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프레드릭가의 저택, 저택을 지키는 기계장치의 숙녀 아리아는 언제나와 같이 저택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 축축하게 내리는 비가 그녀의 기분을 조금 우울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자신의 주인을 마중하려면 이렇게 늘어져 있어서는 곤란하다. 우선 청소부터 시작하기 위해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기묘한 타이밍으로 저택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린다-
"손님 인가요?"
저택 관계자들은 노크를 하거나 하지 않는다. 알폰스는 그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올 뿐이고, 마부의 경우에는 돌아왔다고 인사를 건네며 들어온다. 노크를 했다는건 저택과는 관계없는 부외자.
아리아는 조심스럽게 문에 다가가 살짝 열어본다. 특이한 인상의 여행객이 문 앞에 서있었다-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까마귀 친구였나, 분명 소중한 반려가 있었지. 운명선상에 공동선을 그리고 있던게 인상적이었는데, 한번 방문해볼까. 근심하는 소녀인척을 하고 지난 카페에서의 만남을 회상하고 혼돈은 이름없는 방랑자로서 형태를 갖춘다. 애초에 그 또는 그녀는 형체라는게 없었다. 지금은 그녀지만. 분기점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않았기에 그 까마귀 친구, 알폰스의 저택을 찾는것도 큰 어려움은 아니였다고 방랑자는 생각한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을 잡은것은 꽤나 방랑자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다. 비를 피하는 척 오늘은 어떻게 농락을 해볼까하는 그런 기대가 있으니까. 이 세계를 살아가는 자가 세계를 어떻게 관측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방랑자의 눈에는 자신의 여흥을 즐기기위한 체스판에 불과했다. 모든 것은 자신을 위한 오락이다라는 거겠지.
"도착했습니다♪"
방랑자는 비바람을 타고 이동해서, 마침내 저택에 도달하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마침 알폰스가 아닌 그의 운명선상에 있던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기에 방랑자는 방랑자로서 조금 힘든 표정을 짓고는 비를 피하러 왔다는 질문에 대답한다.
"아, 네.. 저는 이곳저곳에서 유적발굴을 하는 탐험가라서 이렇게 신세를 좀 지고싶네요. 괜찮겠습니까?"
물론 방랑자인 이상 근심하는 소녀하고는 인상이나 복장, 말투, 성격등 모든것은 다르게 설정한다. 여러모로 진짜와도 같은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 같다고 혼돈은 스스로 자부하고있다.
물론 그를 만나봤기에 어떤사람인지는 충분히 알고있었지만, 아리아의 응대를 받아 응접실에 도달한 방랑자는 불피워진 난로에 몸을 조금쬐는 시늉을 하고는 저택의 의자에 앉았다.
"뭐 형식상으론 유적발굴자라고는 하지만 보물사냥꾼쪽이 더 맞는 말이긴한데.. 요컨데 '가치있는 보석'을 찾아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싱긋 방랑자는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하였지만, 그것은 비유였다. 요컨데 이야기를 빛낼수있는 배우를 그녀는 찾고있었으니까. 그것을 가치있는 보석이라고 은유적으로 내포하고있었다. 가령 눈앞에 있는 아리아는 어떨까? 어떻게하면 그 까마귀 남자와 분기되는 미지의 이야기를 창조할수있을까?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해보고 마는것이다. 그러니 눈앞의 기계장치 소녀는 방랑자의 눈으로는 잘 세공한다면 이야기를 빛내줄 원석으로 여기고 있었다.
"조금 낯을 많이 가리긴 하지만- 그 역시 좋은 사람이에요.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잃어 이단심문관이 되어 재회한 아이에게 대부 노릇을 해주려고 하거나, 목을 다친 동료를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수화를 배운다거나.. 물론 겉으로 내색을 안해서 문제지만요."
조용히 홍차를 따르며 소녀의 앞에 찻잔과 다과를 내어준 아리아는 보물사냥꾼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물사냥꾼이라는건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걸까요? 하지만 낭만적인건 변함없네요.
"판도라의 상자-? 뭔가 대단한 이야기 같아요!"
