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음.. 지은주에게도 일단 얘기를 하자면.. 본 스토리는 Case 22까지 준비되어있으며.. Case 10은 일단 위키에도 기술되어있는 R.R.F와 정면충돌이 예정된 케이스랍니다. 알파와 베타.(스토리를 확인해보면 나온답니다.) 이 2명이 동시에 나오는 편이고...
네 말을 듣고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런 사정이 있었나. 귀신을 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여기에 남아 있어야지 볼 수 있는 거지, 없으면 모른다. 결정적으로 이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내가 귀신이더라도 사람 없고 심심한 집보다는 번화가에 놀러 가고 싶을 것 같기는 하다. 그래서인지 번화가에 확실히 귀신들도 많단 말이지.
"...너 춤 잘 춘다는데?"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장난이랄까. 애초에 귀신이 무서우면 대체 왜 그런 집을 고른 건데? 속으로 웃음을 눌러 참으면서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쓰러진 유안은 예상 밖의 행동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지은을 무표정으로 쳐다보았던 것이다. 상대가 반응이 없자 지은은 어쩔 줄 몰라, 자신이 어딘가 엄청난 실수를 해버린 것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첫날부터 선배에게 찍히다니. 최악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그 모든 것이 완벽했던 하루가 순식간의 최악의 하루로 바뀌고 말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유안의 눈과 마주쳤다. 밝은 갈색 눈. 짙은 검은색의 눈을 가진 지은이 상대가 자신에게 화나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조차 잊고 자신도 모르게 유안의 그 밝은 갈색이 참으로 예쁜 색깔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안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은에게 유안이 말을 걸었을 때, 당연히도 지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그전에 제가 투명인간인건 어떻게 아ㅅ... 아.”
지은의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었다. 지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어쩌면 신입인 자신의 능력을 선배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급하게 하던 말을 멈추었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유안의 발언에 이미 그녀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네? 제가 방금 입 밖으로 제 생각을 말한 건가요?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능력이...”
지은은 안유안의 능력이 독심술일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유안에게 물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질문이 체 끝나기 전에 유안이 문 쪽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그런 그의 뒤를 보자 다급해진 지은이 멋쩍게 웃고는 “그럼 저도 휴식시간을 잠시...”라고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유안의 뒤를 따랐다.
사무실 밖 복도로 나온 것은 유안 혼자만이 아니었다. 첫날에 자신도 잠시간의 휴식시간이라며 따라나오다시피 한 지은도 있었다. 문이 또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방금 자신이 그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한 것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하던 것 같던데.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와버렸다. 오히려 독심술은 아실리아인데. 하지만 굳이 지금 그것에 대해서 언급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지은쪽에서 먼저 입을 열지 않는 한. 대신 다른 이야기를 유안이 꺼냈다. 몸을 완전히 뒷쪽에 있었던 지은에게로 돌리면서.
"따라나오신 이유는?"
...엄청나게 무뚝뚝한 어조의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아까 자세히 보지 않아서 이제 눈치챈 건데, 저 느슨하게 양갈래로 묶은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 어딘가 인위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발인 건가. 유안은 그 생각에 이르렀다. 뭔가 그렇게 생각하니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배게 옆에 놓아둔 핸드폰 진동에 깨어 쳐다본 액정에는 자동이체 알림 문자와 내 대출금 상환까지 6백만원 가량 남았다는 문자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살았지. 무기질적인 액정을 보며 든 생각은 고작 그거였다, 겨우 그거였다는게 너무 허탈하고 우스워서 헛웃음만 나왔다.
22시 34분. 섀해를 조금 넘긴 1월 초순의 밤은, 감성이나 낭만을 느낄 겨를도 주지 않을만큼 추워, 괜히 후드집업의 매무새를 고쳐입게 만들었다. 역시 나오지 말 걸 그랬나며 후회하기엔 로얄빌라 603호는 너무 좁고 쓸쓸한 공간이었고 서두르는 발걸음은 로얄빌라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흐으, 춥다."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는 타이밍이 좋지 않게도 빈곽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피러 나온거였는데. 그냥 집에 다시 들어갈까. 돌연 하늘을 보니, 거기 뜬 것은 우연찮게도 보름달이었다. 예쁘네. 사진 찍어서 보내볼까. 우리 하반장님이나 엄마나 다름없는 윤경감님, 또... 전화나 해볼까 켠 액정은 한 번호 앞에서 멈췄다. 동생, 이라고 저장해둔. 로제.
"...너무 성급했었지."
그땐 왜그리 성급해서는, 뒤늦게 이런식으로 궁상이나 떨고. 전화 해볼까. 손가락은 녹색 통화버튼 앞에서 망설인다.
유안이 뒤를 돌아 지은을 보았을때 그녀는 조심스럽게 사무실의 문을 닫고 있었다. 아직 문을 닫느라 앞을 보지 않고있어 유안이 자신에게 말을 걸긴 커녕 지켜보고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진못한 지은은 상대의 물음에 퍼뜩 몸을 떨고 경직되고 군기잡힌 경례를 했다. 지은은 침을 삼키고 목소리가 제발 떨리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신입, 이지은입니다. 제가 따라나온 이유는..."
선배님을 따라왔다? 말도 안되는 답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휴식을 하기워해 나왔다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이상하다. 어찌 답할지 모르고 흐지부지하게 말이 끝나버렸다. 빨리 답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입을 채찍질하는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선배님과 친분을 쌓고 싶었... 아니, 그러니까..."
썩 좋지 않은 결과였다. 지은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영원할 것 같은 침묵에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은은 긴장한 듯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유안은 조금 예상 밖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야 다른 팀원들은 자신의 이런 무뚝뚝한 태도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누군가 씨도 있었다...유안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무튼, 팀원에게서 이렇게 긴장한 반응은 처음이라고 할까. 이대로 침묵이 계속 이어질 것 같았지만 유안이 깨기로 했다.
"선후배간의 친분이라, 미담이군요."
끝의 '미담'을 말하면서 조금 불쾌한 표정이 얼굴에 일순간 지나간 듯하다. 미담을 싫어하는 건가. 잠시 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긴장한 상태의 지은을 다시 응시하였다. 한 번의 박수소리가 짝 울러퍼졌다. 묵직한 분위기를 깨듯. 유안이 한 것이다. 박수를 치는 동시에 유안은 입을 다시 열었디. 평소의, 과장스럽게 들리기도 하는 연설조.
"뭐, 악의는 없어보이는군요. 훌륭합니다, 누님. 아주 훌륭합니다."
도대체 이 훌륭하다는 말은 나올 때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을 줄 아십니까?"
이번에는 질문이다. 표정은 여전히 없는데다 무미건조하기까지 하지만. 조금 두서없는 화법이지만 지은아, 익숙해질 거야...(?)
깔끔하게 마른 머리를 빗질하던 손이 멈췄다. 이내 빗을 내려놓고 화장대에서 멀어진 그는 거실로 휠체어를 끌었다. 한산한 거실을 둘러보며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은 그는 부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빈 병이 가지런히 놓여있고, 개수대에선 알코올 냄새가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겠지. 남은 술을 싹 개수대에 부어버린건 꽤나 파격적인 일이었다. 악몽은 언제나 그의 발목을 잡았고, 처방전이 되어버린 술은 그를 좀먹기 시작했음을 눈치챈것이겠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가진 큰 결심은 며칠이 지났다고 그를 슬금슬금 시험했지만 로제에겐 그것을 견디고 잊게 할 만큼 큰 결심이 있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
압생트빛 눈은 부엌을 노려보다 거실을 투명히 비추는 베란다를 향했다. 오늘따라 날이 밝은건 기분탓이 아니겠지. 보름달과 함께 주변을 맴도는 별은 주위를 환하게 밝혔고, 로제는 한참동안 달을 바라보다 손에 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들려있는 핸드폰 사이로 신호음이 들렸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원래 이렇게 전화를 했던 사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댄 그는 미리 할 말을 정하듯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신호음이 세번째 들릴 때 즈음, 휠체어를 끌며 엘리베이터 밖을 나섰다. 바깥은 마냥 차기만 했다.
미담. 상대에 입에서 또 예상치 못한 답이 나왔다. 유안의 성격을 제대로 알리가 없는 지은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불쾌해보이는 유안을 본 지은은 해탈해지기로했다. 그래, 나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후배야. 분명 머리 속에서만큼은 하얗게 불태운 포즈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10년간 고아원에서 아이들과 싸웠는데 여기서도 같은 악순환이라니. 지은은 상념은 잠시 치워두고 일단 사과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허리를 막 접으려는 순간 손바닥이 서로 마주쳐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 갑작스러운 상대의 칭찬의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어색하게 답할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자판기 음료는... 아마도 뽑을 수 있습니다."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약하게 올려 웃는건지 뭔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만들어내버렸다. 자판기 음료야 당연히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익스퍼들이 모인 익스레이버. 자판기가 갑자기 트랜*포머 마냥 변신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기에 지은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애매한 대답이군요. 그래도 뽑을 수 있다니 다행입니다. 지금 막 1층으로 내려가서 자판기 음료를 마실 생각이었거든요. 따라나오신 김에 동행해주시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싫다던 유안인데, 이런 모습을 보인다. 아, 일종의 대가 지불일 수도 있겠다. 자신이 넘어져서 지은의 시선을 끌고,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따라나오게 했고, 긴장시켰으니. 그것에 대한 확실한 대가 지불의 심정일 수도. 그야 무언가를 대가 없이 받으면 어떻게든 언젠가는 돌려주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니. 자판기까지 같이 가면서 나름대로 스스로 끼쳐버린 긴장을 풀어주고 선배로서의 역할을 할 생각인 모양이다. 이 반쯤 은둔형 인간이 과연 얼마나 할지는 의문이지만.
지은의 대답도 무엇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서 앞으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그녀가 옆에 있든 말든 혼잣말을 모노톤으로 늘어놓아본다.
"참고로 이쪽은 능력이 독심술 같은 것이 아니라, 감각 차단입니다. 저주 받은 능력, 그 자체죠."
동행하자는 유안의 말에 얼굴이 밝아진다. 평소에는 이정도로 진중한 성격이 아닌 듯 아까의 긴장된 모습은 벌써 사라졌다. 이가 들어날 정도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답한다.
”네, 선배님! 저, 음료수 자판기 꼭 뽑을게요!“
그래, 선배님과의 티타임(?)을 위해서라면 그 자판기가 트랜스*머든 마법의 뭐시기든 자신에게 총을 갈기더라도 기꺼이 뽑아줄 생각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가장 어려워하는 지은에게는 차라리 이것이 편했다. 몸을 돌려 앞으로 향하는 유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유안의 능력이 독심술이라고 굳게 믿던 지은에게 충격적인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까는 어떻게?“
진심으로 궁금한가 보다. 인상을 찌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 번도 자신이 쉽게 감정을 들어낸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자신의 착각인지 그저 유안의 감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게 편한 선택지를 고르는 법. 유안의 감이 좋은 것이라고 제멋대로 단정 지은 지은이었다. 저주받은 능력이라 칭하는 유안의 모습에 지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어쩌면 자신처럼 안 좋은 일을 겪었던 것일까. 차마 함부로 말을 건네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능력을 저주받았다고 칭하는 것을 그대로 나두고 싶지는 않았다.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기를 바라며 지은이 느릿하게 덧붙였다.
”어쨌든... 그 능력으로 어쨌든 남을 돕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해요. 아, 물론 전 잘 모르니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고, 또. 만약 기분 나빴다면 죄송해요.“
바깥은 찼다. 바람이 불어 휭 하니 목가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자 옷깃을 여민 그는 잠시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아 한 손에 쥐여진 핸드폰의 케이스를 검지의 손톱을 세워 툭툭 두들겼다. 옅은 진동이 퍼져 귓가를 울리고, 신호음이 몇번 더 가도 전화를 받지 않자 자는건가 싶어 통화를 끊으려는 듯 귀에서 핸드폰을 뗄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왜 떨고있어?
