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밍기적 거리길 수십 분. 이제야 움직일 생각이 든 것인지 다륜이 나뭇가지에서 지면으로 뛰어내린다. 마치 중력에 구애 받지 않는 듯 가볍게 착지한 그는 금안을 번뜩이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기척이 감지됐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무런 대가없이 호의호식하던 벌을 받는 걸까. 그래서 짐승의 감조차 녹슬어 버린 걸까. 본체였다면 지금쯤 다가오는 이의 위치를 아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건만 이래서야, 죽도 밥도 아니다. 인간의 모습으로는 기척을 감지하는 것이 고작이니.
다륜은 등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을 감지했으면서도 못 느낀 척 했다. 그러고는 들려오는 상대의 물음에 키득 웃으며 능글맞게 대꾸한다.
“글쎄. 그대가, 나를 발견하는 게?”
등을 돌려 상대를 내려다보자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목에 맨 붉은 목도리다. 그다음은 온화하다는 수식어가 붙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모가. 숲을 생각나게 하는 녹음의 눈동자가 차례대로 들어왔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 것도 같은. 그러한 인상의 청년이 눈을 곱게 접어 이쪽을 향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다륜은 어쩔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흐응, 아무래도 잡힌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진심으로 곤란해.”
이시간에 사람이 다니는 것이 딱히 이상하다거나 수상쩍은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다가오는 이에게선 좋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는. 말 그대로 귀족가의 여식에게서 나는 특이한 향. 그것이 이 청년에게서 풍겨져 오고 있다. 제가 개도 아니건만 이리도 뚜렷하게 날 정도면 매일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즉, 왜 그런 사람이 이 늦은 시간, 그것도 경비원을 거느리지 않고 단독행위를 하는 것이냐다. 그것이 그의 입장상 퍽 수상쩍어 보였다. 게다가 신분이 불확실한 저에게. 말까지 다 걸고. 대체 무슨 꿍꿍이지? 그리 심심했나?
다륜이 반쯤 든 어깨를 축 내려놓고는 표정을 갈무리한다. 금세 나른하게 변한 얼굴로 제 겉옷 소매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한다.
어떤 환상종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네크로맨서. 시체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리치라는 존재와는 조금 다르다더군.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뭐 하는 녀석인지도 모를 것 같다. 아직 그 녀석을 찾고있다. 하지만 굳이 그걸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고있다. 내가 '왜' 이것을 찾고있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대답을 찾지 못하거든. 짐작 하는 녀석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건 그 이야기다. '내가 네크로맨서를 찾는 이유'
그 날은 꽤나 강한 녀석을 만났을 때였다. 나는 오랜만의 휴가라서 동료 심문관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만 보았고, 그 이후의 일은 알지 못했다. 휴가가 끝나기 직전에 다른 동료가 한 명 와서 말하더군. 그때 사냥을 나갔었던 녀석들이 대부분 죽었다고. 살아 돌아온건 3명 쯤이랬나? 돌아왔을 때의 몰골도 안좋았고, 거의 반쯤 미쳐있었다지. 그 녀석들은 정신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요즘의 상황은 듣지 못하고있다. 당연하지만 시체는 수습하지 못했다. 양도 양이거니와 시체의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모양이다. 난 동료들의 죽음을 애도했고, 아직도 가끔은 무덤에 찾아간다.
그 사건이 있고 며칠 뒤,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와선 괴물이 나타났다며, 너무 끔찍하게 생겼다고 공포에 질려서 소리치고 있었다. 난 당연히 조금 특이한 환상종인가보다, 했지. 일단 이쪽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면 죽이던가, 다시 환상종의 땅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명령을 받고 그 녀석을 저지하러 갔지. 난 그때까지도 그 녀석이 환상종일거라고 철썩같이 믿고있었다.
