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으로 남겠다. 신의 자리도 이름도 필요하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과 마지막 삶을 살겠다.
☞ 상황극판은 익명제입니다. 본인이나 타인의 익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삼가주세요. 하지만, 자신의 위치(스레주/레스주) 등을 밝혀야 할 상황(잡담스레 등에서 자신을 향한 저격/비난성 레스에 대응할 시 등)에서는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이 먼저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집시다. 모니터 너머의 이용자도 당신처럼 '즐겁고 싶기에' 상황극판을 찾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모두 두루두루 친하게, 잘 지냅시다. 말도 예쁘게해요, 우리 잘생쁜 참치들☆ :> ☞ 상황극판은 성적인/고어스러운 장면에 대해 지나치게 노골적인 묘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약물과 범죄를 미화하는 설정 또한 삼가해주세요. 각 스레마다 이를 위반하지 않는 수위 관련 규범을 정하고 명시할 것을 권장합니다. ☞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 결코 아닙니다. 바람직한 상판을 가꾸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만 잡담스레에서의 저격이나, 다른 스레에서의 비난성 및 저격성 레스는 삼갑시다. 비난/비꼬기와 비판/지적은 다릅니다. ☞ 상황극판의 각 스레는 독립되어 있습니다. 특정 스레에서의 인연과 이야기는 해당 스레 내에서만 즐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잡담스레에서 타 스레를 언급하는 일도 삼가도록 합시다. 또한 각 스레마다 규칙 및 특징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해당 스레의 이용자들에게 문의해주시고, 그 규범에 따라 행동해주세요. ☞타 스레와의 교류 및 타 스레 인원의 난입 허용 여부(이건 허용한다면 0레스에 어디까지 괜찮은지 명시해둡시다)와, 스레에 작성된 어그로성 및 저격성 레스의 삭제 여부, 분쟁 조절 스레의 이용 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각 스레의 스레주에게 있습니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쟁 조절 스레"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 처음 오신분은 어려워말고 잡담 주제글에 도움을 청해주세요! 각양각색의 스레들을 가볍게 둘러보는 것도 적응에 효과적입니다.
느릿느릿 상대방의 말 일부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른해보이는 말투와 행동과는 달리 남자와 비슷한 빛깔의 눈 하나만큼은 폭풍이라도 온 것 마냥 호기심으로 휘몰아쳤다. 상대방이 그가 들고 있는 책에 이토록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면, 이유는 아마 이 세가지 중 하나일 것이었다. 첫째는 상대가 매우 독실한 신자인데 책의 내용은 무신론을 다루고 있다던가, 둘째는 첫째의 반대라던가, 셋째는.. 애초에 책의 내용 자체가 제 3자가 봐도 영 아니라던가.
" 으음... 책의 내용이 뭔질 모르는데요... 아주 조금만 살펴볼게요... 한번만요... "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것 같은 느낌의 남자를 살살 구슬려 그의 손에 들린 책을 은근슬쩍 가져갔다. 지금, 두 사람의 눈동자는 똑같이 불타고 있었지만 불타고 있는 이유는 각각 달랐다. 일단 책의 겉 표지는 그냥 보았을 때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녀가 파르륵 책의 페이지를 넘겨가며 약 30초간 읽은 책의 대략적인 내용은.. 탁. 안네케는 책을 도로 상대방에게 돌려주었다.
" 책의 내용이 아주 엉망이네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가설을 증명할 증거도 턱없이 부족하면서 마치 어린아이가 생떼를 부리듯 자신의 주장만을 끈질기게 고집하고 있어요. 거기다 통계라고 내놓은 자료도 매우 교묘한 어휘로 왜곡하고 있고요. 전문가의 의견이라는 것도 그저 문장 한줄만 툭 써져있어서 신빙성이 가지 않아요. "
정말 신도는 신도대로, 학자는 학자대로 화가 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녀는 상대방과는 달리 화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진 않았지만, 듣는 사람에게 하여금 편안함을 주던 말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속사포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여러 문장들이 그녀의 격한 감정표현을 대신했다. 역시, 어디에든 저 책의 저자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책이 출판될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사실 이 책이 안네케에게 아주 도움이 안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주장을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인간의 심리'라는 새로운 탐구 주제를 그녀에게 던져줬으니까.
