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것은, 결정적으로는 아키야의 절망어린 비명소리에 의해서였다. 조금 피곤했던 탓에 잠시동안만 침대 위에 누워 있었던 중이었다. 시작은 아마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였다. 그 거친 소리는 제 아무리 피곤한 사림이라도 눈을 뜨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갑자기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다른 소리들을 모두 가로막았는데 그 사이로 엄마를 목놓아 부르는 아키야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나는 불길한 기운을 느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은은하면서도 불쾌한 소리, 무언가가 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자 울음소리가 그쳤다. 그 때, 아키야가 비명을 지른 것이다. 거실로 나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그 광경은 아직도 선명하다. 불에 휘감긴 자루, 공허한 눈빛을 한채 한 손에 라이터를 꽉 쥐고 있는 히라카와 하나, 바닥에 주저앉아 무언가를 중얼거리면서 떨고 있는 아키야.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면서 아키야를 진정시켰는데 히라카와 하나는 위태로운 발걸음을 옮겨 컵에 물을 담아오더니 불 위로 기울였다. 연거푸 같은 행동을 계속하자 바닥에도 일부 옮겨 붙은 불은 꺼졌고, 남은 것은 검게 탄 자루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선을 옮겨 그것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이미 다 알아버렸다. 히라카와 하나를 올려다보니 그녀가 얼굴 위로 떠올린 표정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절망적이고도 잔혹한 표정이었고, 웃기게도 그것은 숨기는 것 없는 그지없이 솔직한 표정이기 또한 하였다.
유키의 시체는 여전히 검은 자루에 담긴채로 거실 구석에 방치되어 나중에는 썩은내까지 났다. 몇 번 그 시체를 매장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낮에는 히라카와 하나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주먹을 휘둘렀고, 밤에는 아키야가 처절한 목소리로 유키를 다른 곳에 보내지 말라고 애원했던 탓에 모두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히라카와 하나가 우리 형제를 어떤 식으로 대하였는지는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주먹이나 발로 맞았으면 그것은 그나마 무사히 지나간 것이었고, 다른 사물로 맞았다면 그것은 중간, 심하게는 목을 졸리거나 날붙이로 베였다. 뭐, 더 이상 떠올리기 싫다.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고문에 가까운 가정폭력이었다. 그것에 최대한 아키야는 당하지 않도록 나는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그러면서 히라카와 하나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간혹 사람에 대해 혼자 묵묵히 파악하는 버릇이 생긴 것일테다. 공포의 와중에도 히라카와 하나를 유심히 보면서 자연스레 그녀의 발언에도 신경쓰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얻은 진실이 바로 나와 아키야가 그녀와 코미키 히로시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는 것과, 그녀가 그 전에도 어떻게든 코미키 가와 연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생아였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순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일순간 뒤로는 꽤나 침착하게 그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절대로 좋은 영향을 받았을리가 없었던 그 시기에 내가 어떤 식으로 제정신을 유지했는가 싶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당시 히라카와 하나를 굉장히 증오했으며, 진심으로 그녀를 죽일 궁리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죽여야 가장 고통스럽게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 그 미친 생각은 히라카와 하나와 아키야 앞에서는 감추었다. 뒤틀린 내심을 감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며, 나는 조용히 히라카와 하나를 향한 살의를 키워나갔다.
