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1 응...시간과 치료가 해결해준다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란 한발짝은 부족한 법이지요. 그래도 괜찮아지신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며칠이고 며칠이고 생각나버리는 정도로 악화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건 위로하는 거나.. 타미엘쟝이 부둥부둥하는 꿈이나 좋은 꿈을 꾸라고 해드리는 것 정도지만요.
정신에 난 상처는 흉이 드러나지 않고.. 뭐 어떤 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헤세드주가..
에잇... 말주변이 없어서 어색하고 아무말이네요.. 그래도 토닥토닥이랑 부둥부둥은 해드릴 수 있어요!
센하는 남자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그의 팔을 툭 건드렸다. 남자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뒤돌아 그대로 유유히 걸어가버리는 센하의 뒤통수를 잠깐 노려보았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앞으로 옮겨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별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어두운 밤하늘 아래, 인적 드문 골목.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정적 사이로 울려퍼졌다. 뒤이어 들려오는 것은 고막을 찌르는 커다란 폭발음이었다.
센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보이는 빛바랜 자색 눈동자가 어느 한 곳을 묵묵히 응시하였다. 퍼져나가는 피는 새빨간 호수를 연상시켰고, 살점들이 호수 속의 생명체처럼 이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센하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화의 아랫부분이 선홍빛으로 물들었다. 기분 나쁠 법도 한데도 아랑곳 않고 점점 움직임이 죽어가는 살점들 사이로, 밟기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느린 발걸음을 멈춘 곳은 호수의 중앙이었다. 방금의 남자가 그곳에 쓰러져있었다. 전신이 붉어진 남자는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 그를 아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처참한 모습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센하는 그 시체를 보고 동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릎을 쭈그려 앉아 그 모습을 더 가까이서 보았다. 그는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더욱 크게 지었다. 탄성하듯 웃음이 낮게 터져나왔다. 센하는 광인처럼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는 이미 광인 그 자체였다. 한 사람 밖에 없는 골목길은 광인의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
센하가 급기야 미쳐버린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는 어느날 불현듯 사라졌고, 어느날 불현듯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온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 피를 뒤집어쓴채 보인 그 광기어린 이질적인 미소를 잊을 수 있는 이가 있을까. 그의 경찰로서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그 누구보다도 잔인한 살인마가 되었고, 그를 체포하러 시도한 경찰 중 무사한 이는 없었다.
센하가 광기에 몸을 맡긴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적어도 지금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일본은 아직도 떠들썩했다.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높이 올리가면 올라갈수록, 한 번 떨어지는 순간 그 여파는 크기 마련이다.
*
센하는 별안간 웃음을 멈추었다. 공허한 눈동자로 시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며 손을 뻗어 그것을 건들였다. 손이 선홍빛 피로 젖었다. 그는 자신의 펼친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
센하는 이제 무엇이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순순히 광기의 동산에 들어갔다. 피로 둘러싸인 하루하루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센하는 입가에 초승달을 조용히 머금었다.
오신 분들 다들 안녕하세요! 좋은 밤이에요! 음...뭔가 다 쓰고 오니까 사람이 엄청 많아..(흐릿) 아..아무튼..헤세드주...음.... (꼬옥) 제가 뭐라고 하기 힘들지만...저야 그 상황을 잘 모르니... 그래서 어설프게 위로는 하지 않을게요. 그저..이렇게 스레주가 꼬옥 안아주겠습니다.(토닥토닥)
이런, 그대 또한 나에게 들어온 기습. 그걸 당해내다니 여우 체면이 말이 아닌걸. 문득 지금 이 때에 그대가 없었으면 난 버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물론, 그대가 이렇게 옆에 있는 오늘과 변함없을 내일 앞에서는 그저 만약이지만, 그래도 이런 그대가 없었다면 하는 그 생각 덕분에 이렇게 그대가 더더욱 소중하고 또 각별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이불을 머리 위 너미로 확 끌어올려 그대와 내가 이불 안에서 갖는 둘만의 장소를 만들고, 간질간질하게 속삭였다.
"팔베개."
