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팡이를 빼어 손에 쥐는 것을 네가 보지 못하였을리가 없다. 뭐, 당연한 반응이겠거늘. 누구나 갑작스레 마법을 사용하면 놀랄 수 밖에 없을터다. 긴 침묵이 지나갔다. 네 입술은 여전히 휘어있었고, 시선은 지팡이를 향하다가도 그의 담담한 눈동자를 다시금 향했다.
"그리하겠지요." 지금이라면 누구 하나 죽어도 괜찮을 것 같지. 비밀은 맞지요. 그렇지 아니하다면 제가 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하였겠는지요? 유연히 미소짓는 모습은 친절함이었을지도 모르고, 그 이외의 다른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휘저어지고, 배배 뒤틀려버려 무엇인지도 모르겠지. 아우프가베는 잘못 선택한게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해야 했거늘. 차라리 가주를 포기해서 죽는 건 어떠한가? 지금이 기회일텐데. "말 그대로입니다. 만일 이 미천한 자가 아우프가베의 흉내를 내었다면, 사실 알타이르 가문의 차기 가주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어떨 것 같냐, 그 말씀입니다."
딱딱하게 굳는 표정을 뒤로하고 그것은 여전히 입술을 휘어 웃고 있었다. 입꼬리의 미세한 경련조차 어느새 사라져 있는터였다.
>>564 맞아요 눈 진짜 댕이쁜데;;;;; 가격이 미쳐돌아감;;;;;;; 그래서 저가 안구만 사는데 그래도 좀;;;;; 사실 저도 옷 가격보고 욕하면서 그냥 바늘 잡고 만들었음;;;;;;;; 앞으로 2주는 더 있어야 인형쟝이 올텐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실? 그거 개조해서 월하 만들거였거든요;;;;
지팡이를 향하는 아우프가베의 시선에도, 소년은 책상에 올려놓은 지팡이 손잡이 끝에 박힌 검은색 보석을 눈에 담았다. 저의 눈과 꼭 닮은 보석. 비밀. 비밀이라. 소년은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빼내어 제 입가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이상하리만치 누군가의 비밀을 자꾸만 듣게 되는 이런 상황에 소년은 알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아우프가베 세이 알타이르, 라는 분은 제 앞에 계시는 당신일진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까."
도청방지 마법을 쓸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소년은 단조롭고 담담한, 정중하기 짝이 없는 차분한 어조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팡이를 집어들고, 소년이 느릿하게 손잡이 끝에 박힌 검은색 보석을 손끝으로 쓸어낸다. 긴 침묵이 그와 소년의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차갑게, 날이 서있지도 무겁게 어둡지도 않은 침묵이였다. 또 너의 비밀을 발설할 생각이니 아가야? 녹이 슨 쇠사슬은 참으로 쉬이 끊어지지 않더냐. 이것은 발설하지 말아야할 것.
소년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입을 열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아우프가베 세이 알타이르라는 사람이 다른 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렴, 무슨 상관입니까."
원망 말아라, 원망하면 아니된다. 너는 가문의 비밀을 누설하지 아니하더냐. 너의 죽음은 합당할것이요, 그 누구도 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게다. 위선자, 배반자, 가문을 모독한 자로 명예로이 기억되겠지. 모두의 기억속에서 그리 변할것이다. 추락하는 꼴이 마치 네 형과 같겠구나. 속으로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그림자의 인생은 이리도 같단 말인가. 그리하다면 내가 옳은 길로 가겠다. 망가진 육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그림자가 이룰터다.
너는 기묘하리만큼 차분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단조롭고 정중한 중얼거림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독기서린 눈도, 지금은 집어넣어두도록 하자꾸나. 방학때까지만, 돌아오는 방학까지만 집어넣자꾸나. 그때만 지난다면 모든것이 끝나리라. "그렇습니다. 비밀이라기엔 작고 가볍지요."
제가 멍청하였습니다. 미리 드러낼것을, 안타깝게도. 긴 침묵이 다시금 지나갔다. 나쁘지 않았다. 얌전히, 가지런히 모인 손등에 문득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개미가 기어올라와 그의 살점을 파먹었다. 곧 살을 파먹힌 손은 뼈를 드러내겠지. 제 손등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잠시 웃던 표정을 지웠다. 저주가 자신에게도 옮고 있었다. 아르테미스가 노한 일이다! 역병을 옮기는 싹을 쳐야한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다 모순과 역병에 찌들어 죽어가는 것을 모르고 있다니, 역겹기 그지 없구나. 손톱이 일순 날카롭게 섰다. 손 끝마디가 새하얘져선, 그래, 상처를 헤집고 싶을 정도로. 격렬히 목이 가려운게다.
"..그렇지요. 다른 이라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일은 없을테지요. 저는 다른 이입니다."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다시금 미소를 지어냈다.
"어머니가 혼혈을 가문원으로 받아들여 저주를 받고 죽은 형의 이름을 뒤집어 쓴 동생이지요."
뒷목이 뻐근했다. 요며칠 관절의 부분이 아릿하게 아파오는 것이 성장기에 흔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였나보다. 소년은 지팡이를 매만지던 손을 떼어내고 제 손목 부근을 잡고 느릿하게 천천히, 어루만지면서 아릿하게 아파오는 통증을 쓸어냈다. 열 넷의 나이에 훌쩍 커버린 몸. 소년은 그렇게 천천히, 차분하게 손목을 만지던 손으로 이제는 뒷목을 어루만졌다. 손끝에 걸리는 쇠의 차가움에, 소년은 쇠를 따라서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가 차분하고 감정 기복이 적은 눈동자를 느리게 깜빡인다.
비밀이라하기에는 작고 가볍다고 하는 말에, 소년은 이젠 턱을 괴어냈다.
"마음을 편하게 드십시오. 형님."
그의 말에 따르면, 형님이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소년은 마법약 책의 표지를 가볍게 다시 손끝으로 두드렸다. 톡. 톡. 일정한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소년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도청방지 마법이 걸려있는 공간에서는 이 소리도 새어나갈 일은 없으니까. 손끝이 새하얗게 되셨습니다. 소년은 평이한, 단조로움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고 잠시 입을 다물어 침묵을 지켰다.
알타이르 가문은, 순수혈통이라고 소년은 막연하게 생각했다. 혼혈을 가문원으로 받아들여서, 저주를 받은 [형] 의 이름을 뒤집어 쓴 동생. 형의 이름을 버리는 대신 형을 이어나가기로 했다는 아우프가베의 말에, 소년은 차분하기 짝이 없는 동요없는 눈동자로 아우프가베를 응시한다.
"지독한 이야기를 들은 느낌입니다. 작고 가벼운 비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꽤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독한 이야기? 지독한 이야기라고 했니 아가야? 놀라운 이야기라고? 오, 너의 그 비밀만큼 지독한 이야기가 어디있을까. 녹슬어 끊어져버린 사슬과 가위의 이야기보다 더 지독한 게 무엇일까! 성실하게 너의 이야기를 하는 게 맞지 않니? 아가야. 오, 그래. 너는 더이상 성실하지 않지. 착하지도 않지.
소년은 차분하고 고요한 담담한 표정으로 제 어금니를 꾹 맞물리게 다문 뒤 느릿하게 눈을 한번 깜빡였다.
"그 사실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앞에 있는, 형님의 의지를 잇는 아우프가베 형님께서는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