사실 이어진 가을에 그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미소를 지으면서 제 손에 히라카와 하나의 피를 묻히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나츠미와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사건은 누군가의 방화에 의한 것이었고, 그보다도 전에 일어난 노인정 화재사건도 같은 이의 소행이었다. 범인은 코미키 하루나. 뭐,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지금은 히라카와 하나의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히라카와 하나의 괴성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니 방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것만으로 화재임을 직감한 나는 아키야를 급하게 깨워서 굳게 닫혀있던 방문을 열고 우선 거실로 나갔다. 연기 때문에 기침이 멈추지 않아도, 급히 잡은 손잡이가 뜨거워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지옥이 되어버린 거실로 나가자 히라카와 하나가 거기에서 소리를 막 지르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겁이 많았던 아키야는 눈물을 터뜨렸고, 나는 침착하게 그 녀석을 데리고 불을 피하기 위해 현관으로 향했다. 그래, 그 때였다. 히라카와 하나가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무심코 돌아보자 커다란 불이 있었다. 붉기 그지없는 불이 그곳에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불에 휘감긴 히라카와 하나였다. 이성을 잃은 그녀는 불타면서 몸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죽음에 가까워져 가는 비명을 계속 지르다가 결국에는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광경이었다. 몸부림조차도 못하게 된 히라카와 하나는 점점 검게 변하였다. 거실 구석에 방치되었던 자루 또한 불타고 있었다. 탄내가 났다. 히라카와 하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태껏 바라고 또 바라왔던 풍경이었다. 나는 웃기 시작했다. 우는 아키야를 신경쓰지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은채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폭소했다. 신고를 받아 출동했을 소방대원이 들어오고, 구조 당하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 두 명을 구조해가는 소방대원은 분명 공포어린 시선으로 나를 보았을 것이다. 웃는 나의 모습은 명백히 광인의 모습 그 자체였을테니까. 집밖으로 나가자 나는 어째선지 사람들을 피해 아키야와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갔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흘기듯 바라본 집의 그 불타는 붉은빛이 너무나도 선명했다. 나는 조용히 히죽히죽 웃었다. 불현듯, 과거 우리 형제가 히라카와 하나와 함께 간 여름축제에서 본 불꽃놀이가 떠올랐다. 나는 타마야, 라고 작게 읊조렸다. 이내 다시금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아키야의 어깨를 잡고 그 기쁨을 토로했다. 눈앞이 부예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키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형은 왜 우는 것이냐고. 나는 그것이 아키야의 착각일 것이라고 일축하다가 무심코 눈가에 손을 가져다댔다. 따뜻한 물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고, 시야는 다시 선명해졌다. 분명 히라카와 하나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 탓에 심경이 복잡해졌던 것이다. 나는 주저앉아 웃는 동시에 울고 말았다. 그 뒤로의 기억은 끊겨 있다. 여기서부터는 짐작인데, 코미키 아야코가 우리 형제를 기절시키고 코미키 가의 저택으로 데려간 것일테다. 왜냐하면 그녀는 코미키 텐마의 충실한 부하이니까. 그리고 코미키 텐마가 능력으로 우리 둘의 기억을 조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3년이 지나고 의도치는 않았지만 반지를 부숨으로써 나는 기억을 전부 되찾아버렸다. 이상하리만큼 냉정했던 나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그 모든 기억들을 빠르게 이해하였다. 모두 납득하고 히라카와 하나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았던 여섯 개의 피어싱을 확인하고 나니 모두 이해가 되었다. 어째서 코미키 토오야로서 보내온 시간동안 코미키 히로시가 저를 눈엣가시처럼 대하였는지 또한 알 수 있었다. 실소가 나왔다. 저로부터 나온 사생아가 영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저를 잇는 후계자의 자리를 차지한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묵묵히 생각하였다. 그래도, 히라카와 토오야로서 보내온 시간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고통의 나날보다는 확연히 지금이 낫다. 나는 당시 그렇게 생각하였다. 완전히 코미키 토오야로서 이곳에 남고 싶다고. 무심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거울 속의 자신과 시선이 맞았다. 칙칙한 자색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와 아키야는 히라카와 하나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그녀에게서 유일무이하게 물려받은 곳이 바로 이 눈동자의 색이었다. 나머지는, 특히 나는 코미키 텐마와 코미키 히로시의 외모와 꽤나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그 때 거울을 통해 본 저의 자색 눈동자에 나는 분노를 느꼈다. 강한 증오심에 휩싸였다. 나는 히라카와 하나에게서 받은 흔적을 일체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 눈을.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손을 뻗어 책상 위의 커터칼을 움켜잡았다. 그와 동시에 날을 꺼냈다. 드르륵거리는 소리가 불쾌하게 다가왔다. 미세하게 빛을 반사해내는 그 날을 공허한 눈으로 응시하다가 결심한 듯 그 끝을 제 눈으로 향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나는 내 눈을 스스로 도려내려 하였다. 이를 악물고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어서ㅡ
//으아아아아 갱신과 동시에 드디어 제 3막 후다닥 올리고 센하주는 외출 갑니다앗!!(스르륵)(순식간) (그냥 도주다)
유혜의 얼굴에 언뜻 부끄런 미소가 떠올랐다. 별달리 큰 의미가 있는 미소는 아니었다만, 그게 그리도 부끄러웠던건지. 약간 물들은 귀끝을 가만히 만지작대며 그녀는 느릿히 고개를 까딱였다.
