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팔에 살짝 기댑니다. 정말 좋아하는 걸요. 라고 생각하고는 일어날 때까지 기댈까 갈등하지만 적당히 떨어지려고 합니다. 치마자락을 정리하고,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늘 머리카락은 정말 잘 손질되었어요. 지금까지도 안 풀리고 있다는 게 그 증거인걸요.
그리고 관람차라는 말에 으음.. 하고 어디 있으려나요. 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보일 텐데요.." 자신도 휘휘 둘러보다가 지도가 있을 거예요..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보통 놀이공원엔 그런 거 있다던데!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닉시의 존재를 깨달았습니다. 닉시보고 가이드를 시키면 되는 건데요. 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니까요.
"음.. 제가 물어볼게요." "확률이 있으니까요.." 닉시를 불렀습니다. 다만 닉시라고만 부르면 그 주위의 모든 닉시들이 뒤돌아본다는 게 단점이려나요? 그래서 저기 ㅇㅇㅇ기둥 아래의 닉시. 라고 찝어야 하지만요. 타미엘 옆의 헤세드를 보자마자 뭐라뭐라 말하는데 묘하게 단어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요?
뭐.. 그 단어들이.. 적당히 이어서 문장을 만들면 으허허헝 도둑놈 같으니라고. 우리 여신님 행복하게 안하면 우리한테 죽는다.. 뉘앙스가 강하다지만... 일단 타미엘은 관람차까지 안내해주기를. 이라고 말했어요.
물론 그 닉시는 헤세드는 신경도 안 쓰고 여신님이 내게 부탁을 하셨어요! 라고 생각하며 아주 감격한 듯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정수리와 뒤통수를 잇는 곳에 달린 상어 지느러미와 커다란 꼬리가 특징적, 상어 이빨 속성(실수로 혀라도 깨물면 유혈사태가 일어남) 목에 양쪽 다섯개씩 아가미가 있지만 늘 폴라티를 입고 다녀 드러나지 않는다. 호흡에 문제있지 않을까 싶지만 어차피 폐호흡을 하고 있으니 문제 없다.
왜 질투를 한다는 건지, 너를 좋아해서 단순히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질투한다는 건지, 아니면 팔찌를 보고 애인이 있다는 것에 부러워 할 거라는 건지. 어느 쪽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은 없지. 내 애인이니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바는 아니다. 애교를 부리듯 볼을 부비다가 입을 맞추는 모습에 소리내어 웃으며 힘을 주어 너를 껴안았다.
그대로 번쩍 들어올려 발 위에 너를 올리고, 거실 쪽으로 되돌아가다가 네 말을 듣고 멈추었다. 앨범이라.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네 모습이 궁금한 건 당연한 거니까.
"앨범? 봐도 돼?"
그러고 보면, 내 예전 사진은 몇 개 밖에 안 남았구나. 집의 책장 위에 올려둔 사진들을 생각해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아무래도.. 말을 잘 못 알아듣는 닉시들은 있으니까요." 아마 어린 닉시이지 않을까요? 라고 추측을 중얼거렸습니다.
"...그..좋은걸요.." 헤세드가 팔짱을 끼려는 듯 손을 내밀자 타미엘은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팔짱을 끼려고 했지만 닉시는 한 번 앞으로 고꾸라져 잠깐 미동도 없다가 다시 일어나서 부들부들 떨리는 게 뻔히 보이면서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팔짱 가지고 그러면 예전에 공주님 안기 한 거 보면 녹아내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타미엘주에게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의외로 빠르게 도착할 순 있었을 것 같네요. 하기야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팔짱을 끼고 더 길게 걸어야 했다는 걸 본이..아니 본영도 알고 있으니까요.
"...즐..거운...시간...되..길.." 닉시가 굉장히 심한 노이즈가 섞인 말을 했습니다. 왠지 이를 부득 하고 간 게 느껴진다면 착각이려나요?
