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엘-TO는 병원에 입원하는 걸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약에 헤롱헤롱 취한 걸 제대로 풀려면 병원이 필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녀와 조금 관련이 있었다던-병원 기록을 찾은 덕분에-의사를 부를 수 있었고. 적당히 약기운이 빠질 즈음. 아파서 삐-할 것 같다고 중얼중얼거리기도 했었습니다.
피해자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텅 비어버린 것도, 파탄난 부분도. 이 병원에서 끝내버리면 안 되는 걸까요. 란 생각을 하면서 흐릿한 시야를 떠 보니 아마 누군가 병문안을 온다고 한 것 같았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어요.
"...꼴이 말이 아닌데요." 어젯밤에 피를 질질 토하고 그래서 옷이 엉망이었으니까요. 의료진에게는 코피라고 속이긴 했지만.. 얼마나 날뛰실 생각인가요. 평소처럼 브라이디드 번으로 묶고도 땅에 끌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을 잘 정리하고는 침대에 기대앉았습니다. 거울을 보지 읺아도 새하얗게 질린 안색이라던가. 병색이 완연하다는 걸 알 수 있었겠네요. 하기야. 손목이랑 발목의 멍이나 온몸의 멍이 빠지지도 않아서 드러나는걸요.
스키장 휴가가 끝났다. 돌아와서 뒤늦게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의 멤버 정보를 멍하니 읽고 있었는데, 왠지 한 사람이 스키장 때 빠졌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물어보니 빙고. 한 명이 병원에 입원해있다더라. 정확한 사정은 못 들었고,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연이 있는 건지ㅡ라는 조금 비딱한 생각을 가지며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해있는 멤버의 이름은 타미엘 T. 네헤모트. 팀원에 자신 같은 외국 출신이 많던데 이 사람도 그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최근에 완성한 에펠탑 모형을 손에 들었다. 대충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정도의 길이쯤 되는 모형인데, 꽤나 정교하다. 알려받은 병실 번호를 느릿하게 되뇌면서 복도를 걸어가다가 드디어 목적지를 발견하였다. 예의상 노크를 두 번쯤 했고, 문 너머에서 희미한 들어오세요ㅡ소리가 들린 듯해서 수락으로 받아들이고 문을 열었다. 침대에 기대앉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보이는 외모는 동안의 수준이 아니었다. 저 정도면 초등학생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는 걸. 브라이디드 번으로 묶어올렸는데도 군데군데 검은색으로 물들은 하얀 머리카락이 아래로 내려온다. 사람의 인상을 크게 좌우하는 눈을 바라보니...음, 저 색은 도대체 뭐라고 부르면 좋은 걸까. 사람을 어떤 의미로 다소 난처하게 만들었다. 일단 문을 닫고 무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부터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에 아롱범 팀에 새로 들어온 아키오토 센하라고 합니다. 마음대로 부르세요."
타미엘 T. 네헤모트 씨 맞으시죠? 덧붙이면서 침대로 걸어가 의자를 끌고 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것 같았다. 꾀병은 아닌 걸로ㅡ라는 말을 가볍게 툭 던졌다.
들어온 사람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분이 병문안을 와주다니. 누가 말해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삐딱하다면 삐딱한 생각이지만, 신뢰도 자존감도 완전히 박살난 언니로서는 나름 적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들어온 센하가 인사를 하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 아키오토 씨. 저도 원하시는 대로 불러주시면 되겠습니다." 인사를 하고는 꾀병이 아니라는 말에 별 일 아니라는 듯이 그렇네요. 라고 무심하게 답했습니다. 꾀병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거려나요? 란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신경쓰지는 않았습니다. 굳이 그걸 드러낼 필요도 없었고요. 어차피 곧 사라질 텐대 뭐 어쩌겠나요. 나타난다면 타미엘이 고생할 뿐이지.
"그건 그렇고. 병문안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요." 상당히 부드럽고 어린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냉랭한 목소리였습니다. 꾀병은 아니다. 라는 말이 약간은 건드린 건지..
일본에서 자라온 영향이다, 당연히. 네헤모트 씨는 외국이름인 덕분에 이렇게 부르지만, 한편 한국 이름들은 대부분 성이 한 글자인데다 다양하지 못해서, 그런 사람들의 경우 풀네임으로 부른다. 지나가는 말투로 툭 꾀병 이야기를 꺼내니까 상대는 무심하게 그렇네요, 라고 답한다. 눈을 반쯤 감으면서 네헤모트 씨를 보았다. 뒤이어서 들려오는 말은 부드럽고 어린 목소리 뒤에 옅은 냉랭함을 보이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든 모양이었다ㅡ꾀병이라는 소리가.
"앞으로 같이 활동할 동료니까, 어떤 사람인지 보러 온 것뿐이에요. 상식적인 행동이죠?"
참, 꾀병은 취소할게요. 웃음기 조금 섞인 목소리로, 그러나 빈말은 아닌 것을 드러내는 목소리로 덧붙이고는 손에 들고 있었던 에펠탑 모형을 옆의 탁자 위에 가볍게 올려놓았다. 이렇게 올려두니까 모양이 더욱 있어보였다. 거금을 들여서 조립한 보람이 있는 걸. 표정은 자연스럽게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병문안 선물이라 생각하겠죠? 유감스럽게도 틀렸어요, 네헤모트 씨. 병문안 선물이 아니라, 앓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병세를 알아보고 위안하면서 남에게 선사하는 물건입니다."
어차피 '병문안 선물'을 풀어서 쓴 말이다. 태평하게 농담 같은 말도 해본다. 그런 말을 하는 나의 얼굴은 그저 평소의 무표정을 여전히 보이기만 하였다.
>>346 음... 그것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거기에 센하가 연관이 되나요? 코미키가만 연관이 된다고 한다면... 그건 조금 허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코미키가가 연관이 된다고 하더라도...정작 센하가 연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굳이 관련지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347 ...헤세드주...중간에 주무실 것 같으면..그냥 푹 주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고 스레주는 생각합니다.(토닥토닥)
"그렇군요." 타미엘도 그것은 긍정했습니다. 서양은 이름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고. 일본은.. 성이 더 다양하지요. 타미엘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긴 했지민요.
"상식적인 행동 맞네요."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자료가 주어지니 그걸로도 알 수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요. 라고 덧붙이기는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그 정도로만 말했습니다.
"본래 타미엘이라면 몰라도..." 얼버무렷습니다. 당황하진 않았으니 다행이려나요? 아니다. 타미엘이랑 타미엘은 둘 다 성격이 파탄난 건 맞으니까. 일부러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풀어서 말하는-생각해보면 그냥 병문안 선물이 맞기는 하다- 말을 듣고는
"에펠탑이나 보면서 고향생각나면 돌아가라는 시위려나요. 쓸모없어질 예정이니까요" 마음에 드는 선물이네요. 아니. 제게 마음에 드는 선물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라고 중얼거립니다. 안 그래도 피 쏟아내고 죽어가는 게 기분 나쁜데. 사람 속을 살살 긁어놓고는 그 사람이 기분나빠하면 전 그냥 정상적인 말만 했는데요. 너무 과민반응하신 거 아닌가요? 라고 할 것 같은 사람이라니. 다만. 모른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요.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도 속을 드러내지 않은 채-잘하는 편입니다- 무감각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냉장고에서 쥬스라도 꺼내 드세요. 라고 말해봅니다.
"여러가지 맛이 있기는 하니까. 골라 드시면 될 거예요." "아. 셉터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냉장고 옆에는 언뜻 봐도 타미엘보다 큰 셉터가 하나 기대어져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