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이 조용하다. 보통 조용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앓아 누운 하윤이의 모습이었다. 올해 5살이 된 하윤이는 갑자기 고열에 시달렸다. 처음엔 감기라고 생각했건만, 그 고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기에 병원으로 데리고 왔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고 의사 선생님도 쉽게 나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일단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고 나와 이준 씨에게 말했다. 그것이 벌써 2주 전의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 했지만, 하윤이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와 이준 씨의 마음은 타들어갔다. 소중한 딸이, 바로 눈 앞에서 침대에 누워서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니...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하윤아..."
눈을 감고 여전히 열에 시달리고 있는 하윤이를 바라보았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방울은 또르륵, 하윤이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땀방울을 손수건을 이용해서 닦아주었다. 어째서 갑자기 애가 이렇게 아파하는 것일까.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랬는데..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도, 정말로 괜찮아질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뜨거운 숨결을 내뱉는 하윤이는 아무리 봐도 보통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습을 엄마로서 바라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하윤아. 하윤아...많이 아파?"
"....엄...마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힘들어하면서 나를 찾는 하윤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하윤이를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이준 씨가 잠시 전화를 받으러 갔기에 지금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나 하나 뿐. 그렇기에 내가 엄마로서, 하윤이의 손을 꼭 잡아주는 수밖에 없없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뭐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
"......."
이대로 하윤이가 낫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고열에 계속 시달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5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의 이 아이가...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이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다.
"......"
딱 1가지 방법이 있다. 이 아이의 고통을 당장 덜어주는 방법이 딱 1가지 있었다. 그것은 나의 힘을 사용하는 것. 나의 힘으로 하윤이가 이제 아프지 않은 것으로 해버리면... 그렇게 해버리면... 하윤이는 아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준 씨는 절대로 내 힘을 사용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용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그야 내가 이 힘을 사용하게 되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엄...마아...아파아..."
하지만... 어떻게 엄마로서 이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나는 결심을 다졌다. 설사...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 독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곳을 떠나서 또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는 딸인, 하윤이가 고통을 덜었으면 했다.
그렇기에 눈을 감고 내 능력을 사용했다.
ㅡ우리 딸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정말로 간절하고, 간절하게 빌었다. 아마도, 그때...내 힘은 발동했겠지. 그리고 그 힘의 덕분일까. 하윤이의 표정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서 나던 고열도 사라졌다. 숨소리도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당연했했다. 내 힘은 세계를 개변할 수 있는 힘이니까. 딸이 아픈 것을 없게 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윤아..."
하윤아..괜찮니? 작게 말을 중얼거리지만, 편안하게 잠들어있는 하윤이가 그 말을 들을 순 없겠지. 일단 하룻밤만 재우고.. 그렇게 재우고... 내일 퇴원을 하는 즉시, 자리를 뜨기로 다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사실, 아무 일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아..."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려다가, 그만 서랍 위에 놓아둔 물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떨어진 물컵은 쨍그랑 소리를 내어 깨졌다. 유리컵이 아니기에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냥 내가 사용하는 일반 머그컵이었으니까. 꽤 큰 소리였지만, 다행히도 하윤이는 깨지 않았다.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근처의 티슈를 뽑은 후에, 깨진 파편을 조심스럽게 줏어담았다. 혹시나, 혹시나 우리 하윤이가 내일 일어났다가 발을 땅에 짚었다가 다치면 안되는 것이니까.
내 힘으로 이미 편안해진 우리 딸이 이 이상 다치면 안되니까...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조심스럽게 파편들을 줏어담았다. 조심스럽게, 또 조심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