내일 준비물이 뒤늦게 생각이 나서 어둑해진 밤, 급히 가게에서 다녀오던 길이었다. 중요한 물건이 보이질 않아 시간을 많이 끌어버렸다. 그냥 처음부터 카운터에 물어보면 됐을 걸 바보 같이. 그 사이에 소나기가 쏟아져내려 추가로 우산 하나까지 구입하였다. 이 늦은 밤에 우산 가지고 와달라는 이유로 가족을 깨우기는 미안해서. 다들 오늘 하루로 피곤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니 말이다.
우산을 어깨에 걸쳐쓰고 천천히 걸어가니 준비물이 가득 든 봉지가 이따금씩 다리를 툭툭 친다. 다리를 내려다보니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에 사정없이 젖어있다. 위를 올려다보았다. 한여름답게 많이도 내리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사고가 조금씩 느렸다.
골목길로 들어섰다. 얼마 전에 발견한 집으로의 지름길이다. 이 길로 다녀보니 큰 길로 다닐 때보다 시간도 더욱 단축되는 기분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늦은 시간에 다니기에는 으슥하기도 하고 부모님도 밤에는 절대로 그런 길로 다니지 말고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곳을 택하라고 신신당부하지만, 15년 인생 위험한 일에 한 번도 휘말려 본 적이 없는 덕에 솔직히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ㅡ라는 태평한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길고양이들이 비를 피하는 밤의 길을 애매하게 비추는 얼마 없는 가로등이 묘한 위안을 준다.
태평했던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집에 돌아가서 야식을 즐길 생각이나 하던 내가 조금 뒤에 어떠한 광경을 마주하게 될지.
"...왜..."
머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니 곧 꺼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목소리.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왜, 왜 그런 거야..."
목소리의 주인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둑한 티셔츠에 마찬가지로 어둑한 바지. 곧 쓰러질 것 같은 발걸음. 남자아이였다. 나와 나이차 별로 날 것 같지도 않은. 온 몸이 크고 작은 상처로 뒤덮힌. 피투성이.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몸이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형도...나...ㄷ" "꺄악...!"
몇 걸음 더 못 옮기고, 남자아이는 앞으로 쓰러졌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짧고 날카로운 비명이 입밖으로 나왔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도망쳐? 이 생각마저 했다는 걸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만큼 무서웠으니까, 나는. 하지만 상대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성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반쯤 풀린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서 남자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엉망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깨를 흔들며 생각나는대로 마구 불러보지만, 아무래도 의식을 잃은 듯했다. 반응할 기력마저 없다든지.
반묶음한 짧은 단발이 내려오는 게 거슬려 어서 귀뒤로 넘겼다. 어째야할지 갈피를 못 잡으며 시선을 여기저기 옮기다가 주머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긴급전화 기능을 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히고 전화번호 입력 창을 띄웠다.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119라는 간단한 번호조차 자꾸 안 눌러진다. 이를 악물고 번호 입력에 성공한 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평소에 아무렇게나 상상했던 무능한 직업인들과는 달리 빠르게 전화를 받자 안도되었다. 그 탓에 더욱 흥분해버렸지만. 다행히 상대는 더듬거리면서 정상적인 문장으로 성립하지는 않는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듯했다. 위치를 묻고 지금 바로 간다는 식의 말을 남기고 전화가 끊어졌다. 그 뒤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보 같이 멍하게, 미동도 하지 않는 남자아이의 곁을 지키기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와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가버렸다.
○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남자아이의 부모님은 친절했다. 멍청한 표정으로 복도 의자에 앉아있는 나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전했고, 나는 두 손을 칠칠치 못하게 흔들며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라는 진부한 소리를 반복하게 되었다. 어머니 되시는 것 같은 분은 눈물을 쏟으셨다. 분위기가 이상하더니ㅡ의 말씀을 반복하시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도 걱정이 많으셨던 모양이다. 정확히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 아버지 되시는 것 같은 분이 그 분을 다독이셨다. 어쩐지 조금 굳은 표정으로. 그러다가도 내쪽을 바라보시더니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신다. 아들의 은인이니까 언젠가 밥 한 끼 사주겠다ㅡ라신다.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 남자아이도 아마 부드러운 성격이지 않을까, 라고. 착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