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비비안은 지금 숲을 걷고 있었다.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그녀는 흥얼거리는 정체 모를 콧노래를 부르면서 익숙한 듯 한번도 헤매지 않는 우아한 걸음걸이였다. 어제는 레이첼님에게 시달렸으니, 오늘은 스트레스를 좀 풀어야겠다.
자신이 있는 곳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흡혈 때문에 인간들의 왕래가 좀 있는 곳이였고 동시에 레이첼이 주둔하고 있는 곳과는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였다. 비비안이 찾아가고 있는 환상종은 알리시아 에카니아로트 라고 불리는, 인형사였고 귀종정이였다. 비비안 같은 일루젼과는 그리 왕래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지만, 비비안이 누구인가. 그 엄청나고 부담스러운 친화력으로 누구든지 친해질 수 있는 환상종이다.
그녀는 알리시아의 외딴 집으로 찾아가서 인형을 만지작거리거나 차를 마시거나, 과자를 얻어먹는 정도의 친분을 쌓고 있었다. 그러니까 비비안은 지금 굉장히 단게 땡기는 상황이였다. 인간의 음식을 섭취하지는 않는다고는 하지만 알리시아의 과자나 케이크는 비비안의 입맛에 잘 맞았다. 그래서 비비안은 자연스럽게 걸음과 목적지를 알리시아의 집으로 고정했다.
숲의 외딴 곳, 덩그러니 놓여있는 을씨년한 집에 도착해서, 그녀는 돌리던 지팡이를 들고 문을 똑똑 노크했다.
"알~리시아~! 차를 주면 안잡아먹지!"
과장된 제스처는, 지팡이로 문을 두드리는 아주 단순한 행동에도 섞여있었다. 그녀는 똑똑, 지팡이 손잡이 부분으로 문을 두드리고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지도 못하면서, 문을 계속 노크했다. 마치, 알리시아가 지긋지긋해서 나오게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알~리~시아! 시아! 리시아! 비비안은 중절모를 손바닥에 올리고 빙그르르 돌리며 똑똑 계세요~? 하는 물음도 던지고 아무튼 굉장히 정신없이 굴어댔다.
-좋아하는 것 1. 달콤한 것과 차, 채소를 좋아합니다. 2. 머리를 쓰담쓰담받는 걸 좋아합니다. 3.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좋아하고, 식물도 좋아합니다. 식물들을 일명 '초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예시: 식물들->초록이들, 식물 여러개가 있을 때 하나를 찝어 가리키는 경우->초록이 1호, 초록이 2호 등등)
-싫어하는 것 1. 세레노라고 부르면 싫어합니다. 이미 버린 성이니까요. 아니, 싫어하는 수준이 아니라 울면서 화냅니다. 시이가 악을 쓰면서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걸 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보셔도 좋습니다. 2. 목도리를 풀면 PTSD를 억제하던 요소가 사라져버리는 셈이라서, 그것도 싫어합니다. 목을 건드는 것도 싫어해요. 아니 무서워합니다. 목도리를 뺏지 맙시다. 3. 식물을 버리는 사람도, 폭력도 싫어합니다. 웬만하면 본인도 폭력을 쓰고 싶지 않아합니다.
숲, 그곳은 어제와는 달리 고요하다. 세계를 환히 비추는 하늘에 떠오른 빛에도, 그 햇살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언제나처럼 그 스산함을 잃지 않는다. 허물며 가지와 가지가 서로 미약하게 뻗지만 닿지 않는 듯 서로의 엉켜붙으려 하는 수많은 나무의 뒤엉킴에 이곳은 그다지 밝지 않다. 그 속에 어딘사 가에 존재하는 감추어진 외딴 저택. 그곳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언제나 그렇다. 연이어 한가로운 오후에 그저 아무런 것도 하지 않고 따스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벽날로 앞에서 나는 그렇게 노곤노하게 반쯤 잠에 취한 상태로 앉아있었다. 삐그덕-. 삐그덕-. 내가 앉은 흔들의자가 일정한 초심에 따라가듯이 그런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곧이 있으면 점심 시간이겠지만 딱히 그런 것을 들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그저 이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도 나는 스스로 움직일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나의 친구들이 나를 대신하여 줄텐데 말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유자적한 상황은 이제 끝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온 것 같다. 친구들로 부터 보내진 현관으로 부터 들려오는 연속적인 큰 두두림. 그리고 발성. 이 목소리로 부터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그녀'이겠지... 아ㅡ. 최근에는 외부로 부터의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 주는 구나. 이런 상황은 나쁘지 않아. 나는 바로 친구들에게 지시하여 현관을 열고 그녀를 맞이 하도록 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그녀를 맞이하여 실내로 들이도록 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한다. 나는 의자에서 편하게 풀어져 있던 자세에서 얌전하게 다소곳하게 자세를 가다듬는다. 잠시후에, 내가 있던 방문이 열리고 그녀가 보인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먼저 말을 건넨다.
목이 베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목을 매만지다가 제 손을 확인한다. 순간 피가 잔뜩 묻어 뚜욱, 하고 떨어지는듯한 환영이 보이다가 곧 사라진다. 이게 아냐, 이건 가짜인데, 아아 이게 뭔데. 그녀는 그렇게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게 느껴지자 그저 울면서 제 목을 이미 다 물어뜯어 만신창이인 손톱으로 마구 할퀴어댄다. 그러자 결국 피가 흘러나온다. 그 전의 깊은 흉터 위에 새로운 흉터가 생길 것 같다.
어머? 비비안은 문을 여는 알리시아의 '인형' 들의 모습에 잠시, 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살짝 막고 굉장히 여성스럽고 어울리는 다소곳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안녀엉, 고마워~ 그 우아하고 다소곳한 감탄사는 금새 사라지고 그녀는 평소와 같이 과장스러운 제스처로 깔깔 웃으며 알리시아의 친구들의 머리를 지팡이를 들지 않은 손, 그러니까 방금 전 입을 살짝 막은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안내를 받아 발랄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안녀엉~ 리시아!! 뭐에요? 자고 있었어? 혹시? 내가 방해? 에, 진짜?"
알리시아를 향해 양팔을 좌우로 과장스레 펼치면서 다가가려던 비비안이 우뚝, 멈추면서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흔들의자, 다소곳하게 정리된 자세. 흐응? 하지만 비비안은 그것에 당황한 기색도 없이 우아한 걸음걸이로 팔랑팔랑 걸어가, 알리시아를 흔들 의자 채로 꼬옥 끌어안으려한다. 중절모가 비스듬히 얹혀진 은색 머리카락이 살며시 숄을 두른 비비안의 어깨 위로 흐트러지면서 동시에 알리시아에게로 흘러내려간다.
"알리시아~ 차 줘요~ 차 주면 안잡아먹지이~ "
어서오세요, 라는 알리시아의 인사는 됐다는 듯이 비비안은 알리시아의 등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채 늘어지는 목소리로 과장스레 말했다. 배고파~ 하는 칭얼거림은 덤이였다. 용케, 오른팔에 걸치고 있는 지팡이는 떨어지지 않고, 중절모도 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