너에게 말하는 그 모습은 정말 아이 같을지도 모르겠다. 그대의 품 안에서 잠들고 싶어, 나의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대 앞에서 보여주는 것이 처음이야. 나는 그대라는 장미 정원에서 행복에 겨워 뛰노는 조그만 여우니까.
또,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네. 하지만, 역시 너에겐 전하고 싶었으니까. 이야기 할 시간이 넉넉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말이지. 내 사정이 조금 바뀌어서, 이렇게 너에게 글을 남길게. 사실 별 내용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래도... 적어도 나에 대해서 알고 있는 너는 알아주길 바라니까. 이 편지를 읽지 않고 버려도 상관은 없지만... 너는 아마 그렇지 않겠지.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너에게 이것을 말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어. 하지만, 난 너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할 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편지를 쓸께.
사실은... 익스퍼 보안 유지부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지령이 내려왔어. 그래. 유지부에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 물론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도 그저 우습게 여기는 그 매혹한 사람은 일단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 해맑게, 정말로 해맑게 웃고 싶지만, 어쩌면 지금의 나는 조금 침묵을 지키고 있을지도 몰라. ...사실 이건, 꼭 이 문제 때문이 아니지만 말이야. ...너도 알고 있겠지. 아마. 아실리아. 날 사랑한다고 한 아실리아. 실질적으로 널 속인 나는, 너의 연인으로서 있을 자격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물론 난 말을 안한 것 뿐이지만..그것도 어떻게 보면 널 속인 것이 될 테니까. 아실리아. 너에게, 나는 뭐라고 사과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 ...원래라면, 네가 좀 더 마음의 준비가 되면 침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시간이 그리 많진 않아. 아....정말...뭐라고 말을 해야 할 지. 진짜 편지란 것이 이렇게 난감하고 귀찮을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도 쓰겠지만 말이야. ....귀찮으니까 이런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게.
유지부는 반드시 노릴 거야. 그 사람은, 절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야. 아마도, 누군가를 시키겠지. 반드시, 반드시...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회수하려고 할 거야. 내가 아는 그 사람은 그러고도 남아.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나는 그에 대해서, 반드시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았어. ...간단하게 말하자면...그래. 아실리아. 나는, 어쩌면 저쪽의 편을 들어야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야. 물론, 나는 요원이기 이전에 경찰이야. ...그걸 떠나서 나를 진짜로, 동료로서 여겨주는 아롱범 팀과 널 배신하고 싶지 않아. 그렇기에, 깊게 간여를 할 마음은 없어. 내가 하는 일은 아마도... 남은 연구원이 무사하도록 보호하는 역으로 끝이라고 봐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아실리아. ...정말로, 만일에, 정말로 말이야. .......나는, 네가 아는 대로... 복종의 낙인이 몸에 박혀있어. ...그다지 보이고 싶지 않아서 철저하게 숨기고 있지만 말이야. ...그곳이 어디인지 말을 하진 않을게. ...너에게 이 흉한 것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있는 한.. 나는 완전히 저항할 순 없어. 그 사람은 SS급 익스퍼. ....S급인 내가 저항할 순 없어. 아마도..나는....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게 돼.
아실리아. 너에게는 잔혹한 부탁일지도 모르지만...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말이야. 내가, 너희들을 배신하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면... 그것이 내 의지건, 아니건... 어느쪽이라도 상관없어. 나를 경찰로서, 제압해줘.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서 말이야. 너희들은 가능할 거야. 지금의 너희들이라면 말이야.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잔인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지금의 내가 부탁할 수 있는 것은 너 하나 뿐이야. ....정말로, 내가 왜 이러는건지... 물론 그럴 일은 최대한 없게 할 거야.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야.
가능하면 다른 이들에겐 비밀로 해줬으면 해. 어쩌면, 그런 일이 없고 조용히 끝날지도 모르고, 나도..순순히 복종하거나 할 마음은 없으니까. 날 어떻게 믿냐..라고 만약 묻는다면... 어떻게 증명하면 좋을까. 나로서는 널 사랑하는 마음 이외에는 그 어떤 증명 방법도 없어서 말이야. ...이 부분은 귀찮아도 진짜 생각해봤는데 역시 답이 떠오르질 않아.