"..늦은 저녁에 미안해요. 누나." "...혹시 바빠요?"
손을 떼고 어깨를 올려 핸드폰을 귀에 대며, 휠체어의 바퀴를 움직였다. 떨리는 목소리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는지 쉽게 입을 떼지 못하던 그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어째선지 유안은 이번에는 감을 별로 못 잡겠지만ㅡ애초에 이 사람은 트X스포머를 모른다ㅡ 아무튼 지은은 자판기 음료를 꼭 뽑겠다며 의지를 굳게 다졌다. 그 모습을 보는 유안의 눈에는 그저 활기가 넘치는 것 같은 한 명의 신입으로 보일 뿐이었다.
지은이 따라온 덕에 유안의 말은 단순한 혼잣말에서 끝나지 않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소개하는 말에 지은은 충격을 받은 듯했고, 그것을 숨김없이 역력하게 드러내었다. 유안은 그렇게까지 충격을 먹어야하는 건가ㅡ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얼굴로 그 모습을 옆눈으로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전자라는 이름의 아주 무서운 존재, 아십니까?"
지극히 간단명료한 대답...인데 어째선지 질문의 형태로 되돌렸다.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지만. 그러던와중 저주 받은 능력이라는 말을 지은은 무겁게 받아들인 듯했다. 조심스럽게 걱정하는 모습으로 조언을 살짝 건네자, 유안은 한 번 더 그녀를 옆눈으로 바라보았다. 연갈색 눈동자가 순간 어두워보였다. 미안해야하나ㅡ라는, 저번에 울프에게도 보였었던 것 같은 자기혐오적인 기색이 무표정에 조금 비추어졌다. 말을 얼버무리듯이 지은이 없는 반대쪽의 벽을 바라본다. 그러다가도 결국에는 대답했다. 시선은 여전히 벽을 향해있다.
"걱정해줘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필요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파티 때 월하에게도 비슷한 말을 무감정하게 돌려주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뚝뚝하게,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현재 지은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 눈도 공허하기만 하다.
무슨 바람이었을까, 전화 너머의 네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당장이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내가 동생쪽으로, 갈게. 우리집에 엘리베이터 없으니까. 주소 톡으로 찍어줘..."
억누르듯 전화를 끊었다. 더이상 목소리를 들으면 턱 끝까지 차오른 감정을 토해낼 것 같았다. 공원을 벗어나 대로변을 향하는 짧은 달리기가, 지나가는 택시를 기다리는 그 몇 분이, 택시를 잡아 타 톡으로 받은 네 주소를 알려주는 짧은 순간이, 목적지까지 향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찰나같았고 또 영원 같았다. 너무 짧지만, 너무나도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생각이 맞았다. 이 찰나같은 영원, 아니면 영원같은 찰나의 시간동안 나는 너에게 할 말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오지 않았다. 네 앞에 서면 나는 말보다, 감정이 치밀듯 오를 것 같았다. 그 커다란 실수를 한 날 이후로, 나는 마음을 접어두려 했었다. 하지만, 억지로 강을 둑으로 막아도, 그 사이로 새어나온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지은은 속으로는 정말 독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쭉 걷고 있었다. 감각 차단이라니 듣기에 제법 멋있어 보이는 능력이었다. 활용을 잘한다면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유안의 입에서 지은에게는 지나치게 생소한 답이 나왔다.
‘유전자.’
가족에 관한 이야기일까. 지은에게는 역시 너무나도 멀고, 아득한 이야기였다. 저절로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래지않아 지은은 불편한 기색을 지우려고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늘 그랬듯이.
”그렇군요.“
눈을 바닥으로 깔아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괜한 말로 분위기만 나빠진 듯 했다. 어쩌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은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해버린 말이었다. 언제나 후회는 뒤늦게 찾아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자신은 말해버렸고 상대는 들어버렸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다였다.
말은 무섭다. 가벼운 말 몇 마디가 어떤 이에게는 날카로운 칼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은이어서 그런지 늘 말을 할 때는 조심하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잘 실천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마음에 각인하고 다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지은은 입을 닫았다.
#뭔가 유안의 자기혐오를 볼때마다 지은도 자기혐오적인 설정이 있다는 생각을 계속 떠오르게 하네요! 그리고 매번 어떻게 표현할 줄 모르겠군요.
옆에서 칭얼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차츰 가까워지는 기척을 느끼며 그냥 그렇게 기분 상한 척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금의 상념을 한 건 덤.
질투라...생각해보면 난 누굴 질투해본 적이 없네. 그럴 필요도 못 느꼈고, 그럴만큼 뭔가에 부족해져 본적이 없으니까.
대신 그만큼 욕구가 강했다. 질투와는 다른, 소유욕. 내 것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 언제나 끝없는 상실감에 시달리던 때가 있었어. 그것에 어린 짐승이 한마리 희생되었던 것은 이미 아주 오래전. 그로 인해 나는 정신적 카운셀링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프레이와 리키를 만날 수 있었지.
아, 그랬다. 8살의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고 그를 돌아보았다. 슬픈 표정의 그를 싱긋 미소지으며 마주한 나는 징그럽도록 자연스럽게 말했더랬지.
"버리긴 누가 버려요. 질투한다고 그러는게 얄밉고 귀여워서 장난 좀 쳐봤어요. 많이 놀랐어요?"
후후. 작게 웃으며 팔을 뻗어 그를 내 품에 안았다. 나는 질투 같은 거 안 해요. 그 결과가 너무 참담하거든.
어디냐고 묻자 당신은 집, 정확히는 집 근처의 공원이라 답하였다. 휠체어의 바퀴에 손을 댄 순간 당신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겠다 말하며 주소를 보내달라 했고, 통화는 짧고 급박하게 끊어졌다. 마치 더 얘기했다간 무슨 일이라도 날 것 마냥. 조용히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내고 주소를 당신에게 보냈다.
찰나의 기다리는 시간은 영원과 같아선 오히려 복잡한 머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줬다. 이기적이었지. 자신의 감정을 겨우 고백한 그녀를 생각도 하지 않고 단순히 갑작스럽다는 이유로 밀어내었다. 상처를 새겼음에도, 이래도 되는걸까 싶어도. 눈을 내리깔아 검은 화면을 비추는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이곳으로 오고 있었고, 나 또한 당신에게 갈 생각이었다.
휠체어를 옮겨 마중을 나가듯 자리를 옮겼다. 당신을 빠르고 가깝게 만날정도로, 거리를 조금 좁혀 당신을 기다렸다.
다른 곳을 바라보는 바람에 지은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유안은 보지 못했다. 만일 보았더라면 쓸데없는 참견없이 외면하자며 복잡한 감정으로 스스로에게 되뇌었을테다. 언젠가부터 그래왔듯이. 유안은 무언가를 더 알음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착각과 오해를 두려워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게 낫다. 자신의 분수는 그 수준이기도 하고.
미안하다고 재차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벽에서 시선을 거두어 지은을 다시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옆눈으로. 공허함은 어느새 지워져있었다. 유안도 지은도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고 말았다. 분위기는 처음보다 더 가라앉아버렸다. 유안은 그 원인을 생각하고 불쾌감에 잠시 표정을 찌푸렸다. 또 다시 자신이다. 그래, 이렇게 된 김에 완전히 미움 받아서... 충동적인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입을 뗐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잊었군요."
목소리는 다시 평소대로 선명하게 돌아왔다. 나른하고 의욕없어보이는 인상과 묘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름은 안유안. 거꾸로 해도 안유안. 초성은 모두 이응. 보시다시피 상당히 편한 이름입니다, 투명인간 누님."
좋지 않았다. 매우 좋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정말로 싫었다. 잔뜩 침체되어 나마저도 암울함에 빠져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괜한 말이었다. 빨리, 이 분위기를 수습해야하는데라고 생각하는 도중 귓속으로 유안의 선명한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올렸다. 바다 밑바닥에서 다시 지상으로 끌어올려지는 기분이었다. 지은이 눈을 크게 뜨고 유안을 바라보았다. 왼쪽 눈은 초점이 없었지만 오른쪽 눈만큼은 안유안을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안유안 선배님. 전, 말했듯이 이지은이에요.“
거꾸로 해도 안유안이란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대에서 나온 생각지도 못한 개그였다. 아까 웃음보다는 환하지 않았지만 훨씬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마치, 정말로 기뻐하는 그런 웃음이었다.
”선배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시는 군요! 저도 질 수 없죠. 제 이름은 지은이에요. 저희 부모님이 지은 ‘지은‘이랍니다.“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올려 ’짠‘이라고 작게 말했다. 이상한 드립이었다. 하지만 지은은 기대하고 있는지 눈을 반짝이며 유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유안의 반응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하는 태도였다.
”물론 아시겠지만 참고로 전 24살이에요. 선배님은 어떤가요?“
디은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넌지시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해 하던 사실이었다.
# 제 개그의 한계입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아재개그 모음집 같은거라도 읽어야겠군요... 수련이 필요하다.
자신의 통성명에 지은은 웃음을 작게 터뜨렦다. 그러고서는 자신도 질 수 없다면서ㅡ애초에 유안은 웃길 목적으로 그렇게 소개를 한 건 아니지만ㅡ 자신의 통성명으로 개그를 시도한다. 부모님이 지은 '지은'이라면서. 장난스럽게 말한 지은은 유안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반응을 기대하듯이. 유안은 그 모습을 보며 아재개그를 하는 점에서만은 자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경찰서 경찰앉아 드립을 제일 즐겨하는 아버지. 입이 닳도록 즐겨하셔서 이젠 질릴 지경이다. 안타깝게도 유안은 지은에게 그닥 재미있는 반응을 돌려주지 못하였다. 그저 그 아재개그에 잠시 멈칫하더니, '허...'하는 싱거운 감탄사나 흘리고 끝내는 것이다.
한편, 지은이 24살이라는 사실 또한 유안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롱범 팀의 자료는 언제든지 주어지니. 지은은 아직 받지 못했거나, 받았으나 읽지 못한 것 같다. 반대로 유안의 나이를 물어봐온다. 유안은 조금 황당한 기색을 무표정에 비추었다. 아까부터 계속 누님이라고 불러왔는데 연하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아니, 그냥 정확한 나이를 궁금해하는 걸지도. 그 생각에 이제서야 미친 유안은 입을 열어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하였다.
"23살입니다. 딱 한 살 차."
계단까지 내려가고 보니 어느새 1층이다. 유안은 서의 문을 열면서 차가운 공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동시에 조용히 능력을 써서 따뜻하게 무장하였다. 그러다 문득 지은 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말없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능력을 사용했다. 온각과 냉각의 적절한 차단. 차가운 공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따뜻할 것이다. 아무래도 방금 분위기 저하에 대한 대가인 모양이다. 무뚝뚝한 목소리로,
지금 이 감정은 너에 대한 미안함일까, 아니면 너를 놓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양자 모두일까. 턱밑까지 차올라온 그 알 수 없는 무언가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이 위태로웠다. 단지 정문앞에서 멈춘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만 원짜리 한장, 잔돈조차 받지 않은 채 그대로 다리를 재촉한다.
나는 왜
늘 실수 하고나서야 후회를 할까.
중요한 순간에만 남을 생각하지 않을까.
결국 상처 입힐거면서, 상처 입을거면서 뻔뻔해지는건 죽어도 못할까.
나는 그냥 바보다. 직진밖에 모르고, 평소엔 그렇게나 눈치빠르면서 중요한 순간에 초쳐버리고, 상처입힌 후에 뻔뻔해지지 못하는 그런 바보다. 하지만, 그런 바보가, 또다시 상처입고, 입힐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또 혼자 안고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달린다. 이번에는 정말로 다를 자신이 아주 조금이나마 있었으니까. 그걸 놓치긴 싫다.
