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대하듯 턱을 간질이며 자신을 어르자 그 큼직한 손에 이리저리 고개를 까딱이며 뺨을 부볐다. 주인에게 사랑받는 고양이들은 이런 기분일까. 쉬이 가실 생각을 하지를 않는 술기운과 더불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기분을 띄웠다. 몽롱하니 붕 뜨는 기분이 점점 자신을 대담하게 만드는 것도 모르고 있겠지.
"폭신폭신한 곳이라도 지니가 없으면 놀 수가 없어요."
자신을 안고 몇번 둥기둥기 하는 도중에, 그는 아까도 하였듯이 팔을 뻗어 그의 목 주변을 끌어안았다. 그리곤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뭐하고 놀까요?" 라고 되물어보며 작게 웃는 모습이 꼭 여우 같았다. 방 쪽으로 걸어가는 걸 익히 알고 있는지 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지니."
사랑해요. 그렇게 귓가에 속삭이곤 애교스럽게 볼을 부비다가도 따스한 체온이 마냥 좋은 듯, 어린 아이처럼 해사하게 웃었다. 그리곤 두 눈을 반쯤 감곤 입술을 휘어올렸다.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자주 웃어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뺨에 입 맞춰오는 그가 어찌나 앙증맞던지. 애교 많은 고양이인가 싶다가도 저러는 걸 보면 꼬리 아홉 달린 여우 같기도 하다. 한결 같은 것도 좋지만 이리저리 바뀌는 모습 또한 보기 좋아서, 콩깍지 한번 단단히 씌였구나 싶더라. 이거 벗겨지기는 하려나? 안 벗겨지면 좋겠는데.
스스로 팔을 감고 사랑한다 속삭이는 말에 한번 멈칫 했다가 그 다음 말에 또 멈칫. 이거 참. 어디서 이렇게 이쁜 말만 배워와선 제 심장을 덜컹거리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자꾸 그러면 못 참는다니까.
"나도 사랑해. 내 모든 걸 주고 줘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 응."
진도 그의 볼에 가볍게 입술을 부비곤 얼굴을 맞대었다. 내 이쁜 사랑, 사랑스럽고 사랑하는 사람. 그 이상을 표현할 말이 없다는게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사랑해. 그를 안은 진이 방문 앞에 다다르자 소리 없이 문이 열렸다. 방은 예상대로 침실이었다. 큰 침대가 있고 그 옆에 작은 협탁이 있는. 그 안으로 들어가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아 제 무릎 위에 그를 앉혔다. 마주 보고 있을 수 있도록. 넘치는 애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진의 손이 그를 쓰다듬었다.
"아침부터 같이 있었다는게 믿기지가 않네요. 볼 때마다 새롭고, 잠깐 눈을 뗀 사이에도 보고 싶어져서 큰 일이야."
이러다 걷잡을 수 없는 집착이 되면 안 될텐데. 그렇게 말 하면서도 진의 손은 그를 쓰다듬고 보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멈칫거리는 그의 귓가에 다시금 속삭이곤 입술을 휘어 웃었다. 그가 하는 사랑 고백이 달기 그지 없다는 듯. 사랑하는 나의 악마. 당신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어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소리없이 문이 열리고, 침실이 보였다. 큰 침대와 작은 협탁. 푹신한 침대에 걸터앉아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마주보고 앉아 두 눈을 마주치니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다.
"그럼 계속 눈에 저를 담아주세요, 지니. 저는 언제나 지니의 곁에 있을테니까요."
자신을 쓰다듬고 보듬는 걸 멈추지 않는 손길에 고양이처럼 조용히 품속에 안겨 몸을 바르작대다가도 팔을 둘러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고 시선을 마주했다. "이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잖아요." 라고 말하곤 다시금 볼에 입을 맞췄다.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걱정 말아요. 라고 작게 덧붙이고는 어린 아이처럼 볼을 부비고 해사히 웃었다.
언제나 곁에 있을거라는 말에 괜히 울컥할 뻔 했다. 새삼스럽게 인간계로 내려오던 날이 생각난 탓이었다. 그 때는 정말, 죽어도 못 볼거라고 생각하면서 내려왔는데. 그 생각을 하니 지금 품 속의 온기나 감촉이 허상인 것처럼 느껴져 그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꿈이 아니라고. 환상이 아니라고. 제게 몇 번이나 다시 되내이며 그를 끌어안았다.