눈을 반짝이며 방랑자의 이야기를 기대한다. 심해와 같이 어둠만 가득한 그곳에서 그림자가 휘감는 듯한 음울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듯 서서히 저택을 좀먹는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 만약 알폰스였다면 지금 당장 그만두라고 외쳤을 것 이다. 그녀는 분명 이야기의 교차점- 그녀에게 가는 영향은 돌고 돌아 매우 크게 알폰스에게 영향이 올 것 이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이든.
"역병? 저주 인가요? 조금 으스스한 이야기도 저는 굉장히 좋아한답니다. 듣고싶어요 여행자님의 이야기."
"원래 그런부분을 수줍어하는 사람도 있는법입니다. 자신을 강직하게하기위해서 그런 호의자체를 내색하지않으려 하는거죠."
그런면모도 있었나 하고 방랑자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리 흥미로운 정보는 아니였다. 어차피 '읽어낼수있는 부분'에서도 그런것은 어느정도 드러났으니까. 방랑자는 감사합니다 라고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는 찻잔을 들고는 이야기를 안주삼아 이야기하려고했다. 물론 이것은 눈앞의 소녀와 그와 엮여있는 남자의 이야기라는것은 숨겨둔다. 어디까지나 간접적으로만 간섭했지만 그결과가 눈앞에 있는데, 한번 가지고 놀아봐야하지않겠는가.
쿡쿡거리며 방랑자는 대단한 이야기라는 아리아의 말에 웃어주고는 후회하지말라고 들리지않게 중얼거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하도록했다.
"그게 어디보자, 제가 생각보다 생긴것에 비해서는 꽤 나이가 많은지라. 십여년 전쯤이었나 그런것을 보았죠. 이성을 잃고 서로 파괴하는 것을 멈추지않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때문에 마을이 불탔었습니다. 원인을 말하기로는 글쎄 무언가 정신간섭이 아닌가하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죠. 그것으로 마을하나가 공멸할줄은 목격자로서는 그저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힘에 취해서 그 힘을 휘두르는데만 집중하는 그런 병이 있었습니다만, 자취를 감췄습니다. 어딘가에서 또 발생할지는 모르는일이지만."
대강의 이야기를 단서하나 남기지않고 방랑자는 그저 이야기했다. 그것이 본인들의 이야기라고는 암시되지않는 선에서. 하지만 장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랬기에 충동적으로 손을 붙잡았던 것이였고, 그랬기에 흔들리지 않은 체 하며 간신히 머리만을 쓰다듬었던 것이였다. 빤히 올려다보는 시이의 시선과 마주한다면 아나이스는 저도 모르게 그것에 빠져버릴 것 같았기에 눈을 회피하다가도 결국에는 올려보는 시이를 피해 완전히 고개를 돌려버리지는 못했다.
"알려 준다라..."
분홍빛으로 물든 뺨에 손을 조심스레 뻗어 쓰다듬으면서도 지금의 표정을 기억에 담아두겠다는 듯이 어느 것 하나 놓칠새라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시이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맞았다. 적어도 시이를 믿어 주겠다고 그가 그 입으로 말한 이상 속마음을 꺼내는 것이 옳았다. 이런 것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단순한 핑계거리일 뿐이였으니까.
그래서 아나이스는 망설이듯 입술을 달싹거리면서도 결국에는 닫힌 입 틈 새를 살며서 벌렸다.
"나는 이미 네 것이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지금 당장에라도 노토스 전역에 내가 사랑하는 이가 너라고 못박아버리고 싶어. 아무도 널 갖지 못하게. 다만 이것이 시기상조라는 걸 알고 있기에 자제할 뿐이지. 그리고 굳이 유혹을 하지 않더라도 너는 늘 내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지."
여전히 볼을 쓰다듬고 있던 손을 느릿하게 떼어내면서, 어쩌면 이런 식으로 빤히 쳐다보는 것도 일종의 유혹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한 손만 쓴다면 불편할텐데. 내가 조금 거들어 줄 수도 있어"
아나이스는 손에 들고 있는 숟가락을 움직여 시이에게 먹여주는 듯한 시늉을 해 보였다.
"그리고 분위기도 좋을 게 분명하고."
솔직히 손을 씻겠다는 것은 핑계거리에 가까웠다. 그는 시이의 동의도 받았으니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다는 듯이 그녀를 가볍게 잡아끌었다. 사람들 틈새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여유롭게 거니는 것이 더 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