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아무리 아름답다한들 저 기방의 여인들보다 아름다울까. 밤을 밝히고 달을 시기하는 기방의 웃음소리가 단잠들 자는 해를 깨울까 걱정이로다. 오늘도 과장 된 웃음소리와 거짓된 가락을 흘려내는 기방의 등불이 환하게도 타오르는구나.
“ 네 낭군님이 기어코 오늘도 걸음을 하셨구나. “
행수의 앙칼진 목소리가 한 여인을 향하였다. 눈매가 사나우며 매서운 생김새의 행수는 곰방대를 제 입가에서 떼어내며 입안에 남은 연기들을 모조리 뱉어냈다. 다분히 감정이 실린 목소리였으니, 그 눈빛 또한 욕지기가 가득히 느껴지는구나.
“ 낭군님이라니요, 그저 이 계집을 너무도 아껴주시는 분인게지요. 제게 낭군님이 생겼다가는 행수어르신게 매질을 당할 게 분명한데, 제가 왜 낭군님을 이 기방에 들이겠습니까. “
행수의 기에 눌려 그 입을 놀리지 못할만했으나 오히려 제 얼굴에 씩 미소까지 곁들이며 따박따박 행수에게 말대꾸를 하는 여인네가 있었다. 새카만 머리칼을 단정히 올리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매만지는 그 여인네는 결국에 행수가 욕지기를 내뱉으며 자리를 떠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그 수줍은 미소를 내비쳐냈다. 아아, 드디어 오셨구나. 비록 정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었다만 그래도 제가 흠모하는 나리께서 기방에 걸음을 해주신다면 그 얼마나 기쁠 일이던가. 그렇게 자세를 단정히 바로잡고 창호지 밖으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혹시나 임이실까 눈망울을 반짝이는 그녀였다.
“ 어서오시지요. 제 이 고을에서 꽤나 큰 연회가 열렸음에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를 시작하여 퍼져나갔다. 단정히 모은 두 손이 자꾸만 달싹이는 걸 보아 여간 기쁜 일이 아닌가보더라, 그럼에도 그 여인네는 태연히 미소를 삼키며 임과 눈을 맞추어냈다.
기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껴지는 어딘가 따가운 시선은 이미 짐작했던 바요, 익숙해진 바다. 왜에서의 질식할 것 같았던 생활 탓에 성질이 다라져있었기에 일 말의 기죽음도 없이 천하태평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 곁눈질을 하니 행수가 금방이라도 따따부따할 것 같은 매서운 눈빛을 저에게로 향하고 있더란다. 내가 어느 여인을 찾아 매일 같이 이 기방을 찾아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저러는게다. 입밖으로 쉬이 내지는 못하지만, 과거에 친우처럼 대하던 낭자가 화를 당해 기방으로 팔려왔는데 찾아오지 아니할 수가. 술집을 많이 찾는다지만 여인은 글쎄여서 그 낭자가 아니라면 기생은 찾지도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주모를 찾겠지. 하지만 고로부터 친우였던 낭자를 찾으면 그곳은 기방이어 술을 직접 따라주니, 어찌할 수 없이 값을 지불하고 술잔을 ㄱ
기방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껴지는 어딘가 따가운 시선은 이미 짐작했던 바요, 익숙해진 바다. 왜에서의 질식할 것 같았던 생활 탓에 성질이 다라져있었기에 일 말의 기죽음도 없이 천하태평한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 곁눈질을 하니 행수가 금방이라도 따따부따할 것 같은 매서운 눈빛을 저에게로 향하고 있더란다. 내가 어느 여인을 찾아 매일 같이 이 기방을 찾아오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저러는게다. 입밖으로 쉬이 내지는 못하지만, 과거에 친우처럼 대하던 낭자가 화를 당해 기방으로 팔려왔는데 찾아오지 아니할 수가. 술집을 많이 찾는다지만 여인은 글쎄여서 그 낭자가 아니라면 기생은 찾지도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주모를 찾겠지. 하지만 고로부터 친우였던 낭자를 찾으면 그곳은 기방이어 술을 직접 따라주니, 어찌할 수 없이 값을 지불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따갑기 그지없는 시선이 끈질기게도 이어지지만 다직해야 시선일 뿐이다. 어쩌면 철면피로도 보일랴 싶지만, 오늘 또한 신을 벗어 낭자가 기다리고 있을 자리를 찾는다. 마침내 마주한 꽃다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고, 그대가 저를 어떠하게 생각하는지는 꿈에도 모른채 태연하게 답한다.
