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이 목표했던 것을 찢어 가르고, 짙은 피 냄새가 퍼지며 뜨거운 액체가 사방으로 튀자 늑대는 눈을 가늘게 떴고, 자신의 발 아래에 깔린 것에서 비명이 터져나오자 시선을 아리아에게로 향하며 귀를 살짝 눕힌다. 동정, 이라기보단 단순한 감정. 시끄러워, 라는 표정을 지은 늑대는 그녀가 자신의 발을 붙잡자 짧게 크릉거리며 발톱을 세웠고, 다시 한번 상대를 후벼파려는 듯이 발을 들어올리려다가, 시선을 알폰스에게로 옮긴다.
[이런, 이런, 그대는 그대가 미천하다고 부르던 그 짐승보다도, 더더욱 천박한 것 같군요. 물론, 그대가 세웠던 대책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만. 그 방법은 정말 고귀함과는 거리가 먼 방법 같네요.]
아리아의 등 뒤로 겨눠진 총을 본 늑대는, 그가 무엇을 하려던 것인지 직감하고는 경멸을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지었고, 큰 파열음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자신의 발이 자유로워 진 것을 느끼고는 그녀에게서 발을 치워 땅을 밟으며, 뒤로 점프해 그것을 피한다.
[그래, 고귀하고도 고귀한 인간은. 미천한 짐승이 바라본 시선에선 그대라기보다는, 그대가 그저 미끼로 이용하려고만 한 이 여성인 것 같군요.]
1. 처음 일상할 때 세레노라고 불러준 게 너무 매력ㄱ적이었어오... 2. 그걸로 관통을 자각했죠. 그 전부터 눈길이 가긴 했는데 그때부터 어 이게 관통...? 하고 자각했습니다. 3. 어쩌면 처음부터 사심이 있었을지도 모르는게 그 정도로 가까운 관계로 선관을 짰다는 건... 애초에... 4. 사실은 지금도 세레노라고 불러주길 바라지만 그럴 수가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네여 5. 원래는 아나이스한테 빨간 동백꽃 주면서 고백하려고 했어요 6. 마침 동백꽃 개화시기가 겨울이기도 하고 꽃말도... 기다림, 애타는 사랑, 그리고 빨간색 한정으로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가 있으니까... 7. 근데 이것도 좋다 싶어서 이렇게 고백던졌어요 8. 이 쯤 되니 번호랑 상관 없이 아무말인 것 같네요 젠장 9. 부제랑도 안 맞아...
제법 쾌활안 어조로 대답한 것으로 보아 원래 밝은 성격의 소유자인 듯하다. 그러고 보니 아리나라는 이단심문관은 사고를 많이 친다고 유명하다는 사실이 기억날 것이다. 그녀는 그가 앉은 벤츠에 더욱 다가갔다. 레오닉을 관찰하는 태도로 한번 쑥 훑는 듯싶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캔버스요!”
아리나의 녹색 눈은 레오닉에서 캔버스로 옮겨갔다. 아리나는 직감적으로 레오닉이 지금 이상황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같았으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캔버스를 보았을 테지만 정말 다행히도, 상관에게 그럴 정도로 아리나는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레오닉이 재빨리 가방에 캔버스를 집어넣자 아리나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게 눈썹을 찡그렸지만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밝은 웃음으로.
손에다가 마구 부비적거리는 이 작은 늑대의 모습에, 나는 심장을 지그시 다시 눌렀다. 극상의 귀여움이다. 모든 생물체의 어린 것들에게 축복을. 젠장. 귀여워. 귀여워. 껴안고 마구 부비적거리고 싶어. 와, 저 살랑거리는 꼬리를 마구 만지고 싶어!!!!!! 워, 진정하자. 헨리 하이드. 너는 이단 심문관이야. 근엄하고 진지하게. 근엄하고 진지하게. 부비적거리는 늑대를 바라보는 분홍색 눈동자가 살풋 가늘어졌다. 가벼운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지만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늑대가 수화를 못알아들었다고 이야기할 때까지는. 아, 못알아 들었나.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어보이고 늑대를 쓰다듬던 손길은 그대로 둔채 - 마구 쓰다듬고 싶었지만 최선의 인내심으로 끙끙거리며 참아냈다 - 갸웃거릴때마다 이리팔락, 저리팔락거리는 앙증맞은 귀에 심호흡을 했다.
[에일린]
바닥에 글씨를 쓰고 나는 몸을 둥글게 만 늑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가 다시 이어서 썼다.
[다음에 봐도 아는 척 해줄래? 잡아먹지 않으면 좋겠지만. 너랑 싸우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을거 같아 ]
얼마 전에도 서류를 통해 그녀의 이름과 마주한 기억이 있다. 본디 이단심문관이란 세속에 알려지지 않는 비밀조직이었고 어떤 경위의 사건이라 해도 이를 관할하는 상부와의 연락은 오직 직결되었다. 그리고 레오닉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사례들을 여과없이 받아들이고 사후 처리까지 해결해야 했다. 그의 기억에 아리나의 용맹무쌍한 행적이 떠올랐다.
"...그냥 별 볼일 없는 풍경화였어."
레오닉은 약간의 머뭇거림이 있은 후에 시인하는 발언을 내야만 했다. 비단 시야가 좁은 사람일지라도 옆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져내린다면 주의를 가질 수 밖에 없을텐데, 그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아리나의 눈썹이 미묘하게 위화감을 드러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내가 업무를 모두 마치고 자유시간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그 궁금증을 아마도 해결해주지. 정말 별거 없을테지만."
낮게 살랑거리는 꼬리에, 세워지는 귀. 어린 짐승 귀여워. 나는 실실 웃으면서 쓰다듬다가 왜 웃냐는 질문에 입을 슬그머니 입으로 가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글씨를 쓴다. 아주 차분하고, 진중하게 - 덜덜 떨리는 손끝은 막을 수 없었지만 - 이런 극상의 귀여움!! 이라고 쓰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에일린이 귀여워서]
많이 많이 큰 상태에서는, 이랑 고의로 까먹을 줄도 안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몸을 일으킨 늑대를 아쉬운 듯 한번 더 쓰다듬은 뒤 나는 장갑을 다시 손에 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늑대와 시선을 맞춰 쪼그리고 앉으며 바닥에 다시 글씨를 썼다.
[많이 많이 큰 상태에서는 가까이 안갈게. 에일린 다음에 또 보자. 가봐야할 거 같아. 그리고 여기에 계속 있으면 위험해 아무리 아주아주 크다고 해도]
이단 심문관들 중에서는 호전적이고, 상대에게 무자비한 이들이 많다. 나 자신은 명령받지 않은 이상 환상종을 해칠 생각이 없지만, 다른 이들도 아니라고는 못하니까. 그렇게 글씨를 적은 뒤 알았지? 라고 말하듯 늑대가 했던 것처럼 고개를 살짝 갸웃해보였다.
그동안 자신의 행동이 레오닉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줄도 모르는, 아니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일말의 죄책감 따위 가질 리가 없는 아리나는 무죄한 얼굴로 웃고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아리나는 분명 민간인 앞에서 총을 꺼내 징계를 먹었을 텐데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커녕 오히려 억울하다는 의견이었다.
”풍경화였군요!”
레오닉이 머뭇거리자 아리나는 더욱 눈을 반짝이며 레오닉을 바라보았다. 어딘가에 집중하는 일이 도통 없는 아리나는 그림은 고사하고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기도 힘든 일이었다.
“명심할게요!”
레오닉의 그림을 보고싶다라는 욕망이 아리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레오닉이 하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