절대 놓치지 않을 거란 다짐도 함께.
"그래요. 응. 저도 언제나 함께 있을테니."
그가 가볍게 입 맞춰오자 거기에 응하며 입술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겹쳤다. 그가 했던 것처럼 가벼운게 아닌, 열기가 온전히 느껴지는 깊고 진한 입맞춤이었다. 더이상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하는 입맞춤은 이전보다 비교할 수 없이 깊고 또 끈적했다. 진은 지금까지의 키스는 장난이었다는 듯 축제날보다, 카페에서보다 짙은 욕망을 담아 그를 탐했다. 한 손으로 그의 뒷목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상의를 들추고 그 안의 살결을-
뜨거운 손이 제 연인을 한껏 보듬었다. 부서질까 조심하면서도 애정 어린 손길로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품 안에서 바르작거리는 그를 푹신하고 부드러운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눕혀놓곤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사랑해. 아드리엘."
사랑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이고 속삭이며 제 손으로 그의 볼을 쓸어내렸다. 맹새하듯 그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언제까지고 곁에 있으리라. 입을 맞추기가 무섭게 또 다시금 자신을 향해 입술을 포개자 목에 팔을 두르곤 끌어당겼다. 놓지 않겠다는 듯 밀착하며 두 눈을 감았다. 갖고싶었던 것을 가지게 된 어린아이의 욕망이 이런 것일까. 놓치고 싶지 않고, 놓을 생각조차 없었다.
지금껏 해왔던 키스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농염했다. 자신에게 그간 억눌렀던 욕망을 표출하는지라, 자신의 살결에 닿는 손길에 몸이 절로 떨려왔다. 뜨거운 손길이 자신을 훑고 지나가면 꼭 화상자국이 남을 것 같아서인지, 두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온전히 그의 것이다, 온전히 그의 소유다. 그리 생각하며 입술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두 눈을 느릿하게 떴다. 풀려있어도, 제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을 향한 애정을 숨길 수 없었다.
"사랑해요, 지니."
가쁜 숨을 내쉬곤 침대에 누워 그를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몇 번이고 사랑을 고백하자 입술을 휘어 웃었다.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정말, 정말로 사랑해." 이마에 입을 맞추자 해사히 웃어내었다. 같이 있을 수 있어서 기쁜지라, 그것을 숨길 필요도 없었고.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술기운 때문에 머리가 찡하니 아파서 깨는것이, 이번에도 고작 와인 한 잔에 제대로 취한게 분명하다. 고개를 돌렸다간 뇌가 반박자 늦게 딸려오는 기분이 들겠지. 잠든 침대가 훨씬 푹신하고, 덮던 이불보다 훨씬 보드랍다. 그는 두 눈을 깜빡이며 이곳이 어딘지를 생각해내려 했고, 이내 고개를 들어 따뜻한 온기의 근원을 쳐다보았다.
"...어라."
왜 지니가 여기에.. 아. 그의 두 눈동자가 순간 수축하곤 머릿속에선 이미 지난밤의 기억을 드문드문 떠올리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있다가도 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는지 얼굴을 확 붉히곤 고개를 숙였다. 뒤늦게 쑤셔오는 허리 때문에 아야야, 작게 앓는 소리를 내곤 팔을 뻗어 눈 앞의 남성을 끌어안으려 했다.
"........"
난 몰라, 이제 다 끝났어. 결국엔 갈때까지 갔고 이젠 못 돌이켜. 머릿속에선 파란 아르체스나 붉은 아르체스나 감정들이(...?) 각기 다른 반응과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걸 신경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잠이 덜 깬 목소리가 또 새롭다. 자신을 품 안으로 끌어들이자 볼을 가볍게 부빈다. 이젠 반사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이었다. 허리를 한 팔로 감싸는 손길이 마냥 조심스럽다. 배려라도 해주는 것일까. 눈도 다 뜨지 못한 모습이 언뜻 보여서인지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머리를 끌어안고 쓸었다.
"목에 자국 많이 남은 것 같은데, 또 만들게요?"