거친 숨소리, 내 발걸음은 멈췄다. 아래에 눈물이 고여 살짝 뿌연 시야로 보이는 선홍색 머리카락, 늘 감고있어 보이진 않지만 가끔 보이는 예쁜 녹색 눈동자. 50미터도 안되는 짧은 길, 멈춰선 서로 사이에는 가로등 하나와 벤치 둘. 우리를 막아서는건 없었다. 한발, 한발, 다시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생각보다 싱거운 유안의 답변에도 지은은 마냥 즐거운 듯하다. 여전히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는 유안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딱히 엄청난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지은은 유안이 어떤 반응을 해도 즐거워했을 것이었다. 솔직해지자면 아예 기대를 안한 것은 아니었다. 저 무심한 얼굴이 환하게 웃는다면, 꽤나 아니 무척이나 볼만했을 것이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물론, 아롱범팀에 대한 정보가 담긴 자료를 받기는 했다. 하지만 새롭게 생긴 자리를 정리하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많은 자료를 받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류 틈사이로 사라져버렸다. 그 자료를 다시 찾으려면 한참 걸릴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차근차근 정리하면서 찾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유안의 답을 들은 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연하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나이차이가 적다. 분명 저것보다 더 어릴 줄 알았는데 의외네.
1충에 내려오자 한기가 느껴졌다. 지은은 아직은 한창 추울 때라며 사무실 의자에 걸려진 가운이라도 갖고 오지 않은 것을 한창 후회하고 있었다. 순간 유안이 자신을 툭 치자 의문을 가지고 유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 능력인 걸까.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렇게 되면 음료수는 역시 제가 사는 게 맞겠죠?"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림을 확실히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배님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이미 입에 배인 것일 수도 있다. 상대에게 물었지만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자판기 앞에 서서 무엇을 먹을 거냐는 표정으로 유안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통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게 만들어. 약은 더 이상 몸에 들지 않았지. 그래서 이따금 늦은 새벽엔 항상 몰래 병실을 빠져나왔어. 아무런 존재감이 없단 게 그럴 땐 얼마나 좋았는지. 눈 감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곳이라 별 재미는 없지만. 돌아다니는 동안은 아프지 않았으니까. 밤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즐거웠고. 수천 개의 반짝이던 별들. 큰 달이 흐르는걸. 날이 밝아오는 걸 지켜보다 항상 마지막으로 영안실에 들렸었어. 왜 그랬을까. 내가 누워 있을 자리를 미리 살펴보고 싶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다른 이들을 만나고 싶단 생각에서 그랬을지도. 물론 한 번도 다른 이들을 만난 적도 없었어. 그리고 다행히도 그곳에 누울 일도 없었지.
어색하고 또 어색한 시간이 지나간다. 가느다란 초침 지나가는 소리가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잘 들리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이 불편하다 못 해 무겁게 느껴질 즈음 프레이가 입을 열었다.
"저기..." "어,어?"
나는 때마침 잔이 비어서 새로 커피나 타려고 일어나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일어나려던 몸을 엉거주춤하고서 그를 보자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여, 짧은 한숨과 함께 다시 자리에 앉았다. 커피야 안 마셔도 되니까. 내가 다시 자리에 앉고 또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다.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니 리키와는 다른 저음의 목소리가 말했다.
"저번 병원에서, 내가 아직도 미워하냐고 물었을 때, 잊지는 않았다고 했잖아. 그거...무슨 의미였어?" "...말 그대로야. 네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내 배를 찌른 건 잊지 않았다는 의미였어." "그것 뿐이야? 정말?" "정말."
평범한 내 대답에 그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나는 다시 기다렸다. 잠깐 사이 아까의 흥분이 거짓말처럼 차분해져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필요도 없이 프레이가 못 다 한 말을 꺼내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웠어. 그 이상으로 네가 아는 것도 싫었고. 그래서 너만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날 원망하고 끝내는 나를 죽여주길 바랐지. 나는 네 부모를 죽인 원수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지금까지의 나는 뭐였던 걸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로써는 네게 해줄 얘기가 특별히 없어. 거의 리키의 의도대로 움직였을 뿐이니까.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은, 너에 대한 애정이나 혈육으로서의 정은 거짓이 아니라는 것 정도야.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것도 몰랐을 때도, 진실을 안 후에도. 네가 있었기 때문에 내 인생에 빛이 들었으니까. 혼자 있어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해주는, 정말 소중하고 소중한 존재. 그게 너야. 네가 내게 고백하던 그 날 기억해? 그 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정말 많이 울었었어. 어떤 식으로든 너를 거절하고 나를 원망하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보석 같은 너를 상처 입혀야 한다는게 너무 괴로웠어. 그렇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그 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을 걸 그랬나 봐. 너를 상처입히지 말고, 그냥 그 날 거기서 네게 죽을 걸. 이제와 후회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워..."
고해성사하듯 이어지던 말은 점점 흐려져 끝내는 목소리에 물기가 스며든다. 나는 그런 그를 위로하거나 책망하지 않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새삼스럽게 그가 작아보였다. 언제나 크나큰 존재로 느껴졌는데.
그가 말했듯, 그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그것이 다였을 것이다. 한심한 짓이긴 하나 그는 거의 리키의 의견에 따르고 그의 의도대로 행동할 뿐이었으니까. 나 역시 이 자리에서 듣고 싶은 것은 리키에게만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의문을, 거의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리키에게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프레이의 말을 담담히 들을 수 있었다.
"......"
리키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있었기에 나는 프레이가 감정을 추스리길 기다렸다. 이제 우리 사이에 들춰야 할 잔혹한 사실 같은 건 더 없었다. 남은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지 정하는 일 뿐.
깨닫고보니,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간은 제법 흘러 있었다. 붉게 황혼이 지던 하늘은 어느새 어두워졌고, 조금 있으면 날이 바뀔 때였다. 그렇게 새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결국 새해 이전에 결말을 내리는 것은 하지 못 했네. 그런 아무래도 좋을 생각에 무심코 웃어버린다. 후후. 가볍디 가벼운 웃음소리에 눈가가 붉어진 프레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며 무어라 말하려 했으나 때마침 리키가 목에 거즈를 붙이고 돌아와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나 대신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얘기 좀 했어?" "뭐 그럭저럭." "...리키, 미안...많이 아팠어?" "그다지. 이 정도로 끝내줘서 고마울 정도인데. 최소한 팔 하나 정도는 내줘야하지 않을까 했어." "팔은 너무 싸. 적어도 그 잘난 낯짝 정도는 뜯어줘야-" "그, 그만! 둘 다 무슨 얘길 하는 거야?!"
다시 모인 우리에게 아까 같은 날 선 긴장감도, 빙판 위 같은 아슬아슬함도 없었다. 오히려 살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프레이만이 그 농담을 농담으로 듣지 못 하고 놀랐지만.
짧은 대화가 오간 후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다. 이제 더는 꺼낼 것도 감춘 것도 없었다. 어쩌면 이 관계는 오늘로써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끌어보고자 이렇게 침묵으로나마 시간을...
"......" "......" "......"
하지만 나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렇게 끝낼 거라면 이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 미련한 남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입 다물고 있는 꼴이 아무래도 말 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럼 내가 말해야지 어쩌겠어.
나의 길은 언제나 혼자였기에 당신을 그리워 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었다. 내가 당신의 황혼이 될테니, 당신은 눈이 멀 듯 빛나는 태양이 되어라. 내가 어둡고 썩어들어간 길을 걸을테니, 당신은 아름답고 꽃내음이 향긋한 길을 걸어라. 그것이 나의 단 하나의 바람이었으니 이 길을 홀로 걷는대도 외롭지 않겠구나. 언젠가 다시 마주할 당신을, 나는 그 때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음을 그저 아파할 뿐익
나의 길은 언제나 혼자였기에 당신을 그리워 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었다. 내가 당신의 황혼이 될테니, 당신은 눈이 멀 듯 빛나는 태양이 되어라. 내가 어둡고 썩어들어간 길을 걸을테니, 당신은 아름답고 꽃내음이 향긋한 길을 걸어라. 그것이 나의 단 하나의 바람이었으니 이 길을 홀로 걷는대도 외롭지 않겠구나. 언젠가 다시 마주할 당신을, 나는 그 때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음을 그저 아파할 뿐이겠지.
굳은 결심은 말로만 해서 이뤄지는게 아니었다. 그 어려운 걸 자신에게 보여줬음에도 물흐르듯 상처를 입힌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겠지. 결국 당신을 피해버리고, 도망쳐 숨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줄 알았거늘, 언제까지고 참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건만, 참지 못하고 감정은 뿌리를 내려 커져만 갔다. 처음 느끼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몸을 옭아매고 정신을 삼켰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이 감정을 외면해선 안 된다.
결정을 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외면해선 안 되는 그것을 다시금 받아들이고, 도망치지 않겠다 다짐하자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목 안 깊숙이 숨어선 기회를 노리던 말이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눈을 떠 눈 앞의 당신을 마주했다. 짧은 길을 사이로 당신이 보였다. 밝은 밤색의 머리카락, 안경 사이로 보이는 물기어린 눈. 그대, 왜 눈물이 고여있나요? 누가 슬프게 했나, 누가 당신의 마음을 차지했을까. 내가 닦아줘야겠지요. 다가오는 당신을 위해, 예전부터 당신에게 줄곧 하고싶었던, 충동적인 감정을 내보였다. 휠체어를 내려와 가까스로 두 발로 서서, 녹색 눈에 자그맣고 사랑스런 당신을 담았다.
렛쉬 사건이 어떻게든 마무리 되고 시간은 흘러갔다. 일단 익스레이버 아롱범팀이 현재 쫓는 사건은 다름 아닌 그 연구원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애석하게도 사건의 현장 조사도 끝을 냈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을 조사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는지, 자신을 찾을만한 단서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에 사건은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새해가 되고서도 딱히 큰 성과는 없는 셈이었다.
"...뀨웅..."
그리고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고 있었는지 렛쉬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밥그릇 안의 밥을 천천히 먹고 있었다. 그리고 서하와 하윤은 자리에 앉아서 익스파 탐지기를 체크하고 있었다. 혹시나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서 그들은 상당히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딱히 크게 보이는 무언가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놓치지 않고 혹시나 단서가 없지 않을까 싶어 그들은 계속해서 단서를 모으고 있었다.
"......정말 신명나게 안 나오네."
서하의 한숨 소리와는 별개로 사무실도, 성류시도 상당히 평화로운 분위기 그 자체였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폭풍전의 조용한 침묵의 시간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유혜는 자신을 제어해줄 파트너를 보고해야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찾지 못하면, 어쩌면 정말로 제외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방 공기가 너무 무거운 건 아닌지. 스륵 뒷걸음질 치며 사라지길 잠깐. 컵이 들린 쟁반을 들곤 나타난다. 그리곤 툭 서하를 첫번째로 차 담긴 컵을 내밀어 보이더니 방글. 살짝이 고갤 끄덕이며 웃어 보이더니 그대로 타박, 울프며 유안이며. 방에 있는 동료들에게 차를 권한다.
침묵속에서 유안은 조용히 고양이 같은 하품을 하였다. 서하와 하윤ㅡ오퍼레이터들은 연구원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단서를 조사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할만한 게 나오지 않아 필사적인 상태이다. 결국에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리는 서하를 턱을 비딱하게 괸채로 흘깃 바라보는데, 그 이상은 별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중간에 차를 권하는 월하에게 "아아"라는 영 애매한 한마디를 인사 대신 남기면서 차를 홀짝거렸다.
사무실의 공기는 답답하고 무거웠다. 그와는 별개로, 유혜의 머릿 속은 엉킨 털실처럼 복잡해 누군가가 건들이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같이 부풀어오르는 중이었지만. 이 사건은 분명 10년 전 그날과 관련 되있다고 유혜 자신의 육감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물론 유혜 자신도 그 사실을 놓치진 않았다. 어쩌면 실마리가 될, 혹은 열쇠가 될 그 남자를 놓쳐선 안 될 일이었지만 서장님이 제안한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도 아니었다. 사실상, 사건의 파트너가 되어 자신을 제어해달라는 사람이 다가온다면 의심부터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유혜 자신은...
