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해 방법을 모아둔 책에서 뭘 참고하는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뭐든 참고하겠지. 책을 보니 하드커버에 모서리가 금속으로 되어있었다. 저런 책이 발등에 떨어진다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상상만 해도 간접적으로 아픔을 체험하는 거 같은데 실제로 맞은 여자아이는 진짜로 아팠겠다. 고라니 같은 비명이 나온 이유를 알 거 같기도 하고, 표지를 보며 진지하게 생각하다 들려온 목소리에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러 의미로 공부는 될 테니 유익한 내용이 많이 담겨있는 건 맞겠지만 승하에겐 필요가 없는 책이기 때문에 솔직히 유익한진 모르겠다. 만약 과제로 저 책이 나온다면 그 어떤 책보다 필요가 있는 책이 되겠지만 과제가 아니었으니 필요가 없었다. 앞에 여학생은 저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뭘까. 또 왜 유익한 내용이 많다고 생각했을까. 궁금은 했어도 묻지 않았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물어봤자 뭘 하나. 게다가 이 궁금증이 깊지 않아 몇 분 후면 사라질 거 같았다.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굳이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많이 하는 건 실수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런 책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도서관에 정말 별 책이 다 있는 거 같아요. 뭐더라. 세계의 장난 모음집도 있었던 거 같은데."
청룡 학생들이 좋아할 거 같은 책이었다. 그러고보니 앞에 있는 여학생도 청룡이었다. 이미 읽어본 책이려나. 모르겠다.
어머니 : 옆에서 자던 승윤이가 잠꼬대를 해서 승윤: "깜짝 놀랐잖아..." ←잠꼬대 어머니 : 왜? 라고 물어보니 승윤 : "날계란 덮밥 머구랴고 계란 깼느데" ←잠꼬대 어머니 : 응 승윤 : "병아리 나왓서" ←잠꼬대 어머니 : 그랬더니 밑에서 자는 척 하던 승하가 뿜더라고!
하고 많은 살벌한 책중에서도 왜 하필 시해냐 하면, 사이카 자신이 얼마 전 모르는 사이에 몰래 타놓은 멈뭄신의 술을 들이켜 낭패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걸 마신 것도 처음에야 뭘 몰랐기에 한두 번 낚였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멈뭄술의 확산 양상은 달라져갔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남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어떻게 해야 눈치채지 못하도록 술을 타넣을 수 있을까, 그런 쪽으로. 청룡 학생들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열의가 넘쳤다. 며칠 전의 훈훈했던 추억을 떠올리려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사이카는 신속하게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 그래? 그것도 재밌겠네."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려니 여학생이 꽤 유용해보이는 책을 추천해줬다. 무엇이든 간에 제목은 역시 직관적인 게 좋다. 세계의 장난 모음집. 제 기숙사 학생들에게 인 있을 법한 제목이었다. 고마워, 짧게 감사 인사를 한 사이카가 공책 한구석에 그 제목도 메모해두었다. 이례적으로 힘주어 꾹꾹 눌러쓴 글씨에, 네모난 틀과 별을 그린다. 그러고는 펜을 내려놓았다. 얼굴에서 만족스러운 기색이 엿보였다.
"근데 이건 나중에 빌려야겠다. 오늘은 왠지... 운이 안 좋아."
책 꺼내려다가 발등도 엄청 세게 찍히고. 오늘 하루 동안은 두꺼운 책이 볼 때마다 몸서리가 절로 일어날 것 같았다. 사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책을 찾는 게 귀찮아서이기도 했다. 어차피 책은 느긋하게 찾는 게 편했다. 다음 번에 찾았을 때는 없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렴. 자신은 지금 당장 책을 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미 빌린 책이 많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