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가지 물건들을 챙겨 온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곧이어, 조용히 하라는 학생들의 협박ㅡ책이 알아들은 게 신기하군요ㅡ에 책들은 부르르 떨다가, 이내 조용해졌습니다. 그렇죠. 책은 책입니다. 암요.
금지된 숲의 입구에 있는 장승들의 눈이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금줄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어서 쉬이 통과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암호를 대시오. 암호를 대지 못하면 지나갈 수 없으니!
' 그러고보니, 이번 암호가 뭐였죠? ' ' 레몬사탕! '
유키마츠 교수의 질문에 다니엘 교수가 명랑한 목소리로 장승에게 암호를 댔습니다. 장승은 금줄을 들어올려서 학생들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 교수님이 먼저 들어갑니다. 따라 들어가보면, 공기가 조금 더 맑은 숲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 이 초입부에는 날지 못하는 어느 새를 관찰할 수 있어요. 괴물들을 위한 괴물책 10페이지를 펼쳐보세요! '
책을 펼쳐보면, 아주 뚱뚱하고 몸 전체에 보풀보풀한 깃털이 달린 커다란 새의 그림이 고개를 움직이는 게 보입니다. 위에는 [Diricawl]이라고 적혀있군요.
' 오늘은 디리코울을 조사하고, 먹이를 줘볼거에요 '
다니엘 교수님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허공에서 곡물이 들어있는 주머니가 학생들의 코 앞에 하나씩 나타났습니다.
' 금지된 숲의 초입부에는 디리코울 이라고 하는 덩치 큰 초식 새가 산답니다. 디리코울은 날지 못하고, 싸움을 전혀 하질 못하는 순한 성격이에요. 디리코울을 다룰 땐, 주의 사항이 있어요.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날개를 한 번 퍼덕거려, 다른 장소로 숨어버립니다. 한 마리가 도망치면, 여러 마리가 동시에 도망치기 때문에 디리코울을 절대로 놀래켜서는 안돼요. 알겠나요? 질문 있는 학생? '
소년은 제 쓰다듬이 중간 중간 멈출 때마다 달려들려고하는 책을 잡고 가만히 중얼거렸다. 쉿. 가만히 있어. 다행히도(?) 금새 조용해진 책의 모습에 그제야 소년은 차분히 제 넥타이를 한번 쓸어보고는 금지된 숲을 지키고 있는 장승을 앞에 두고 암호를 주고받는 교수님들의 대화를 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교수님들의 뒤를 따랐다.
맑은 공기에 소년은 천천히 폐부 깊숙히 그 공기를 들이마셨다. 어느쪽을 보더라도 금지된 숲이였지만 초록색이 가득이다. 소년은 주머니에 넣은 거울이 혹여 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더듬은 뒤 책의 페이지를 펼쳤다.
디리코울이라. 책의 페이지에 있는 그림과 이름을 입속으로 굴려보이던 소년은 제 앞에 나타난 곡물 주머니를 손에 쥐었다.
주의사항은, 놀래키지 말것. 소년은 곡물 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깃펜을 움직여서 디리코울이 있는 페이지에 다니엘 교수님의 설명을 덧붙히듯 적어내렸다.
그저 유난히 뚱뚱하고 깃털이 가득한 새의 일러스트 옆에 [날지못함] 이라는 글씨를 빠르게 휘갈겨 쓰고는 다시 곡물 주머니를 집어들었다.
질문, 질문은 다른 학생들이 할것이다. 소년은 그저 맑은 공기를 다시금 깊게 들이마실 뿐이였다.
레몬사탕이라니.뭔가 귀여운 암호다. 금줄이 들어올려진 걸 확인하고는 이내 다른 사람들을 따라 들어가며 주위를 유심히 살핀다.음,나중에 몰래 들어오려면 이 쪽으로는 들어오면 안 되겠어.아니면 미리 암호를 탈취(??)한다던가.. 챡을 펴보라는 말에 부드러운 손길으로 책을 펼쳤다.
"물지 말고~옳지 착하다~"
물기만 해봐라.원펀치 올 강냉이가 뭔지 보여줄테니까.. 아무튼 책을 펼치자 왠 새의 그림이 보인다.이름은 뭔지 상관 없었다.귀엽잖아!빵빵해!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주어지는 곡물 주머니를 살짝 매만졌다.음,그냥 먹이만 주면 되는건가?간단한걸!
레몬사탕. 왤까? 레몬사탕. 아연은 다니엘 교수님이 외친 암호를 듣고 또 다시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빠졌다 이내 그만두었다. 가만히 보면 은근히 쓸데없는 생각을 즐기는 타입인지도 모르겠다. 당당하게 서 있는 장승을 지나치니 조금 더 울창한 숲이 반긴다. 바람이 좋았다. 아이는 자연스레 걸음이 경쾌해진다.
아연은 10페이지를 펼치곤 그려진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펼치는 과정에서 책과 다시 한번 씨름했지만 아까보다는 간단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새다. 먹이만 주면 되는 일이라면.... 눈 앞에 떨어진 곡물 주머니를 집어들고는 다시 날뛰려는 책을 둥기둥기 해주는 데 진땀을 뺀다. 이 놈 유난히 까칠하네. 질문은 다음으로 넘기도록 하자. 누군가는 제가 궁금할 것도 질문해 줄 것이다.
책을 도담거린 가람이 조심스럽게 책을 폈다. 디리코울... 찿았다. 인도양에 살면 새가 어떻게 한국의 기후에 적응해 살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삽화와 눈 앞에 있는 애가 아주 판박이였다. 덕분에 얼음이 되어버린 가람의 자색 눈만이 바지런히 움직여 디리코울의 퉁퉁한 몸체를 쫓았다.
"디리코울의 능력과 불사조의 능력이 유사한데, 둘 사이의 유전적인 공통점이 있나요?"
한 디리코울이 몸을 움직여 가람의 근처에 있는 곡물 주머니에 다가왔다. 가람이 아닌 척 한 번 쓰다듬어보고 싶다는 듯 디리코울을 곁눈질로 훔쳐보며 손을 꿈지락거였다.
괴물 책을 펼처보는 것도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루는 방법 쯤은 이미 알고있었다지만 역시나 얄미운 책이라, 곱게 다루고픈 생각은 그다지 없었다. 책 표지를 벗겨버릴 듯 거칠게 긁어내고는 한 손에 펼처들었다. 자연히 반대 주머니로 들어간 손 안에 잡히는 물건이 있었다. 감촉으로 보아서는 지난번에 우연히 얻게 된 물건들이라 생각되는 것들이었다. 포켓 스니코스코프와 행성 시계였던가. 그것이 왜 내게로 전해졌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교수들의 지도를 따라 걸어감에 따라 공기가 점차 맑아져갔다. 시선을 책에서 떼어내 앞으로 향했다. 금지된 숲.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어두운 숲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둑한 풍경이 꼭 저가 아는 읍슴한 검은 숲과 같아 꺼려지는 것이었다. 아, 본분을 잊으면 안 되는데. 다시금 쭉 찢어져 오르는 입가를 잡아 누르며 페이지를 넘겼다. 10페이지, 디리코울. 전반적으로 무해한 새. 주머니에 넣은 손 안에서 유리 팽이가 만져졌다. 놀래켜서는 안 된다. 얼마 전의 후배가 그러지 않았던가. 웃음이 무섭다고. 역시나 웃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이 좋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