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확답을 원해요. ......절 잔뜩 좋아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세요. 당신이 내 것이라는 걸 확인하고파서... 요."
그렇게 말하곤 아나이스를 다시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이내 푸스스스 웃는 꼴이 본인이 그렇게 가만히 눈을 동그랗게 뜬 뜬 채로 깜빡이기만 하며 바라보기만 하는 걸 못 견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긴 하죠? 하지만... 음, 아니다. 역시 아니에요. 뭐라 말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이내 또 가만히 아나이스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곤 다시 쉽게 유혹에 걸려주지 않겠다는 말에 장난스레 웃어보인다.
"과연 정말로 쉽게 유혹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곤 깍지 낀 손을 꾹 잡은 채로 아나이스를 살짝 잡아끌어 강변가로 가더니 이내 다 먹은 아이스크림을 보다가, 강에 끈적했던 손을 집어넣어 참방참방 씻어낸다. 그러곤 이내 물기 어린 제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이 묻은 검지손가락 끝으로 아나이스의 이마를 한번 톡 찍는다.
"아, 물론 이건 유혹이 아니라 그냥 장난이지만요. ...아무튼 뭐어, 그런 거라면야. 그러면 일단 그... 방금 얘기한, 할 일이야 많다고 했던 그거. 예시 한번 들어볼래요? 이러이러한 걸 할 수 있겠다, 라던지."
시이는 확답을 원한다고 했다. 간접적으로, 혹은 행동으로는 몇 번. 직접적으로는 그것보다 더 적은 숫자로 말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건 그 혼자만의 착각 어린 생각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가볍게 숨을 가다듬었다.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할 때 잠시 텀을 두는 것은 그 본인의 심신을 가다듬는 것과 더불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었다. 뭐라고 말할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널 사랑하고 있어."
부가적인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단어 하나로도 충분한 의미전달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것은 그가 한 모든 말들을 종합한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였기에.
어쩌면 흘리듯 말한 적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놓고 언급한 적은 없었겠지. 아나이스는 웃어보였다. 아주 활짝.
"시이의 행동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쉽게 걸려 줄 생각은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
시이에게 끌려가 같이 손을 씻어낼 때에도 아나이스는 손에 들린 자그마한 숟가락을 보며 망설였다. 버릴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쓸데없는 상념은 시이가 이마를 콕 찌르는 것에 의해 끝났다. 이마에 묻은 한 방울의 물방울이 얼굴의 굴곡을 따라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정말로?"
많은 것이 담겨 있는 물음이였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냐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로' 해도 되냐고 의사를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너도 다 알고 있는 반응이기는 싶다만. 우선-"
아까까지 주저하는 것과 반대되게도, 숟가락을 거리낌없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버렸다. 방해 돼. 이런 느낌이였다. 그리고는 여전히 물기어린 손을 그녀에게 내미는 것이였다.
"이런 건 어떨까?"
붙잡으라는 듯이 손바닥을 위로 향하던 손은 어느새 반전해 시이의 눈 앞에서 묻어 있던 물기를 털어 내는 것이였다. 옆에 많은 물 내버려두고 왜 이러고 있는 거냐면, 그래도 역시 물을 퍼 와서 뿌리기에 적절한 날씨가 아니라는 생각 정도는 있었으니까였다.
"......아니, 음... 그 전부터도 계속 그렇다는 걸 느껴오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부탁해서 들은 말은 뭔가 다르네요. 응..."
그렇게 말하곤 볼을 발그레하게 붉힌 뒤 살짝 시선을 피한다. 아무리 그래도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네요. ...그 전에도 들었던 것 같기도 한 말이고 하지만 내가 부탁해서 들은 말이라 더 그러는 것 같아요.
"아무튼 쉽게 걸려줄 생각은 없는 거군요... 으음. 좀만 쉽게 걸려주면 안돼요? 제발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나이스에게 가만히 안겨들어 올려다보았다. 반짝반짝 동글동글한 두 눈이 묘하게 어린 아기고양이의 애교어린 눈동자를 보는 것 같기도. 제 딴에는 나름 유혹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들린 정말로? 라는 물음에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나름의 대답을 했고, 이내... 얼굴에는 물이 묻었다.
"...앗 차거. 물... 으음... 뭐 세수한 셈 치죠. ...아닌가? 그러기엔 역시 얼굴에 묻은 물 양이 턱없이 적네요. 역시 모르겠으니까... 저도 하죠. 복수라고 쳐 주세요."
그러곤 제 얼굴을 소매로 닦은 뒤 물을 톡 뿌리려는 듯이 손을 아나이스의 얼굴 가까이에 갖다대다가, 아나이스의 볼을 꼬집어 보려 한다.
"......근데 역시 물장난 치기에는 좀 날씨가 춥네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 봄이 되고 나서 좀 날이 풀리면 다시 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