“ 나는 제압에 도움이 되는 역할도 아니고 “
아차, 머릿속으로 속삭이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유혜가 두 눈을 깜빡였다. 우연히 눈에 들어 온 시계는 서장님이 이야기 한 시간에 가까워져갔고, 더이상 그녀가 누릴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해주고, 감수해줄 누군가를...
“ 저, 유안씨. 할 말이 있는데. “
안유안, 얼마전 순찰을 돌다가 우연히 만나 친해진 우리 팀원. 유혜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유안의 어깨를 톡 건들며 그를 불렀다. 거절 당하는 일 따위는 이미 각오 했다. 유혜가 어딘가 씁쓸한 미소를 피워냈다.
“ 단도직입적으로, 이번 사건에 제가 참여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합니다.제가 과열 되었을 때 저를 제어해주실 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래서..., 제 파트너가 되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제가 왜 파트너가 필요한지에 대해 궁금하신 게 있으시다면 대답해드릴게요. “
이 몇 문장을 말하는 데에 아주 아득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 비록 일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유혜는 가만히 유안의 신발을 바라보던 시선을 그의 눈동자로 옮겼다. 온갖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누군가는 답답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시급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그저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지도 모른다. 아무튼 월하가 건네주는 차에 서하와 하윤은 둘 다 그녀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계속해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그러는 도중, 갑자기 비상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둘이 바라보는 모니터 너머에 A급..아니, 정확히는 S급에 약간 못 미치는 파장의 크기의 A급 익스파가 체크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A급 익스파는 도시의 광장에 점점 더 번지고 있었다.
"이, 이건..?!"
"A급 익스파! 자..잠깐만요! 바로 전화가 와서..! 아... 김호민 경위님이세요?!"
전화가 온 것은 다름 아닌 김호민 경위였다. 언제나 그들과 협력하면서 이것저것 도움을 받기도 하는 그 경위의 전화를 받은 것은 다름 아닌 하윤이고, 서하는 빠르게 키보드를 치면서 근처에 있는 CCTV의 현장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이내 천장에 달려있는 모니터에 근처의 CCTV의 모습이 담겼다. 그리고 그곳에 비치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거대한 화염지옥 그 자체였다. 건물을 불꽃들이 불태우고 있었고 미처 도망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흽쓸리고 있었고, 그 화염은 더욱 더 번지면서 그 피해를 크게 넓히고 있었다.
"모두들..! 출동준비해주세요! 아무래도 익스퍼와 관련된 불꽃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이 붙었고 지금, 근처를 불태우는 모양이에요! 모두들 혹시 모르니까 개인 방독면..확실하게 챙겨주시고..! 불꽃에 데이지 않게 조심하세요! 일단 근처 소방 대원들이 출동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지금 막 불꽃이 일어났으니 아마 근처에 문제를 일으킨 익스퍼가 있을지도 몰라요! S급에 가까운 크기의 A급 익스파니까 모두들 조심해주세요!"
"...준비가 되면 다들, 앞에 서주세요. ...단번에 저쪽으로 전송할테니까."
어쩌면 생각보다 큰 무언가가 터진 것일지도 모른다. 경찰로서 민간인을 구출해야할지도 모르고..확실한 것은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는 곳이니 사무실에 있는 방독면 정도는 챙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렛쉬가 귀를 쫑긋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렛쉬는 렛쉬 나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시 광장이 불바다가 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을 인지해주고 출동준비를 하면 되겠습니다..!
성가셔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스파 테이저건, 실탄이 든 총, 그리고 하윤이 말한 개인 방독면 등 챙길 건 모두 챙긴다. 그러면서 CCTV화면을 흘깃 바라보았다. 불지옥 그 자체였다. 불인가...이번에는 자신에게 파트너를 제안한 유혜를 옆눈으로 바라보았다. 불이라. 유혜의 눈에 녹아든 감정은...복수심인가. ...아니야. 깊은 사정에 관심 가지지마, 안유안. 너는 그저 사례를 조건으로 건 일시적인 통제 역할일 뿐이야. 주어진 일만 바라봐. 전에 유혜의 과거를 물어본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유안은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출동준비는 완료되었다. 출동+파트너인가. 일단 이틀 쉴까.
원조의 말에 렛쉬는 조용히 원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정말로 알아들은건진 알 수 없었다. 동물과 대화가 통하는 이는 여기엔 아무도 없었으니. 아무튼 렛쉬는 렛쉬 나름대로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근처에서 방독면 하나를 물고 오더니, 자신의 머리에 쓰는 행동을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윤은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괜찮을까요? 렛쉬를 보내도..."
"...어차피 우리가 안 보내도 뛰쳐나갈 녀석이잖아. ...괜히 귀찮게 일을 만들지 말고, 모두와 함께 보내는 것이 낫지. 그리고 앨리스 씨는..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럽게. ...우리가 언제부터 물리법칙에 영향을 받았다고.."
그런 존재가 바로 익스퍼라고 이야기하면서 서하는 자신들의 앞에 선 이들을 바라보며 가볍게 어깨를 한번씩 터치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퉁겼다. 그러자 언제나처럼 모든 시야가 검은색이 되었다가 곧 제대로 시야가 돌아왔다. 모두의 앞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말 그대로 거대한 불의 벽이었다. 보기만 해도 뜨거운 불은 주변을 강하게 불태우고 있었고, 근처에 있는 거대한 고층빌딩도 예외없이 불태우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황급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렛쉬였다.
"크르르르릉..."
무엇을 느낀 것일까? 렛쉬는 크게 으르렁거리면서 저편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그곳에서 멈춰섰고 맹렬하게 앞을 바라보면서 우렁찬 소리로 크게 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이. 정말로 뜨거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건물. 성류시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성류백화점 내부에서 한 사내가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상당히 짧은 스포츠 머리스타일의 사내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롱범 팀은 그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하윤이가 보여준 바로 그 사진 속의 남자이니까. 그 모니터에 띄워진 사진 속의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어 그 사내는 앞의 이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응? ...뭐야..? 경찰..? 아..그렇군...경찰이 움직이고 있었나..?"
그 목소리는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참으로 따분한 느낌 그 자체였으며, 그의 손에는 귀금속이 가득 들려져있었다.
한 번의 심호흡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솔직하게, 자신이 없었다. 그를 만나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내뱉을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할지. 웃기는 일이었다. 그는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를텐데. 왼편 어깨가 또다시 아려왔다. 아, 흉터 지울 걸. 작은 후회는 당신의 그림자로 드리운다.
두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뜨거운 불로 감싸오른 성류시가 두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자 불에 타오르는 커대란 백화점이- 아, 그러니까. 아냐, 당황하지 마. 아니야, 이건 그냥...
숨이 가빠졌다. 어쩌면 누군가가 이상함을 눈치 챌 지도 모를 정도로, 규칙적인 호흡은 어딘가 흐트러져 들쑥날쑥, 꾹 깨문 아랫입술은 곧 피가 터져나올 듯 붉어진다. 아직 나는 십년 전의 나를 내치지 못했구나, 다시금 천천히 두 눈을 감고 뜨자 호흡이 진정 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아직은 문제 없어. 그녀는 백화점에서 내려오는 그 남자를 바라보며 두 눈을 가늘게 흐렸다. 진정 되지 않는 가슴은 미친 듯이 요동쳤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감정이 조금도 실려있지 않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걸으면서 유안은 한발짝 앞으로 갔다. 표정 또한 차가웠다. 사내의 모습에서 어쩐지 광기가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만약에 맞다면 유안이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 중 하나에 들어간다. 광기어린 사람. 아니, 애초에 살인범이군.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이 불바다가 당신의 소행이라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순순히 투항할 기회를 한 번 드리겠습니다."
열기 탓인지 불꽃 탓인지 눈 앞이 상당히 산란했다.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솟고, 광장과 백화점은 이미 불바다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한 마디로 아비규환. 그리고 그 아비규환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를 쳐다보며, 아실리아는 조심스레 테이저건을 쥐었다. 분명, 전에 한 번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지.
일단 준비는 끝마쳤고. 전송된 곳에서 바라본 광경은 지옥도 그 자체였다. 일 한번 크게 벌리시는구만. 왜, 아예 초열지옥이라도 만드시지. 그런 빈정거리는 생각을 하며 아파오는 뒷목을 주무르던 로제는 렛쉬가 크게 짖자 그쪽을 본능적으로 바라보았고, 따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손에 쥐고있는 귀금속을 보곤 표정을 구겼다.
"당연히 움직이겠죠. 그렇게 여유로운 나들이를 하고 계시는데."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빠져나오지 못한 시민은 없나? 자신이 가야하는 상황은 아닌가? 남성보단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했다.
테이저건을 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다 동료들의 반응에 슬그머니 내린다. 잘근 입술을 깨물곤, 뒤로 불타는 건물을 바라본다. 늦기전에 끌 수 있을까 몰라. 내린 테이저건을 다시 겨눈다. 상대가 뭔가 할 조짐이 보이면 바로 쏠 수 있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다.
사내의 등장. 그 모습은 당연히 사무실에 있는 서하와 하윤에게도 비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서하는 빠르게 사내의 데이터틀 데이터베이스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를 향해서 통신을 보냈다.
"...이름은 최한올. 나이는...10년전 기준으로 28살이고, 10년전 기준으로 랭크는 A. 능력은 버닝 스플래시. 열기를 주변으로 퍼뜨리는 능력인 것 같아요. 다만, 퍼뜨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인 것 같은데...일단 매우 위험한 능력이라고 하니, 모두들 조심하세요. 함부로 다가서지 말고..."
모두에게 사내에 대한 데이터가 전달되는 것과는 별개로 한올은 아롱범 팀 멤버들을 나른하게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건물로 뛰어가려는 이도 있었다.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탁탁, 마치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모션을 보였다. 그러자 손가락 사이와 사이에서 붉은색 스파크 같은 것이 튀었고, 동시에 타오르고 있는 백화점에서 아주 큰 폭발이 일어났다.
"...투항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건 해야할 것 같아서 말이야. 경찰 나으리~"
다시 한번 그는 오른손으로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고 다시 한번 백화점에서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서 백화점은 말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이어 백화점의 잔해는 다시 한번 크게 터졌고..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녹아내려버렸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을지, 없었을지는 이제 와선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순식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고 소멸하듯이 사라졌으니까.
"왜..했냐라...그야 귀금속은 비싸고... 이렇게 힘으로 차지하는 쪽이 더 편하니까..? 후후후..."
참으로 나른하면서도 광기 어린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손에 쥐고 있는 귀금속을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렛쉬는 정말로 크게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그 모습의 렛쉬를 바라보며 한올은 피식 웃었다.
"아.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때 본 그 개였나? 아직 살아있었나? 크크큭... 좋네. 좋아. 이번엔 잡아다가 술 안주로 삼아볼까? 아니면..일단 이 경찰들과 놀아볼까? 당신들이 그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인지 뭔지 하는 이들이야? 레드....뭐였지? 아무튼 그런 느낌의 애들이 당신들을 조심하라고 했는데..고작 경찰 따위를 조심해야할 필요가 어디있어? 범죄라도 저질러서 크게 날뛰어달라고 했는데..눈치보는건 싫거든. 그래서 당신들도 볼겸 해서 한번 이렇게 해봤어? 어때. 이러면 100% 올수밖에 없잖아. 안 그래? 크크큭.."
참으로 광기 가득한 목소리 속에서 그는 씨익 웃으면서 모두를 바라보면서 도전하듯이 이야기했다.
세 글자가 입 안을 맴돈다. 10년 그는 스물 여덟이란 나이었다. 그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 끔직한 짓을 저지르고 저렇게 멀쩡히 살아있었다. 이건...,
“ 불공평해. “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인상을 찌푸리던 유혜가 작게 중얼였다. 큰 폭발에 무너져내린 백화점을 보며 마음이 울렁이길 몇 분, 심호흡을 반복하던 그녀가 입을 떼낸다.
