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지 않게 혼잣말을 읊으며 튀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저녁의 어스름한 길가를 걷는 레오닉의 검은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 하나의 유리병이었다. 손바닥만한 조그마한 유리병은 마치 부대에 달린 조잡하게 얽어놓은 것 마냥 간략하게 봉하였고 그 병 속에는 따끈히 데운 저민 닭고기 조각들이 알차게 들어있었다.
도대체 무엇에 필요가 있기에 평소라면 빼곡한 문자로 가득한 종이 조각이나 펜, 도장 따위로 꽉 차있을 그의 가방에 저민 닭고기 따위가 있는 것일지. 그는 이렇게 일방통행 길거리를 어슬렁거리더니 입술을 비죽거리다 문득 고개를 돌렸고, 그 방향에는 방금 전 어떤 동물의 울음소리와 선율이 있었다.
한참을 걸어도 고양이의 주인으로 생각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그의 머릿 속 한 구석에 접어두었던 '귀찮다' 라는 감정은 점점 본인의 자리를 차지하려 들었다. 그의 머릿속에, 그냥 처음에 봤던 곳에 놓고 갈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맞은편에서 자신을 향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린다.
"고양이..."
작게 중얼거린 그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 자신의 품 안에 있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 레오닉의 쪽으로 내민다. 처음 보는 사람이 본다면, 고양이를 해치려 드는 것으로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행동이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아했고. 레오닉을 향해 마주친 눈은 부드럽게 웃음짓는다.
"혹시 그쪽이 이 고양이의 주인이신가요."
그의 손에 목덜미가 잡혀 대롱거리며 매달린 고양이는, 레오닉을 향해 약간은 애처롭게 '야옹' 소리를 낸다.
만일 일방적인 유린을 본다면, 바로 이 광경을 보는게 아닐까. 사방에서 울리는 비명소리와 성녀를 믿는다는 의지로 모인 강경파들의 함성소리. 그것이 음악처럼 들리는 광란의 공간.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양면의 동전과 같이 두 가지 면모를 보이는 물빛 머리의 여성, 희망의 성녀라고 불리우기도 피안의 뱀이라고 불리우는 리코였다. 어느쪽 별명이건 그녀는 싫어했지만 지금 만큼은 '피안의 뱀'을 연기해야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에버초즌이라고 했던가요. 모습을 드러냈으면, 한번 인사라도 해야겠지요. 그러니까 이건 당신에게 주는 '선물' 입니다."
마치 당장에라도 나타나 들으라는듯 리코는 웃음기를 머금고는 '사형수'의 두개골 노리고 쏘아 처형을 반복한다.
양광신성회. 그들은 환상종을 공식적으로 배척하고 전쟁을 선포한바 있다. 그렇기에 법률상으로도 인류에게 해악을 끼친 환상종을 대역죄인으로 취급하여 양광신성회의 마음대로 처벌할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재정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물론 신도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리코. 그녀의 평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자, 그녀도 어느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할 수 있는 광란의 제전이었으니까.
'뭐.. 극단적 광신자들만 모였고 여차하면 지나친 광신을 이단으로 몰아 전부 묵인할수는 있는 노릇이고. 위험한건 오히려 에버초즌의 반응이려나.'
물론 자신이 빠져나갈 길은 당연히 세워두었기에 속으로는 모여있는 광신자와는 또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느정도 환상종의 수뇌부와 대화가 필요했기때문이다. 쉽사리 개인적으로 접촉하는것은 리스크가 크다. 그렇기에 미끼를 물게해서 불러온다.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벌이고 있었다.
가방에서 전술함 유리병을 꺼내보였다. 조잡한 마개 사이로 차가운 밤공기 탓인지 유달리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한 순간에 주변을 고소한 육류 특유의 향취로 물들였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레오닉은 고기의 뜨끈한 냄새가 건조해진 호흡기에 스미듯이 적셔가는 것을 느끼면서 가방 속에 밴 고기 냄새를 빼는데 여간 고생하겠다는 자조감을 속으로 삼켰다.
"보통은 엉덩이를 받치고 겨드랑이를 감싸 안는게 좋습니다."
아기때에는 무게가 가벼운지라 신체적으로 부담되는 행위는 아니지만, 그 편이 더 안정감을 줄 수 있다더라. 레오닉은 몇 마디의 사담을 붙이며 선율에게서 고양이를 받아들었다.
"그래, 그래. 참회... 해야지. 왕아, 우리의 왕아. 슬퍼하지 마. 내가 슬퍼해서 네가 슬퍼하는거구나. 그러니까, 이제 나도 더이상 슬퍼하지 않을게. 이런 얘기를 하게 되어서 미안해. 감정이 격해졌을 뿐이야. 너무 신경쓰지 마."
네가 내 머리위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애써, 애써 억지로 웃어보이곤 다시 무표정하게 널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해야할건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너를 위해, 모든 우리들을 위해 전쟁을 끝내는것. 만약 네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나는 기꺼이 네 모든 상처를 짊어지곤 떠나리라. 이 전쟁의 끝을 바라보지 못하는건 슬프지만, 우리의 왕아. 네가 없는 세상은 더 슬플테니까. 하지만 이 말을 하면 안된다. 너와 나는 평행선을 달린다. 내가 느끼는 좋아한다, 라는 이 감정은 모두에게 해당된다. 나는 모든 우리들을 좋아한다. 내가 많은 우리들을 죽인, 그 반동 때문일까? 난 단 한명의 우리들의 목숨이라도 빼앗고싶지 않다. 우리들을 위해서라면 난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것에, 나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아니었다. 너는 기꺼이 모든 우리들을 사랑해주었고, 너 자신 또한 사랑한다. 그렇기에 너는 나를 걱정한다. 이 대화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평행선을 달릴것이다. 나는 그걸 깨달았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우리의 왕에게 저주를 걸고 싶지는 않지만... 네 행복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가 죽을때 내 존재를 잊도록 저주를 걸 각오도 되어있다. 우리의 왕아, 너는 한없이 부족하고 한없이 연약하며 한없이 자애롭다. 우리의 왕아, 나는 모질고 추악하며 더러웁다. 우리의 왕아, 내가 말해주었지. 너는 부족함이 있기에 완전하다고. 우리의 왕아, 너는 그대로 있으면 된다. 네 슬픔까지 전부 내가 지고 갈 테니.