아앙아ㅏ아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수행평가죽어!!!!!!!!!!!! 죽어!!!!!!! 다죽어 수행평가 죽어버려!!!!!!!!!!!!!! 성적이 나 대신 자살해주었다던가 성적이 나에게 타살당했다던가 그런 말 듣기도 싫고 하기도 싫으니까 수행평가 그거 다 죽어버려!!!!!!!!! 다 사라져어어어ㅓㅓㅓㅓㅓㅓ!!!&!!@!@!!#@×!!!! 수행평가 개*끼!!!!!!!!!!!!!!!!!!!!!!!!!!!!!!!!
당신은 학자의 냄새가 나는 여성이 말하는 걸 가만히 들으면서 연신 부리..가 아니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이 좀 통하는 아가씨로군요! 저도 여기서라면 이성적인 판단을 하라고 이 책의 작가를 커버해줬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당신과 제가 본게 신이 아니면 뭐랍니까! 거기서 '네가 원하는게 무엇이더냐 나의 흐린 하늘아.' 라고 말한게 신이 아니라면.. 뭘까요? 저희가 동시에 감기약 같은걸 복용한걸까요?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뭐 지금 쯤 작가는 유즈네 교단에게 끌려갔겠죠?
아무튼 당신은 여성이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여줍니다.
"그야말로 우문현답. 당신의 지혜에 찬사를 보냅니다. 과연 일리시스의 거주민들은 도서관에 버려진 불온서적 하나에 쉽게 선동되지 않는 군요." "확실히 성법이란 증거가, 교단이라는 증거가, 항상 보여지는 대지의 축복이 있는데도 정확한 근거없이 없다고 잡아 때는 게 먹힐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서도.."
아까 전 책을 보겠다는 그녀에게 '설마 그 쪽도 이 책을 믿는거냐'며 화를 냈던 사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안네케가 온전한 학자의 시각으로써 바라본 의견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려 그녀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까지 답하는 남자는 방금 자신의 행동을 변명이라도 하듯 어색한 거짓말을 늘여놓고 있었다. 하지만 안네케는 순간 남자가 하는 말에 너무나도 신경이 쏠린 나머지 그것에 대한 추궁을 하지 않았다. 아마 그의 말을 들어 보았을 때, 상대는 신을 매우 독실히 믿는 신자인 것 처럼 보였다. 이렇게 되면 약 2~3분 전 안네케가 남자가 화난 이유에 짐작했던 첫번째 경우와 세번째 경우가 모두 들어맞게 되는 셈이었다.
" 신을 믿으시나요..? "
비록 도서관에 안네케가 찾는 책은 없었지만, 그 대신 자신의 논문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난 여인의 목소리가 알게 모르게 들떴다. 머리에 뒤집어 쓴 거적데기가 군데군데 낡아있는 것을 보니 아마 생각하건데 상대는 아직 수행자에 머물러 있는 신도. 정확히 무슨 신을 믿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마냥 책만 찾아보는 것 보다는 진짜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 저는 한 작은 도서관에서 살고 있는 학자 안네케 레렌챠라고 한답니다.. 최근엔 신께서 그들의 피조물인 저희에게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과 그런 사람들의 신앙심이 정치적 카드로 쓰이는 이유에 대한 논문을 쓰려고 하는데... 어딜 찾아봐도 제가 원하는 정보가 잘 없어서..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을 떠나 멀리 이곳까지 오게 되었어요.. "
" 그러니 숭고한 발걸음을 옮기시는 중인 신자님께 자그만한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요... 제 논문이 좀 더 풍부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어요..? 그냥... 간단한 제 질문들에 답해주시기만 하면 되는데요... "
고개를 숙인 바람에 내려온 안경을 검지 손가락으로 달칵 올리며 작게 말했다. 그리고 상대가 믿고 있는 신과 그의 성스러운 노력을 무심코 욕보이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말투와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쏟았다. 거기다, 어쩌면 남자에게 신학에 대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배워갈 수도 있을지 몰랐다.
