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말을 빙빙 돌려서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물으니까, 마찬가지로 핵심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모호한 답변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고백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다, 설명서도 안 읽고 물건을 작동시켰다가 피해를 본 셈이다...그러니까 저 말을 조금 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울프 씨와 그녀가 고백한 그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든 꼬여있었다는 거겠지.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시야 가장자리에서 어렴풋이 울프 씨가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분명 떠올려내기 싫다는 표시겠지. 이해한다. 나도 그런 기억이 수도 없이 많고, 당장 지금 나온 것도 싫은 과거가 떠올라버려서니까.
"거북한 질문을 한 모양이네요. 이 점에 대해선 사과하죠. 뭐, 이해를 못하는 게 아니니까..."
나른하게 중얼거리듯 말하면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시선은 다시금 허공을 향해 있었다. 누구나 싫은 기억은 있을테니까요, 라고 무게없이 덧붙여보기도 한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또 다시 제 손목을 부여잡고 있었다. 아직 따갑기는 따갑다. 미약해졌지만. 무의식 중에 저지른 행동에 나는 작은 헛웃음을 허탈하게 흘렸다.
"......"
그대로 침묵하다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취기에 다소 비틀거리다가 우뚝 서있더니 뒤를 돌아서 울프 씨를 내려다보았다. 아까, 처음 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능청스러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계속 있을 건가요? 뭐, 벤치와 사랑에 빠지셨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농담 같은 이상한 소리도 덧붙여보았다. 나는 이제 슬슬 돌아갈 생각이다. 방...이젠 다시 괜찮아졌겠지. 아마.
나는 센하를 불러보았다. 선술집에서 오래 있다 나왔는데, 센하가 많이 취해버려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어 벤치에서 잠시만 쉬다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센하...벤치에 등을 기대고 고개는 푹 숙인채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
"...센하? 저기, 센하아?"
몸을 푹 숙이고 고개를 돌려서 센하의 얼굴을 보려고 하였다. 자고 있는 거야? 나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하며 센하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앓는 소리가 들려온다. 우와...큰일났다. 이러면 내가 어떻게 서까지 데려다주냐고. 아무리 센하가 가볍다고 해도, 아무리 내가 경찰이라고 해도 완전히 늘어진 센하를 부축하고 갈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진 않다고.
"...나...미...조으만 이따..."
부정확한 발음으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조금만 이따가 가자는 거지...?
"...정말."
알겠어. 조금만 이따가 가자. 한숨과 함께 답했지만 미소를 지은 나는 다시 벤치에 등을 기댔다. 센하의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한 번 손을 뻗어서 그 새카만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졌다. 음, 누가 관리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데 이 뻗친 머리카락은 아무래도 타고 난 것 같아서...무리려나.
"센하...센하..."
심심했는지 이 사람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나는 어떤 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나 센하 어떻게 부를지 많이 고민했었지. 센하, 센하 군, 센하 씨...사실 센짱도 생각했었다? 후후. 귀엽잖아."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계속 중얼거렸다. 듣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혼잣말이어도 좋아.
"...사실, 나한테 제일 편한 건 센하 오빠인데 말이야..."
눈을 잠시 내리깔았다. 응, 역시 오빠가 제일 편하지. 아무래도.
"하지만 센하가 그 때 그랬잖아. 나는 아키오토 센하, 너는 호시야마 나츠미. 이제는 완전히 남남이 되어버렸다고. 원망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고. 나는 분명히 경고했어, 라면서..."
그렇다. 반지를 부수기 전, 센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ㅡ정말로 부술 거야? 어쩌면 네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보다 더욱 잔혹한 이야기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그래, 이건 경고야. 넌 그걸 감당할 각오가 되어있어? 이걸 부술 수 있겠어? 선택은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그리고 뒤따라오는 결과는 네가 책임지는 거야, 타나카 나츠미.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
나는 부수겠다고 대답했지.
"...후회하지는 않아. 나도 진실을 알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알아버린 진상도 그렇게까지 마음 아프진 않았어. 오히려 후련한 감정이 더 컸지. 그런데 나는 외로워졌어, 그 때."
그렇게 자상하던 오빠가, 이제는 완전히 타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남이 봤을 때는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여렸던 소녀에게 그것보다 잔혹한 이야기는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한 번만, 오늘만 눈 감아줘. 센하 오빠. 오빠를 이런 호칭으로 부르는 걸."
나도 조금 취했나보다.
"사실, 센하가 아직도 내 오빠였으면 나는 자랑하고 다녔을 거라고. 나한테 이렇게 잘생긴 오빠가 있답니다~라면서. 후후."
장난스러운 이야기를 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응, 그만큼 기뻤을텐데.
"한 때 자신의 오빠였던 사람을 남처럼 대한다는 건 역시 버거운 일이야, 나한테는..."
그렇지만 코미키 스즈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이미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나는 스즈나로서 당신을 토오야 오빠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어. 당신도 이제는 더 이상 코미키 토오야가 아니고. 물 흘러가듯 조용히 생각하며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센하가 자주 그러는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기는 유난히 별이 밝네. 회색 눈동자에 그 별빛을 담았다. 응, 코미키 라이무에게서 물려받은 이 색깔. 하지만 이제는 호시야마 나츠미니까. 327이었지만, 이제는 723. 하하, 웃긴 말장난이네. 코미키 텐마. 이것만큼은 마음에 들어. 센하의 말장난 같아서. 호시야마 나츠미로서 쭉 지낼테니까.
"...이제 슬슬 몰락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옅은 미소를 띄우면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야아아압 다들 예상하셨을 것 같기는 하지만 비설 하나를 푸는 독백 이야아아압!!!(던지기)(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