장난스레 웃으며 두 눈을 내리깔아 제 눈에 보이는 밤하늘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꼬아본다. 매일 봐도 새로울 따름이다. 웃으며 얼굴을 떼자 머리를 끌어안은 팔을 떼곤 그의 눈을 마주했다. 누구의 남자인진 몰라도 참 잘생겼다.
"으음, 잘 잤을까요? 카틀레야 경 덕분에 두근거려서 잠도 못잤지 뭐예요. 정말 너무했죠, 헤이즐?"
장난스레 말을 던져보곤 자신을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휘어 웃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그대를 가장 먼저 보는건 자신도 마찬가지지. 매일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라. 가볍게 입을 맞추자 앙탈을 부리듯 꺄르륵 웃곤 두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눈을 휘었다. 어휴, 여우 같기도 해라.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손이 닿았다. 붉어지는 뺨과 함께 입술을 우물대다가도 고개를 숙인 뒤 주먹으로 투닥투닥 가슴팍을 두들겼다. "정말이지, 다른 사람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증표를 남길 필요가 있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역시나 앙탈이다. 자신에게 다시금 입을 맞추자 눈을 애교스럽게 깜빡이곤 희소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흐응, 짧은 콧소리를 내었다.
"정말요? 저 진짜 여기서 살아버릴지도 몰라요, 매일매일 지니의 사생활을 감시해야지."
장난스레 톡톡 내뱉는 말이 마냥 진심같다. 언제까지고 눈에 담고싶은 사람. 떠나지 않을 내 사랑. 뺨을 부비늠 그의 온기를 듬뿍 느끼고 헤실헤실 웃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사랑. 혹여 멀리 떨어진다 해도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눈에 담을리도 없다. 아니, 멀리 떨어질 일 조차 없을 것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내 사랑.
등을 가볍게 토닥여주며 상체를 일으키는 모습을 흘끔 바라보다 휙 휘어지는 눈과 입을 막지는 않았다. 이불이 흘러내리자 보이는 탄탄한 상체는 그렇게 눈에 담았는데도 질리지를 않지. 늘 새로워, 짜릿해, 잘생기고 멋진 지니가 최고야. 꽤 오랜 시간이 지나보이는 흉터들이 곳곳에 보이자 꾸물꾸물 몸을 움직여 상체에 기대듯 그를 끌어안았다. 이불속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아직도 몸이 따뜻했다.
"이 흉터들은 전부 전쟁 때문에 생긴거겠죠..?"
배에 입술을 대곤 조건조건, 달싹이며 흉터를 손가락으로 매만져보았다. 검흔이라던지, 찔린 흉터라던지. 살짝 솟은 흉터의 살을 매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고개를 부볐다.
귀여운 앙탈을 부리며 사생활을 감시한다는 둥 하는 소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좀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좀 참기로 했다. 밤은 또 오고, 시간은 많으니까.
웃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좋을까 싶었다. 천계에서는 항상 무언가 참듯 미간을 찡그리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검을 휘두르는 모습만 봐서, 한번만 저를 보며 웃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아. 생각해보니 인간계로 내려와서 소원 다 이뤘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혼자 실소했다. 피식. 그 사이 제 몸에 기대듯 안긴 그를 천천히 토닥토닥 쓰다듬으며 흉터 위를 스치는 하얀 손을 보았다. 이제는 낫지 않을 오래된 자국 위로 가느다란 손가락이 만져 지나갈 때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 몸보다는 마음이 그랬다.
"전쟁 반, 싸움 반이에요. 전 부모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라서 어릴 때부터 치고받으면서 살았거든요."
어릴 적엔 누가 돌봐주기도 했지만 조금 크고 나니까 혼자 살아남아야 했다며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한다.
"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 했어요. 더러운 짓도, 나쁜 짓도. 힘을 타고난게 그나마 다행이었죠. 마계의 군대는 힘만 있으면 일단 들어갈 수 있으니까. 때때로 살아있는 것에 회의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어요. 이렇게 상처 입고 괴로워도, 아파도..."
결코 좋은 과거는 아니었다. 악착 같이 살려고 발버둥치는 와중에 적을 많이 만들기도 했으니까.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쓰다듬는 손만 움직였다. 굳은 살이 베긴 제 손으로 보드라운 머리칼을 쓰다듬고 뺨을 쓸어내리며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보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더란다.
