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겨울인데도 느껴지는 따뜻한 감각,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들을 담아낸 네 새카만 눈동자,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 너에게서 돌아올 수많은 말들을 떠올려냈지만, 설마 그 중 가장 달콤한 말이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어째선지 벅차오르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꿈에서만 그리고 있었을 장면이, 현실로서 나타났다. 그래서 의심스럽다. 내가 보고 듣고 있는 이 장면이 과연 현실인지. 또 다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닿으려고 뻗은 손에 의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나의 착각이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느껴지는 감각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껴안고 있는 감각은 다름아닌, 정말로 너였던 것이다.
"...뭐가 고맙다는 거야."
팔을 들어서 너를 마주 안았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 같이. 조금 전에 너에게 말한 비참한 과거가 불현듯 정신없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억지로 집어삼켰다. 더 이상은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방금 흘려버린 무뚝뚝한 소리는, 감정을 억누르다가 터져나온 것이다.
"고마운 건 나라고..."
있잖아. 멍청하게도, 난 아직도 이 현실을 믿을 수가 없겠어. 사랑과 거리가 먼 사람인 나는, 마음속을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너를 향한 이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 뒤로 입을 다물고 너를 안은 상태로 계속 있었다. 누구라도 들어줘. 만일 이것이 그저 행복한 꿈일 뿐이라면, 부디 끝나지 않고 영원토록 해줘.
"역시 성류시 내에서 아동유괴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군요."
"성류시라... 서하 군이 파견된 그곳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컴퓨터 모니터가 상당히 많이 놓여있는 방 안. 그곳은 마치 영화속에서 나올법한 브리핑룸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전방에 띄워져있는 커다란 화면에는 성류시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 방의 책임자로 보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은 그 화면을 바라보면서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 그는 근처에 있는, 마찬가지로 검은 양복을 입은 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것도 그 R.R.F인지 뭔지 하는 것들이 설치는 것인가?"
"네. 아마도 틀림없습니다. 최서하 요원이 보고한 바가 있는 그들이 암약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그 목적은..."
"리크리에이터겠지. 수많은 아이들이 유괴되고, 만약에 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고 한다면..그것은 겉잡을 수 없는 충격에 흽싸이게 되겠지. 그리고 그 범인이 만약에 그 아이들에게 익스퍼로서의 능력을 사용해서 해를 끼친다고 한다면...부모란 존재는, 절대로 그것을 잊을 수 없게 되지. 그 충격과 사회적 공포를 막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리크리에이터. ....아마도 그 아이들의 존재도 지워지게 되겠지. 일이 커진다면 말이야. 월드 리크리에이터를 찾기 위해서 꽤나 머리를 썼군."
"어쩔까요? 성류시의 요원들에게..."
"그럴 필요 없네. 하고 싶은대로 두도록 하게."
피식 웃는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그 지시에 지시를 들은 사내는 깜짝 놀라서 방금 말을 한 검은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중년남성은 피식 웃어보였다.
"왜? 못 들었나? 하고 싶은대로 두도록 하라고 했네. 요원이 익스레이버. 그들과 협력하는 일은 없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움직이지 않을 걸세."
"자, 잠깐만요! 그러다가 아이들에게 무슨 해라도 생기면..."
"...상관없어 월드 리크리에어트를 뒤쫓는 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서 리크리에이터를 발동시킬 만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좋지 않겠나. 어차피, 아이들이 몇이 희생된다고 하더라도, 그 존재를 지워버리면 그만... 그것이 리크리에이터의 정말로 무서운 힘이지. 처음부터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로 지정하면 그만이야. 그렇다면 아무도 다치는 이도 없고 사회적인 혼란도 없네. ....남는 것은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흔적을 서하 요원이 찾는 것 뿐이지."
혹시라도 팔을 뻗으면 사라질까, 껴안으면 부스러질까, 너와 얼굴을 맞대면 온기가 사그라들까. 수천 번의 아찔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이게 꿈이라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일까요. 너라는 존재부터가, 내게는 없던 걸까요. 또 다시 눈을 뜨면 달빛도 찾아오지 않는 어두운 방 한켠일까요. 하지만 내게 닫는 너는 진짜였다. 네 온기도 마음도 목소리도, 모두 진짜야.
“ 열여섯의 내가 만난 게 너라서, 스물 두살의 나를 찾아온 게 너라서,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너라서. “
모든 게 고마워. 그렇게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네가 함께였다는 사실이. 지금 내가 안을 수 있는 게 너라는 사실이. 저를 감싸안는 감촉에 유혜가 푹 얼굴을 숙여버렸다. 그러면서 네가 혹여나 사라져버릴까, 아직도 그 못된 의심을 품으며 너를 끌어안고는, 오른손을 들어 네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가 네 곁에 있을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 나는 너를 절대 떠나지 않을거야. “
그 무엇이 가로 막는대도, 빌어먹을 운명이 또다시 나를 절망에 밀어넣는대도. 만약 너와 나를 찢어놓는대도. 나는 너를 찾아 뛸거야.
“ 그러니까, 너도 나를 떠나지 말아줘. “
목소리가 막혀 단어들이 나오질 않았다. 마음 한켠이 울컥였고 눈가가 달아오른다. 너는, 너만큼은. 사라지지 말아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는 내게 남아있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