그런데 그건, 환상종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의 상태는, 더 이상 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아니... 형언하면 속이 메스꺼워질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 그것은 시체의 산 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있었다. 한 뭉텅이로 뭉쳐서, 검붉은 무언가로 된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 ............. "
더 이상 그것을 묘사하는것도, 내가 어떤 식으로 그것을 '저지' 했는지도 더 이상 묘사하지는 않겠다. 기억이 끊어졌었거든. 다만 그 후에 내가 복귀하고 반쯤 미쳐서는 날뛰어 잠시 감금을 했었다는것과, 후에 그 자리로 가보니 숲이 일부분 망가져 있었다는 것을 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환상종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만든 녀석은 누구지? 인간의 기술로는 그것을 만드는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환상종일 수 밖에 없다. 자연적 생성? 미친 소리겠지. 그 후로 되는대로 캐고 다녀보았다. 그러다 들어온 정보가, '네크로맨서' 라는 환상종에 대한 정보였다. 실존하는지도 확실치 않으며, 그 녀석이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라곤 그 환상종밖에 없다. 걸어보는 수밖에.
까르르르 웃는, 은구슬이 비단 천 위를 사르르 굴러가는듯한 중성적인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친구의 목소리였다.
"아하하, 뭐 하냐니까아~?"
이내 그 아이는 내 뒤에 서서 나의 눈을 덮어 가리곤, 멋대로 웃는다. 나는 눈이 덮어져 가려진 채로 말한다.
"...그냥, 별 건 아냐. 그보다 눈 가린 것 좀 치워줄래?"
"뭐?"
순간 싸늘하게 변한 목소리. 내 눈가에 닿는 손바닥에도 온기가 날아가버렸다. 얼음장처럼 차갑지만, 어쩌면 그늘께처럼 서늘한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온도. 그래서 더 무서워.
"...정말 치우길 바래?"
그렇게 싸늘한 목소리로, 말투로. 그렇게 말하지 마. 결과는 똑같잖아.
"뭐 하는 거야? 치워달라니까..."
귓가에 웅웅대는 이상야릇한 소리. 결국 나는 짜증이 난 걸까, 그 애의 손을 잡아 치운다. 그리고 펼쳐지는 광경은 언제나 똑같아.
"......아아."
어머니는 이미 따뜻한 피를 전부 빼앗기고 차갑게 식어있다. 그 시신마저 몇 조각 남지 않았어. 그리고 내 친구? 그 아이는 내 목을 조른다. 켁, 하고 숨이 턱턱 막혀온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와 이 공간을 제 고통으로 물들인다. 그 애가 내 목의 흉터를 건드린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할퀸다. 아프게도, 아프게도 내 목을 조여오는 그 손길. 저항할 수 없다. 너무나도 괴로운데, 목을 휘어잡고 놔주지 않는 그 손의 힘이 너무 억세서 저항하지 못한다. 그 애의 손톱에 목이 긁혀 심하게 상처가 나고 결국 내 목은 떨어지며 이 꿈은 끝이 난다.
•◇•◇•
"...허억."
나는 눈을 뜬다. 새벽 3시. 아직 이 밤이 지나지 않은, 새벽이라 할 수도 없을만큼 어둡고 깜깜한 시간. 나는 불을 켠다. 그러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 목의 상처를 가벼이 건드린다. 그 손길조차 기분나빠 몸서리가 쳐진다. 손에 상처에서 흐른 피가 잔뜩 묻어있는 것만 같아. 하지만 이건 착각이야. 고개를 좌우로 휘저어 제정신을 차리려 하고 다시 보니 그건 환영이었고 가짜였다. 하지만 이명은 여전해.
시이, 시이. 나야. 여기 있어. 이쪽 봐. 날 보라구.
누군지 모르지만, 꿈에서의 그 목소리와 같아. 이 목소리의 주인과 나는 어떤 관계였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내가 죽였다는 건 기억하지만 그 애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이런 건 싫어."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그저 계속 울 뿐이다. 어릴 적의 울보였던 나의 바보같은 울음과는 전혀 다른, 처참하기 그지없는 울음만이 방 안을 가득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