뭐 창조주는 따로 있고 거기에 아트루크의 사제님에게 조금 배우고.. 이상한 노인네에게도 가르침 좀 받았는데 일단 유즈네 여신님을 믿어요 이 친구는. 그런데 유즈네 교단 소속이 아니야. 이상하죠? 신명도 받고, 신성력 쓰고 유즈네 여신님을 믿는데 교단 소속이 아니야. 나 참.
아무튼 당신은 안네케 양의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여신님의 큰 가르침이 정치적인 카드로 쓰인다는 건 눈 뜨고 볼 수 없는 일 이죠." "개인적으로 유즈네 교단이 은근히 3세력을 지지하는 성향을 띄는 것도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대 라이노겐 대공과 초대 성녀님의 인연이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중립으로써 시민들을 보호해야할 교단이 지지세력을 두다니."
어.. 그런데 이거 실명 공개 안하겠죠? 그레이엄 가문의 차남이 유즈네 교단을 향해 쓴소리를 하다! 라는 스포트라이트로 유명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알렌.. 그 잘나신 형님이 사고쳤냐면서 찾아올겁니다!
상대방이 이름을 밝히면 보통은 자신도 이름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일텐데. 상대방은 의도한건지 아닌건지 몰라도 스스로의 이름을 말하길 회피해버렸다. 그러고보면, 일반적인 수행자라도 저런 괴짜같은 가면을 쓰진 않을텐데.. 그렇다면 일부러 자신에 대한 것을 비밀로 하고 있는걸까.. 하지만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주제가 아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안네케는 책을 읽으러 왔지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따로 생각해둔 질문 리스트 같은 것이 존재할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안네케는 남자에게 건넬 질문에 대한 것들을 생각하기 위해 잠시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어느정도의 짧은 시간 후, 두뇌 회전을 마친 안네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 음.. 아까 전의 그 엉터리 책을 보셨다시피, 세상에는 신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심지어는 신의 이야기를 담은 성경도, 교단도, 그저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울 뿐인 허상이자 심지어는 연극에 불과하다며 매도하는 강경적인 성향의 사람들도 역시 존재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의 말을 반박하는 구체적인 의견이 있다면.. 해주실 수 있나요? "
어느새 품 속에서 깃펜과 종이 한 장을 꺼내 메모할 준비를 마친 안네케가 상대방의 첫번째 답변을 받아들이기 위해 온 신경을 오직 제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상대방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첫째로 '신을 믿는 사람의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까닭과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찌되었건, 최소한 그는 신을 믿는 척 가장해 기부라는 명목으로 서민의 돈을 뜯어내는 악의 축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까 그 책을 보고 진심으로 분노했던 모습을 생각하면. 확실히.
타자에게 어떤 행동을 가해야한다면 특히 그 행동이 나와 타자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일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예를들면 쌔비기 또는 퍽치기, 더 나아가서는 목따기. 옛날이라는 시간도 멀어져 흐릿한 기억을 똘똘 뭉쳐서 빚어낸 입매는 두툼하고 우악스럽다. 그 위에 크고 무성의하게 찍힌 하인의 스테레오 타입 점이 어울리지않아 괜스레 웃음보가 터진다. 하 짜식 둔해터진 얼굴로 손이 빨랐었나. 아마 첫 시범을 보여줄때 했던 말이...
'야 쫄리냐? 너같은거 없어도 안걸리니까 꺼져.'
안걸리긴 기똥차게 안걸렸는데 이렇게. 나는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적당히 걷는다. 다리가 움직이자 팔도 따라서 흔들린다. 목표는 8보앞 땀수건으로 보이는 천을 허리띠에 찔러놓고 상자를 옮기는 저사람으로 하자. 눈앞에 겹쳐져오는 반건조 생선을 피하고, 옆에 들어서있는 과일바구니를 눈으로 훑으며 지나친다.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걷는다 기다린다. 걷는다 기다린다. 한 가게앞에 짐을 내려놓으려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틈을 타서 땀수건 끝을잡아 허리춤에 찔러놓는다. 움찔하고 돌아보는 눈동자가 내 얼굴을 비췄다. 나는 옅게 웃었다.
"땀수건이 흙먼지를 쓸고 다니길래. 몸에 닿는건 아무리 싸구려라도 깨끗하게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