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살랑거리는 꼬리에, 세워지는 귀. 어린 짐승 귀여워. 나는 실실 웃으면서 쓰다듬다가 왜 웃냐는 질문에 입을 슬그머니 입으로 가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글씨를 쓴다. 아주 차분하고, 진중하게 - 덜덜 떨리는 손끝은 막을 수 없었지만 - 이런 극상의 귀여움!! 이라고 쓰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에일린이 귀여워서]
많이 많이 큰 상태에서는, 이랑 고의로 까먹을 줄도 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몸을 일으킨 늑대를 아쉬운 듯 한번 더 쓰다듬은 뒤 나는 장갑을 다시 손에 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늑대와 시선을 맞춰 쪼그리고 앉으며 바닥에 다시 글씨를 썼다.
[많이 많이 큰 상태에서는 가까이 안갈게. 에일린 다음에 또 보자. 가봐야할 거 같아. 그리고 여기에 계속 있으면 위험해 아무리 아주아주 크다고 해도]
이단 심문관들 중에서는 호전적이고, 상대에게 무자비한 이들이 많다. 나 자신은 명령받지 않은 이상 환상종을 해칠 생각이 없지만, 다른 이들도 아니라고는 못하니까. 그렇게 글씨를 적은 뒤 알았지? 라고 말하듯 늑대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살짝 갸웃해보였다.
그동안 자신의 행동이 레오닉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줄도 모르는, 아니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죄책감 따위 가질 리가 없는 아리나는 무죄한 얼굴로 웃고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아리나는 분명 민간인 앞에서 총을 꺼내 징계를 먹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억울하다는 의견이었다.
”풍경화였군요!”
레오닉이 머뭇거리자 아리나는 더욱 눈을 반짝이며 레오닉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집중하는 일이 도통 없는 아리나는 그림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기도 힘든 일이었다.
“명심할게요!”
레오닉의 그림을 보고싶다라는 욕망이 아리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레오닉이 하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98 와..와................ 진짜..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죠!!!! 저 댕댕이 에일린 때문에 사심이 들어간거 같아!!!!! >>99 자 이제 시간이 되시면 좀 놀아주실래요...? (소심) >>100 네 막레 맞습니다!! 한사람 제대로 심쿵시켰습니다!!!! 에일린 커여워!!!!!!!!!!!!!!!!
>>104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ㅓㅈ도 사심 들어가서 아리나로 막 손에 물도 안뭍히고 배불리 먹이겠다고 했는.... (의도치 않은 고백) 정신차리니 아리나를 굴리는게 아니라 저를 굴리는 기분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 '아리나주'주입니다! 해야할 것 같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녀의 사고방식이 어딘가 궤를 달리하는 범주였고, 레오닉 역시 어느정도 이를 알고 있었다. 아리나의 환하게 웃는 미소가 그저 순수할 뿐이라고 생각하려 했고, 어쩌면 저 독특한 사고 체계가 지금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급변하는 즉흥적인 흥미일 뿐이라면 지금의 기억도 금세 다른 흥미로 인해 잊혀질테니까. 그는 자신의 치부가 알려지는 것을 싫어하는 평범한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다.
"진심인 것 같지는 않은데."
마뜩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레오닉은 마지 못한다는 손길로 가방에서 그림을 꺼내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감을 급하게 다룬 탓인지 군데군데가 혼탁히 번졌다. 하지만 그대로도 형태가 어떠한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긴 고향의 풍경과 닮았거든. 물론 이렇게나 완벽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 그림에는 이곳처럼 땅을 한가득 매운 푸른 들판, 그리고 조촐한 교회, 그림의 중간에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그려 놓았다.
겁 먹을 필요는 없는 걸까. 정말로. 그렇다면 괜찮은 걸까. 그렇다면 나도 좋아. 그녀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느껴지자 기분이 좋아져선 또 금방 헤실거린다.
"......굳이 더 해야 돼요? 사실 안 할 이유도 없지만, 부끄러워서..."
그녀는 붙잡히자, 그렇게 말하곤 장난스레 웃더니 한번 더 키스한다. 그 지긋이 쏘아보내는 눈빛에 또 홀려버린 기분이 들었지만, 원래 처음부터 홀려 있던 것 같으니까. 그러니까 별반 다를 것도 없네 뭐! 라고 생각하면서 대담하게도 아나이스에게 안겨 그의 목에 제 얼굴을 파묻는다. 그녀는 그렇게 나름 대담한 척을 해 보이곤 이내 놀러 가지 않을래, 라는 그 말에 좀 당황하며 묻는다.
"...아, 물론 저야 좋지만 그래도 돼는 거에요? 팔도 다쳤잖아요. 그러면 안돼는 거 아니에요...? 팔 안 아파요?"
걱정되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그렇게 덧붙이듯 작게 말하더니 새끼고양이마냥 일부러 더 달라붙어 애교를 부리듯이 아나이스의 한 손을 제 한 손으로 붙잡고는 어린 아이가 조물거리듯 만지작거린다. 그러면서 가만가만 웃어보이는데, 그게 꽤나 묘하다. 어린아이같으면서, 이젠 자신도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듯 주장하는 것 같은 나른하면서도 묘한 빛이 감도는 미소.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다 싶은 그 미소를 하고는 이내 다시 말한다.
레오닉의 추측은 정답이었다. 애초에 기억력 따위 0에 수렴하는 아리나였고 재미만을 추구하기에 금방금방 흥미를 잃기 십상이었으니. 어쩌면 지금 이렇게 보고 싶어서 안달 난 레오닉의 그림도 일주일만 지나가면 그림은커녕 레오닉의 이름조차 기억 못할 확률이 높다. 어떻게 보면 이라나야 말로 남에게 말하기 싫은 비밀을 털어놓기 딱 좋은 상대일지도 모른다.
“진심이에요! 전 언제나 진지해요. 믿어주세요.”
물론 아리나 입장에서는 언제나 진지했다. 문제는 아리나 입장에 한해서만 진지함인 것이지 남이 보기에는 전혀 진지해 보이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아리나는 매번 억울하다고 투덜대는 것이었다.
레오닉이 그림을 보여주자 아리나는 몸을 앞으로 쭉 빼 코가 캔버스에 닿을 정도로 캔버스를 보았다. 저렇게 보이면 제대로 보이나 싶으면서도 아리나는 제법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저희 고향이랑도 비슷하네요! 전 지방 출신이거든요.”
아리나는 북쪽 지방에서 태어났다. 지방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수하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배웠건만 어쩌다 이곳까지 와서 이단심문관이 되었는지는 운명의 장난이니라. 그림 중간에는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물어볼까? 말까? 아리나는 잠시 고민하고는 쉽게 마음을 굳혔다.
“이 세 사람은 누구에요?”
#레온주 죄송합니다... 지금 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중에 다시 이어도 될까요?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