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을 마쳤으니 이곳에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 나와 그는 틀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몸을 틀려니 들려오는 물음이 있었다. 저를 이르는 수식어를 유독 강조하는 목소리는 분명히 그의 것이다. 사기노미야. 돌아보자 과연 그가 거기에 서있었다. 그는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라 명했고, 자신도 그에 응했건만 속으로 부르는 말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제 불안을 고의적으로 자극하며 즐기는 이에게 친밀감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저에게서 완전히 떠난 후로부터는 저는 그에게서 이전만큼의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를 보며 느끼는 감각은 경멸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 어제부로 그녀는 다시 제게로 돌아왔으니 나는 다시 그를 두려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벼운 고민이 뇌중을 스치고, 단안斷案은 빠르게 내려졌다.
"안녕."
그럴 필요가 없다. 이제 나는 '그녀'를 닮아갈 생각이니. 자신이 그를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가 그녀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와 그와 승리를 위해. 새로운 뜻을 찾은 와중에 그를 혐오한다면 모를까 무서워하며 떨 이유가 호무하다. 그럼에도 그를 싫어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그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자신이 혐오하는 인간상이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저 또한 혐오하기로 했다. 들뜬 기분은 단숨에 삭아들어 사라져버렸다. 한껏 지었던 미소만큼은 채 달아나지 않아서, 겉으로 옅은 미소가 남아 감정과 표면의 괴리가 심했다. 말하는 목소리는 그와 대조되도록 차분했다.
"은인을 만났거든."
좋은 일이라. 있기는 있었다. 그의 말에 대강 고개를 끄덕이며 터져나간 공터의 흔적으로 흘끗 눈을 돌렸다. 자신이 직접 베어내고 터뜨리려 했던 그 소년. 저는 아직까지도 그를 잘 알지 못했으나 그에게서는 자신이 앓아왔던 친근한 고통이 엿보였었다. 싸움을 원하지 않았고, 고통을 가하지 않으며 헐떡이던 그는 제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몰아붙이려 했고, 그러므로 상처입히려 애썼다. 그는 제게 있어 명실상부한 은인이었으나 저는 내가 미웠다. 그는 제게 깨달음을 주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이겼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언뜻 자랑스레 고하는 듯한 모양새기도 했으나 그 속이 어떨지는 저 역시도 몰랐다. 마냥 부정적인 쪽은 아닐 것이다.
네가 심하게 다친 건 아닐까, 하루종일 걱정했는걸. 끌어안은 너의 품이 혹여나 사라질까, 차가운 육신만 남을까 늘 마음 졸였어.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내 뺨을 쓸어주는 이 손을 다시는 느끼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늘 머리 한 켠을 차지하고 있어. 너의 그 한마디에, 다행이다 라는 마음과 혼자 짊어지고 가려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내 마음을 스쳐가. 부디 혼자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프진 않았어?"
마음은 디터니를 당장 사용해 빠르게 치료해 주고 싶었지만, 위급한 환자를 위해 아껴 두어야 할 것 같아. 머트랩 용액을 팔 사이즈의 기다란 용기에 부어낸 다음, 너의 팔이 다친 부분을 잡고 조심스레 담궈.
"그래. 느낌에 의거한 것이라면 그뿐이겠지." 정확하면서 동시에 부정확하니까. 무의미하다는 눈빛에 그걸 수긍합니다. 말 그대로 꼬투리만 잡는 거였잖아요? 들린다는 듯한 움찔거림을 보고는 심술궂은 표정을 짓고는-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련의 과정은 충족했습니다.-
"그런 건 그냥 관점만 달리하면.. 정말 쓰레기일 뿐이야." 들어봐야 아무 의미 없는 것에 매달리면 그건 파편만을 남길 뿐이었어. 마치 자기 이야기를. 오. 마치는 빼야죠. 자기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고 해도 말하면 부정하겠지만요.