“ 하윤씨. 저 백화점에, 사람이 있었나요? “
떨리는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두 눈은 그 남자를 쫓고, 머릿 속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저 역겨운 목소리를 듣고만 있을 이유 또한, 없었다. 당장 테이저건을 집어든 유혜가 그 남자를 노려본다. ...쏘아야할까, 아니면... 테이저건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과거의 어린아이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까, 복수의 칼을 다잡고 있었을까.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눈 앞은 불 타는 성류시가, 그리고 잠깐 죽어가는 아버지가. 그리고 다시 불타는 성류시가, 그리고 다시 불바다가 되어버린 백화점이.
백화점이 무너진다. 불타는 백화점, 그것도 이렇게 까지 산산히 붕괴된 백화점에서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땅에 손을 짚고 좌절했다. 그녀는 분노로 이를 갈았다.
"대체...대체 왜...그냥 귀금속만 훔쳐가도 됬잖아...대체 왜 무너뜨린거야..."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윗분들에게 사살허가 받아올 수 있나요? 이런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사살허가를 받는건 매우 쉬운일일텐데요?"
그리고 손에 독가스를 액화시킨 독을 품었다.
"그때 당신이 제게 말했었죠? 우리의 일은 체포지 심판이 아니라고 그럴거면 다른 직업을 찾아보라고, 맞아요. 우리의 임무는 심판이 아니죠. 하지만 서하씨, 우리의 또 다른 일은 이런 인간들에게서 시민들의 무고한 생명을 지키는 거예요. 이런 자들을 죽이지 않고 추가 피해없이 생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요. 아니 불가능해요. 만약 같잖은 정의감으로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게한다면. 서하씨 당신이나 다른 일을 찾아보시죠."
그때는 반쯤 농담으로 죽일것이라 말했지만 이젠 진심이었다.
/흠...그때 앨리스에게 한 말이 서하가 한 말이었나요? 하윤이 한 말이었나요? 기억이 잘... 찾아보려고 해도 날아가서 찾아볼 수 도없고...
10년전 기준으로 랭크는 A, 열기를 주변으로 퍼뜨리는 능력. 그는 본능적으로 결계를 치려 했고, 순간 그의 눈동자가 급격히 수축했다. 부숴지고, 무너져내렸다. 무너져내리는 백화점을 보는 그의 눈이 비정상적으로 떨려왔다. 바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살려주세요,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무너져내렸다. 겹쳐지는 광경에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눈 앞에서, 저기에.
"아아아아아아악!!!"
사람이 질렀다고 생각할 수 없는 소리였다.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의 근원은, 모든 가면이 산산조각이 나 여린 꽃잎을 드러낸 장미가 아닐까. 두려움에 빠진 눈은 현실을 보고있지 않았다. 무너졌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겠지. 그때, 어떻게 했었지, 어떻게 해서...
아니, 이런 짓을 한 시점부터 사람 타이틀은 갖다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역겹다. 건물이 무너져내리며 발생한 먼지와 눈이 아려올정도로 강한 불꽃 탓에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일었다. 눈 앞이 흐려졌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하고 눈가가 붉어졌다. 이내 아실리아는 테이저건을 들어올려 남자를 향해 겨누고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제 능력이 조금 많이 원망스러워졌다.
달려드는 권 주를 바라보며 서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모두가 날리는 공격이 강한 화염속에 흽쓸렸다. 테이저건의 공격도, 액화시킨 독도, 그리고 빈 테이저 건도, 그리고 권 주가 방금 전까지 있었던 곳도, 그리고 울프가 날린 대기벽도 모두 뜨겁고 뜨거운 화염속에 흽쓸렸다. 강한 열기에 의해서 모든 것이 소멸되듯이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모두의 공격을 가볍게 열기 하나만으로 받아친 그의 능력은 서하가 말한대로 정말로 위험한 능력. 그 자체였다.
다행히 권 주는 그 폭발에 휘말리기 전에, 서하가 전송을 시켜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릴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저 불꽃에 흽쓸려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올은 피식 웃었다. 그의 손에서 강하게 몰아치는 붉은색 스파크는 참으로 날카롭기 그지 없었다. 손의 열기를 증폭화시킨 다음에 그 열기를 주변에 퍼뜨리는 것일까.. 그렇게 폭발을 일으키는 것일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쳤다구? 크크큭..미친 것은 지금 저기서 울부짖고 있는 저 경찰 나으리 아닌가? 크크큭... 뭐하는 거야? 애기도 아니고 말이야."
로제를 보면서 비웃듯이 모두의 말에 대답하는 한편, 유혜의 말에 하윤이 바로 통신으로 대답했다.
"아니요.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요. 모두 대피한 것 같아요."
"...그와는 별개로 경우에 따라선 사살이라는..서장님의 명령도 떨어진 상태에요. 하지만, 지금 저대로는..."
그래. 지금 저대로는 다가가는 것도 불가능해보이고, 공격을 가하는 것도 불가능해보였다. 그만큼 한올이 발산하는 불꽃 공격은 어마무시했다. 모든 것을 태우고, 녹여버릴 정도의 강한 화염 속에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약점이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그것을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어 렛쉬가 강하게 으르렁 거리면서 커다란 티라노 형태로 변했다. 그리고 한올을 향해서 돌진했지만 한올은 피식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고 그러자, 또 다시 붉은색 스파크가 강하게 튀었다. 이어, 렛쉬의 몸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렛쉬는 그대로 튕겨져나가듯이 쓰러졌다.
"깨갱...깨개갱...개갱...깨갱.."
"개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면 큰일난다구... 크크큭... 자..아무튼 경찰 나으리들. 이 정도야? 이 정도면 더 놀 것도 없잖아.. 그럼.. 경찰 나으리들을 위해서 깜짝 쇼라도 벌여볼까..?"
이어 그는 손으로 다시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아직 불꽃이 붙지 않은 건물에 불꽃이 달라붙었고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다행히 하윤에게서 그 건물에는 사람이 없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건물 하나가 또 통째로 무너져내리는 것은 절대로 쉽게 볼 이가 아니었다.
"...그럼 다음에는 어느 귀금속 점으로 가볼까..후후후.. 손가락 빨고 잘 놀라구..경찰 나으리들.."
이어 한올은 다시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손가락을 했고 동시에, 그의 앞, 그리고 아롱범팀의 사이에 커다란 불꽃의 벽이 높게 세워졌다. 따라가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상황. 말 그대로 뜨거운 불꽃이 모두의 앞을 가로막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모, 모두들 괜찮으세요?!"
이어 들려오는 것은 하윤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네. 이런 느낌의 무시무시한 상대입니다. 일단 불꽃으로 인해서 현재는 추적이......을 해도 상관없긴 합니다. 갈 곳은 이미 말이 나왔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싸울 방도가 없으면 어찌할 수 없겠죠. 과연..여러분들의 생각은...?
빌어먹을, 이런 짓거리를 하고도 뻔뻔하게... 시야의 사각을 노리는 방법까지 생각했지만, 모두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로서 파괴한 뒤에야 불의 장벽 너머로 사라졌다. 어쩌지, 흉악범죄 경험이 많은 나로서도 테러행위는 너무 막막하다. 그보다는 우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쉬잇, 괜찮아."
동생, 로제의 앞까지 다가가 한팔로는 눈을가려주며 괜찮다는 말만 되뇌었다. 이런거라도 도움이 된다면. 동시에, 나는 하윤에게 나직히 무전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불 태워 죽여버리고 싶었다. 끊어낼 수 없는 마음의 욕망이었고 절대로 발을 들여선 안 될 심연, 하지만 결국은 붙잡을 판도라의 상자. 사람이 없었다는 하윤의 대답에 짧게 숨을 내쉬던 유혜는 곧, 커다란 불꽃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불안정하게 내쉬는 호흡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아, 살고 싶다. 작은 속삭임은 그렇게 불 타 없어져버린다.
당장의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웃기는 일이지, 복수의 상대를 눈 앞에 두고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은 불쾌하고, 울렁거렸다. 고작 할 줄 아는 거라곤 분신이나 만드는 능력에게 저 커다란 불꽃에 대항할 힘 따위는 없었다. 그 무엇도 시도할 수 없었고 눈 앞에 나타난 무력감은 그녀를 한 없는 심연으로, 그리고 다시 심연으로. 떨려오던 두 손은 더이상 떨리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바로 네 분수라는 누군가의 속삭임을 들은 것일 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두 다리의 힘이 빠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 그녀의 최선이자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안타까워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시도 할 힘은 없었다. 번지르르한 복수라는 명분을 실행 할 용기도 없었다. 그저 모순으로 뭉친 너는, 이제야 너 자신을 마주보는구나. 그림자가 드리운 눈동자는 자신은 쫓을 수도 없을 그를 쫓는다.
“ 울프씨라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순간적으로 공간을 진공으로 만든다면. 그럼, 저 남자를 쫓을 사람은... “
머릿 속이 아득해진다. 귓가에는 급박한 사이렌 소리가 울려퍼진다. 우습게도, 당신의 앞에는 구급차도 소방차도 존재하지 않지만. 다 쉬어가는 목소리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건... 누구인가?
“ 우선, 누가 화재 신고를... 아니, 그 전에 저 남자를... “
차마 그를 죽이고 싶다고, 내 손으로 잡고 싶다는 말을 내뱉진 못했다. 자기 자신은 그런 말을 내뱉을 자격이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나오려는 욕설을 간신히 참아낸다. 어떻게 말하는 본새며 행동 하나가 저렇게 짜증 날 수 있는지. 잔뜩 찌푸린 눈으로 동료들을 살피다 휙 몸을 돌린다. 잘근 제 엄지손톱을 깨문 체 불로 막힌 곳을 바라본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건 불 때문에 의미도 없고. 그렇다고 근거리라고 다를 건 없고. 눈두덩일 꾹꾹 누르며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걷다 멈칫한다. 자리에 앉는듯하더니 그대로 풀썩 쓰러진다. 영혼 상태로 떠있다, 그대로 불 너머로 넘어가 한올의 뒤를 쫓으려 한다.
무서운 능력 앞에선 누구나 당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열기를 퍼뜨리는 힘. 그 힘은 생각보다 막강했고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서 당황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절망할지도 모른다. 한편 늦게나마 합류한 지은이 불꽃에 물을 뿌리자... 불꽃은 정말로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그것은 조금 신기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앨리스의 일산화탄소에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물에만 불꽃이 힘없이 사그라들고, 일산화탄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 것일까..?
한편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한올을 쫓는 이도 있었고, 분함을 표하는 이도 있었다. 한편 그 와중에 유혜의 목소리를 들은 하윤은 유혜에게 이야기했다.
"...그걸로 괜찮은가요? 유혜 씨는?"
"....야. 강하윤. 무슨 소릴 하려는 거야?"
"저. 유혜 씨가 어떻게 저 사람과 얽혀있는지 알아요. 10년 전에 그것도. 아빠에게 듣기도 했고.. 그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런데, 지금 그렇게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 해도 되는 거예요? 아니! 저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그야...저도, 오래 전에.. 10년도 전에 엄마를 잃은 사건이 있었고..그 사건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유혜 씨! 누구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말아요! 당신은...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잖아요! 평생 괴로워할 거잖아요! 그러니까..그냥 혼자서 안 될 것 같으면.. 지금 혼자서 안되니까 그냥 모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요! 도와달라고! 자신이 저 자를 잡는 것에... 10년전의 고리를 끊는 것을 도와달라고! 경찰이니까, 팀이니까..! 다 같이 하면 되잖아요! 이미 범죄를 저지른 이상, 저 자는 당신만 관계 있는 이가 아니에요! 당장 렛쉬를 봐요. 렛쉬도..당신과 같은 이잖아요!"
"...깨앵..."
일단 치료가 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아픈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렛쉬는 유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듯이 보였다.
"....다들 제대로 자세 잡았겠죠? 저 남자. 귀금속을 노리는 모양이니, 가장 가까운 곳으로 곧 전송해줄게요. ...위치라면 대충 보이니까..하지만, 싸울 용기가 없으면 뒤로 물러나세요. 도망쳐도 지금 상황은 꽤 위험하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테니까. ...그러니까 각오를 다진 이만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유혜 씨는...어쩔참이죠?"
