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려고 했던 건데, 역으로 머리카락이 더 부스스해지자 늑대는 실망한 듯이 끼잉 소리를 낸다. 또 다시 방싯하고 짓는 미소와, 빗는 것이 무리가 있다는 말에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를 바라본 늑대는 자신이 크기를 줄이자 헨리가 곧바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며 부드럽게 꼬리를 살랑였고, 고맙다는 말에는 살짝 귀를 쫑긋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빗어주시기라도 하려는 겁니까?]
스스로 하면 되는데. 고개를 기우뚱거리던 늑대는 털썩 앉은 헨리의 앞으로 다가가 엎드리듯이 앉았고, 자신의 털로 뒤덮힌 그가 재채기를 하자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가 슬쩍 올리며 흘끗 쳐다본다.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네 뭔가.
[우연이란 것은 그런 법이니까요.]
대답과 동시에 시작된 빗질. 얼굴에서 먼곳에서부터 털이 빗어지는 감각에, 늑대는 굉장히 기분 좋은듯이 목을 울리며 그르릉거린다.
아리아는 가만히 알폰스의 추리를 듣기 위해서 적당한 의자에 앉았다. 이제 남은 인물은 3명. 그러나 3명의 안색은 훨씬 창백해져 있다-
"헛소리 좀 하지 마십쇼! 우릴 범인으로 몰고! 저택 주인도 이제 손님마저 죽게하고.. 프레드릭경- 밖에 나가면 이 사실을 알릴겁니다." "알릴 수 없습니다. 이건 환상종에 의한 살인사건이니.." "아까부터 당신의 제자라는 인간도 부인이라는 인간도 전부 하나 같이 정신병자야!"
남자는 리볼버를 꺼내 에일린에게 겨누었다. 총을 들고있는 알폰스보단 맨손의 에일린이 협박하기 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당신 제자 머리에 바람구멍이 나는 꼴 보기 싫으면.. 날 여기서 내보내줘야 겠어.." "호오- 그건.. 차라리 저에게 겨누는게 좋으실텐데.." "하. 끝까지 미련한 머저리로군."
남자는 에일린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다. 알폰스는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좋아! 이제 시작하면 돼! 그러니까, 얼굴에서부터 먼 곳부터 시작하는 거 맞겠지? 어. 맞을까요 헬리오스시여? 대답좀 해줘봐요. 빗어주시기라도 하려는 거냐는 늑대의 말에 나는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여서 긍정을 표하고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엎드리듯이 앉는 늑대의 털을 빗어주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 처, 천천히. 떨지말고. 그렇지 헨리 하이드. 진정. 심호흡. 후하후하. 그렇지 심호흡.
아무리 중간에 엉킨게 많아서 빗이 안내려가도 침착을 잃지 말자!
그르릉거리는 것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나는 조금은 어깨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고 천천히 빗질을 시작한다. 얼굴에서 먼 곳 등이나 몸통의 양옆, 그리고 내가 가장 신경쓴 건 멋드러지게 복슬거리는 갈기털이였다. 이건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열심히 빗었다.
[스스로 하는 것도 좋지만 음, 이만큼이나 빠지는데]
몇번 빗질도 하지 않았는데 빗에 잔뜩 묻어나온 상당한 양의 털뭉치를 동그랗게 말아서 늑대의 근처에 내려놓은 뒤에 글씨를 가볍게 휘갈기듯이 바닥에 쓰고는 나는 다시 재차 빗질을 시작했다. 턱을 들어달라는 듯한 느낌으로 나는 늑대의 턱에 가볍게 손끝만 닿게 한 뒤에 천천히 드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무슨 생각이였던 것일까. 자살을 했다는 말에 늑대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시체를 쳐다본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떠드는 3명의 인간들을 본 늑대는 굉장히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귀를 눕힌다.
".......??"
리볼버를 꺼내 자신에게 겨누는 남성을 본 늑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여기서 내보내 달라는 말을 하며 방아쇠를 당기려던 남성을 빤히 본 늑대는 총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에게로 걸음을 옮겼고, 잠시동안 남성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총구를 손으로 잡으며 그것을 위쪽으로 휘어버린다.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한 헨리가 진지한 표정을 짓자, 늑대는 더더욱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짓는다. 고작 털 빗어주는 것 가지고 왜 저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일까. 이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도 되나. 심호흡까지 하네..