픽 실소하는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도 두 눈을 낮게 내리깔고 흉터를 매만졌다. 자신을 쓸어주는 손길이 따스하다. 흉터를 매만지던 손길이 멈춘 것은 그의 과거를 들었을 즈음이었다. 그저 가만히 흉터를 쳐다보았을 뿐이다. 전쟁 반, 싸움 반. 부모도 없이 길거리에서 자랐다는 말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떴다.
".......고생 많았어요."
작게 종알거리며 얼굴을 파묻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겠지. 우리는 닮은 점이 많았지만, 살아온 것은 차이가 컸구나. 당신은 살기 위해 발버둥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구나. 말을 멈추고 자신을 쓰다듬자 팔을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굳은살이 딱딱하게 스쳐 지나가고 그에게 있어선 부드럽기 그지 없었지. 한동안 말없이 허공을 보고 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과거를 묻자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저는 부모님이 전쟁 도중에 저를 지켜주시려다 돌아가셨어요."
이젠 과거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도 슬프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생각하고, 무뎌져버린 감정이었다.
"악마가 저에게 다가올때 저는 그 악마를 집에 있던 꽂병을 던졌던 것 같아요. 마침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그 악마를 베어버렸고 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셨어요. 그리고 저한테 말씀하시더군요."
유감스럽지만 네 부모는 악마에 의해 죽었단다, 아드리엘. 그 장면을 너도 보았겠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하지만 너는 안전한 곳에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릴 성격은 아니구나. 나를 따라오지 않으련. 내가 너에게 내 모든것을 가르쳐주고 전수해주마. 조용히 조곤거리며 휘어올렸던 입술을 내렸다.
"자기를 대천사장이 될 후보이자 엘리야 베르야코프라고 밝혔던 남자는 저를 거두어가고 저와 의형제를 맺었어요. 그리고 같이 교육을 받았지요. ...으음, 맞아요 제가 인간의 이름을 가지고, 베르야코프란 성씨를 쓴건 그와 의형제였기 때문이었거든요."
일단, 교육이라고 해도 말로만 교육이더군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모든 정보와 차단되어선 베고 찌르면서 엄격하게 감정을 배제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렇게 자라고 악마를 베어왔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솔직히, 많이 무서웠어요. 죽기 직전에 살려달라고 하는 자들의 숨통을 끊어버릴때도 담담하게 있어야 하는게 힘들었고요. ..엘리야가 죽고나서 저 혼자 대천사장으로 즉위하기 위해 준비할 때 즈음, 당신이 인간계로 내려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잡으러 왔는데.."
제 물음에 그는 담담한 한마디로 얘기를 시작했다. 부모님은 전쟁 도중에 그를 지켜주다 돌아가셨다고. ...전쟁. 그 놈의 전쟁이 항상 문제지.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얘기하는 그를 멈추지 않고 쓰다듬으며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들었다. 하마터면 죽을 뻔한 때에 다른 천사가 나타나 그를 구해준 것, 그 천사가 그에게 검 쓰는 법을 가르쳐줬다는 것. 그의 이름은 그 천사와 의형제를 맺었기 때문이란 것...
"......"
얘기를 하는 내내 그는 큰 감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 담담해서 자신의 얘기를 하는게 맞나 싶었다. 의형제였던 천사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린 탓에 무뎌져버린 걸까. 어느 쪽도 진에게는 달갑지 않았다. 그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그를 거두었던 그 의형제가 살짝 원망스럽기도 했다.
"...잡으러 와서 도리어 잡혀버렸네요.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은 몰랐을테니까."
진은 그저 웃으며 제 위로 올라온 그에게 팔을 둘렀다. 잘록한 허리에 한 팔을 감고, 다른 팔로 등을 받치며 자연스럽게 그의 뒷목을 받쳤다. 옛날이야 어쨌든 지금의 그에게 그 시절의 잔재는 보이지 않으니 다행인거지. 그렇게 생각하곤 그를 끌어안아 입술을 가까이 했다.
"그 키스로 울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 했지?"