....미안해.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서. 하지만... 앞길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지금,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는 것은 너 뿐이야. 일단은 너만 알아줬으면 해. 그리고...만약에, 정말로 만약에... 내가 내 의지건, 내 의지가 아니건... 너희들을 배신하게 된다면...그땐, 너의 손으로, 아롱범 팀의 손으로 막아줘.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실리아.. 너와, 아롱범 팀 뿐이니까.
그와는 별개로... ....잠은 잘 자는 거 맞아? 최근 안색이 좋지 않은데...
성류 백화점에서 산 뮤직박스야. 내가 매일매일 자장가를 불러줄 순 없잖아. 잘 때, 이 뮤직박스를 들어보는 것은 어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휴일에는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보내지만, 널 위해서 쓰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아. ...욕심이 나는 이에겐, 그만큼 투자를 하는 법이고 그 투자는 절대로 아깝지 않은 법이니까. ...잠은 잘 자는 거 맞지? ...안색이 안 좋은 것이 나 때문이 아닐까 조마스러울 뿐이야.
......... 그래.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 자격은 없을지도 모르지. 네가 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리고 내가 널 사랑한다고 해도... 지금은 때가 안 좋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럼에도 너이기에, 아실리아.. 너이기에... 나는....
.....정말, 여기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정말 세상이 참...뭐라고 하면 좋을까. 난 그저, 하는 일에나 충실하고, 연금 타 먹고 은퇴할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이런 상황에 처한다고 하더라도, 난 여기에 왔기에, 널 만나고, 아롱범 팀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나를 동료로서 여겨주고 날 걱정해주는 이들을 만났으니까. 그렇기에 후회하지 않아.
몇 번을 말해도 질리지 않고, 몇 번을 바쳐도 아깝지 않고, 몇 번을 맹세해도 귀찮은 그 말. 사랑하다는 그 말. 그것을 받는 것이 너이기에... 나는 몇 번이라도 얘기할게. 여기서 오길 잘 했다고.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동료들을 만나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그리고 널 사랑한다고...
....이 이상은 내 팔이 아프고,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같은 말 반복이라서 읽는 사람도 힘들테니 이쯤 할게. 그저, 그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 뮤직박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일단은 이것저것 듣고 산 거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가 할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부디 잘 잤으면 해. 아실리아. 나의 아실리아.
너의 서하가...
P.S 1 - ....이 편지를 보고 무슨 표정을 지을진 모르겠지만, 혹시 웃는다면 너무 티나게 웃진 말아줘. ...강요는 못하지만...그....하윤이가 보고 나에게 뭐 보냈냐고 할지도 모르니까.
P.S 2 - 날씨가 추워졌더라. ...마스크 끼고 다니던데, 감기야? 만약 그거라면 더 심해지지 않게 조심해.
P.S 3 - ...네가 이 편지를 보고도, 날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라면... 모든 것이 끝나면, 그리고 그때도, 내가 무사하다면, 데이트 하자. ...이번엔 정식으로 신청이야.
P.S 4 - ....몇번을 말해도 질리지 않아. 사랑해. 정말로. ...이번엔 독일어로 안 쓸 거야. ...작문하기 귀찮아.
장난스레 눈을 휘어 웃으며 사랑스러운 당신을 마주하였다. 소중하고, 다시는 없을 나의 작은 사람아. 이불을 머리 위 너미로 확 끌어올리는 터라 문득 잔뜩 장난기가 묻어나는 얼굴로 제 연인을 쳐다보다가도, 간질간질하게 속삭이는 당신의 부탁을 어떻게 못 들어주겠냐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지. "겨우 팔베개?" 따위의 말을 던지며, 제 연인을 빤히 바라보다 팔을 뻗어 제 연인이 머리를 베고 눕게 도와주더니, 제 가슴팍에 기대게 하며 입술을 휘어 웃곤 속삭였다.
"농담이에요."
이렇게 어린 아이같은 당신에게 손이라도 잘못 대었다간 잡혀갈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은 꾹꾹 눌러담으며 당신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평상시엔 그저 야생동물과 비슷하게 노려보는 느낌이 강했던 색이 그리도 부드러울 수 없었더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