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헌의 희미한 웃음에 언듯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 시점에서 왜 웃는건지 모르겠다. 설마 내가 무서운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가. 그래서 혹시나 내가 귀곡산장에서 이상한 추태를 보이면 그걸 빌미로 날 놀려줄 생각을 하고있나? 하, 유채헌 무서운 여자. 그게 아니라면 술집에 가는게 유채헌의 마음에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딱히 바른 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저 나이부터 술마시는걸 즐기고 있다니. 정말 큰일이다. 나도 술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방학때면 가문에서 열리는 술자리에 종종 참석하곤 했으니까. 처음 술을 접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14살때였나. 아버지의 찬장에서 형이 몰래 꺼내온 술을 함께 마셨던 것 같다. 형 생각이 떠오르자 기분이 착잡해져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 몇 년 전까진 네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어."
유채헌이 따라 나오는 것을 확인하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백호 기숙사는 항상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리 따뜻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옷을 걸치고 있으면 딱히 추위가 느껴지진 않았는데, 복도로 나오는 순간 쌀쌀한 느낌이 들어와 코트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난 겨울이 싫다. 추운 것도 싫고. 어서 빨리 봄이 되어 벚꽃을 구경하고 싶었다. 사실 꽃 자체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는데. 저택 정원에 만개한 벚꽃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벚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던 중 유채헌의 대답이 들려오자 잠깐 자리에 멈춰서 그녀와 눈을 맞췄다.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은 절대 해주질 않네. 어찌되든 상관 없지만."
재미없어. 쯧, 작게 혀를 차곤 다시끔 걸음을 재촉했다. 복도를 지나쳐 학교를 완전히 빠져나오자 길게 숨을 들이내쉬었다. 뻥 뚫린 공간으로 나오자 무언가 답답했던 것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침묵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지라 무언가 말을 걸어보고 싶은데, 적당한 주제가 생각나지 않는다. 시비걸때는 잘만 생각나더니, 오랜만에 평범한 대화를 하려니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777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주 대체 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79 아 정답 라플레시아!!! 츠카사 성격파탄자 수정해주시죠 우리 츠카사가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도 나쁜 애는 아니에요;;;; >>780 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현호주 갑자기 나타나셨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서 가던 사기노미야가 걸음을 멈추자 채헌 역시 덩달아 자리에 섰다. 듣고 싶은 대답을, 요컨대 노예가 돼서 분하고 억울했다는 류의 대답을 해도 어제 채헌이 보여줬던 반응을 생각하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이었다. 채헌은 거짓말을 안 하지는 않았지만 의미 없는 거짓말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시선을 맞추느라 잠시 멈췄던 걸음이 다시 빨라지자 채헌이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학교를 벗어나자 추워진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항상 정지된 계절에 있다보면 계절이 헷갈릴 때가 가끔 있었다.
침묵이 내려앉았다. 문득 생각해 보면 유채헌은 사기노미야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정도였지, 먼저 대화 주제를 꺼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대화 중 생기는 침묵을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생긴 정적이 껄끄러웠다. 말 없이 여명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결국 채헌이 아무 주제나 주워 담았다.
"너 술집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여명에 눈이 쌓였다더라, 귀곡산장은 학원에 있는 사람들도 가기 꺼려 한다더라. 주제는 많았지만 결국 시시한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학교에서 여명으로 가는 길은 짧았으니 질문에 대답을 하고, 적당히 맞받아 치다보면 여명에 도착하겠지. 아무 술집에나 들어갔다가 교수님이나 같은 학교 학생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낭패니 필요한 질문이기는 했다.
/ 저 그 내일 약속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있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ㅏ 정말...... 내일 오전쯤에 마저 이어도 될까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소담주께선 주무신 것 같고,.,.음 잘 타이밍 잡고 있긴 했어요 제가요 새벽 5시에 자서 딱 5시간만 자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지금 드럽게 잠이 안옵니다 아직 잠이 오는 시간이 아녜요지금ㅇ__"ㅇ하쒸 잠 좀 오면 좋겠는데....!
네가 살면서 거짓말을 입에 담지 않을 정도로 솔직한 인간도 아닐테고. 푸스스 웃으며 대답했다. 만약 유채헌이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해줬을지라도 난 그 말을 쉽사리 믿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유채헌은 노예(3일)가 된 직후에도 담담한 반응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믿는 것과는 별개로 억울하고 분했다라는 말이 저 입에서 나오는걸 보고싶었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머리를 굴려보아도 평범한 대화주제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시비를 걸어볼까 했지만 오늘은 그 마저도 끌리지 않는다. 고요함 속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와중,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유채헌의 목소리에 힐끗 고개를 돌렸다.
"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네가 알고 있는줄 알았는데. 설마 너도 모르는 거야?"
정말 대책없는 여자네. 들려오는 질문에 어이가 없어져 그냥 웃어버렸다. 장소도 모르면서 나한테 가자고 한건가. 근데 여명에 널린게 술집이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보이는 곳에 들어가 대충 마시고 나오면 되는게 아닌가.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들을 마주치더라도 상관없다. 교수님이 꾸짖는다면 '요즘 학업이 힘들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버렸습니다.' 와 같은 대답으로 대충 둘러대면 될 것이고, 학생들이야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교내에서의 평판이 떨어지긴 하겠지만, 올해 들어 조금 올라간 것 뿐이지 내 평판은 원래부터 좋은 편이 아니었다.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며 어렵게 쌓아온 평판이 고작 술 때문에 무너진다고 생각하니 아깝긴 한데. 어떻게든 될 것이다. 교수님과 학생을 마주친다는 보장도 없고.
"뭐 가지고싶은 물건이라도 있어? 노예가 된 기념으로 하나 선물해줄게."
사실 애완동물이 입는 옷을 멋대로 선물해준 다음 꼭 입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혹독한 처사인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그래도 기념으로 뭔가를 주고싶어 평범한 선물이라도 해주려고 했는데. 난 유채헌이 무얼 좋아하는지 1도 알지 못한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이왕 선물하는거 가지고 싶던 물건을 선물해주는게 가장 나을 것이다. 그러면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이 관계가 지속되는건 3일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