하여간 좀 참으려고 하면, 응? 낮은 목소리로 간지럽히듯 귓가에 속삭이곤 그와 입술을 겹쳤다. 몇 번이고 탐했던 입술은 닿을 때마다 새로워서, 무심코 깊게 파고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진은 참지 않고 마음껏 그와의 입맞춤을 즐겼다. 행여나 꺾일새라 그의 머리를 단단히 받치고, 은근슬쩍 허리라던가 허벅지를 조물조물 만져가면서.
멈추지 않고 쓰다듬는 손길이 마냥 좋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제가 당당히 키스해달라 이야기하자 자신을 끌어안곤 입술을 가까이 하자 고양이처럼 두 눈을 기묘하게 반짝이곤 입술을 휘어 올렸다.
"어떻게 우는데요?"
야옹야옹 하고 울까? 속삭이듯 작게 덧붙이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속눈썹을 늘어뜨려 반쯤 눈을 감았다. 영락없이 유혹하는 꼴이다. 입술을 겹치자 자연스레 그를 끌어안았다. 몇 번을 맞추어도 늘 새로운 감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다른 느낌이 아니라 온전히 그와 입을 맞추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인지 안심이 되는 터였다. 혹여 꺾일새라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은근슬쩍 닿는 손길에 몸을 움찔 떨었다.
"정말이지."
얼마 뒤 입술이 떨어지자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볼이 홧홧하다. 허리 위에 얹어진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 그 위에 제 손을 올려덮곤 두 눈을 휙 휘었다.
"지금, 밤이 아니라 아침 맞는거죠?"
뭔가 밤 같은데. 그냥 밤으로 두는 거 어때요? 그리 덧붙이는 것이, 아까부터 이어지던 작은 도발이었다. 그는 그의 손등을 덮던 제 손을 떼어내곤 그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야옹야옹. 좋지. 이왕이면 앙탈을 더해 앙앙 울면 더 좋겠지만. 자연스럽게 마주안는 그를 온전히 품 안에 가두고 달콤한 키스를 이어간다. 손끝이 살갗을 스칠 때마다 움찔움찔 떠는 것이 또한 자극적이더라. 그가 먼저 입술을 떼지 않았다면 그대로 그를 눕히고 전날밤처럼 그를 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 분명 그랬겠지.
진하게 겹쳐져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둘 사이에 가느다란 타액의 실이 이어진다. 그 실이 끊어지기 전에 혀로 날름 그의 입술을 핥아버린다. 살짝 부르튼 여린 입술의 감촉이 선명하게 혀끝을 지나쳤다. 약간의 아쉬움을 담은 짧은 한숨을 내쉬곤 그 못지 않게 붉어진 얼굴로 마주보던 진. 제 손과 얼굴을 오가는 하얀 손의 주인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다 하루 온종일이 밤이 되버릴 수도 있어요. 전 괜찮지만, 당신이 못 버틸 걸요?"
어젯밤에도 이 허리 부러지지 않게 힘조절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었는지 아느냐며 태연한 얼굴로 낯뜨거운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제 위에 올라탄 앙큼한 고양이의 턱을 간질이며 웃음 지은 입술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밤은 또 와요. 밤은 매일 오고, 저 역시 항상 당신의 곁에 있으니, 안심하고 즐겨요. 함께하는 모든 시간을."
지금 이 순간도. 언제 농염하게 굴었냐는 듯 달달한 목소리로 속삭인 진이 그를 안은 채 침대에서 일어났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려 더는 가려지는 곳이 없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사랑하는 연인 앞에 부끄러울 것이 뭐가 있다고.
"우리 고양이, 뭐부터 할까요? 목욕? 식사?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만 해요. 다 해줄게."
밤까지 못 기다리겠단 말에 결국은 소리내어 웃고 말았다. 아. 사랑스러운 사람. 이런 사람이 전 천사였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사실 악마인데 천사인 척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하는 별난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모습은 천계에서 볼 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런게 사랑의 힘인가 싶기도 하다.
"또또. 이젠 아주 자동이네요 자동. 이 응큼한 고양이."
뭐 할까요 라는 물음에 자연스럽게 저부터를 말하는 걸 보고 다시 한번 키득였다. 이렇게 좋아하면서 어떻게 참고 살았나 몰라. 아니, 몰라서 참을 수 있었던 건가? 어느쪽이든 그에게 제가 처음이란 사실은 변함 없으니 상관없지만서도.