이미 하율의 말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남은 것은 확실하게 자세를 잡는 것. 그리고..그녀의 각오만이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무력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손으로 결판을 낼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 아니면 여기서 포기하느냐...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것에 대해서 반응레스를 받고 제가 또 레스를 쓰고 오늘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레스 부탁합니다!
그녀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입을 다물었다. 매서운 불꽃의 열기 때문일지 물기 찬 눈은, 힘 없이 바닥을 바라본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대답 없는 울림은 마음을 타고 목 끝까지 찰랑인다.
“ 하지만 나는, 아니. 아니에요. 그러니까... “
벅찬 목소리는 탁하게 갈라져 바스라진다. 힘 없이 바닥을 바라보던 시선은 다시, 모두에게로. 두 손으로 얼굴을 짚던 유혜가, 손을 내리고 모두를 바라본다. 눈가는 이미 붉어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려낼 것만 같았다. 일렁이는 마음을 좀처럼 진정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듯, 떠밀려오는 감정의 파도에서 가만히 눈알 감는 수 밖엔 없었지.
“ ...도와줘요, 모두들. 나는, 저 사람을 잡아야해요. 잡고 싶어요, 내 손으로. 모두의 손으로 잡고 싶어요. 잡아서... 꼭 잡아서, 벌을 내릴거예요. 그러니까... “
끝내 입을 다문 유혜가 다리를 굽히고 앉아 레쉬를 안았다. 북받치는 눈물을 주체할 능력은 없었기에, 그녀는 그 설움을 토해내며 목을 놓아 울 수밖엔 없었다. 바보같은 짓이었지, 한 사람의 도움이 급박한 상황인데. 아직 눈물이 채 멈추지 않은 얼굴로, 유혜가 다시금 입술을 떼낸다.
“ 준비는 끝냈습니다. 함께 가요. “
애처롭게 갈라진 목소리가 퍽 비장했다. 귓가를 맴돌던 사이렌 소리가 그친 것은 언제였던가. 문득 저 앞에,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나는 그래서 더더욱 확실한 방법을 택해야겠지. 로제, 너를 위해서라도. 일단 하윤이의 말 대로라면, 이 방법은 매우 효과적일거라 생각한다.
"하윤아, 혹시 범인이 갈만한 장소중에 공기의 흐름이 없는, 이를테면 창문이 없는 실내같은 공간이 있을까? 이번 범인은 어쩔 수 없지만... 범인의 사살을 전제로 움직여야 될 것 같아. "내 생각은, 고농도의 분말이나 에어로졸의 대기가 조성된 밀폐공간으로 범인을 유도하는 거야. 그런 공간에서는 아주 작은 불씨나 열원으로도 쉽게 폭발이 일어나는... "...분진폭발이 발생해. 난 그런 공간에서 놈을 제압하거나, 최악의 경우 분진폭발에 휩쓸려 스스로 자멸을 유도하도록 할 수도 있어. "...어때?"
무시무시하던 불길이 그 작은 양의 물에 힘없이 사그라졌다. 뜨거운 열기가 지은이 서있는 데까지 전해질정도로 강한 불이 벽처럼 굳건히 서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 불이 저렇게 단번에 사그라드는 일은 더욱 더 신기한 일이었다.
“뭐지? 생각보다 약한 불인건가.”
이상함을 느낀 지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료에서 얼굴을 익혔던 선배님께서 -지은은 그녀의 이름이 앨리스인 것 까지 기억해냈다.- 무언가를 던졌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물에만 유독 약한 것인가. 눈을 가늘게 뜬 지은이 더 자세히 보기위해 불에 가까이 걸어갔다. 그 동시에 느껴지는 강한 열기와 함께 과거의 기시감이 그녀를 스쳐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왼쪽 얼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지은은 왼쪽 눈을 붙잡고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얕은 신음 소리를 내며 뒤로 엉덩방아 찍듯이 넘어진 지은이 왼쪽 눈에서 손을 때고 자신의 손을 보았다. 어라. 분명 얼굴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자신의 손은 멀쩡했다. 불은커녕 땀인지 눈물인지도 모를 액체에 화장이 지워진 듯, 하얀 분이 묻어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고통도 꿈처럼 사라져 있었다.
“...젠장!”
작게 욕지거리를 한 지은이 비틀거리며 자리에 일어났다.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불길을 볼 때마다 한없이 밀려오는 무력감과 자괴감에 진정하기가 힘들었다. 이래서 불이 싫었다. 지은은 활활 타들어가는 불의 벽을 노려보며 짓씹듯이 중얼거렸다. 저 빌어먹을 불을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저 불을 만든 그 빌어먹을 작자도 저 불과 함께 없애버리고 싶었다.
"...아마도 찾기 힘들 거예요. 그런 공간은... 창문이 없는 곳이라니.. 다만 로제 씨의 능력과 울프 씨의 능력을 조합하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방법 자체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하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사살을 해도 좋다는 명령까지 떨어질 정도로 위험한 범죄자가 상대였다. 어째서 범죄를 저질렀는진 모르겠지만... 대체 왜 저런 광기를 보이는진 알 수 없지만, 지금 와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내 들려오는 유혜의 말에 서하와 하윤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뭐, 그쪽이 그렇게 말한다면, 일단은 오퍼레이터니까..."
"후훗. 당연하잖아요. 모두가 힘을 합치는 거에요. 저런 범죄자는 반드시 심판해야 하는거고요!"
이어 하윤은 서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모두에게 통신으로 이야기를 걸었다.
"...전송할게요. 격전지는 아마도 쥬얼리월드. 성류시의 귀금속을 파는 가게에요. 일단 불꽃의 영향권 밖이지만...아마도 그쪽으로 간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거기서 미리 대기하고 작전을 준비하세요. ...다들 조심하시고..."
자신의 연인에게 한마디 할법도 하건만, 서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작전에 집중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이어 서하는 손가락을 퉁겼고..모두는 다음 장소로 전송이 되었다.
쥬얼리월드. 텅비어있는 가게 앞. 그곳이 바로 결판을 지을 격전지라고 할 수 있었다.
//반응레스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자 진행은 여기까지에요! 내일은 즐거운 제압전...! 조금 어려울수도 있지만..모두 힘내봅시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은 내겐 마치 영원같았다. 그럼에도, 그 영원같은 발걸음은 무거움이 아니었다. 아니, 가볍다 못해 너무 붕 떠올랐다. 너무 벅차올라서, 그래서 영원같았다. 기뻤다.
혼자 끙끙대며 앓지 않을게.
앞만이 아닌 옆을 볼줄 아는 사람이 될게.
이젠, 널 상처입히지 않으려 노력할게.
벅찬 발걸음은 너와 고작 한 발자국 사이를 두고 멈췄다. 뿌연 시야를 훔치고 본 너는, 네 바퀴가 아닌 두 다리로 서있었다. 이미 넘쳐버렸는데, 그랬을텐데. 그러했을 그것은 다시 넘쳐올라 다시금 시야가 뿌옇게 물들었다. 그냥, 그냥, 그냥... 더이상 생각을 하기에는 나는 이미 감정의 파도에 집어삼켜져, 그대로 너를 힘껏 안고 이 넘쳐오른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59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591 앗 안돼요 기대하면 안된다구요...!!! 유혜의 능력은 쩌리 그 자체란 말입니다!!! (벌벌 누군가의 능력을 복제해서 쓴다고 해도, 사실상 그 분이 원치 않으시면 복제가 안되는지라 유혜는 보통 자기 분신을 미끼로(...) 쓴다던지, 아니면 교란용으로 쓴다던지 하니까요! = 험난하게 구른다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당신이 다가왔다. 그런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은 짧았지만 영원처럼 느껴졌다. 애타게 그대가 다가오기를 바랐다. 내가 다시 걸을 수 있다면, 더 빨리 당신을 마주볼 수 있을까. 작은 새가 되어 날아드는 그대를 품에 안을텐데. 하염없이 해를 기다리는 해바라기마냥 당신을 애타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대는 나에게 다가왔다.
한 발자국. 그 한 발자국을 남겨두고 가까워진 지금. 들끓는 감정과 충동을 억누르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힘껏 자신을 끌어안는 당신은 가녀려서. 당신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품에 단단히 끌어안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잘못 건드리면 흩어져 사라질까봐, 당신이 환상이었을까봐. 그 옅은 밤색 머리를 손가락으로 훑고 쓰다듬었다. 이리도 예뻤던가, 꿈결을 헤메는 기분이 들었고, 꿈속에서 헤어나와도 당신은 여전히 눈이 부셨다.
"저야말로."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당신이라서 기뻐요. 그리고. 당신을 품속에 단단히 안고 천천히 휠체어에 앉았다. 고맙다고 연신 중얼대는 당신을 꽉 붙들고, 귓가에 속삭였다.
"Je t'aime. Personne ne sait combien je t'aime."
아무도 모를, 내 가슴을 진동시키는, 눈물겹도록 사랑해도 좋을 나의 사랑아. 눈물짓는 당신의 얼굴을 마주하고, 천천히 손을 들어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우는 모습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예뻐서. 연신 사랑을 고백했다.
// 늦어서 미안해요. 아구구 우리 지현이 이쁜데 울지 말구.. (부둥부둥) 잘 자요! :)!
이렇게 되면 역시 음료수는 자신이 사야겠다는 말을 하는 지은을 향해 팔짱을 낀채 무뚝뚝하게 대응하였다. 약간의 까칠함도 섞인 것 같은 어조다. 지은이 정확한 나이를 듣고서도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계속 쓰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남이 부르는 호칭에 관심도 없고.
그저 자판기 앞에서 무심하게 하품이나 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먹을 거냐는 표정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주머니속에서 천원 지폐를 한 장 꺼내 투입구에 집어넣었다. 지폐가 감기더니 나열된 각 음료수 아래에 빨간 불빛이 들어왔다. 설마 그 때 같은 오류가 이번에도 생기진 않겠지ㅡ라는 작은 희망을 기대없이 걸면서 살짝 고개를 돌려 그제서야 지은을 응시하였다. 시선은 지은도 지폐를 넣으라고 하는 말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는 한편 가만히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포카리스웨트는...솔직히 주저된다. 그 때 일어난 자판기 오류라는 불운은 포카리스웨트를 고르면서 일어났거든.
//어제...기절잠...실화...??(흐릿) 마침내 답레를 올립니다 으아 지은주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ㅁ;(도게자)
나를 끌어안는 그 두 팔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이, 내 뺨에 살짝 엉겨오는 예쁜 선홍색 머리카락이, 그저 기뻤다. 너무 고마웠다. 너를 마음껏 사랑해도 된다는 것이 좋았다. 이 감정을,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언어조차 이 기쁨을 표현하기에는 사치로 느껴진다. 너의 그 속삭임, 비록 나는 그것의 뜻은 모르지만, 그 한마디에서 너의 마음이 오롯이 느껴진다. 응, 알아. 나도 그런걸.
"나도, 나도 널 사랑해."
이런 작은 말 한마디로 다 전하지 못해서, 더 이상의 수식어는 다 부질 없어서, 그 마음을 전부 전하지 못할 것 같아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넘치는 마음의 아주 조금이라도 너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드디어, 드디어 닿았어. 영영 멀어질 것 같던 그 마음이 닿았어.
"응..."
내 눈물을 닦아주는 너의 손은 차가운 바람에도 오롯이 그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따뜻함이 너무나도 좋아서, 내 손을 그 위로 포개듯 얹었다. 참으로 커다랗고 따뜻하고 상냥한 손이었다.
"손, 따뜻하네..."
