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일련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부터 뱅뱅 도는 것, 그리고 나뭇가지를 물고 와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그리는 것 까지.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하하하! 아하하하하! 너... 넌 좀 특이한 아이구나!"
소녀는 키득키득 웃으며 거의 반쯤 바닥을 나뒹굴 뻔한다. 귀여워라. 지금껏 동물들은 꽤ㅡ그녀 나름엔ㅡ봐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강아지는 처음 봤다. 백향은 눈을 깜빡이며 사이카를 바라본다. 설마 강아지가 사람이 된 건 아니겠지? 일순간 헛된 생각이 떠올랐으나 그 생각은 곧 당사자에 의해 부정되었다. 설마. 설마 사람이 강아지로 변할 일 있겠어?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잖아. 이 마법학교라면 충분히 그것이 가능한 일일 터이나 불행히도 아이는 여기가 마법학교라는 자각 따윈 잊어버린 게 분명하였다.
"뭘 그리려 했던 거니?"
아이는 고개를 갸웃대며 내리그어진 선들을 잘 관찰한다. 허나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쭉 뻗은 건 선이요 구불구불하게 그려진 이것은 동그라미 같은데 도대체 뭘 그리려 했던 걸까? 아니, 애초에 강아지가 그림을 그리는 게 가능한가? 아이의 머릿속이 혼란해졌다. 강아지랑 의사소통을 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구나. 마법으로 동물의 언어를 통역하는 일은 못하나? 문득 소녀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는다. 맞다. 마법... 여긴 마법학교... 그렇다면...
"설마 인간을 동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한건가? 아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사이카를 의심하는 듯. /오후에 잇겠다고 해놓고 저녁에 이어버렸어 ㅠㅠ 사이카주 죄송해요 ㅠㅠ
재미있는 이벤트, 거기다 잘하면 펠릭스 펠리시스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는 유혹에 혹해 음료수를 선뜻 받아마신것이 잘못이었다. 자신의 올해 운을 시험해보겠노라고 기세좋게 색깔 모를 음료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뭐. 펠릭스 펠리시스가 아니더라도 평범하고 맛있는 음료수라면 그걸로 만족한다면서. 하지만 안타깝게도 린에게 주어진 올해의 운은 그녀가 기대했던 만큼 많진 않았나보다. 음료를 마셨음에도 별다른 몸의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폴리주스인가 하고 생각해 얼굴을 만져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잠시동안은 펠릭스 펠리시스인가 하고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확실히. 자신이 뭐라 말을 꺼내기 위해 입을 열기 전에는. 자신은 분명 ' Wow. 이 음료수 굉장히 독특한 맛인데. '라고 말할려고 했었다. ' 뫄무. 미 믐료수..'가 아니라! 자신의 혀가 제멋대로 움직여 'o'가 들어갈 곳에 'm'소리를 내자 헉 숨을 들이키며 순간 제 입을 틀어막았다. oh. God damm it! 속으로 불만과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도 원체 성격이 여유로운 그녀의 특성 상, 다행히 린은 곧 '원래 이런 맛에 참가하는 이벤트인가보지 뭐.'라며 자기 자신을 애써 달랠 수 있었다. 음료수를 다시 먹기 위해선 일종의 쿨타임이 있었으므로 린은 그동안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생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중간에 방에 한번 들려 린이 준 얼음이 가득 든 얼음물을 전부 씹어 마신 자신의 시베리안 허스키 조슈아를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조슈아는 얼음을 그렇게나 많이 먹었음에도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제 물그릇을 핥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조슈아에게 얼음을 줬다간 배탈이 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여 린은 더워하는 조슈아를 애써 쓰다듬어 달랬다. 조슈아와 함께 연회장으로 내려왔다. 왜냐하면 주작 기숙사 안은 항상 뜨듯한 여름이기 때문에 시베리아 썰매견 출신인 조슈아에게 있어선 그야말로 찜통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데리고 나오는 수 밖에. 조슈아가 더워서 혀를 내밀고 연식 헉헉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린은 자신의 기숙사가 주작이 아니라 청룡이었다면 좀 나았을텐데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연회장에 도착하자 대체 무슨 일인지 바닥에다가 꿈과 동심이 가득한 무지개빔을 쏘고있는 학생들과, 주인을 잃어버린건지 아니면 폴리주스를 마시고 변한건지 구분은 잘 가지 않지만 아무튼 연회장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크고 작은 개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을 뽐내고 있는 반강제 패셔니스타들. 엘라스틴을 쓴 것처럼 찰랑찰랑하게 된다고 하기에 무슨 라푼젤마냥 길어지는 줄 알았더니. 저 정도면 일부러 마시는것도 괜찮겠다는 감상평을 남겼다. 그러나, 그 사람들 틈 속에 절망적인 표정으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남학생이 보였다. 왠지 척봐도 같은 기숙사일 것 같은 예감. 낮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적고 친화력이 높은 린은 곧바로 그 학생에게로 다가가 옆에 풀썩 자리를 잡아 앉았다. 자신과 비슷한 푸른빛이 섞인 머리카락이 인상적이었다. 염색? 아니라면 부럽네. 왜냐면 내 머리카락은 원래 새까만 검정이거든. 하지만 어딘가 나랑은 달리 모범생같고. ha. 명문 가문 도련님같네.
" 헤미(hey). 뫗 썹(what sup). 뫠 그리 처참한 표점믈 하고 밌머? suger cube. "
소년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ㅇ발음이 아닌 ㅁ발음에 가까운 처음 듣는 여학생의 목소리에, 손에 얼굴을 묻고 욕이 되지 못한 말을 내뱉던 것을 멈췄다. 손을 떼어내고 소년은 곧은 시선으로 제 옆자리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있는 여학생을 잠시 응시했다. 누구지? 라는 의문과 함께 긴 머리카락은 보라색과 남색의 중간즈음 되는 색이 시선을 유난히 잡아끄는 여학생이였다. 웨이브에, 분홍색 그라데이션까지.
소년이 이제껏 16년 평생 이 학원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머리카락은 처음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소년은 잠시 조금은 여학생이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로 곧게 시선을 건네고 있었다. 온통 새까만 눈동자가 지그시 여학생을 응시했다가 천천히 깜빡여졌다.
"안녕하십니까. 기분 좋아보이십니다."
소년은 여학생의 말을 해석하기 전에, 여학생의 헤이, 왓썹과 비슷한 인사에 조용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마주 인사를 건넨 뒤, 그 뒤의 말을 해석하려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왜 그리 처참한 표정을 하고 있어? 라는 뜻이겠지. 소년은 침묵하던 입을 움직인다.
"조금 이벤트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소년은 낯선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없어보이는 여학생의 말투와 행동에 숙이고 있던 고개와 허리를 반듯하게 펴서 의자에 기대고는 길게 변한 머리를 한번 쓸어넘겼다. 다행히 어제 받았던 머리끈이 주머니에 남아있으니 다행이였다. 안그랬으면 또 상투 풀린 사람처럼 산발하고 다녔을 것이다. 소년은 낮은 한숨을 내쉬고 제 머리를 하나로 모아 대강 묶기 시작했다. 머리를 묶으며 소년은 여학생이 자신과 같은 기숙사인가, 아니면 청룡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