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책 속에는 책벌레가 살고 있어서 귀를 기울이면 벌레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이다. 20대 후반,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다루던 편집 일을 그만두고 조금은 홀가분하며 막막한 기분으로 말이다. 돌아가던 날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주변의 냄새가 평소보다 물씬 느껴졌다. 나는 양옥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 비가 내리는 날의 적막감에 흠취하고 있었다. 빗 소리 사이로 소곤대는 소리, 타박대는 소리, 사람의 인기척이 드문드문 느껴졌다. 소리가 들리는 곳은 할머니의 오래된 서재 안쪽에서였다. 오래된 문 너머로 나무의 묵은 냄새가 물씬 느껴졌고 작은 인영이 시야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것을 느꼈다.
슬쩍 고개를 집어넣어 어두운 서재 안을 바라봤다. 당연하겠지만 습기 찬 나무와 종이의 냄새 말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여기서 굳이 소리를 내가며 그들을 찾는 것은 크나큰 실례이리라.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문을 닫았고, 그제서야 서재는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운명적인 순간에 내가 넋을 놓고 있자, 그 작은 소녀는 내 눈치를 보며 책을 열었다. 정확히는 책의 문을 열었다는 표현이 맞을까. 그 소녀가 책의 문을 연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책이 아니었다. 작은 골목길 사이 밤의 가로등이 반짝이는 밤의 골목길이 눈 앞에 보이고 있던 것이다. 내가 그 입구에 다가서자, 마치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