"연회보다도 중한 일이었단 말이오. 아쉬웁지는 않소? 허나 그것이 낭자의 뜻이라면 내 그리 알겠소."
언제나와 같은 곰살궂은 태도로 응하면서 조금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낭자 또한 자리에 편히 앉기를 기다렸다.
가벼운 말투로 농을 건네던 그녀는 자리에 앉는 나리를 따라 그 앞에 다소곳이 몸을 앉힌다. 혹여나 나리께 흑심을 품고 있다는 알량한 이 마음을 들키기라도 할까, 조급해지는 마음과는 별개로 그 얼굴에 미소가 만개하더라.
“ 질릴 일이 있겠습니까. 언제 뵈어도 새로우신 분이시거늘. 나리를 뵙는 게 제 하루의 낙 아니겠습니까. “
곧 기방에 남은 이가 술과 음식을 내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그녀가 그리 말을 덧붙이며 제 무릎 위로 손을 다소곳이 모아냈다. 밖에서 간간히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사내들의 고성방가가 섞여흐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연회가 끝나려면 이 밤을 지새워도 모자르겠구나, 다행이로다. 그녀가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느릿히 제 입술을 떼내었다.
“ 그러시는 나리께서는 이 계집이 질리지 않으시덥니까. 기녀가 되기 전부터 알아왔던 얼굴을 친히 찾아와주시니, 혹여나 질리셔 어느순간 발걸음을 끊으실까 걱정이 되긴 하지요. “
그 말이 끝마쳐지기 무섭게 창호지 뒤로 인기척이 들려왔다. 누구인고 하니, 방문을 밀어 술과 다과등을 가볍게 준비해낸 상을 들이는 어린 계집이었다. 여기에 내주거라. 온화한 미소로 대했건만 무엇이 불만인겐지 말 한마디 없이 상을 내리고 방을 나서는 계집의 뒷모습을 잠시 멀거니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금 제 시선을 옮겨 나리와 눈을 맞추어낸다.
자리에 앉아 갓을 벗어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벌써 십년 가량을 입어온 이 나라의 옷이어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그보다도 더 오랜 세월동안 입어온 본디 자라왔던 곳의 옷을 입을 때의 버릇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듯 싶어서, 두루마기를 걸칠 때마다 느끼는 묘한 이질감에 어지간히도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였군, 하는 생각에 혼자 있을시 눈살을 찌푸려 불쾌감을 드러내고는 한다. 그러고 보면, 유혜 낭자를 만난 세월 또한 어느덧 십년이 되었다. 친우의 도움을 받아 비밀리에 입국하였는데, 인연이 얽힌 것이 바로 눈앞의 이 낭자던가. 저를 만나는 게 인생의 낙이라고 밝히면서 미소짓는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저 웃음은 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만 떠올려내고 만다. 자고로 기방오불이라고 있고, 월악붕 맹세를 말으라 하지만 내 어찌 이 낭자를 기생으로 취급하느냐는 말이다.
"잘못 알고 있는구려. 만일 내가 낭자를 떠날 마음을 품었으면, 지금이라도 덴덕스런 얼굴로 어엿히 밝혔을 사람이오."
어느 순간 발걸음을 끊을까 걱정이 된다니, 여전히도 외로움을 쉬이 타는 낭자다. 허나 낭자가 근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언제나 술맛이 좋고 여인이 아름답더라는 구실을 대가면서 일부러 발을 들이니.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그대를 바라보다가, 그 사이에 들어와 묵묵히 술상을 내온 어린 계집이 나가버린 문을 살짝 응시하였다. 데면데면하기도 하여라. 본디 그런 사이셨소, 지나가는 말투로 한마디를 툭 던져놓으면서 시선을 도로 낭자에게 맞추었다. 자리앞을 떡하니 차지한 상 위의 술을 문득 보았다. 오늘도 내 우울함을 날려주러 온 건가. 염려의 말을 건네면서도 어서 받으라며 술병을 기울이자 그 아래의 잔을 손에 들었다.
"무용한 걱정이오. 여태껏 잘도 지내왔지 않았소."
술잔을 입에 가져가 모두 들이켰다. 매일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술에 강한 것은 아닌 모양인지라 어디까지 마셔야 좋을지,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무용하였다.
달꽃이 아름답게 피어오른 밤하늘 아래면 좋으련만, 결국에는 그 얼굴을 맞댈 공간은 기방밖에 없더이다. 수 많은 이들이 스쳐지나간 그곳에서 유일히 진심으로 미소를 자아내는 이는 나리밖에 없었으니, 내 어찌 나리를 질리다 표현하겠나이까.