[그르르르르릉...]
천천히 시작하는 빗질에, 늑대는 무척 기분이 좋은 것인지 모터마냥 목을 울리며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냈고, 지그시 감은 눈을 살짝 뜨고는 빗을 진 헨리의 손을 할짝이려 한다.
[...심각하게 빠지네요....]
상당한 양의 털뭉치를 본 늑대의 귀가 축 내려간다. 저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가볍게 휘갈긴 글씨에 긍정하듯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늑대는 헨리가 자신의 턱에 손 끝을 대자 낑?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였고, 천천히 드는 제스처를 취하자 고개를 살짝 위쪽으로 하며 턱을 들고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손을 핥으려는 늑대의 모습에 안된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가로 저을 뿐 여전히 그 턱을 든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진지한 눈빛을 해보였다. 살짝 찡그린 벚꽃색에 가까운 눈동자를 가늘게 뜬 채 손을 움직이려다가 심각하게 빠진다며 눈에 띄게 축 늘어져있는 늑대를 향해 나는 픽 하고 실소를 지었다. 내가 말했잖아. 하고 입모양으로 벙긋거리며 늑대와 시선을 맞춘 나는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는 이내 늑대의 턱 아래부터 가슴털까지 빗질을 하기 시작했다.
꼬리나, 다리쪽은.. 안해도 되겠지? 잘못건드렸다가 물리는 것보다는 나을거야 암.
빗어내리면서 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가 아슬아슬하게 상체를 기울여서 조금 더 꼼꼼히 털을 빗어준 뒤 나는 늑대의 턱에 댔던 손을 떼어내고 빗에서 다시 또 한웅큼은 되는 은푸른색의 털들을 동그랗게 말아 떼어낸다. 그리고는 스스로 만들어놓은 그럴 듯하게 털이 정돈된 - 그래 나름이다 아주 나름 전혀 변화는 없을지도 모른다. 털을 빗어봤어야지!!! - 에일린을 뿌듯하게 바라본 뒤 늑대의 갈기털이 아닌 귀를 살짝 손으로 긁어주며 가볍게 제 이마를 그 얼굴에 부볐다.
[ 끝났어 움직이고 싶어서 힘들었지? ]
빗을 넣으면서 바닥에 글씨를 휘갈겨 쓴 뒤에 나는 빗에 아직 남아있는 억센 늑대털을 어떻게하면 모두 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했다.
당겨지는 방아쇠. 하지만 휘어진 총구에서 총알이 나갈 리가 없고, 걸레짝이 된 남성의 손을 바라본 늑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냥. 전부 죽이고, 환상종의 탓으로 밀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신선하게 올라오는 피 냄새를 맡은 늑대는 자신에게 튄 피를 손으로 닦은 뒤, 손을 입에 가져다 대며 피를 할짝인다. 무기를 꺼내드는 나머지 둘을 스산하게 살기를 띈 은빛 눈으로 바라보던 늑대는 역으로 알폰스가 그들을 쏘아 버리고, 나머지 한 명이 총으로 자살을 하자 손을 입가로 올리며 키득. 웃는다.
"글러먹은 것 같군요. 환상종을 잡는 일은 말이지요."
다 죽어버렸으니 상관 없겠지. 늑대는 후드를 벗은 뒤 꼬리를 드러내며 웃음지었고, 시체 무리들을 바라보던 눈을 알폰스에게로 돌린다.
바닥에 글씨를 휘갈기듯이 썼다. 하지만 이내 털뭉치를 보며 한숨을 쉬는 행동에 나는 실소를 짓고는 가볍게 두개로 뭉쳐진 털들을 하나로 뭉치면서 장난을 쳤다. 복실복실하고 역시 늑대털이여서 그런가. 빳빳하기도 하고. 적당히 가져가서 장식품으로 해놓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나는 머리를 부비적거리는 늑대의 모습에 보기에도 해맑기 짝이 없는 미소를 방긋 지으면서 아까전보다는 확실하게 매끈해진 털을 쓰다듬는다.
기념품? 장식품? 음, 그래 기념품.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짓고 주머니에 털뭉치를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