//아으악 자꾸 짧아서 미안해요 더 쓰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제 필력이 못따라와주네요 8ㅁ8ㅁ8ㅁ8ㅁ8 지난밤은 편안하셨나요?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당신. 환상인줄 알았거늘, 어이 그리 예쁘게 날아오는지. 혹여 놓칠세라 꽉 붙들고, 이대로 줄곧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하릴없이 사랑을 속삭이고, 꿈결같은 당신에게 빠져들었다. 이것이 꿈이라면 평생 깨고싶지 않구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황홀한 기억을 새기고, 자신의 손에 닿는 체온은 몸을 녹이고 있었다.
"누나만큼 따뜻할까."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어쩜 이리 예쁜지. 어떤 요물이 와도 홀리지 않을 정도네. 뺨을 쓸어주며 예쁜 그대에게 다시금 사랑한다 고백했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구나, 평생 내님에게 사랑을 고백해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할터니. 찬 바람이 당신의 머리를 물결치게 만들고, 혹여 그대가 추울세라 조심스레 아이를 안듯 끌어들여 품속에 안았다.
"우리 누나 춥겠다. 괜찮아?"
그대를 품에 안은 심장이 요동쳤다. 어찌 이리 사랑스러울까.
// 아니에요 :)! 지현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XD..!! 저는 잘 잤어요, 지현주는요? :3
음..오늘은 왜 이리 사람이 없는거려나요. 다들 많이 바쁜건가..(동공지진) 하지만 이렇게 되면... 여기서 또 미뤄지면 그만큼 차질이 생기고...어쩔 수 없죠. 유혜주 혼자 데리고 하겠습니다. 어차피 유혜와 악연이 있는 이니까 말이죠! 시작하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겠죠! 이 이상 미룰 수도 없고 말이에요! 고로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쥬얼리 월드. 그곳은 아직 불지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지만 일단 대피명령이 떨어진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곳은 상당히 조용했다. 하지만 만약 귀금속을 노린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이곳으로 올 것은 분명했다. 서하의 전송으로 인해서 그곳으로 온 이들은 그곳에서 대기를 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고 미리 준비를 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각오를 다지는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곳이 격전지가 될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하윤에게서 모두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모두들, 경계해주세요. 한올. 그 사람이 그곳으로 오고 있어요. 이제 곧 도착할 거예요!"
이어 강한 폭발소리와 함께 근처 건물 하나가 불꽃에 흽싸였다. 그리고 그 불꽃을 뒤로 한채로 한올.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만사가 귀찮은 듯한 눈빛과 걸음거리였다. 그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바로 귀금속 가게, 주얼리월드였다. 아마 이곳의 보석을 차지하기 위해서 온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한올은 그곳에서 진을 치고 있는 아롱범 팀을 확인하고서 멈추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아까전의 약해빠진 경찰 나으리잖아? 크크큭..여긴 왜 왔어? 또 해보자는 거야? 몇번을 해도 무의미할텐데..? 정말..경찰 나으리들은..왜 이리 귀찮은가 모르겠네. 10년 전에도, 그 이후에도.. 전부 약해빠진 경찰들이 모여서 말이야..크큭...크크큭..."
작게 키득거리면서 그는 손으로 라이터에 불꽃을 붙이는 손동작을 했고, 그의 손에는 붉은색 스파크가 강하게 튀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아롱범 팀을 바라보면서 키득거리면서 얘기했다.
"있잖아. 경찰 나으리들. 힘이 없으면 꺼지라구. 이 세상...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구. 크크큭.. 힘이 없으니까 전부, 전부.. 전부... 내 힘에 무릎꿇고 도망치는 거야. 힘이 강해봐...도망칠 이유가 어디에 있어? 힘이 없엇 도망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게 아니라구 경찰 나.으.리. 하하하하하!!"
광기 가득한 목소리가 잠시 울러퍼지다가 그의 시선이 다시 아롱범팀을 향했다. 그리고 광기 어린 차가운 목소리가 그곳에 이어졌다.
"...약한 이는 죽을 뿐이야. 이 막강한 힘 앞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주실까? 경찰 나으리들?"
>>757 음..정리 전이라고 해야할까... 이걸 어떻게 정리를 해야할지 조금 고민을 하긴 했는데.. 일단 Case 7에서 잠깐 거론된.. 그러니까 렛쉬의 주인을 죽인 범인과 마주쳤다는 느낌이랍니다. 유혜와는 10년전부터 악연이 있는 상대고요. 광장에 불을 지르면서 귀금속을 챙기는 느낌인데..모두의 눈 앞에서 백화점을 박살내버렸고 아주 간단하게 모두의 공격을 받아쳐버릴 정도로 강하죠. 능력은 버닝 스플래시. 열기를 주변에 퍼뜨리는 능력이고 그 열기를 이용해서 불꽃을 마구 생성한다는 느낌이에요.
일단 1차전은 패배하고 2차전인 이곳에서 다시 만났고 지금 곧 대결 바로 직전이라는 느낌이랍니다. 그냥 간단하게 무지막지하게 나쁜 범죄자와 마주쳤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네요.
그녀는 준비를 해보고자 했지만, 적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는 머리는 없었기에 일단 자신이 있는 자리에 마킹을 해두곤 나이프를 빙빙 돌렸다. 그리고 나타난 범죄자씨. 흐음.. 뭐 확실히 이곳이 디스토피아였다면 저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 아마.
"그리고 사람이라는건 말이야~ 그렇게 일차원적인 존재가 아니야. 힘이 없으면 도망치는게 좋을지도 모르지. 나도 일반 시민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래도 움직이고 있는건 내가 경찰이라서라고. 그 '경찰' 말이야. 힘의 유무따위는 관계없어.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니까 움직일뿐이야."
뭐 대화는 이쯤하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털더니 나이프 하나를 범죄자씨(아마 무직) 에게 가볍게 던졌다.
앨리스는 한올에게 가벼운 도발을 했다. 꽤나 물에 흠뻑 적셔진 방화복을 중무장으로 입고있었다.. 아무리 방화복이 막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불꽃이라도 물을 한번 묻히면 어떤 불꽃도 물이 증발할때 까지는 막을 수 있게된다. 물론 물이 어느정도 증발하고 나선 효과가 없지만
"문과들은 알 수 없는 어려운 과학은 때론 생각보다 엄청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답니다?"
그녀는 손에서 어떤 독극물을 분비했다.
"어떤 독재자가 자신의 형을 이 독으로 죽었어요. 당신도 곧 그 사람의 형을 만나게 될꺼예요."
고요한 쥬얼리 월드에는 아롱범팀의 미약한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곧, 마지막 결전지가 될 지도 모르는 이 곳에서 유혜는 손에 테이저건을 쥔 채 한올이 나타나기를 조용히 갈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요에 찬 쥬얼리 월드는 삭막하고, 폭풍전야가 몰아치는 중이었다.
하윤의 경고에 몸을 움츠리자, 한올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만사가 귀찮은 듯한 얼굴과 걸음걸이. 유혜가 그 모습을 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리가 잡아야 할 범인, 그리고 이제는 끊어내야 할 과거의 연결고리.
“ 하... “
한올이 내뱉어내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유혜가,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그의 말을 비웃는다. 10년 전에도- 라는 말이 이리도 와닿을 줄은 몰랐는데.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시금 한올이란 자를 노려본다.
“ 입 좀 다물어. 시끄러우니까. “
힘, 힘이라... 정말 웃기는 말이었다. 힘이 있으면 살아남고 없으면 죽는다라니, 동물들에게나 통하는 약육강식을 외치는 꼴이란.
“ 하윤씨, 저 불. 온도에 약한 거 같아요. 지은씨가 물을 끼얹자 쉽게 사그라들던데... 그렇다면 이 근처에서 이 곳의 온도를 낮게 만들거나, 다량의 물을 공급 받을 수 있을만한 곳이 있을까요? “
저 남자가 불을 쓰지 못하게만 한다면 승률은 올라간다. 다만, 그 방법을 찾기가 어려울 뿐. 유혜는 하윤의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낸 뒤 분신의 손에 테이저건을 쥐어주고는 한올에게 달려가게 만든 뒤, 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유혜의 분신이 사정거리 안으로 접근을 시도 했으니, 맞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용히 말을 듣던 한올은 손가락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모습은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행동 그 자체였다. 이어 그의 주변으로 뜨거운 불기둥이 허공 속에서 튀어나와 땅으로 떨어졌고 그 불기둥은 그대로 퍼져나갔다. 순식간에 주변의 모든 것이 불에 뜨겁게 타기 시작했다. 메이비가 날리는 나이프도, 앨리스가 분비한 독극물도, 그리고 유혜가 만든 분신도 모두 그 불기둥 의 열기에 증발되듯이 사라졌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열기 그 자체였다. 그만큼 그 열기를 컨트롤 할 정도로 상대는 강한 이라는 의미였다. S급에 근접한 A급의 힘은 이리도 강한 것일까.
"약한 주제에 강한 척 하지 마라구. 경찰 나으리들. 경찰 나으리들이 무슨 짓을 해도, 날 잡진 못해. 그들이 당신같이 약한 이들을 경계하는 이유를 모르겠네..크큭...! 아니, 그 녀석들도 약해빠진 녀석들이라서 그런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난 잡히지 않았어. 크크큭.. 다이아가 너무 갖고 싶어서 말이야. 전부..전부..전부 불태웠는데 아무도 날 잡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내가 강하기 때문이야!! 이 힘이야말로 절대적이다...!!"
이어 사내는 강하게 손가락으로 라이터에 불을 켜는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색 스파크가 그의 손에서 튀기 시작했고 하늘 위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가차없이 그것을 익스레이버 아롱범 팀에게 날렸다. 꽤 거대한 크기였기에, 그대로 몸으로 막아낼 수도 없는 크기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렛쉬는 거대한 티라노로 변형했고 크게 울부짖으면서 불덩어리에게 돌진했다.
"크와아아아아앙!!"
이어 불덩이가 렛쉬와 충돌했다. 렛쉬의 온 몸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불덩이를 몸으로 막아내면서 다른 곳으로 집어던지려고 렛쉬는 애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한올은 비웃기 시작했다.
"크크큭.. 아무리 덩치가 커지고 무섭게 변한다고 해도 약한 이는 약한 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타죽어라..! 멍멍아...!"
"...일단 근처에 소방차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어요. 운전할 수 있는 이가 그곳에 가서 차량을 운전해서 물을 뿌린다면 어떻게 될지도 몰라요. 서하 씨.. 어떻게 안되죠?"
"소방차를 만졌을리가 없잖아."
확실한 것은 지금 오퍼레이터 둘은 어떻게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올은 무방비 상태라는 것이었다. 불덩이를 컨트롤 한다고 오로지 그곳만을 바라보는 그였기에, 어쩌면 공격을 가하려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원래 제압전은 올라오는 순서대로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러자니 너무 시간을 잡아먹고 모두들 너무 토의를 한다고 시간이 길어지기에.. 조금 룰을 바꿨습니다. 서로 협력해서 하는 작전의 공격기의 경우에만 순서대로 적용을 하겠습니다. 다만, 광역기의 경우는 이전처럼 확실하게 모두에게 영향이 가는 식으로 판정이 이뤄지니 주의해주세요. 아무튼 지금은 한올이 무방비가 된 상태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능력을 방어하지 못하면..결국 불꽃에 의해서 또 공격이 다 증발하게 되겠죠. 일단 문제의 소방차까지 이동하는데는 1턴이 걸립니다만.. 걷거나 뛰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이용해서 가는 경우에는 즉각적으로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제대로 대전을 해보면 되겠습니다. 막강한 열기를 주변으로 퍼뜨리는 강적 범죄자와의 대전입니다.
당황스러움이 섞인 웃음, 한순간에 모든 것을 녹여내는 불꽃을 보며 유혜가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왼편 어깨는 아파왔고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죽더라도 여기서 죽어야지, 그러려고 여기까지 온거니까.
“ 아 진짜 심각한 중이병이네, 저거는 약도 없겠다. “
커다란 불꽃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렛쉬가 티라노로 변신해 그 불꽃을 막아내었다. 불에 고통스러워 하는 렛쉬를 보며 그저 비웃는 한올의 모습은-
“ 역겨워. “
유혜가 재빠르게 건물 안을 훑었다. 대충 보이는 소화기는 한 개, 소화기를 터트린 뒤 결계로 막는다면...