“ 그렇지요. 나리께서는 그러하신 분이지요. 나리가 그러하신 분이기에 다행입니다. “
어린 계집이 종종대며 방을 떠나자 그런 사이냐는 나리의 물음이 들려왔다. 막역한 사이입니다. 부끄럼을 타는 모양이지요. 짤막히 대꾸해낸 그녀가 여느때와 다름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니 그 말이 참말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가 없겠다더라. 다만 저가 나리께 거짓을 고할 이유가 무어겠냐만은. 그녀는 그리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술병을 기울였다.
“ 사람의 건강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병들지는 않지요. 다만 나리께서 제 얼굴을 보려거든 이 술잔을 기울이셔야하니 이 참으로 우스운 당착이 아니덥니까. “
자시지요. 본디 취기에 강인한 분은 아니셨더라. 적당히 자셔야 하실텐데, 그러면서도 조금 더 이 자리를 지켜주길 바라는 그 마음이 퍽 대단한 당착이더라. 그 자리를 조금 오래 지켜주신다면 좋으련만, 언젠가 나란히 저 달구경을 나간다면 좋으련만. 실 없는 공상에 불과했다.
“ 오늘 하루는 어떠셨습니까. 기쁘신 하루셨습니까, 불운이 붙은 하루셨습니까. “
저의 하루는 나리를 하여금 기쁜 하루였지요. 끝끝내 그 한마디를 목구멍으로 삼켜내며 그녀가 술병을 상 위로 내려놓고는 다시금 제 두손을 다소곳이 모아낸다. 기생의 본분이 그런 게 아니겠더냐, 말벗이 되어주고 웃음을 판다면 그것이 기생의 직분이뢰다. 다만 내 웃음을 파는 처지이나 나리께는 도리어 내가 웃음을 사게되니, 이 참으로 곤란하지 않던가. 그녀가 살풋 미소를 비추어냈다.
서역(西域)의 역법으로 1000년에서 1500년 사이 즈음의 일이다. 서역에는 색목인(色目人)이 많았으며 풍토와 물이 달라 역관인 저자도 많은 색목인들을 보며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으매. 기록하게 되었다.
태양이 밤에도 지지 않고 지평선을 맴돈다는 하얀 밤(白夜)의 혹은 눈과 얼음의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색목인인 邪罹络首(사이락수)는 여러 기이한 능력을 부리는 사이한 것들을 부리며 그들의 수괴로서 서역의 수많은 나라들의 혼란스러운 전쟁의 뒤에 그 검은 손길을 뻗었으니. 그로 인해 수많은 백성이 혹세무민(惑世誣民)당하면서 고통으로 신음하고, 고귀한 왕들과 제후들도 근심과 나락에 빠뜨려지고 있었더라. 이에 서역 색목인의 제사장이 요물들의 토멸을 명하니. 이에 응해 의로운 이들이 모인 군대의 함성이 산을 무너뜨리고 강을 메웠더라.
하여나 사이한 것들은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의 연약한 부분을 홀리고, 모순적이게도 邪罹络首의 외모는 그 선한 인상과 지독히 아름다운 외양으로 인간을 홀리게 하는 터라. 의인의 군대들을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이미 존재하였던 금에 정(釘)을 꽂아넣어 균열을 크게 만들었더라. 그러한 사이한 요물들의 날뜀이 있고 나서 저자의 눈으로 본 군대의 마지막 모습은 참으로 참혹하고 잔혹하였도다. 피의 강이 불타오르고, 검은 짐승들이 팔다리로 기어다니며 그 입을 벌리고 팔다리를 집어삼키는 입의 아래와 위가 가히 절벽만큼이나 멀더라.
그 아비규환 가운데 邪罹络首가 더럽혀짐 없는 깨끗한 흰옷으로 사이한 것의 위에 오래된 선왕들의 위엄이 있는 듯 앉아 타고난 지배자의 풍모가 돋보이면서도 사람의 방벽을 약하게 만들어 혹하게 만드는 감미로운 웃음을 지으며 저자를 바라보았도다.
(이 이후의 기록은 찢어지고 훼손되어 남은 기록을 짜맞추면 저자에게 무어라 언질한 그의 행방은 묘연하여 알 수 없었다. 혹은 여즉 어둠 속에 숨어들어 검은 손을 뻗고 있으리라.. 라는 추측만이 무성할 뿐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