“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네가 너무 잘 만들었던데. “
아직도 그 달큰한 사탕의 맛을 잊진 못했다. 저가 좋아하는 초콜릿맛이 나도록 어여쁘게도 만들어주었던 작은 꽃다발. 그걸 만들고 있었을 그를 떠올리니 다시금 미소가 피어오르는 그녀였다.
“ 편지에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떨려서. “
그러고는 희미한 미소로 뒷말을 대신했다. 어딘가 씁쓸한 듯 비추어진 그의 얼굴에 그녀는 두 눈을 느릿히 깜빡이며 그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너는 어찌 이리도 속마음이 잘 비쳐나는지. 달밤 호수에 비친 달을 보듯 보이는 너의 빛바랜 감정에, 그녀는 느릿히 제 입술을 떼내며 수 많은 단어를 떠올렸다.
“ 고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
느릿히 뻗어잡은 네 손의 온기가 얼마나 따스한지. 별안간 그가 잡고 있던 비닐봉투와 바닥이 맞닿는 둔탁한 소리에 한 번 놀라 두 눈을 느릿히 깜빡이더니, 제 손을 잔뜩 감싸오는 온기에 다시금 놀라며 제 얼굴을 수줍게 밝혀냈다. 아무리 숨기려해봐도, 어여쁠대로 만개한 그 미소는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더라.
“ 그냥,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네가 좋아. 정말 너무 좋아서, 함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
감히 담아낼 단어가 어디 있을까.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새 그가 그녀의 일부가 되어 있더라. 부드럽게 맞잡힌 손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가 너무도 소중해서, 그녀는 조금 더 그 온기에게로 파고들었다.
“ 나도, 내 선물에 네가 행복해 해서 다행이야. “
그 씁쓸함이 사라진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가 느릿히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이기적이어서, 너의 가장 큰 행복이 되고 싶다. 나로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평생의 행복이 나였으면 좋겠다. 미치도록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생각이었다.
이윽고, 그 미소가 예쁘다는 그의 얼굴에 아까보다도 붉어진 미소를 피워내는 그녀였다. 내가 정말 이 커다란 행복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나는 너를 만나 비로소 행복했고 너를 만나 사랑을 했으니, 네게 진 빚이 너무도 많아 이 목숨이 시들기 전까지 부지런히 갚아도 모자르겠구나. 어여쁜 미소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저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에 제 마음을 맡기며, 그녀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 이기적이라 생각해도 좋아.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나랑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게 안긴 모든 감정을 쓸어내고, 그냥 나랑 행복했으면 좋겠어. “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나의 오만한 욕심으로 얼룩진 말이었다. 네 얼굴에 비치던 씁쓸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어서, 나는 아프고 싶지 않았기에 나의 이기심으로 너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차마 흐르지 못한 사랑한단 한마디를 삼켜내며 그녀는 제가 쥐고 있던 그 손가락을 놓지 않겠다는 듯 꼭 부여잡았다.
//안이 센하야........(오열) 죽을 생각이었다니.... 안돼....... 아니야.....(쓰러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