“ 자, 가자~ “
이러라고 쓰는 능력이지, 이건. 유혜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또 다시 분신을 만들어 근처에 있는 소화기 하나를 챙겼다. 그리고, 저 싸이코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재빠르게 범인에게로 뛰어가게 만들었다. 이제 바라는 건, 총알이 제대로 소화기에 명중하게 해달라는 운 정도?
"손가락에 대한 것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데이터베이스에도 그 정도까진 안 실린 것 같으니까요."
"...아무튼 소방차를 부탁할게요. 지은 씨. 그 근처에서 오래 안 걸려요."
일단 지은의 말에 서하와 하윤은 이어셋을 통해서 대답했고, 지은에게 소방차를 부탁했다. 한편 울프는 진공 상태를 만들어서 한올에게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은 한올의 눈에도 그대로 비쳤다. 씨익 웃으면서 한올은 울프를 날려버릴 생각인지 손가락으로 라이터에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면서 붉은색 에네르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메이비가 자신에게로 날리는 귀금속의 모습이 보였다.
"크크큭..알아서 바치는거냐? 주제를 알아서 좋구만.."
이어 한올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메이비가 던진 귀금속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울프가 도착했고, 덕분에 그 근방은 진공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서하는 작게 혀를 차면서 손가락을 퉁겨 울프를 뒤쪽으로 보냈다. 그 때문에 일단 한올의 주변은 진공상태가 되었다.
"뭐, 뭐야! 이 녀석..!! 이 건방진 계집이..!!"
이어 한올은 이를 빠드득 갈면서, 다시 능력을 쓰려고 손을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앨리스가 사린을 날리는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에 당황하며, 그는 주머니엣 손수건을 꺼냈고 자신의 입과 손을 막았다. 마치 그 모습은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일단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 근방은 매우 차갑게 차갑게 식었고, 근처에 떨어진 사린은 주변을 차갑게 만드는데는 충분했다. 그 때문에 붉은색 스파크는 아까전보다 조금 더
한편 유혜는 분신을 써서 소화기를 가지고 왔고 그것을 한올에게로 던졌고, 지현은 그것을 권총을 맞춰서 터트렸고, 로제는 그 근방에 결계를 쳤다. 로제의 결계와 울프의 진공상태의 대기 덕분에 그 근방은 완전히 밀봉되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한올은 괴로운지 숨을 거칠게 쉬면서 크게 광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네 녀석들..! 약한 경찰 주제에..!! 나를 이렇게까지 귀찮게 만들어..! 좋아! 전부 날려주마...!"
이내 그의 손에서 붉은색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꽃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고 그의 근방이 강하게 폭발했다. 말 그대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결계가 와장창 박살이 나버리고, 근처에 떨어진 사린조차도 증발할 정도로 강한 열기 속에서, 한올은 크게 괴성을 질렀고, 그 때문에 렛쉬가 막아내고 있던 불덩이도 상당히 작아졌다. 그것을 어떻게든 받아치면서 렛쉬는 다시 작아진채로 비틀거렸다.
"뀨웅...깨갱...뀨우우웅..."
하지만 렛쉬는 쓰러지지 않고 다시 자리에 일어나면서 마찬가지로 비틀거리고 있는 한올을 바라보았다. 이어 렛쉬는 달려나가는 유안을 바라보면서 짖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확인한 하윤은 서하에게 이야기했다.
"서하 씨..! 저기..!"
"...알고 있어...진짜..."
이어 서하는 손가락을 퉁겼고 돌진하는 유안을 유혜쪽으로 보냈다. 일단 둘이 이번 사건 한정 파트너라는 사실은 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서하는 이어 유혜에게 통신을 날렸다.
이어 용서 못한다는 광기 가득한 목소리와 함께, 한올의 양손에서 강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두 손을 이용해서 라이터를 켜는 손동작을 하면서 붉은색 스파크를 정말로 강하게 모으고 있는 그 모습은 광기에 가득찬 느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데미지는 상당히 입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다리를 비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그쪽을 노리면 좋을지도 모른다. 일단 상대는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강하게 데미지를 입은 이니까.
'火' 말이야. 그녀는 한올의 행동을 보면서 피식 웃고는 한개쯤은 한올의 근처에 떨어져있거나 받았겠거니 하고 마킹한 돌쪽으로 텔레포트했다. 배후쪽으로 텔레포트. 그대로 뒤쪽에서부터 그를 붙잡으려하며 목을 나이프로 찍으려 한다.
"........"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게 얼마나 무모한 방식인지, 일격에 처리하지 못하면 이쪽이 불에 구워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멀리서 원거리로 뭔가를 시도하자니 이런 성격의 범인은 궁지에 몰렸을때 어떠한 방법을 쓸지 모르는법. 그렇다면 최대한 한방에 '죽일 수 밖에' 없다. 아까의 위력으로 봐서 이 일대를 완전히 불태워버릴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이프가 빗나가더라도 몸을 구속하면 몇초동안은 움직임을 막을 수 있을터였다. 그 동안 팀원들이 마무리지어 주지 않을까?
>>944 일단 위키에도 실려있긴 합니다만 서하는 '요원' 쪽 사람이죠. 익스퍼 기밀 유지부에 소속되어있기도 하고요. 그런 느낌으로 일단 '요원'의 멤버들은 전부 데이터베이스를 볼 수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 외에 높은 분들도 일단은 데이터베이스를 볼 순 있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베이스들을 보면서 움직이는 이들은 '요원'의 멤버들이랍니다.
폭발이 일어났고 달려나가던 자신은 뒤쪽으로 이동되었다. 이번 사건 한정 파트너의 옆으로. 멍청하게 서있다가 이내 서하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빨랐다, 곧바로 뒤쪽으로 이동시켜주다니. 뭐, 방금의 행동은 약간의 충동이 섞인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 무척 무모하고 위험하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로 상관 없었는데 말이야...자신이 죽어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이 잠깐 휘둥그레졌다.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해버렸다. 조소 나올 것 같으니까 좀 그만하지 그래. 고개를 다시 들어올리니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와있었다.
"......"
어쨌든 한올은 분진폭발로 어느 정도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다리가 후들거리는군.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실탄이 든 권총. 현재 상황을 보면 자신은 그저 덤이다. 열기나 불에 녹아버리든 운 좋게 명중하든 아무래도 좋다. '경우에 따라선 사살해도 좋다.' 사살 명령이 떨어졌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부상은 애교라는 것. 무감정한 눈빛으로 무릎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었다. 아아, 역시 광기는 싫어.
콤비네이션, 수고했어요. 유혜씨, 그리고 동생 두 사람에게 감사의 미소를 보내고, 검정색 소방포를 전신을 감는 로브처럼 두른다. 적어도 한번정도 방어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리볼버 약실을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천천히 범인의 손을 조준한다. 다리는 다른 요원들이 노리겠지, 라는 생각에서 능력의 매개인 손을 무력화 시키는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각진 경례표시를 한 지은이 그 자리에서 소방차 방향으로 뛰어갔다. 신입으로서 첫 임무에 가까운 명령이었다. 꼭 해내고 말겠다는 사명감에 가득 찬 지은은 전속력을 다해 다리를 움직였다. 얼마 걸리지 않아 커다란 소방차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은은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소방차 문 쪽에 손을 올렸다. 목구멍 사이로 철분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은은 숨을 들이켜 결심에 선 표정으로 소방차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은의 결심은 바로 꺾여버렸다.
“...어라?”
소방차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황한 지은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소방차의 문이 열릴 일이 만무했다. 지은은 곤란한 낯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커녕 생명체도 없었다. 지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문과 뒤에 부셔진 잔해를 번갈아보다가 최선의 결단을 내렸다. 잔해에 있는 커다란 돌을 꺼내 창문을 그대로 찍은 것이었다. 지은은 에라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부셔진 창문에 손을 넣어 잠긴 소방차 문을 열었다. 그 후로는 쉬웠다. 경찰대에서 배워둔 소방차 이용법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고 홀로 생각하며 시동을 켜고 자신이 달려왔던 거리를 거꾸로 운전하면 되는 것이었다. 걸어올 때는 한참 걸리던 거리였지만 차를 타니 금방이었다. 저 멀리로 한올이 보였다. 아까 선배님들의 공격에 제법 큰 타격을 얻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은은 예의 그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짓고 소방차에서 내렸다.
>>967 일단 스토리 내에서 밝혀진 것으롼 따지자면..... 리더인 그 분은 하윤이의 이모이고... 알파가 박샛별. 베타가 민다혜. 일단 공개된 이는 총 3명이랍니다. 그리고 사실 감마와 델타도 한번은 나왔을지도 모르죠. 아마도...? 일단 확실한 것은 감마는 최소 한번은 나왔어요. 어디의 누구인진 비밀이지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메이비였다.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서 텔레포트를 한 메이비는 한올의 뒤로 이동했고 단번에 그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스파크가 아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어 그는 씨익 웃으면서 한쪽 손의 스파크를 사용해서, 메이비를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앨리스가 황화수소를 발사했다. 그리고 서하가 손가락을 퉁겨서 메이비를 거리를 띄운 곳으로 이동시켰고, 터지는 것과 동시에 황화수소가 크게 폭발했다.
"아..아닛..! 크아아아악!!"
또 다시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강한 데미지를 입은 한올에게로 유혜의 분신이 돌진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올은 자신의 반대편 손의 스파크를 터트리려고 했지만 울프가 그 근방의 대기를 없앴고 그 때문에 아주 약간이지만 스파크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올은 씨익 웃어보였다.
"이런 것을 한다고 해서 내가 못 태울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안과 지현이 각각 무릎과 손을 노려서 실탄을 쏘았고 강하게 피가 튀었다. 그 때문에 능력을 모으고 있던 것이 순식간에 캔슬되어버렸고, 이어 지은이 소방차를 끌고 왔고 그에게로 물을 뿌렸다.
"자..잠깐..! 무..물은..!"
이어 그의 몸이 흠뻑 젖어버렸고 그가 다시 스파크를 모으려고 해도, 손에서 더 이상 스파크가 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물이 잔뜩 묻은 것 때문에 열기가 모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사이에 유혜의 분신이 한올의 앞에 도착했고 그녀의 분신은 그에게 테이저건을 강하게 쏘았고 마무리 공격을 가했다. 그 때문에 한올은 힘없이 뒤로 밀려났고 그대로 쓰러졌다. 말 그대로 힘이 다 되어서 제압된 상태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하는 푸른색... 익스퍼 전용 수갑을 유혜에게로 보냈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통신을 보냈다.
"...당신의 손으로 체포하고 싶겠죠? 유혜 씨? ....당신의 손으로 확실하게 잡으세요. ...이상한 짓은 마시고. 여기까지 와서 범죄자가 되진 마세요."
서하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흘려오는 것과 별개로 한올은 비틀거리면서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시도했다. 그러면서 광기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듯이 이야기했다.
"어째서냐..! 어째서..이런 약해빠진 경찰 나으리들 따위에게..! 나는..10년이나 안 잡혔단 말이다아아..! 나는 강한데..! 강한 이가 약자를 짓밟는게 당연한데..어째서 내가 밀리는거냐..! 대체 어째서냐..!!"
"크르르릉..!"
이어 비틀거리던 렛쉬가 한올에게 달려들었고, 몸통박치기를 가했다. 그 때문에 일어나려던 한올은 다시 자리에 쓰러졌고, 렛쉬는 그가 일어나지 못하게 두 앞발을 그의 몸에 올리고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유혜를 바라보면서 크게 짖었다.
"왈! 왈! 왈!"
"비켜..! 이 개가...!! 내가...내가..너희들 따위에게 잡힐 것 같냐고..! 내가 더 강한데..왜 너희같은 약해빠진 경찰 나으리들 따위에게..! 뭔가가 잘못됬어! 잘못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