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군요, 하고 다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체질도 간혹 가다 있었다. 다솔은 비슷하게 단 걸 많이 먹으면 꼭 보건실에 가던 예전 반 여자아이(딱히 친하지는 않았지만)를 떠올렸다. 사소한 점이지만 이런 지나가는 말도 기억하려 꽤 애를 썼다. 이런 저런 각기 다른 사람들의 특징을 확실하게 기억해 두면 나중에라도 쓸모가 있다는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습득한 지식이었다. 월하 선배에게 코코아는 되도록 권유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 아, 그래준다면야 저야 감사하죠. "
부끄럽게도 아직 휴게실 위치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앞으로 자주 들를텐데, 지금이라도 위치를 정확히 알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다솔은 월하를 따라 일어섰다. 새삼 일어서서 바러보니 월하의 키가 자신의 키보다 더더욱 크다는게 느껴졌다. ...이 경찰서, 다들 거의 다 키가 큰 기분이야. 깔창을 신고 와야 할까. 키 때문인지 걸음에 격차가 조금 났기에 월하의 뒤꽁무늬를 쫄래쫄래 따라 걷던 다솔은 문득 쟁반을 월하가 들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최대한 걸음을 빨리 해 월하를 따라잡아 옆에 나란히 섰다.
" 제가 들겠습니다. "
그래도 차와 쟁반을 가져온건 월하니까, 돌려놓을 땐 다솔 자신이 드는게 더 맞는거 같았고, 솔직히 말해서 선배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마음도 조금은 저 밑에 숨어있었다.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한다. 아무래도 과거의 일이 기억났나보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이 권주를 어떻게 대했더라... 더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은은 남모르게 땀을 훔쳤다. 돈 때문에 컵라면을 사지 않는다는 말에 지은은 순순히 수긍했다. 그야 경찰이 되면서 월급을 받을 테고 –그것도 아롱범팀은 다른 경찰에 비해 더 많이 받았다- 권주가 함부로 돈을 쓸 성격도 아니었기에 예전에 비해 여유는 많이 생겼을 것이다. 그는 권주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매일은 아니란 말이지?”
칩떠보듯 권주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아내기 위한 행동인 듯 싶었다. 이대로라면 지은은 권주가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금방이라도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권주에게는 다행이게도 그 행동도 권주의 말에 바로 풀려버리는데, 밥을 사준다는 말이 그리도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얼굴이 환해졌다.
선배로써 당연한 거니까. 아무렇지도 않단 듯 대꾸한다. 쟁반을 챙겨 든 채 다솔을 기다리다 문득 자길 올려다보는 모습에 눈을 깜빡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 단 듯이. 미묘한 웃음을 띈다. "내가 좀 키가 많이 크긴 하죠."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다솔에게 농담을 던진다. 아무래도 조금은 익숙해서. 키 때문에 바라본게 아닐 수도 있지만. 물그럼 다솔의 반응을 지켜보다 걸음을 옮긴다. 사무실 문턱에서 잠깐 멈추며 힐긋 다솔을 돌아본 채 기다리다 밖으로 나선다. 긴 복도를 걸어 휴게실로 향하며, 다음은 어딜 알려줘야 할까 생각하다 다가온 인기척에 자리에 선다. 갸웃 고갤 기울인 채. 다솔을 바라본다. 잠시간 입을 다문 채 있다가 입을 연다.
별것 아니였지만 조금 긴장했던건가. 지은이 모르도록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그야 건강을 걱정 받는건 오퍼레이터씨 만으로도 충분한 걸. 게다가 순간 과거의 지은을 떠올려서 음. 그래도 금방 풀어져서 다행인가.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띄어졌다. 별로 티가 날정도는 아니였지만.
"이 밀크티도 같이 계산할게. 따로 계산하기에는 번거롭잖아."
결국 원래 목적과는 어긋나버렸군. 계산대위에는 컵라면 대신에 옥수수 초코바와 밀크티가 놓여 있었다. 지갑에서 천원 몇장을 꺼내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딸랑 소리와 함께 편의점 문 밖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먹는거니 면이나 밀가루 종류는 조금 걸러야겠지? 근처 식당중 적당한 곳을 생각하다, 문득 앞을 자주 지나다니긴 했지만 한번도 들어가보지는 않았던 가게가 눈에 띄었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리고 한 쪽 입꼬리만 올려 씨익 웃는다. 권주가 계산하는 것을 보며 미묘한 감정이 드는 것이, 그야 이렇게 직장 동료가 되어 자신이 권주에게 얻어먹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계산이 된 밀크티와 초코바를 손에 들고 권주를 따라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그냥 넘어갔지만 그래도 밥은 잘 챙겨먹어."
크게 관여할 생각을 없었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인지라 걱정이 되어 지나가듯이 권유한다. 한국인은 밥심이래. 나이가 든 어르신이 할 법한 말을 작게 중얼거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권주가 과연 무슨 음식을 고르려나... 선택권은 없어도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순댓국? 뭐... 나쁘진 않지만. 그래, 순댓국 먹자. 너가 사는 거니까 상관 없어."
점심으로 순댓국은 부담스럽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순댓국은 맛있으니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식이다. 순댓국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고 신사마냥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