"그럼 씻고 맛있는 거 해줄게요. 응."
제게 팔을 두른 그에게 가볍게 쪽, 입 맞추고 욕실로 향했다. 화장실과 별도인 널찍한 욕실에서, 그를 욕조 가장자리에 앉혀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수 깨끗하게 씻겨주었다. 몽글몽글한 거품과 매끈한 감촉에 야한 장난을 칠 법도 하건만 의외로 건전하게 목욕을 마쳤다. 여기서 장난을 쳤다간 단순한 장난으로 끝나지 않으리란 걸 진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그를 씻겨준 후 저도 씻고, 들어갈 때처럼 그를 안고 나왔다.
"머리 말려줄 동안 뭐 먹을지 생각 좀 해볼래요?"
뺨을 살짝 간질이며 얘기한 진. 곧 그를 자리에 앉히더니 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으로 그의 머리칼을 살살 말려주었다. 손짓 한번이면 그깟 물기쯤은 순식간에 말릴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고 제 손으로 시간을 들여 그를 보듬었다.
키득거리며 그의 품안에 잔뜩 바르작거린다. 꼭 애교 많은 고양이처럼 바르작거리다가도, 가볍게 입을 맞추자 볼을 부볐다. 씻고 맛있는 거 해줄게요. 라는 말에 두 눈을 애교스럽게 깜빡이기도 하고.
"혼자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싫지는 않은 듯 몽글몽글한 거품을 괜히 손으로 듬뿍 떠올려 그의 머리 위에 얹는 등 작은 장난을 쳤다. 건전하게 목욕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고. 깨끗하게 씻고나니 기분이 마냥 좋다. 그가 씻을땐 얌전히 기다리다가도, 자신을 안아올리자 괜히 품 안 가득 그를 안아보려 했다.
"으음...응, 알았어요."
뺨을 간질이는 손길에 해사하게 웃은 그는 머리를 살살 말려주자 볼을 붉혔다. 사랑받는 것이 확실히 느껴진다. 그는 자신을 정말로 사랑하는구나. 괜히 기분이 좋아 맑게 미소를 지어보이곤 입술에 또 손가락을 올렸다. 무엇을 먹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듯 말캉말캉한 입술을 계속 눌러보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깜빡이며 손을 내렸다.
"핫케이크..."
개인적인 취향이었지. 버터 한 조각, 시럽 잔뜩. 둥글둥글하고 밝은 것이 햇살 같기도 해서.
안아주면 아이처럼 안겨오는게 좋아 자꾸만 안아들게된다. 무겁지 않느냐고? 그럴리가. 보송보송한 깃털 같은 그인데.
따스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려주는 동안 그는 버릇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하고 있었다. 거울에 비춰보이는 모습이 어찌 그리 이뻐보이던지. 이거 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인 모양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응, 핫케이크요?"
핫케이크라. 그의 주문에 잠시 바라보다가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핫케이크 정도야 쉽지. 전원을 끈 드라이기를 옆으로 밀어놓고 손으로 다 마른 머리칼을 빗겨주며 말했다.
"그럼 만들고있을테니까, 부르면 나올래요? 옷 꺼내두고 갈테니 입고."
온종일 타월만 두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 한마디는 일부러 귓가에 속삭이곤 볼에 쪽, 입맞췄다.
"기다리는 동안 잠들면 안 돼요. 자고 있으면 확 덮쳐버릴거야."
농담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휙 돌아선다. 침실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가 제 옷 한벌을 꺼내와서 그에게 주고, 저도 적당히 입은 후 그의 뺨을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귀여운 내 사랑.
그 홀로 방에 두고 부엌으로 나온 진. 잠시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생각하더니, 곧 가루며 계란이며 재료들을 꺼내고 섞어서 반죽을 만들기 시작한다. 달각달각, 톡톡, 치익. 불 켠 렌지 위에 팬이 올려지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부엌과 거실에 달콤한 핫케이크 냄새가 솔솔 차오른다. 진은 그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는 팬 앞에 서서 흥얼거리며 핫케이크를 굽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