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조사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환상종의 숲에서 조사만 할 뿐. 다른 임무는 내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은 숲에 왔다만... 대체 뭘 조사하라는건지. 그냥 숲이 잘 있다는걸 확인하라는 거였나? 의도를 모르겠네.
하염없이 숲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습격해왔다. 어떤 금속같은 막대를 이용해 내 다리를 부러트릴 생각으로 낮게 도약하여 막대를 휘둘렀지만, 맞으면 그냥 아픈걸로는 안 끝날것 같았기에, 어떻게든 뒤에 있던 나무를 발판삼아 뛰어 그것을 피해내었다.
" 위험하잖아. 싸울 생각 없어. 그런 임무도 못받았고. 그냥 조용히 있어주면 안되냐? "
자그마한 소원을 말해보았지만, 묵살되고 문답무용의 공격.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받아쳐내면서 이걸 맞서 싸워 죽여야 하나, 아니면 그냥 조사를 그만두고 돌아가야 하는가를 심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임무 외의 일은 하지 않는다는게 내 주의니까. 오늘은 조사일 뿐이다. 살육은 전달받지 못했다.
" 그냥 죽이는게 제일 편하기는 할 것 같은데... 그치만 그건 임무가 아니고... "
고뇌하면서도 공격을 피하는 도중, 다른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 내 감시역을 붙이지는 않았을테니, 다른 환상종일 터. 여기서 지원군이 오면 곤란해지는데. 도망가기 힘들어지잖아.
비비안은 오른팔에 걸고 있던 지팡이를 반바퀴 빙그르르 - 돌려서 바닥을 탁 하고 짚었다. 숄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른 손에는 검은색의 중절모를 들고 그녀는 제 구불거리는 은색 머리칼 위에 중절모를 가볍게 얹는다. 맙소사, 이게 무슨 소란이죠? 시미는 매-우 궁금해요. 그녀는, 한번 더 지팡이를 휙휙 돌리면서 흥얼거리면서 호기심이 잔뜩 어린 노을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고 헤실 - 즐겁다는 듯 미쇠를 지었다.
맙소사. 이게 뭐죠?
"이런, 이런. 숲이 시끌벅적하길래 왔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요 -?"
비비안은 붉은색 드레스의 중간부분을 , 방금 전 중절모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살포시 잡아 우아하게 끌어당기면서 하얀색과 붉은색이 섞인 후드를 입은 인간과 거리를 바짝 좁히면서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희극적인 어조로 말꼬리를 길게 늘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가 바닥을 경쾌하게 짚었다. 비비안은, 이제는 양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끌어당겨 올리며 우아한 귀부인처럼 인사를 건넨다.
"당신은 누구시죠? 누구 - 신지, 제가 물어도 될까요? 인간? 인간이에요? 인간이라고 하면 지금 내가 굉장히, 화가 날거 같은데요."
자기소개를 해보실래요? 초대받지 않은 무대에 오르신 신사분. 과장스러운 목소리로 중간중간 악센트를 강하게 집어넣으며 비비안은 말했다. 인사를 마친 비비안은 머리 위에 얹은 중절모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을 잡고 싱긋 눈을 가늘게 뜨고 신랄한 미소를 짓는다.
"환상종들이 있는 곳에, 인간이 오다니! 무대가 아직 마련도 안됐는데 너무 다짜고짜 찾아오신거 아닌가요! 무례하시군요! 신사분?"
배우는 곤란하다구요? 비비안은 쿡쿡, 신랄하기 짝이 없는 말을, 신랄한 미소를 지은 미소를 더욱 진하게 지으며 빙글 몸을 한바퀴 돌려서 다시 인간을 바라봤다. 가늘게 뜬 노을빛 눈동자가 더더욱 가늘어졌다. 어쩔 수 없군요. 정 - 말. 비비안이 다시금 신랄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아한 제스처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웃음이였다.
"제가 인간에게 먼저 이름을 밝혀야할 이유는 없는데요, 신 - 사 - 분. 그리고 자고로, 인사는 신사분이 먼저 해주셔야하는 거, 아닌가요?"
존경의 키스도 함께 해주실래요? 비비안의 손바닥 위에서 중절모가 비비안의 한바퀴 돌았던, 우아한 귀부인같은 움직임처럼 부드럽게 묘기를 부리듯 빙그르르 돌았다. 그와 함께, 비비안의 오른손에 들린 지팡이도 같이 한바퀴. 정신없는 행동이였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움직임이나, 과장스러운 제스처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듣기 불편하게 말 중간중간 이상한 부분에서 말끝을 길게 늘이기도 한다.
"좋아요. 무대는 아직 덜 준비됐으니 시-시-하 - 게. 인사라도 해볼까요? 비비안 - 이라고 한답니다. 신사분은?"
손바닥 위에서 빙그르르 돌던 중절모가 비비안의 은색 머리카락 위에 살포시 얹혀졌다. 한발짝 물러나는 행동에, 그녀는 한발짝 상대와 거리를 좁힌다.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비비안은 지팡이의 끝으로 가리키면서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를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