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그를 보고 마주섰다. 그는 미안하다며,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다며 아까의 일을 사과해왔다. 사과할 일도 아닌데. 그게 그렇게 신경쓰인 걸까. 그가 사과할 일이 아닌데... 이제 익숙해지게 바꿔주면 안 될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부루퉁하게 중얼거렸다.
"무리하지 않아도 되요. 그런 건...그렇게 한번에 바뀌는게 아니라는 거, 나도 잘 아니까요."
그리고 화 안 났다니까.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부풀린 볼이나 집어넣어라 이 아가씨야. 밉지않게 혀를 빼꼼 내보인 나는 그의 팔을 잡아 꼬옥 안았다.
"같이 천천히 익숙해지기로 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밥부터 먹고. 다 식겠다."
오빠가 만들어준 첫 요리인데 식으면 아쉽다구. 그렇게 말하며 그의 팔을 잡고 부엌으로 향했다.
나란히 발걸음을 맞춰 부엌으로 갔다. 그릇을 네 쪽으로 밀어주고 반대편에 앉는다. 밥을 나란히 먹으면서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냥, 간간히 간은 맞아? 싱겁진 않아? 같은 말을 하고, 가끔 식탁 아래로 발장난도 쳐 보고.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몇 년 만에 남의 집을 방문해서, 이렇게 식사까지 같이 할 줄이야. 다 먹고 식기를 정리하다가 새삼 드는 생각에 너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같이 맞춘 귀걸이가 들어왔다. ...그러고보니, 선물 건네줘야 하는데. 슬그머니 네 눈치를 보다가 거실로 빠져서 가방을 들고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식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었지만 오늘의 식사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메뉴도 어제가 훨씬 많고 맛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해준 볶음밥만큼 진수성찬이 없었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과하지 않은 장난도 치면서. 연인이란 느낌 가득한 식사는 처음이라 왠지 엄청 두근거렸다.
다 먹은 후 정리는 같이 했다. 그가 가져온 식기들을 내가 식기세척기에 넣는 사이 그는 식탁을 정리했다. 적당히 배가 부르니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괜찮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정리를 마치고 냉장고 쪽으로 가다가 그가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언제 갔다왔는지 그가 손에 가방을 들고 있었다.
"줄 거? 뭔데요? 아, 아까 나 두고 사러 갔던 거?"
내 선물이었어요? 너무 빤해서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다. 정리하느라 걷었던 소매를 다시 내리고 옷의 구겨진 부분을 정리하며 그의 앞에 섰다.
"네. 다행인 일이예요." 정말로 격세지감인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본래부터 전혀 랑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요.
다 먹고 난 다음에 마시자는 말에 조금 궁금증은 일었습니다만. 자신이 알아차린다 해도 가르쳐 줄 때까지 있는 것도 좋지 않나요? 자신이 가져다즌다는 헤세드의 말에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가져다진 입장에서는..
"알았어요.." 먹고 싶은 게 있다 하더라도 안 되면 넌지시 이것을 만드는 식당을 검색해 봤다.. 식으로 은유해서 말하던가 하지 직설적으로는 잘 말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고개는 끄덕입니다. 나름대로 요리 실력에 자부심..은 없고 요리를 잘하고 싶다는 의욕은 있었으니 나아질지도요?
//끌려가서 찜질당하다 오ㅓㅆ습니다.. 다들 안녕하세요! 수인화인이 활발히 논의되었군요..(생각없음)
첫번째의 나는 도덕성이 결여되었고. 두번째의 나는 사회성이 결여되었지. 세번째의 나는 그것이 옳다 교육 받았고. 네번째의 나는 엄격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다네. 다섯번째의 나는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인지했고. 여섯번째의 나는 빠져나오려 발악했지만. 일곱번째의 나는 이미 빠져나오기엔 늦었음을 깨달았지. 여덟번째의 나는 가면을 뒤집어 썼고, 첫번째부터 일곱번째의 나를 모조리 부숴버렸다네. 아홉번째의 나는 너를 만났고, 달라져버렸지. 열번째의 나는, 혹은 그것은.
이미 끝나버린 너의 인생을 허무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강압과 비극의 연속이었다. 어린 자신은 순응하고 살아왔으나, 목줄과 족쇄는 성인이라는 이름을 달자 언제 가지고 살았냐는 듯 깨부숴져선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던 자신을 일깨워준건 너 였지만.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다.
그 사실은 언제나 나를 절망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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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투명한 액체가 흩뿌려졌다. 바람이 풀을 스치고 지나가자 독한 알코올 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거긴 편하냐."
나 두고 거기 있으니까 편해 죽겠지? 빈정거리는 목소리 사이로 붉은 머리가 휘날렸다. 장미꽃 같다며 낄낄대던 그 머리카락이었다.
"너 만나겠다고 내가 연초부터 시간 쏟고. 복에 겨웠어, 채정우."
왜 내가 여기 왔을거라고 생각해? 운을 띄우며 그는 비석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민을 위해서.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글귀가 적혀있었다. 손을 뻗어 파인 글자를 더듬으며 과거를 떠올렸고, 힘없이 웃었다.
"정우야."
비석에서 손을 떼었다. 너는 대답이 없었다.
"나 사실 너한테 할 말이 있긴 했는데, 네가 들으면 무덤에서 뛰쳐나와 날뛸까봐 차마 말 못했다."
그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야.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라고.
"예전에 합동 수사대 기억하냐."
당연히 기억하겠지. 내가 거기 누님이랑 엄청 다투지 않았냐.
"그 누나랑 나랑 같이 일하거든. 같은 팀원이야."
이 얘기를 왜 할 것 같냐?
"그런데, 그 누나가 한 제안이 있었어. 같이 부산에 가자고. 그 말을 듣고 많이 고민하고, 생각했어. 누님은 잊겠다고 하더라고. 그래, 나도 안다. 나도 알아."
잊기가 어려운걸 알지.
"그때, 내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거절했거든. 내가 너무 어리석었어. 어려운걸 알면서도 제안을 했는데 혼자 매몰차게 거절하고."
그래서 말인데. 로제는 고개를 들어 웃었다.
"그동안 고마웠고, 너 죽인 범인 족칠 순간까진 만나지 말자. 개새꺄."
이제 너를 잊어볼까 한다. 그는 웃으며 남은 술을 뿌렸다.
"나 그 누님 제안을 도저히 못 잊겠거든. 일단 널 잊어야 연애를 하든 뭘 하든 하지 않겠냐! 걱정 마라, 너 말고 우리 아빠랑 형까지 싹 잊어버릴 생각이니까."
뺨을 잠시 긁적이다가 종이가방을 뒤로 감추고는 네가 볼 수 없게 등 뒤에서 물건을 빼냈다. 좋아해줄까.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시험이라도 치르는 것마냥 심장이 두근댔다.
"선물, 괜찮다고는 했지만... 주고 싶었어."
처음에는 둘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반지는 서로의 손가락 사이즈를 몰라서 무리였고, 귀걸이는... 그때까진 아직 안 된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게 팔찌였다. 아까 전에 수공예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서, 자연스레 같이 둘러보게 되었달까. 조용히 네 손에 깍지를 끼고 가져와서 손목에 팔찌를 걸어주었다. 금색 고리에 챰이 몇 개 매달려 있었다. 새 모양의 금속 챰과, 붉은 보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