"부정은 한두번 정도 할거라 생각했는데. 빗나갔네."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지만. 저 공물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으니 뽑아내거나, 덮어버려야겠지. 라고 중얼거리고는 박혀있던 검을 뽑아냅니다. 매끈해 보이지만 꽤나 상처를 찢는 거라는 소문도 있지요? 피를 털어내고는 칼집에 넣었습니다.
"시끄럽게 굴 수 없으니 파닥거리는 거려나." 네가 완전히 제압할래? 라고 그에게 물었습니다.
' 그렇다고 한 들, 추종자들이 혼혈들과 머글을 억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이 긴 세월에서의 작은 가이드 입니다. '
유키마츠 교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습니다. 아우프가베의 말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새하얀 눈이 후두둑, 떨어졌습니다. 미처, 그가 되지 못했던 눈인 것이죠.
'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간 것입니까 ! 지켜지지 않을 그 약속이 그렇게 기뻤습니까! '
밧줄이 튕겨지자, 유키마츠 교수는 혀를 짧게 찼습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잘 모르는 것이었지만, 아마도 살아온 세월에서 나온 답은 아우프가베에게 근접하거나 혹은 완전히 먼 답이겠죠. 애초에 인간과 요괴의 시선 자체가 다르니까요.
' 아아아악! '
자신을 덮치는 불길에 유키마츠는 소리를 지르며, 한 쪽 팔로 얼굴 쪽을 가렸습니다. 설녀는 눈으로 이뤄져있죠. 인센디오는 완전한 치명상은 아닌 듯 하나, 유키마츠의 일부를 녹이는 것에는 성공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유키마츠의 새하얀 유카타 소매 속에서 녹아서 흐르는 한 쪽 팔 같은 것이죠. 그러니까 처음부터 무장해제주문을 외웠으면 될 것 아닙니까, 유키마츠 교수님. 녹아내린 것을 보충하려면, 눈이 필요했습니다. 얼려야 했습니다. 냉기가 물을 얼음으로 바꿨지만, 글쎄요. 유키마츠 교수님은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아씨오' 라고 말이죠. 히이라기 지팡이를 쥔 불안정한 한 쪽 팔은 금방이라도 부숴질 것만 같습니다.
' 가장 중요한 사실을 나도 잊고 있었군요. '
설녀인 만큼, 불길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되는 것임을 긴 세월에 스스로도 잊어버린 듯 유키마츠 교수는 제 팔을 내려다봤습니다. 단순한 불길을 쏘는 마법이었지만, 으레 모든 마법이 그러하듯 역량에 따라서 주문의 위력이 달라지는 법이죠. 이 상태로서는 학생들이 그를 피할지도 몰라요. 불길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법입니다. 이대로는 학생들을 안아줄 수도,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도 없어요.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주문을 쓰지도 않고, 검으로 공격하지도 않고, 그저 이 장소의 온도를 계속 낮춰서 피를 흘리는 학생을 저체온증에 걸리게 만들 건가요?
' ....... 머리 좀 식히는 편이 좋겠네요. 나도, 알타이르 학생도. '
추종자이긴 하나, 소중한 학생 중 한 명이죠. 본능과 이성의 싸움에서 이번에는 이성이 승리했습니다. 진정한 듯 유키마츠 교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지팡이를 휘둘렀습니다. 아우프가베 앞에 나타난 것은 표기를 알 수 없는 마법약이었습니다. 그 직후, 얼음 팔은 그대로 부숴져서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얼음은 더욱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산산히 부숴져버렸습니다.
' 더 싸웠다간 학원이 완전히 얼음과 불로 뒤덮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지금 이 학생이 정말로 죽을지도 모르고. '
설녀의 시야에 의외로 쓰러져 있던 학생이 제대로 들어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죽었을지도 모르죠. 네, 미야노시타 유키마츠 교수 당신이요.
' 아우프가베 학생에게 화내고, 죽일 생각으로 달려든 건 미안합니다. 디터니 원액이니까 상처에 바르면 좋아요. '
믿을지 아닐지는 그의 자유였습니다만, 유키마츠 교수는 아직 부숴지지 않은 한 쪽 손에 지팡이를 다시금 쥐곤 몸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