙이중에 급소를 노리는 것만 요격하자. 나머지는 모두에게 믿고 맡기자.
새로운 세상에서의 시작, 전부 갈아엎으면 무엇이 달라지지? 그는 두 눈을 느긋하게 끔뻑이며 손가락을 튕겼다. 금빛 사슬이 하늘로 솟아올라갔다. 지옥이고 뭐고..
"씨이발 내가 그딴 거 알게 생겼냐-???? 알게 생겼냐고, 가능성은 따져보지도 않지. 어린애야?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이 희생당하면? 그 지고한 힘이 하나 더 생기면? 그런 건 생각도 안해봤지? 앞만 달려봐라, 주변에 뭐가 생기는지도 모르면서 다시 뒤로 갔다가 같은 길을 걷겠다고? 뭔 개소리야!! 전 세계의 문과와 이과가 당신의 애같은 논리에 땅을 치며 탄식하겠다. 그렇지?!"
사라지고 뭐고, 저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다. 설득할 수 없는 존재인가. 그는 심호흡을 하고 렛쉬의 위에서 결계를 쳐내려 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의 출력을 담아서. 저딴 건 튕겨낼 정도로.
유나가 언성을 높이면서 공격을 감행하는 모습은, 마치 예전의 자신 같기도 하였다.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잘 흥분하여 이성을 잃고 목소리를 높이며 상대를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공격부터 나갔었지. 낡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은 썩 유쾌하진 못했다. 눈를 가느다랗게 떴다.
"미안해요. 우린 충견이 아니라서 사라지란 말에 순순히 응하진 않아요."
무덤덤하게 대꾸하면서 한 손엔 테이저건을 꽉 쥔채 다른 한 손으로는 권총 모양을 만들어서 슬쩍 싱긋하고 미소지었다.
"재미있게 가죠. 테이저건 한 방, 오버 익스파 한 방. 즐거운 반복동작 시간ㅡ"
유쾌하게 말하고 난 뒤 그 말을 그대로 실천했다. 테이저건으로는 주로 유나 자신을 겨냥했고, 오버 익스파로는 주로 날개를 겨냥했다. 돌아가면서 빵빵 날리는 것이 무슨 리듬이라도 타고 있는 것 같다.
위에서 날아오는 날붙이들을 바라보며 모두는 각자의 자세를 취했다. 헤세드는 중력장을 펼쳐서 날붙이들을 다시 올리려고 했고, 지현은 요격을 하면서 날붙이들을 날려보냈고, 로제와 유혜는 결계를 쳐서 날붙이들을 아주 가볍게 막아냈고, 권 주는 검을 날려서 그것에 대응했다. 그리고 센하가 엄청나게 큰 폭발 공격으로 유나를 요격하려고 했고, 권 주의 검 일부가 유나를 향해서 날아갔고, 지은이의 테이저 건에선 아주 거대한 하얀색 광선이 검의 일부를 튕겨내면서 유나에게로 날아갔고 메이비는 위에서 유나를 잡으려고 했다.
"........달라져. 지금보다는 달라져. 애초에 나에게 언니의 힘이 들어간 것이 가장 큰 증거야. 언니도 나를 인정해주는거란 말이야!"
하지만 유나의 몸은 투명해지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텔레포트 하듯이 등장했다. 이어 그녀의 몸에 무언가가 쳐지는것처럼 보이면서 매우 빠르게, 빠르게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지은과 메이비의 익스파, 그리고 전에 한번 상대한 적이 있는 벡터 능력자의 능력과 비슷했다.
공기의 저항도 무시하며 매우 빠르게 날아다니면서 그녀는 중간중간에 자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은의 익스파로 자신의 몸을 투명화시키는 것에 가까웠다. 이어 하윤이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아니에요. 이모..! 엄마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아요! 엄마는 이모를 막아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어 하윤은 오버 익스파를 발동했다. 이번에는 이전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그녀는 바로 렛쉬의 뒤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렛쉬는 빠르게 회전하여 뒤로 돌았고 앞으로 돌진했다.
"......!"
뒤이어 그들이 가는 곳의 바로 앞에 유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매우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대, 대체...무슨...?! 으읏...!"
이어 그녀는 빠르게 자신의 몸에 로제의 익스파를 발동시켰고 자신의 몸에 결계를 여러겹 쳐냈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분신 여러체를 만들었고 몸을 섞었다. 눈 앞에 보이는 수는 6체. 그 중 무엇이 진짜인지는 알 길이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분신들의 몸에는 전부 결계가 강하게 쳐져있었다.
...이 일을 강서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면 절대 아무도 안 믿을거야. 연인의 익스파와 똑같은 결계가 쳐진 6체의 분신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히고 어이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역시 현실이 더 드라마같다는 옛말엔 틀린 점이 하나 없다. ...어? 잠깐만. 유나의 익스파중엔 내 감각 증폭도 있을테니 내가 당장 오버 익스파를 쓰면 굳이 접촉 할 이유 없이 진짜 유나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자기야. 나좀 보호 해줄래?"
재밌는 생각이 났거든!, 어설트 라이플의 탄창을 가는 내 입에 걸린 말은 딷 하나의 의도였다. '잡았다, 요놈!'
자신의 능력을 상대가 써버리니 조금 당황한 기색이다. 분명 자신의 능력은 ‘투명한 물체끼리는 보인다’가 전제 조건이었으니 지은도 투명화를 하면서 그녀가 어디 있는지 찾아낸다. 오버 익스파로 전체를 투명화할까 고민했지만, 하윤이 이미 투명화를 풀었기에 그 고민은 금방 풀렸다.
“이번엔 또 뭐야... 닌자냐!”
괜히 화가 나서 테이저 건을 여러 곳에 쏘아보지만, 어차피 잘 먹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