"하지만...?"
말 끝을 흐리는 너의 말 끝을 따라하며, 한동안 널 쳐다보았다.
"우리의 왕아, 너는 우리들의 대표이고, 우리들의 왕이야. 말 끝을 흐릴 필요는 없어, 우리 중에서 제일 현명한 사람은 너이고, 우리가 믿는 사람은 바로 너야. 우리의 왕아, 희야. 왜 슬퍼하는거야? 슬퍼하지 마.. 나는 네 웃음이 좋아. 네 인자한 미소를 보고 있는게 좋아. 네가 내게 선물해주는 꽃이 좋아. 우리의 왕아, 슬퍼하지 마."
자신감을 가져. 말 끝에 덧붙이곤, 네가 내가 어루만져주자 웃는걸 보고, 이제야 웃는구나, 하고 짧게 중얼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전쟁터에서 많은 우리들이 죽어나가지 않았는데."
어째서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이, 그렇게 공격적인걸까. 슬픈듯 중얼이고는 이어지는 네 말에 짧게 침묵했다.
"희야, 인간이 죽어갈땐 인간이 도우러 와. 우리들이 죽어갈땐 우리들이 도우러 와. 하지만, 우리들이 죽어갈때에 인간이 달려온적이 있었던가? 없었어. 인간들이 죽어갈때 우리들이 달려간 적이 있었던가? 없었어. 그 인간이 말했어. 모든 인간이 나쁜것은 아니라고. 우리들이 정말 나쁜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이 있댔어. 하지만 희야, 모든 인간은 똑같아. 달리는 기차위엔 중립은 없어... 희야, 모든 인간들은 죽어가는 우리를 모른척했어. 아니면 같이 죽이는데에 동참했어. 희야,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지 마. 지금의 인간은, 우리를 죽이는 존재일 뿐이야. 이 전쟁은, 그런 것이야. 선과 악, 소중한 생명같은건 무의미해.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는 죽여야 해. 모든 인간을 죽여서, 이 전쟁을 끝내야 해."
무심하고, 무덤덤하게 읊조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네 말,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가볍게 눈을 감았다.
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 나의 종족도, 당신의 종족도. 평화를 희망하며 화합을 노래하는 지도자는, 정녕 미친 것인가?
늘 미소를 머금고 다니는 희야의 무표정을 볼 수 있는 날은, 아마도 당신이 죽을 때까지 보지 못 할 광경일 수도 있는 흔치 않은 광경이었다. 국경의 경계선에서 지그시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떼어내는 그는, 무슨 일이 있던, 제 앞에 누가 있던 그 흐릿한 미소를 지어내던 사람이었다.
“ 인간들은 무례한 행동을 이리도 당당히 저지르는 종족이었던가요? “
이윽고, 수풀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던 희야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근엄한 자태를 흘리는걸 보면, 그를 두 눈으로 확인 한 순간, 당신은 그가 바로 환상종의 우두머리란 것을 일거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늘어진 눈으로, 당신들의 잣대 하에 사형수라는 명분으로 사그라진 안타까운 생명들을 바라보았다.
“ 이리도 자극적인 행보를 취하는 것은 나를 불러내기 위함이겠지요. ...정식적이지 않은 자리인만큼, 이 자리를 오래 지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당신의 손에 사그라진 생명들을 위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양이를 건넨 선율은, 눈 앞의 남성이 꺼낸 유리병에서 퍼지는 육류 특유의 따끈하면서도 고소한 향이 주변으로 퍼지자 눈을 살짝 가늘게 뜬다. 저런 걸 뭐하러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걸까. 소동물의 먹이를 챙겨 주기 위해서, 라는 사소한 이유인 걸까- 조금이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다시 웃음짓는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양이 같은 것을 들어 본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는 변명이라도 하는 것 마냥 쓸데없는 말을 덧붙힌다. 그리고는 잠시 눈 앞의 남성을 바라보다가, 흐음. 하고는 무언가를 기억이라도 해내려는 듯이 그를 향한 시선을 훑는 것처럼 둔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닌가, 저런 외향이라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으니. 단순한 착각인 거겠지.
무심히, 소녀의 말을 들어주던 레오닉은 무뚝뚝하게 단순한 한마디로만 화답했을 뿐이었다. 그 어조는 어떤 감정이 실려있는 음색이 아니었다. 무엇에 비유하여 표현해야 한다면 흐르는 물이었고 계곡이었다. 물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을 흐른다고 말하듯이, 담담하고 거침이 없는 어투였다.
"빌어야 할 대상을 찾는다면 만일 시이 너가, 그저 바라만 보았던 환상종에게 인간을 해하지 말라고 빌어야 할 것이고, 용서를 구한다면 결국에 환상종이 인간을 해하고 그렇게 죽어간 피해자들이겠지. 모두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을 일이지만."
레오닉은 옅지만 평소보다는 깊은, 이르자면 한숨보다는 작지만 심리적으로 무언가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에 고민할 적에 나오는 작고 짧은 숨 한토막을 내쉬었다. 그리고 시이와 함께 자신의 집무실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생각해보니 주교라는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한건지. 아무래도 우리 둘다 비밀로 해줘야 할게 생긴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