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맛집이라니까, 라는 당연스럽다는 말에 능청스럽게 답하면서 헛웃음을 피식 잠시 흘렸다. 물론 말한 것처럼 그리 심각하게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위는 적당한 크기라서 다행이야."
여전히 묘하게 사차원적인 화법으로 말하면서 나른한 무표정을 유지했다. 초코바 포장지는 버릴 곳을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못 찾아 결국 몇 번 접고 난 다음에 주머니에 넣었다. 가는 길에 쓰레기통을 발견하거나 하면 거기에 버려야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고,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를 다시금 맞이하게 되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졌고, 그 공백을 채우듯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더란다.
"당연하지."
서로 들어가냐는 물음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면서 즉답을 돌려주었다. 제 외투를 단단히 동여매는 모습에 "벌써 추위랑 전쟁 중이야?"라는 실없는 소리를 던지기도 하였다. 하긴 아까도 생각했지만 이 녀석은 지금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얇게 입고 왔다.
"사실은 내가 뭘 먹을지 몰라서 문자로 오늘이 마지막 유효일이라고 한 거야. 메뉴는 네가 고르기로 했으니까."
별로 놀랍지도 않을 진실을 밝히면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래도 저쪽이 알차게 썼다고 생각했다면 그만인가. 이제는 정말로 패자 신분과는 작별이다. 문득, 그 녀석의 손목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까 저번에 팀원끼리 짧게 진실게임을 했을 때 저 손목의 타투의 정체를 밝혔었더라. 술기운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기가 찼었다. 적당히 얼버무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자해 혹은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라는 말 그 자체 아닌가. 그 날 이후로 이에 대해서는 계속 입을 다물고 왔지만, 역시 나는 이런 걸 눈 감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니었다. 성가신 성격이지. 어려서부터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다음부터는 그런 짓 하지 말지 그래. 타투가 그런 의미였구나?"
소원권에 대한 대답을 뱉은 후 조금의 시간을 두고 나서 냉소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옅은 미소를 은근히 띄우면서 툭 뱉었다. 하다가도 평소의 나른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그냥 지나가는 소리였어. 식사 끝나자마자 미안하다"라고 느릿한 깜박임과 함께 덧붙였다. 하지만 역시 그냥 넘어가는 짓은 힘들다. 더군다나 저게 자살시도의 흔적이라면 더더욱. 동생 중 한 명을 떠올려냈다. 잘못했으면 정말로 죽을 뻔했다. 그 때 코미키 아야코가 있었던 것을 감사해야하는 건가...하지만 그 인간을 용서할 수는 없다. 잠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337 다혜쟝은 전반부 최종보스나 마찬가지인 이였죠. 사실상 전반부의 모든 사건의 뒤에는 전부 다혜가 있기도 했고 말이에요. 원래 배정하려고 했던 곡은 이런 느낌의 곡이었답니다.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계획적으로 진행시키다가 정말로 마지막에 월드 리크리에이터의 발동으로 모두가 S랭크로 오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결국 비틀거리면서 순식간에 무너져버렸죠. 참으로 인상깊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허약속성 버리면 나한테 남는 게 있긴 해요? 제이가 메이비의 알만하다는 듯한 혀차는 소리에 깔깔 웃었다. 당신이 곤란할 게 어디 있다구요. 내가 쓰러지면 챙겨주긴 할 건가봐. 제이가 부드럽게 숨을 죽여 웃었다. "왜, 나 쓰러지면 당신이 업어주면 되잖아." 설마 이젠 사수 아니라고 매정하게 굴 건 아니죠? 남은 커피 전부로 목을 축인 뒤 소리없이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음, 난 정말 익스파라도 없었으면 이 험한 세상 살아가기도 힘들었을거야. 그치?
"헉, 오늘도 왔어요?" 제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의자 위에 두 무릎을 끌어모았다. 남자? 여자? 능력은 어떤거래요? 아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차피 만날 거잖아. 다들 잘 지냈나 몰라. 조금씩 기억나는 인영들을 기억으로 더듬던 제이는 다행이 제 자리가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날숨을 흘렸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늦기 전에 서장님한테 인사도 드려야 하는데. 서하 씨랑 하윤 씨한테도. 서하 씨는 여전히 깨가 떨어지나? 다른 커플들은 어떠할까. 내가 없는 동안 뭐가 변했을까. 그걸 내가 아는 날은 올까. 시덥잖은 걱정과 상념을 전부 밀어내고서 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두 손으로 툭툭 털며 정리하는 모양새를 한다. "뭐어…, 우리 사무실은 조용하지 않은 게 매력이니까." 잠잠하다 싶으면 또 사건사고 처리하러 나가고, 툭하면 삐지고 싸우고 그러다가도 웃고 울고. 그런 거지. 사람은 외로워서 어쩔 수 없다나요, 뭐라나. 제이가 빙글 웃으며 메이비를 올려다본다.
"오늘은 그냥 인사차 왔어요. 당신 얼굴이라도 보고 가서 다행이다. 그래도 몸은 챙기면서 해요." 제이의 걱정어린 잔소리는 아마 당신에게 익숙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달리는 법만 알지 멈춰서 쉴 줄은 모르니까. 퓨즈가 없다구요. 가끔은 그런 당신이 염려스러워요. 나보다 젊은데, 많이 살아야지. 제이가 발끝을 살짝 올려 손을 쭈욱 뻗고는 당신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린다. "또 봐요. 음, 아마 내일?" 서장님한테도 연락 해야 하니까. 오늘은 짐정리가 바빠요. 윽 청소도 해야하구, 할 게 너무 많아요. 제이가 허공에 손을 휘적이며 당신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